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정인문학산책/ 시간강사 가능하세요
시정인문학산책/ 시간강사 가능하세요
  • 임영희(전 서울 두산초등학교 교장)
  • 승인 2023.03.13 09:22
  • 댓글 0

임영희┃전 서울 두산초등학교 교장
임영희
임영희

[시정일보] “선생님, B 초 교감입니다. 우리 학교 3학년 선생님 한 분이 코로나19로 못 나와요. 시간강사 가능하세요?”

9월 12일 이른 아침, B 초등학교 교감 선생님의 간절한 부탁 전화다. B 초등학교는 7월 19일에서 25일까지 5일간 여름방학 직전에 시간강사로 갔던 학교다. 우리 집에서도 가깝다. 또 불러주니 가고 싶다. 그런데 갈 수가 없다.

“아이고! 이번에는 제가 코로나19에 걸렸어요. 미안합니다!”

강사가 코로나19에 걸렸다. 2022년 2월에 코로나19에 처음 걸렸을 때도 아들이 회사에서 감염되었다. 이번에도 감염경로가 같았다. 아들이 확진되기 전날 둘이서 같이 교회 모임에 다녀왔다. 밀폐된 차 안에서 아들과 함께 오고 간 시간에 감염된 것 같다.

다행히도 같이 모였던 분 중에는 걸린 사람이 없어서 감사했다. 9월 9일부터 12일까지 4일간 추석 연휴였다. 연휴 11일부터 목이 아파 보건소에 가서 PCR을 받았다. 나는 양성이 아니기를 바랐지만, 12일 아침에 확진이라는 문자를 받았다. 두 번째 감염이다.

예방접종을 3회 했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4차 접종을 하라고 문자가 계속 오지만, 맞고 싶지 않다. 예방접종을 해도 걸리고 안 해도 걸린다는 인식 때문이다. 다행히 목만 아프고 체온이 거의 정상이고 몸살도 없어 감사했다.

B 초등학교에서 5일간의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쓰지 않을 수 없다. 3학년 4반 담임교사 역시 코로나19로 병가를 냈다. 담임교사는 자상하고 배려심 많은 교사인 것 같았다. 그 교사는 5일간 모든 수업자료를 준비해 두었다. 때로는 전화로 수업 안내해 주기도 했다.

나는 담임교사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로 들어가는 ‘아이스크림’ 인터넷 수업을 했다. 담임교사는 수업 후 날마다 전화로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다. 그 인사를 받으면 하루 피로가 싹 가셨다. 7월 25일은 방학 날이라 어린이 급식이 없었다.

학교장은 2022년 1학기 동안 모든 교사에게 수고에 감사하다는 전언과 함께 도시락과 아이스커피 한 잔씩 동 학년별로 배달시켰다. 학교장의 대접에 감사하는 교사들의 담소와 대화를 들으며 행복감이 들었다.

행복은 전염성 강한 바이러스인 것 같다. 나는 시간강사지만 3학년 선생님들의 학교장 칭찬에 덩달아 즐거웠다. 학교장을 존경하는 아름다운 학교 분위기에 행복한 하루였다. 2022년 초부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코로나로 힘들었는가!

각급 학교에는 교사들의 코로나19로 인한 병가로 시간강사가 필요했다. 그러나 시간강사를 구할 수 없자, 나이 제한을 풀었다. 그래서 나이 제한 없이 퇴직 교원들에게까지 서울특별시교육청의 인력풀에 등록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바로 등록을 했다. 마침 우리 동네에 시간강사를 같이 해 보자는 분이 있었다. 퇴임할 무렵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를 공부하여 자격증도 같이 받았다. 그 선생님은 초등학교 근무 시절 교육청에서 장학사가 오면 대표수업을 맡아놓고 했다.

수업이 즐거웠다는 그분은 천부적인 교육자였다. 이런 분이 있었기에 한국은 6‧25 전쟁 폐허에서 단번에 경제 대국에 들어선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뜻이 맞아 같이 인력풀에 등록했다. 2022년 3월 초에 초등학교에 근무하고 있는 셋째 딸이 전화했다.

