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정칼럼 / 존엄한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까?
시정칼럼 / 존엄한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까?
  • 논설위원 임 춘 식
  • 승인 2022.08.18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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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임 춘 식
논설위원 임 춘 식
논설위원 임 춘 식

[시정일보] '예습도 복습도 없는 단 한 번의 인생의 길'이라는 말이 문득 가슴을 친다. 가고 싶은 길도 있고, 가기 싫은 길도 있고, 가서는 안 되는 길도 있지만, 내 뜻대로 안 되는 게 인생의 길인 것을 이만큼 와서야 뼈저리게 느낀다.

사람답게 늙고, 사람답게 살고, 사람답게 죽는 것으로 마치는 것이 삶이다. 사람답게 늙고 행복하게 늙기 위해서는 먼저 노년의 품격을 지녀야 한다. 노년의 품격은 풍부한 경륜을 바탕으로 노숙함과 노련함을 갖추는 일이다.

아름다운 노년을 위하여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늙어가는 것뿐이라는 소극적인 생각을 버려야 한다. 100세 사회의 미래 자화상은 자신이 그려야 한다. 우리에게 ‘준비된 노후’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두려워하기보다는 남은 삶을 어떻게 보내야 아름답게 보낼 수 있을까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아름답게 죽자(편안한 죽음, well dying). 노년의 삶은 자신의 인생을 마무리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죽음을 준비하는 기간이기도 하다. 죽음을 극도로 두려워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이만큼 살았으니 당장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라고 생각하는 자기 삶에 대한 경솔한 태도는 더욱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어쨌든, 사실 사람이 사람답게 늙고, 사람답게 살고, 사람답게 죽는 그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어려운 일도 아주 멋지게 해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잘 준비하고 준비된 것에 최선을 다하여 열정을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연 어떻게 늙고 어떻게 죽어야 할까?

우리는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최근 들어 존엄사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존엄사란 최선의 의학적 치료를 다 했음에도 회복 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이르렀을 때,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품위와 가치를 지키며 죽을 수 있게 하는 행위이다.

즉 죽기 전에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에 대한 결정 의지이다. 그래서 죽음은 일방적으로 당하는 것이 아니라 맞이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태어난 것을 자신이 선택할 수 없지만 죽음에 대해서는 자신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례를 애도하거나 피할 것이 아니라 삶의 과정으로 인식해야 한다.

내가 태어났을 때 나 혼자 울고 주위 사람들 모두는 웃었고, 내가 죽을 때는 나 혼자 웃고 주위 사람들은 모두가 우는 삶을 살고자 노력한 자에게는 죽음은 승리이자 죽음으로부터의 진정한 해방이다.

죽음과 삶은 나의 과거를 반추해 보며 내면 깊숙이 숨겨진 사랑 덩어리의 조각난 파편을 찾아 맞추는 편안한 죽음의 퍼즐이다. 죽음과 삶은 하나이며 이 성찰의 기록은 죽음과 함께 영원히 사라진다. 오직 남은 것은 순백의 도화지일 뿐이다.

즉 사전에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에 대한 결정 의지이다. 그래서 죽음은 일방적으로 당하는 것이 아니라 맞이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태어난 것을 자신이 선택할 수 없지만 죽음에 대해서는 자신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례를 애도하거나 피할 것이 아니라 삶의 과정으로 인식해야 한다.

내가 태어났을 때 나 혼자 울고 주위 사람들 모두는 웃었고, 내가 죽을 때는 나 혼자 웃고 주위 사람들은 모두가 우는 삶을 살고자 노력한 자에게는 죽음은 승리이자 죽음으로부터의 진정한 해방이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의향서)’는 19세 이상 성인이 향후 임종 과정의 환자가 됐을 때를 대비해 연명의료를 받지 않거나 중단함으로써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한 서류다.

“회복될 가망이 없는데 발달한 의료 기술에 의지해 숨만 이어가는 게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인가?”, “언제 어떻게 사고가 날지 모르는 삶” 등 때문에 내 죽음을 자신이 준비하면 더 주체적으로 사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법적으로 제도가 도입된 지 벌써 4년째 접어들었다. 그래서인지 요새 유언장 쓰기 등 아름다운 죽음 준비가 늘고 있다.

이른바 100세 시대, 늘어난 수명만큼 ‘존엄한 죽음’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거부한다”라며 의향서를 작성한 사람이 2022년 7월 말 기준 전국 135만 명에 육박한다. 최근 해마다 20만~30만 명 안팎 늘고 있다.

죽음을 준비하는 법이나, 유언장을 미리 쓰고 묘비명을 정하는 이른바 왜 ‘편안한 죽음’(존엄한 죽음)이 필요한지에 관한 강좌가 시민단체들에 의해 개설되고 있다. 이에 참여하는 60대 후반~80대 중반에 이르는 노인들이 많다. 교육은 영정 사진을 찍고, 유언장 미리 써두기 등을 한다. 의향서가 뭔지, 그리고 품위 있게 죽는 게 자신이 원하는 삶의 마무리라고 알려 준다.

코로나로 갑작스럽게 죽거나, 가족을 애도하지 못하고 보내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최근 죽음과 그 준비에 관해 미리 생각하고 대처하려는 사람들이 더 늘어났다. 죽음을 준비한다고 하면 마치 죽음을 기다리기만 하는 수동적인 모습을 생각할 수 있는데 이는 오히려 현재의 삶을 더 소중히 여기고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도록 해 준다.

모든 인간은 누구나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한다. 죽음은 인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 중 하나이다. 가족들의 품에서 품위를 유지하며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누군가의 특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권리가 되어야 한다. 죽음은 언제 닥쳐올지 모르기 때문에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한남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