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급발진 사고의 판단
기고/ 급발진 사고의 판단
  • 임종은 (한국문학신문 전 편집국장)
  • 승인 2023.03.03 10:48
  • 댓글 0

임종은 (한국문학신문 전 편집국장)

[시정일보] TV에서 급발진으로 인한 교통사고 보도를 볼 적마다 정의와 공정, 그리고 정의의 잣대에 대한 의구심이 생겨난다. 사고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어 억울함을 호소하며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면 답답함을 금할 수 없다.

피해자가 급발진 사고의 원인을 입증해야 한다는 법리 역시 이해할 수 없으며, 거대 제조사를 상대로 분쟁의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도 난감한 일이다. 천신만고 끝에 입증 자료를 준비하여 소송을 해도, 운전자의 과실 즉, 운전미숙 등으로 인한 급발진이라는 결론이며, 차량 결함으로 인한 급발진이라는 판결은 거의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실에 대해서 제조사나, 관계 공무원, 경찰, 사법부에서는 왜 공정한 조사나 판단을 못 하는 것일까?

30년 무사고로 운전해온 어느 택시 운전자가 손님을 싣고 운행 중 갑자기 급발진 상황이 되어, 죽을 고비를 넘기게 되었다. 당시 영상을 근거로 피해 보상에 대한 소송을 준비했으나 거대 제조사를 상대로 하는 싸움은 ‘바위에 계란 치기’라는 사실을 알고 그냥 포기하고 말았다고 한다. 당연히 차량 결함이 아닌 운전미숙으로 결론이 날 것인데, 헛수고할 필요가 없다며 억울함을 하소연했다.

그렇다면 이처럼 불합리한 법과 제도를 개선할 수는 없는가? 많은 운전자가 이런 현상에 대하여 분노하면서도 한숨만 쉬고 무기력한 태도로 자포자기해 버리는 현상 또한 정상이 아니다.

국토교통부 산하단체에 자동차성능연구소와 자동차성능시험연구소가 있으며, 행정안전부 소속기관인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내에도 차량 담당 연구부서가 있다. 그런데도 아직 ‘차량 급발진‘이 운전 미숙인지, 차량 결함인지의 명확한 결론을 못 내린다면, 이들 조직의 존재 이유가 없다고 본다.

또 피해자는 그렇다지만, 언론이나 관련 학자, NGO 등은 왜 침묵만 지키고 있는지? 모두 꿀 먹은 벙어리가 되는 것은, 심증은 가나 물증이 없어서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와 관련하여 미국의 총기 문제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최근 미국에서 전 오바마 정부나 현 바이든 정부에서는 총기 규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공화당에서는 이를 반대하고 있고 민주당 내부에서도 의견이 갈리고 있다.

미국의 총기 규제 논란은 ‘개인의 무장할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 라는 주장과 ‘정부기 범죄예방에 대한 책임이 있으므로 규제해야 한다’라고 하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총기 소지 합법화 옹호론자들은 수정헌법 제2조에 의거 무기를 소지할 권리를 보장하며 합법화가 이 권리를 보호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로비 단체인 전미총기협회(National Rifle Association)의 입김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총기협회는 미국의 수많은 국회의원을 상대로 로비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으로 총기 문제에 대해서는 미국의 특수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하지만,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총기 규제론자들과 피해자의 목소리가 묻히고 만다는 사실을 볼 때, 우리의 급발진 사고 사례의 반면교사가 되지는 않을는지 생각된다.

교통사고 시 실제 소송에서는 급발진을 주장하는 자에게 입증 책임이 있고 제조사에 비해 정보나 기술력에서 문외한이나 마찬가지인 일반 운전자가 급발진을 입증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결과론적으로 급발진이 아닌 운전자 과실로 끝나기 마련이다.

급발진 사고 교통사고 피해 전문 변호사의 의견을 들어 보면, 차량 결함 전체의 문제에 대한 제조사와 소비자의 입장을 볼 때, 차량 급발진이 발생하더라도 소비자로서는 차량 결함인지 관리 소홀인지도 알 수 없어 차량 결함이라는 것을 밝히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이런 부분 때문에 브레이크를 밟는지, 가속페달을 밟는지, 핸들은 어느 쪽으로 돌리는지 자동으로 녹화되는 블랙박스를 장착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차량이 정상적으로 사용되고 있었다는 점과 엔진룸과 같이 제조업자의 배타적 지배하에 있는 영역에서 발생하였다는 점은 소비자가 밝혀야 하므로 블랙박스 영상 및 주변 CCTV 영상 확보와, 평소 주기적인 점검 및 정비를 받아둘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경력이 많은 운전자 중에서는 수동변속기 차량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게 아니냐는 말도 있다.

수동변속기는 자동변속기와 다르게 기어를 바꾸기 위해서 반드시 ‘클러치’ 페달을 이용하기 때문에 급발진 사고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억울한 많은 운전자를 위해서는, 관련법과 제도의 과감한 개선, 검사기관의 정확한 조사, 그리고 행정. 사법기관의 공정하고 정의로운 판단만이 해결할 수 있으리라 본다.

(외부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