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앞 / 유리에 부딪혀 죽는 새들
시청앞 / 유리에 부딪혀 죽는 새들
  • 이승열
  • 승인 2022.06.02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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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일보] 몇 달 전, 텔레비전에서 도로변 투명방음벽에 부딪혀 생명을 잃는 새들에 관한 뉴스를 보고 마음이 아팠던 기억이 있다. 짧은 보도를 위한 짧은 취재 시간인데도 수십 마리의 조류 사체가 발견되는 모습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었다. 또, 적지 않은 새들이 골절과 같은 상처를 입고 다시는 야생으로 날아가지 못하는 현실도 보았다.

환경부와 국립생태원이 지난 2018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대한민국에서 투명 유리창과 방음벽 등 인공구조물에 충돌해 폐사하는 야생조류는 하루 2만 마리, 한해 800만 마리에 달한다. 인공구조물 충돌은 인간의 서식지 파괴와 함께 조류 개체수 감소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환경단체들은 오래전부터 이 같은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수년간 야생조류 충돌 실태를 조사하면서 시민들과 함께 조류충돌방지 스티커를 붙이는 활동을 해 왔다. 점(點)자 모양의 조류충돌방지 스티커(필름)는 새들의 충돌을 막는 가장 쉽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알려져 있다. 높이 5cm, 폭 10cm의 간격을 새들이 장애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지난달 29일, 새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줄일 수 있는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야생생물법)이 그것이다. 이 법안은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이 조류의 충돌과 추락 등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인공구조물을 관리하도록 했다. 또, 환경부가 인공구조물로 인한 야생동물 피해를 조사하고, 피해가 심각하면 공공기관에 방지 조처를 요청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법안 제정으로 농수로에 추락한 후 갇혀 생명을 잃는 동물들을 보호할 수 있는 길도 열렸다. 출구가 없는 콘크리트 농수로에 떨어져 죽는 고라니, 너구리 등 포유류는 연간 6만 마리에 달한다고 한다.

하지만, 법안의 한계도 뚜렷하다. 조류의 충돌을 방지하는 의무가 정부와 지자체, 공공기관에만 적용된 것이다. 민간의 유리건물 등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피해가 가장 심각한 도로변 방음벽의 경우 대부분 공공의 소유여서 문제가 빠르게 개선될 것으로 보이지만, 향후 민간의 건축에도 의무를 확대해 나가야 한다. 생명을 살리는 문제에 공공과 민간이 따로 있을 수 없다.

“동물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 나라의 수준을 알 수 있다.” 마하트마 간디의 말이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동물은 언제나 인간의 타자(他者)였고 인간보다 약자(弱者)였다. 우리는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착각으로 다른 생물들을 죽이고 학대하며 우리의 터전을 넓혀 왔다. 그 결과는 기후변화를 비롯해 우리 눈앞에 닥친 전 지구적 공멸의 위기다.

6·1 지방선거가 끝났다. 당선된 정치인들은 지역민의 삶의 질 향상과 행복을 위해 마음을 다잡고 있을 터다. 정치의 위기는 언제나 약자에 대한 타자화(他者化)에서 시작된다. 이것이 간디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