“엄마 퇴직 교원들도 시간강사로 부르는 모양인데 엄마도 한번 해 보시는 것이 어떨까요? 이런 기회가 다시 없을 것 같아요. 화장도 하고 옷도 좀 젊게 입어야 할 거예요.” 하고 일러준다. 딸의 이 말을 들으니 용기가 생겼다.

퇴직 후에는 화장에서 멀어졌다. 더구나 지금은 코로나로 마스크를 쓰기 때문에 화장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화장품 가게의 문을 닫는다는 소리를 심심찮게 듣는다. 마스크를 써버리니 얼굴에 정성을 쏟을 필요성이 없어진 것이 사실이다.

그래, 기회다 싶었다. 교단이 어떻게 변했는지 가 보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무엇보다 아이들과 지내던 행복했던 추억을 잊지 못한다. 나의 체력이 버텨주기만 한다면 못할 일은 아니다. 내 나이는 청춘은 아니다.

그러나 청춘이란 어떤 시기가 아니라 정신의 상태를 말한다는 ‘사무엘 울만’의 『청춘』이란 시가 용기를 주었다. 그의 시 두 번째 단락이 특히 마음에 든다. ‘청춘이란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함을 뿌리치는 모험심, 그 탁월한 정신력을 뜻하나니, 때로는 스무 살 청년보다 예순 살 노인이 더 청춘일 수 있네. 누구나 세월만으로 늙어가지 않고, 이상을 잃어버릴 때 늙어가나니’ 내가 젊은 교사로 돌아가는 꿈과 희망을 갖고 시간강사에 도전해 보고 싶어졌다.

“내일부터 5일간 시간강사 가능하세요?”

서울특별시교육청 인력풀 등록을 하고 나서 며칠 후부터 이런 문자가 뜬다. 문자 확인 습관이 안 되어 전화 연락을 하면 벌써 다른 분이 먼저 오시기로 했다고 답이 온다. 그래서 A 초등학교에 같이 근무한 적이 있어 잘 아는 선생님께 문자를 남겼는데 바로 연락이 왔다.

잠시 후 교감 선생님께서 연락을 드릴 것이라 한다. 밤 10시 넘었는데 교감 선생님 음성이 급하다.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4일간 와 달라고 한다. 강사가 없어 너무나 힘들다고 실정을 토로했다.

인력풀 공문을 보낸 교육청 담당자분께 물으니 한시적으로 4월 말까지 퇴직 교원을 시간강사로 채용한다고 했으나, 7월 말로 연기했다. 지금은 2022년 말까지 갈 가능성이 커져 보인다. 코로나19는 우리 모두의 일상을 바꾸고 인간관계마저 끊어 버렸다.

코로나19는 언제 끝이 날 것인가! 9월 16일 자 동아사이언스 뉴스에는 WHO에서 ‘코로나 대유행의 끝이 보인다. 지난주 사망자 수 최저’라는 헤드라인 뉴스를 읽었다. 과연 믿을 만한 뉴스일까? 믿어지지 않는다.

공기 맑은 도심 속 산골학교 A 초등학교에서 2학년 아이들과 지낸 3월 29일부터 4월 1일까지 4일간의 시간강사 경험을 했다. 시간강사를 하기 전에는 약간의 심리적 불안감도 있었다. ‘새로운 수업 지도에 적응할 수 있을까?’, ‘나이 든 나를 아이들이 할머니라고 놀리지 않을까?’

그것은 기우였다. 새로운 수업은 인터넷을 활용한 수업이어서 지도안을 보며 말로 하는 수업보다 쉬웠다. 담임교사의 ID와 비밀번호를 알고 컴퓨터만 있으면 집에서 예습도 가능했다. 두 번째 걱정거리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린이들은 어른들의 나이 듦을 쉽게 잘 분간하지 못한다고 어느 선생님이 귀띔해 준다. 천만다행이었다. 시간강사 시작한 지 4일 차, 하루 4시간의 수업을 마치고 집에 와서 저녁 먹고 식후 산책을 마쳤다. 잠자리에 드니 잠이 오지 않는다.

