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무거움 알아야
말의 무거움 알아야
  • 시정일보
  • 승인 2007.10.03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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方鏞植 기자 argus@sijung.co.kr


옛날 중국 노(魯)나라에 미고(尾高)라는 이가 있었다. 미고는 다리 밑에서 한 여자와 만나기로 했는데, 약속을 꼭 지키는 성격 탓에 강물이 붇는데도 자리를 지키다 물에 떠내려갔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미생지신(尾生之信)이라고 했다. 사기(史記) 소진전(蘇秦傳)에 나오는 이 말은 어리석고, 고지식한 사람을 뜻하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그런데 최근 행정자치부가 추진 중인 동사무소 명칭변경은 차라리 고지식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앞선다. 행정자치부는 지난 8월27일 제2차관이 참석한 가운데 기자설명회를 갖고 동사무소 현판을 주민센터로 9월 안에 교체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행정자치부 관계자는 과소 동(洞) 통·폐합 관련, 구체적인 계획이 나온 다음 결정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지적에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다. 또 예산은 기금을 사용하면 된다는 말도 했다.
자치단체의 조례개정 필요성 제기에도 “조례개정과 상관없다”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하지만 본지가 파악한 결과 서울시만 하더라도 25개 자치구 가운데 20곳이 조례에 ‘동의 사무소 위치·명칭 및 관할구역’이라고 명시, 조례개정이 우선돼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종로구와 동작구의 경우 동사무소 설치 등에 관한 내용을 별도의 조례로 규정하고 있었다.
일선 자치단체에서는 주민센터 현판교체에 대해 행정자치부의 성급함을 의아해 한다. 굳이 현판을 서둘러 교체할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이다. 주민들이 지금까지 관행적으로(1955년 서울시에서 행정기관 명칭으로 처음 사용한 이후 52년간 사용) 써 온 동사무소를 바꿔야 할 필요성이 없다는 것이다.
국민생활과 관련해 시급한 일이 아닌데도 주민센터 현판교체를 위해 적어도 60억 원에서 100억 원의 예산이 쓰인다. 모두가 국민세금이다. 서울의 한 자치구 4급 공무원은 “나도 공무원이지만 이해가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는 “그 돈으로 국민에게 필요한 다른 사업을 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옛말에 ‘남아일언 중천금(男兒一言 重千金)’이라고 했다. 더구나 국가의 행정조직을 총괄하는 행정자치부임에야 말의 무거움이 과(過)하지 않다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