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산책 #15 개혁적 지도자 한 사람의 힘
인문학 산책 #15 개혁적 지도자 한 사람의 힘
  • 현외성 경남평생교육연구원장
  • 승인 2023.03.16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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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외성 | 경남평생교육연구원장, 사회복지학 박사
현외성 연구원장
현외성 연구원장

[시정일보] “같은 강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라고 말한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처럼, 모든 것은 변화한다. 그러나 좀 더 엄격하게 눈여겨본다면, 헤라클레이토스의 ‘모든 것은 변화한다.’라는 말이 성립하기 어렵다.

그 변화하는 대상을 인식하고 포착하여 언어로 표현할 수 있다는 한에서, 다른 한편 변화하지 않고 불변하는 어떤 대상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일시적으로 변화하지 않는 사물은 해체와 생성의 긴장 속에서 생성되어 존재하는 것을 인정하였다.

중력과 부식의 힘이 생성과 건설의 힘을 능가할 때 존재는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따라서 일시적으로 변화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사물은, ‘변화하는 불변의 법칙’인 ‘로고스’에 따라서 변화가 끊임없이 일어난다는 생각을 하였다.

변화는 생성도 있으나 해체도 있다. 이른바 탄생, 성장, 쇠퇴, 죽음과 같이 변화의 길이 있다. 나아갈 때도 있고 멈출 때도 있고 물러날 때도 있다. 없어질 것도 있고 생겨날 것도 있다. 없음도 있고, 있음도 있다.

인간의 역사에서 개혁은 새로운 변화이다. 개혁은 기존의 변화양상을 새롭게 새로운 방향으로 변화를 도모하려는 인간 의지와 행동의 선택과 결단에서 나온다.

종종 개혁은 자연스런 물길을 거슬러 오르는 것에 비유되는 어려운 변화를 의미한다. 개혁은 특정한 방향으로 생성과 건설의 변화를 모색하는 집단적인 의지와 노력을 말한다.

개혁은 쇠퇴, 해체, 죽음의 변화에서 뛰쳐나와 생성, 성장, 탄생을 의미하는 변화에로의 전환이다. 일본에서 가장 이상적인 지도자로서 개혁적 변화를 이끈 정치가 중의 한 사람은 우에스기 요잔(上衫鷹山, 1751~1822)이다.

그는 아사히신문의 설문 조사인, 지난 천년 동안 일본을 빛낸 최고의 경제인으로서, 일본의 지자체장들이 손꼽은 이상적인 리더로서, 그리고 미국 케네디 대통령이 가장 존경하는 일본인 정치가로 유명한 인물이다.

1983년에 출판된 『불씨』는 우에스기 요잔의 개혁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요잔은 에도(江戶) 막부(幕府)시대 조그마한 규슈의 다카나베번(藩) 번주인 아키치즈 타네미츠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부터 차분하고 영리하였고 우직하고 효심이 깊었다고 하였다.

그는 열 살 때 요네자와의 8대 번주 우에스기 시게사다의 양자로 들어갔다. 우에스기 가문은 전국시대의 맹장 우에스기 겐신의 가문이었다. 요잔이 17살의 나이로 번주가 되었을 때, 우에스기번은 재정적으로 어려워 막부에서 차용한 빚을 원금은커녕 이자도 갚지 못할 지경이었다고 한다.

가신들은 영지를 막부에 반환하자고 하고 영민들은 살기가 어려워 다른 번으로 달아났고 가난으로 신생아를 죽이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소설의 첫머리에는 요잔(법명), 즉 우에스기 하루노리(上衫治憲)(본명)는 에도의 번저에서 연못 속의 물고기를 바라보고 있다.

물고기를 가신에 비유하면서. 금붕어, 잉어, 송어, 피라미 번의 문제를 개혁해야 할 사명을 가지고, 개혁의 동반자를 누구로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하루노리는 개혁을 위한 사람이 필요한데, 누구를 동반자로 협력자로 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그리하여 소외된 가신들을 파악하여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보고 과감하게 등용시킨다.

그리고 자신부터 생활방식 바꾸는 용기로 형식주의와 사대주의에 물들어 있는 예법의 악습을 개혁하여 번의 재정지출을 줄인다. 그는 개혁의 동반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번정개혁의 목적은 단 하나뿐이네. 번 내의 신체장애자, 병자, 노인, 임산부, 어린아이들과 같이 사회적으로 나약한 입장에 놓인 많은 사람들을 돌보아 줄 수 있는 정치의 실현이야. 즉 요네자와번의 번정개혁은 백성을 풍요롭게 해주는 것이 목적이지 번 정부가 풍요롭게 되고자 하는 것은 결코 아니네.”

메이와 6년(1769년) 19살 때 에도의 번저에서 요네자와 번으로 돌아오는 길의 입구 역참에서, 하루노리는 요네자와 번이 재의 나라임을 실감한다. 그러나 그 재 속에서 불씨를 발견한다.

차가운 재가 그대로 요네자와를 상징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번민은 자포자기 상태였다. 겨울이라는 계절이 이 나라를 피폐시킨 것이 아니었다. 토지나 인간이나 저 밑바닥에서부터 차갑게 얼어 있었다.