2학년 ‘슬찬반’ 4교시 수업을 하며 아이들과 지낸 일들이 생각난다.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귀에 쟁쟁거린다. A 초등학교에서는 교직원 회의에서 반 이름을 ‘라온, 슬찬, 누리’라는 우리말로 미리 정해서 하기로 약속했다고 한다.

내가 맡은 반은 2학년 2반 ‘슬찬반’이다. ‘슬찬’이란 ‘슬기롭고 찬란하다’의 약자다. 모든 학년이 그렇게 이름을 짓는다고 한다. ‘라온’이란 ‘따뜻하다’라는 뜻이다. ‘누리’는 ‘세상’을 예스럽게 이르는 말이다.

아이 중에 소남우(가명)와 김오랑(가명)이 가장 많이 생각난다. 두 아이는 의사 표현이 자유롭고 강사를 도와주려고 애썼다. 반면에 여러 가지 이유로 반 친구들을 나에게 일러바친다. 소남우는 첫날 점심을 먹지 않겠다고 했다.

이유를 물으니 아침 식사를 많이 해서 배가 부르다고 했다. 그런데 다음날도 점심을 먹지 않겠다고 했다. 그래서 “네가 점심을 먹지 않으면 내 마음이 아프단다.”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점심을 먹고 가겠다고 한다.

그 아이에게 친구들을 일러바치는 일로 지도를 해서 밥맛을 잃었을까 걱정되었다. 교사의 타이르는 말에도 민감한 아이 같았다. 3월 30일 ‘창체’ 시간에는 고자질을 고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창체’ 시간은 옛날 ‘특별활동’ 시간이다.

‘창의적 체험 활동’을 줄여서 ‘창체’라고 부른다. 친구를 잃는 방법과 좋은 친구를 얻는 방법을 지도했다. 친구를 잃는 방법은 1. 절대로 웃지 말기 2. 모두 독차지하기 3. 심술꾸러기 되기 4. 반칙하기 5. 고자질하기 등 유튜브 영상으로 제시되었다.

좋은 친구를 얻는 방법은 브레인스토밍을 통해 친구를 잃는 방법을 반대로 생각하면 된다. 1. 먼저 웃으며 인사하기 2. 친구의 말 경청해 주기 3. 간식 나눠주기 4. 뒷담화하지 말기 5. 고자질하지 않기 등을 공부했다.

어떤 아이들은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방법은 이기적이고 고집불통인 아이를 야단치지 않고 버릇을 고치기 위한 것이다. 드라마를 보고 브레인스토밍을 하고 친구를 얻는 방법 중 자신이 실천하고 싶은 방법 한 가지를 그림과 글로 써보는 작업을 해서 친구들 앞에서 발표한다.

소남우와 김오랑에게 발표를 시켰다. 이 수업으로 두 아이가 고자질을 그쳤는지 확인할 시간은 없었다. 시간강사의 한계다. A 초등학교에는 수석 교사가 근무하고 있었다. 박행주 수석 교사를 알게 된 것은 2003년 9월부터 3년간 같은 학교 근무 때문이었다.

A 초등학교에서 시간강사를 하던 중에 박행주 수석 교사가 담당하고 있었던 음악 교과 시간에 국악 수업을 하게 되었다. 박수석 교사의 출장으로 4월 20일과 4월 25일 이틀이었다. 5학년 2개 반, 6학년 3개 반이었다.

박수석 교사의 지도력을 알게 된 것은 그 수업시간이었다. 학생들의 놀라운 손타 실력은 선생님의 지도력 때문이라고 생각되었다. 마침 조희연 교육감의 본교 ‘맨발학교’ 현장 방문이 나의 수업 일에 있었다.

