“과거·미래 집착이유 없어 오늘 땀 흘려 노력하라”
“과거·미래 집착이유 없어 오늘 땀 흘려 노력하라”
  • 이승열
  • 승인 2022.04.28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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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건 33주년 인천법명사 회주 선일스님을 만나다
선일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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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독재 반대 청년 철학도, 운기 스님 은사로 출가

법명사 창건, 포교매진…3군 총본산 ‘홍제사’ 자부심

 

‘유신헌법·긴급조치’가 관통한 1970년대는 암울한 시대였다.

동국대 인도철학과에 다니던 청년은 낮에는 길 위에서 “유신독재 반대”를 외쳤고, 저녁에는 철학·정치·사회학도들과 시국을 논했다. 강압·고문·폭력·독재·민주화로 점철된 나날을 보내던 가을 무렵. 대학 4학년의 청년은 기차에 몸을 실었다. 철로 끊어지면 버스를 잡았고, 그마저 여의치 않으면 걷고 또 걸었다. 그 걸음은 땅끝 해남 대흥사에 닿아서야 멈췄다. 그 산사에서 근현대의 대 강백 운기 스님을 은사로 삭발염의했다.(1976) 선일(禪一) 스님이다.

해군 군법사로 임관(1978)해 대위로 제대(1986)한 선일 스님은 훗날 명저로 평가받은 ‘불교학대사전(홍법원)’ 편찬위원장을 맡았다. 초판(1988)을 내고는 포교에 매진할 작정으로 곧바로 미국으로 건너가 워싱턴주 타코마의 봉황사 주지를 맡았다. 그런데 잠시 떠난 미국 여행길에서 박성배 뉴욕주립대학 교수를 만났다.

“여기서 박사 과정을 밟아 보시지요!”

동국대에서 이미 석사를 끝냈던 터라 솔깃했고 미국과 유럽 사회가 주목하고 있는 불교도 궁금했던 터였다. 유학비를 지원해 줄 사찰이 필요했다.

인천의 한 상가에 방 하나를 얻어 ‘부루나포교원’(명법사 전신)을 열었다. 신도들이 몰려올 거라 예상했지만 한 달도 안 돼 산산조각 났다. 전기세 낼 형편도 여의치 않아 스티로폼 위에서 잠을 청해야 했으니 말이다. 절벽에 내려진 생명줄 잡듯 목탁 하나 움켜잡고 ‘100일 관세음정근기도’에 들어갔다. 그렇게 꼬박 2년 기도하니 20가구의 신도가 생겼다. 기뻤다. 목탁 소리에 귀를 기울여주신 불자들 아닌가.

한 걸음 나아가 3801m²(150평)짜리 2개 공간을 얻어 들어갔다. 아래층은 어린이 포교 전문도량으로 활용했다. 파티션도 설치할 형편이 안 돼 백묵으로 바닥에 금을 그어놓고 여기는 무슨 반, 저기는 무슨 반 했는데 놀랍게도 아이들 100여 명이 몰려들었다. 여행사에 맡겨둔 미국 비자는 뇌리에서 떨어져 나간 지 오래였다. 이후 인천 서구 원적로에 법명사(法明寺)를 세웠다. 부처님께서 “여래가 될 것”이라 수기하며 부루나존자에게 내린 이름이 ‘법명(法明)’이다.

인천은 개신교의 교세가 강하기로 정평 나 있는 지역이다. 지금도 조계종 사찰이 10개 정도다. 그 불모지에서 33년을 버텨내며 오늘도 부처님 법을 전하고 있다. 어린이·청소년, 대학생 등의 계층포교에서부터 장애아동·양로원은 물론 노동·환경까지 선일 스님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속가의 어머니가 머무르시던 집을 리모델링해 가출 청소년들의 ‘쉼터’로 활용했다. 인천불교회관도 IMF 경제위기 당시 인천사암연합회장을 맡았던 선일 스님의 원력에 사부대중의 힘이 더해져 세워졌다. 해외를 오가는 선박의 사람들에게 법을 전하는 ‘외항선 포교’ 빼고는 다 해보았다는 선일 스님은 인천 지역포교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꼭 해내고 싶은 불사가 있는지를 여쭈니 “계룡대 영외법당인 호국 홍제사 회향”이라고 했다. 조계종 백만원력 불사 중의 하나인 호국 홍제사는 6월에 준공된다. 하지만 더 큰 불사가 남아 있다.

“일주문과 탑을 세우고 법당 안에 부처님도 조성해야 합니다. 아울러 ‘호국불교 역사전시관(가칭)’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삼국시대, 고려, 조선에 이르는 호국 법회와 사례, 승군의 활동 등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전시공간을 조성하려 합니다. 대찰에 가면 조사전이 있듯이, 국가위기 때 헌신한 청허휴정, 사명유정 등 고승의 진영도 봉안하려 합니다. 장병들에게는 불교문화를 체험하는 배움의 공간이자 휴식공간입니다. 육해공 3군의 총본산이자 호국불교 근본도량인 호국 홍제사는 불교계의 자부심이자 자긍심입니다. 제 생애의 ‘마지막 불사’라 생각하고 혼신의 힘을 다할 것입니다.”

선일 스님은 2021년 10월 사색집 ‘사유하는 기쁨’을 선보였다.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사람에게 충실하라’, ‘과거에 매달리지 말고 미래를 원하지도 말라’, ‘꿈은 여기 현재의 일에서 가져야 할 것이니 이루고자 하는 뜻에 확고부동해 흔들림없이 자신의 능력을 계발하라’, ‘오로지 오늘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해 땀 흘려 노력하라’는 당부가 책속 행간에 스며 있다.

이승열 기자 / sijung1988@naver.com

 

‘법명사’ 창건 33주년 기념 개산재법회
주동담 총신도회장(본지 발행인)이 법명사 창건 33주년 기념 개산재 법회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주동담 총신도회장(본지 발행인)이 법명사 창건 33주년 기념 개산재 법회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주동담 총신도회장 “대사회 치유와 화합의 도량 발원”

 

주동담 총신도회장(본지 발행인)은 지난 24일 열린 법명사 창건 33주년 기념 개산재 법회에서 인사말을 통해 “오늘은 법명사 회주 미광선일스님께서 불교가 열악한 인천지역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포교해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행복한 삶을 이룰 수 있도록 서원을 세우고 산문을 여신 지 33주년을 맞는 경사스러운 날”이라고 축하했다.

이어 주 회장은 “앞으로 법명사가 불지종가 대찰의 면모를 갖춰 대사회 치유와 화합을 이끄는 도량으로 그 위상을 굳건히 이어갈 수 있기를 발원한다”면서 “아울러 오늘 개산재가 불교의 가르침과 호국의 정신이 널리 퍼져나가는 계기가 되기를 기원한다”라고 희망하고, “인천 불교에 변화의 새바람이 일어나고 국민이 행복한 나라가 될 수 있도록 법명사에서 정성으로 기도해주기 바란다”라고 당부했다.

주 회장은 “저 또한 법명사가 새로운 앞날로 나아가는 길에 함께할 수 있기를, 미력이나마 힘을 보탤 수 있기를 바란다”면서 인사말을 마쳤다.

이승열 기자 / sijung198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