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내 아이의 첫 미래 교육
기고/ 내 아이의 첫 미래 교육
  • 임지은 (전 월간중앙 기자)
  • 승인 2023.03.10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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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은 (전 월간중앙 기자, 칼럼리스트)
임지은
임지은

[시정일보] 한 지인의 남편이 서울대 법대를 나온 판사 출신 변호사다. 그녀는 그 학벌 덕분에 본인들의 삶이 윤택하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존경도 받는다고 굳게 믿고 있다. 세상이 어떻게 변해도 ‘최고 학벌’이 가진 위력은 계속되리라 생각한다.

어디 그녀뿐이겠는가. 말을 안 할 뿐 자녀들의 ‘명문대 진학은 곧 성공’이라는 인식은 여전하다. 그러니까 교육은 성공을 위한 발판이자 수단인 것이다. 이렇듯 명문대 졸업장이 소위 성공이라는 등식이 성립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눈을 들어 현실을 바라보자. 지금도 앞으로도 그러할까? 좋은 대학을 나와도 성공은 고사하고 취업 문턱조차 넘지 못한다. 대학교 캠퍼스의 낭만? 대학교 신입생부터 스펙 쌓기 혹은 공무원시험 준비에 들어가기 바쁘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친구가 하는 말은 가히 충격적이다. "학생들이 (정신과)약을 많이 먹는다. 미래는 안 보이고, 그러니 불안하고, 스펙은 계속 쌓아야 하고, 현실이 우울하니 정신적으로 힘든 아이들이 많다."

오늘 한 시간 덜 자고 더 외우면 행복한 미래가 기다린다는 건 나쁜 거짓말이다. 과거엔 ‘성실, 근면함’이 최고의 덕목이었다. ‘열심히, 이 한 몸 바쳐’ 고용주의 뜻을 잘 받들고, 조직에 충성하는 사람이 필요했다.

명문대 졸업장은 그런 의미였다. 남들 자고 노는 시간에 열심히 했다는 증명서. 그런데 로봇은 24시간 쉬지도 않고, 군말 없이 시키는 일을 묵묵히 해낸다. 그러니 그것만으로는 미래 인재가 될 수 없다.

누가 지식을 더 많이 암기하고 있는지도 경쟁력이 될 수 없다. 지식은 이제 컴퓨터에 입력할 필요도 없다. 인공지능 스피커에 말만 하면 친절히 알려준다. 학벌의 시대는 저물었다. ‘찐’ 실력자들의 시대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출신 대학, 전공, 나이를 묻지 않는다. 지금 당장 회사에 필요한 역할을 가장 잘할 수 있는 적임자를 뽑는다. 포트폴리오가 곧 이력서이자 성과다. 에어비앤비 엔지니어 출신 유호현 옥소폴리스 대표는 『이기적 직원들이 만드는 최고의 회사』에서 말한다.

‘실리콘밸리 회사들은 인턴십 정도를 제외하면, 젊은 직원들의 미래를 보고 투자하지 않는다. 항상 새로 올 전문가의 능력이, 지금 회사의 필요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지를 묻는다. 그리고 그들이 기여한 만큼 정당한 보상을 제공한다. 따라서 자신이 무엇을 할 줄 아는지 정확히 소통하고,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알려야 한다.’

이를테면 ‘코드를 잘 쓰는 엔지니어’, ‘설계를 잘하는 엔지니어’와 같은 개인 브랜딩이 중요하다. 구글도 마찬가지다. 선발 기준은 인지 능력, 리더십, 구글 조직문화와의 적합성, 직무 수행 능력 등 네 가지다.

예를 들어 직무 수행 능력을 평가할 때는 코딩 테스트를 하고, 면접에서 ‘코딩을 할 때 왜 그렇게 접근했는지’ 설명하는 방식이다. 조직에 바로 투입돼 결과물을 낼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구글 역시 초창기에는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을 우수 학점으로 졸업한 인재들을 선호했다. 면접관들은 지원자에게 “왜 C 학점을 받았나?” 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구글에서 최고 성과를 내는 인재를 심층적으로 분석해 보니 상당수는 명문대 출신이 아니었고, 대학 학위가 없는 경우도 허다했다. 이후 구글은 지원 자격조건에서 학위를 제외했다.