‘맨발학교’는 맨발로 운동장을 걷거나 흙 위를 걸으면 건강이 좋아진다고 하여 학생들과 교사들이 맨발로 체육 시간에 걷는다. 박행주 수석 교사는 학교에 오신 손님을 축하하기 위해 A 초등학교 강당에서 대고 연주를 했다.

박수석은 중앙대학교 국악과에 입학하여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을 마쳤다. 또한, 초등학생 풍물을 지도하여 2003년도부터 20여 년간 1년에 한두 차례 해외에 아동들을 인솔해서 세계적인 무대에 나가 우리 풍물의 흥겨움을 널리 알렸다.

국악에 대한 사랑과 노력은 참으로 헌신적이었다. 박행주 교사는 아이들을 지도하고 방과 후 강사료를 받지 않았다. 그 이유는 가난한 학생도 풍물을 배우도록 기회를 주기 위함이라고 했다. 6학년 3개 반을 차례로 같은 수업을 진행했다.

수업 1차시 수업 주제는 6학년 음악 교과서 24쪽 ‘북 치고 장구 치고’ 였다. 도입 시간에서 결혼식 할 때 신랑 신부가 직접 장구를 치면서 자축하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주례도 없이 차별화된 결혼식이다.

2차시 수업은 교과서 25쪽 ‘북 치고 장구 치고’ 제재의 ‘손타’ 수업이다. ‘손타’란 손으로 장단치기이다. ‘손타’ 장단을 모둠별로 협의하여 만든 다음, 장단을 손으로 쳐보는 수업이었다. 도입은 먼저 4명씩 혹은 6명씩 몇 개의 모둠을 만들었다.

그 후 전공하는 학생들의 ‘손타’ 영상을 보여주었다. 전개는 모둠별로 노트에 ‘손타’ 장단을 만들었다. 다음 모둠별로 만든 장단을 손으로 책상을 치며 연습했다. 충분한 연습이 다 된 조부터 수업 끝나기 5분 전에 친구들 앞에서 발표하는 수업으로 진행했다.

나는 연습이 끝난 모둠부터 ‘손타’ 장단치기 장면을 스마트폰 영상으로 촬영했다. 정리 단계에서 촬영한 영상을 감상했다. ‘손타’는 매우 원더풀하고 흥겨웠다. 학생들 스스로 만족하는 모둠이 있고 약간 미약한 부분을 스스로 지적하는 모둠도 있었지만, 내가 듣기에는 도입 시 보여준 전공 학생들의 수준이었다.

또한, 6학년 학생들이 만들어낸 손타 장단이 모둠별로 창의적이었다. 각반 학생들은 이 ‘손타’ 장단치기를 흥겨워했고 듣는 나도 흥겨웠다. 몇 학생은 박수석 선생님이 언제 오시는지 물었다. 박수석 교사의 국악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수업 결과물인 ‘손타’ 수업 동영상을 출장을 마치고 학교에 돌아온 박수석 교사에게 전달했다. 그러면서 수업 결과 느낀 점도 함께 말했다. 학생 스스로 흥겨운 손타 가락을 학생들이 만드는 것은 강사가 한 시간 수업한다고 나오는 것이 아닐 것이다.

박수석 교사와 학생들이 평소 수업 중에 이미 박수석 교사의 지도력이 이루어낸 창의성임을! 내가 본 박수석 교사는 국악 수업 전문성이 탁월한 수석 교사다. 2022년 후반기가 3개월여 남았다. 환영받지 못한 손님 코로나19가 언제 끝이 올지 모른다.

그러나 그 때문에 나에게 추억의 교단에 서는 뜻밖의 기회가 왔다. 2학년 아이들과 앉은뱅이 피구를 하며 많은 땀을 흘렸다. 아이스크림 음악수업 중에 ‘독도는 우리 땅’ 노래도 힘차게 불렀다. 6학년들과 ‘손타’ 장단치기 국악 수업은 얼마나 흥겨웠는가! 코로나19가 나에게도 두 번씩이나 찾아와 힘들게 했지만, 손주 같은 아이들과 수업을 통한 특별한 만남을 선물해 주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