그리고 그 마음의 겨울은 언제까지 기다려도 봄이 오지 않았다. 산도 죽었고 강도 땅도 모두 죽어있었다. 무엇보다도 죽어있는 존재는 살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이었다.

그것도 표정뿐 만이 아니고 마음까지 벌써 죽어있었다. 요네자와 번 내에 살고 있는 번민은 누구 하나도 희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희망이 없기 때문에 마음이 죽어있다고 해도 좋았다.

“요네자와는 이 재와 마찬가지다.” 그런데 재 속에서 작은 불씨가 남아있었다. 하루노리는 가신들에게 이야기한다. “그 불씨를 보고 있는 동안 나는 바로 이거다! 라고 생각했다. 남은 불씨가 새로 불을 일으키고 그것이 또 새 불을 일으킨다. 그런 것이 이 나라에서 반복될 수는 없는가 하는 생각을 하였다. 그러면 그 불씨는 누구일까? 우선 너희들이라고 느꼈다.”

많은 가신들이 감동했다. 다케마타가 앞으로 나와서 말했다. “번주님, 그 불은 저에게 주십시오.” “이 불을?” 하루노리가 되물으니 다케마타는 말했다.

“그 불을 받아서 더 크고 새로운 탄에 불을 옮기겠습니다. 그리고 번주 님께서 말씀하시는 개혁이 달성되는 날까지 결코 꺼뜨리지 않고 집에 소중하게 보존하겠습니다.”

그리고는 무리를 향하여 말을 이었다. “여러분, 우리들의 가슴에 타고 있는 불을 자신의 부서에 가져가 번주 님의 생각을 이 요네자와에 실현시킵시다.”

사토도 같은 제안을 하였다. 다시 같은 내용의 소리가 동시에 여기저기서 들렸다. 가신들은 하루노리가 갖고 있던 탄불을 받아서 그것을 작게 나누어 한 사람 한 사람 새로운 탄을 준비하여 불을 옮겨 붙였다.

탄불은 열 배 스무 배가 되었다. 이것이야말로 눈길에 타오르는 새로운 개혁의 불씨였다. 하루노리의 개혁은 개혁의 동반자들이 불씨가 되어 요네자와 번에 불길이 번져갔다.

저항도 있었고 개혁의 중반에 뜻하지 않은 복병과 암초도 있었지만, 그것을 극복하고 개혁을 완성하였다. 하루노리는 번주로 오른 지 18년 후 35세에 은거하고 후계자에게 요네자와 번을 물려주었고 개혁이 지속되도록 지켜보았다.

하루노리는 요잔(鷹山)으로 칭하여졌다. 후계자에게 어려움도 있었으나 개혁은 지속되었고 다른 번으로까지 개혁은 확산되었다. 요잔은 보여준 것이다.

‘어떠한 절망적인 상황이라 할지라도 다각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역사의 흐름을 잘 파악하면 극한상황에서도 그 벽을 돌파할 수 있는 길이 있다.’라는 신념으로 미루어보아 요잔은 결코 인정 일변도의 수뇌는 아니었다.

그는 매우 유연한 사고와 과감한 행동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실행하는 데 있어 ‘덕’이라는 것으로 잘 포장을 하였다. 그러나 그 덕이란 그가 타고난 것으로 단순한 포장이 아니었다.

그의 솔선수범, 선우후락의 일상행동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고도 남았다. 그가 거짓이 아닌 진정으로 성실한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세상이 음울하고 경제가 생각한 것처럼 발전하지 못하면 사람들은 아무래도 타인을 원망하고 상황 탓으로 돌려버리는 수가 많다. 그러나 요잔은 그런 인간의 낡은 사고방식을 돌파하였다.

요잔의 번정개혁이 성공한 이유로 모두가 지적한 공통점은 ‘사랑’이었다. 타인에 대한 헤아림, 자상함이었다. 번정개혁을 번민의 것으로 설정하여 그것을 추진하는 번사들에게 끝없는 애정을 쏟았다.

고통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요잔의 개혁은 풍요로움 뿐만이 아니라 타인을 사랑하는 마음을 부활시켰다.

요잔이 소생시킨 것은 요네자와의 죽은 산과 강, 땅만이 아니었다. 그는 무엇보다도 인간의 마음에 사랑이라고 하는 마음을 다시 소생시켰다.

“번주 님의 제일가는 개혁은 인간을 이렇게 변화시키신 것입니다. 사람, 마음속에 서로 믿는 마음을 되살려 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번주 님께서 요네자와 사람들을 믿으셨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속여도 우리는 속여서는 안 된다고 계속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기본은 전에 말씀하신 ‘참을 수 없는 마음’, 즉 누구에게나 다 있는 타인에 대한 헤아림, 자상함이 자연스럽게 교류될 수 있도록 개혁을 펼치셨습니다. 저는 무엇보다도 이 점이 기쁩니다.”

요잔은 분세이(文政) 5년(1822년) 72세로 타계하였다. 이 엄혹하고 거칠고 부정과 불확실의 시대에 누가 불씨가 되어 자신은 물론 시대와 사회, 국가를 개혁할 수 있는가?

특별히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알고 실천해야 하는 크리스천들이야말로 개혁의 불씨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불을 가져왔다고 하셨다. 영혼의 불씨가 우리 자신과 세상을 변화시키는 개혁의 불씨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자문하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