4차 산업혁명과 더불어 코로나19로 우리는 감히 미래를 예측조차 하기 힘들어졌다. 코로나로 디지털 전환이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디지털 이주민인 부모는 신인류 ‘디지털 네이티브’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부모의 재력과 정보력이 ‘부모력’이던 시절은 지났다.

스스로 물어보자. 나는 미래를 내다보며 아이를 키우는가? 아이에게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제대로 알려 주고 있는가? 미래가 불안하니 일단 공부라도 시키고 보자는 심산은 아닌가? 나의 불안을 잠재우거나 아이를 통해 대리만족하고 싶은 건 아닌가?

미래를 살아갈 아이를 위한다면 ‘부모력’을 점검해야 한다. 첫째, 아이가 진짜 좋아하고 원하는 것을 알고 있는가? 둘째, 아이의 개성과 강점을 최대치로 이끌어 주고 있는가? 셋째, 주입식 교육 대신 생각하는 힘을 길러 주고 있는가? 배움의 즐거움을 일깨워 주고 있는가? 넷째, 아이에게 비교와 경쟁 아닌 더불어 사는 법을 가르치고 있는가? 다섯째, 아이에게 실패를 두려워 않고 도전하며, 끝까지 해내는 힘을 길러 주고 있는가?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에 앞서 아이가 자존감의 뿌리를 단단히 내릴 수 있도록 돕고 있는가? 스스로 가치가 있다는 확신이 있는 아이는 어떤 풍랑을 만나도 중심을 잡는다. 어려움이 닥쳐도 쉽게 포기하지 않으며, 다시 튀어 오르는 힘이 있다.

유튜브 최고경영자 수잔 보이치키(Susan Wojcicki)의 어머니 에스더 보이치키(Esther Wojcicki)는 자녀를 키우며 ‘트릭 T‧R‧I‧C‧K’을 중시했다. 트릭은 믿음(Trust), 존중(Respect), 독립(Independence), 협력(Collaboration), 친절(Kindness)을 뜻한다.

대개 성공한 사람들의 부모나 주변 사람들은 이와 같은 원칙을 지켰다. 이러한 부모 밑에서 아이들은 ‘레고 L‧E‧G‧O’를 키울 수 있다. 레고는 사랑(Love), 공감(Empathy), 감사하는 마음(Gratitude), 긍정적인 마음(Optimism)이다.

부모의 ‘트릭’과 아이들의 ‘레고’가 변화의 시작이다. 물론 쉽지 않다. 버튼 하나 누른다고 변신하는 세상은 없다. 분명한 건 세상은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그 세상에서 살게 될 거란 사실이다. “첫째도 본보기요, 둘째 역시 본보기요, 셋째도 본보기다.”

‘밀림의 성자’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에게 성공적인 자녀 교육법을 물었더니 돌아온 답이다. 나는 변화하는 세상을 살아갈 아이들에게 본보기가 되는 부모일까. 변화를 읽고 미래를 내다보는 눈을 기르자. 아이의 미래를 등대처럼 멀리 밝혀 주자. 끊임없이 배우고 공부해서 변화에 적응하자. 아이와 발맞춰 미래로 나아가자.

아울러 세상이 급변할수록 잃지 말아야 할 건 마음의 여유다. 여유를 잃는 순간 불안이 엄습하고, 불안은 몸과 영혼의 에너지를 집어삼킨다.

“변화를 즐기고 매 순간 재미있게 살자.”라고 얘기해 줄 수 있는 부모라면 좋겠다. 공부도, 일도, 노는 것도 재미있게 하면 된다고.

길지 않은 인생이다. 정답도 없다. 100세 철학자 김형석 연세대학교 명예교수가 부모들에게 전한다.

“인생은 50이 되기 전에 평가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자녀를 키울 때도 이 애들이 50쯤 되면 어떤 인간으로 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도 성공보다는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행복하며, 유명해지기보다는 사회에 기여하는 인생이 더 귀하다고 믿는다.”

세상엔 크기도 모양도 저마다 다른 수많은 구멍이 있다. 아이가 최선을 다해 자기 몫을 채우며 세상에 보탬이 되고 행복함을 느낀다면 그걸로 성공이다. ‘미래력’으로 다져진 아이는 어떤 파도도 즐겁게, 여유 있게, 행복하게 넘어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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