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정칼럼 / 백수건달, 노인의 한(恨)
시정칼럼 / 백수건달, 노인의 한(恨)
  • 시정일보
  • 승인 2023.03.16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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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춘식 논설위원
임춘식 논설위원
임춘식 논설위원

[시정일보] 우리나라 고령화 속도는 그야말로 ‘인구지진(age quake)’이다. 인구지진은 대한민국의 정치·경제·사회의 모든 역학 구도를 바꿔놓고 있다. 고령화 이슈가 나오면, ‘잃어버린 30년’을 얘기하지만, 남의 얘기가 아니다. 발등에 떨어진 불은 이제 노인들의 몫이다.

백수건달 노인이 사회문제화되고 있다. 방임되고 있는 백수건달, 큰일이 아닐 수 없다. 세상이 변했다 해도 백수건달 노인이라는 말은 너무 심하지 않으냐고 말한다. 그렇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다. 어쨌든, 100세 장수 시대인 요즘 세상에는 백수가 많을 수밖에 없다. 자의이든 타의이든 백수가 늘고 있다.

흔히 백수(白手)는 만 19세 이상의 성인이면서 직업이 없는 사람들을 뜻하는 말이다. 정확한 백수의 의미는 근로 능력이 있지만, 일정한 수입이 없는 모든 사람을 지칭한다. 가진 재산에 따라 ‘돈 많은 백수’, ‘니트족’ 등으로 나뉜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어원은 일하지 않아 손(手)이 하얗다(白) 해서 백수라는 것으로 보고 있다. 백(白)자가 '아무것도 없다'라는 뜻도 있고, 일이 없어 손에 쥔 게, 가진 게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즉 돈 한 푼 없이 빈둥거리며 놀고먹는 건달인 '백수건달'의 준말이다. 즉 일정한 직업 없이 다방에서 무위도식하던 지식인들의 하얀 손을 비꼬아 부르던 말에서 유래했다.

따라서 이 기준에서 봤을 때 백수의 기준은 만 19~64세이고, 군필 혹은 미필이고, 군대 혹은 감옥에 있지 않고, 학생도 아니고, 장애인이나 노인도 아닌 통칭 일하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실질적으로는 백수가 아니지만, 사회생활 문제 때문에 탈수급을 하지 않고,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신분을 유지하는 사람을 ‘경계선 백수’라고 부른다. 경계선의 의미는 돈이 없는 것과 있는 것의 경계선에 서 있다는 모습을 비유한 것이다.

그리고 보통 실업자라고 표현하며, 백수와 의미가 100% 일치하지는 않지만, 과거에도 일제강점기에는 룸펜, 잉여 인간, 조선 시대 이전에는 한량, 건달, 기둥서방 등 백수와 비슷한 유형의 인간들을 가리키는 단어가 있었다.

현대 사회에는 빽 좋은 백수 혹은 돈 많은 백수가 많은 사람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1990년대의 오렌지족, 현재는 집안에 돈이 많거나 아니면 유산 상속을 받은 건물주가 그 예다. 백수란 단어 자체에 딱히 성별은 없으나, 백수건달이라는 남성 이미지가 강하다 보니 여성형으로 백조라는 신조어가 쓰이기도 한다. 분류 방식에 따라 학생과 전업주부를 무직자로 분류하기도 한다.

백수건달, 왜 직업이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 됐을까? 그런데 백수건달에도 등급이 있다. 수년 전에 인터넷에 회자한 유머 용어로 화백(華白)·반백(半白)·가백(家白)·동백(洞白)·마포불백(魔抛不白) 등이 있다. 여기에서 화백은 화려한 백수의 준말로 퇴직 후 3개월은 일정이 꽉 찬 백수다. 불백은 불쌍한 백수로 친구와 약속이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휴대전화마저 끊긴 백수다.

사회로부터 은퇴하고 빈둥빈둥 놀고 있는 백수건달(白手乾達)은 5등급으로 나눌 수 있다. 1급 백수 화백은 1주일에 여러 번 골프·여행은 물론 애인과 밀회까지 즐기는 화려한 백수, 2급 반백은 골프, 여행·밀회 중 하나만 하는 백수, 3급 가백은 가정에만 있다 누가 불러주면 나가는 불쌍한 불백(不白), 4급 동백은 일없이 동네만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는 백수, 5급 마포불백은 돈 한 푼 없이 빈둥거리며 놀고먹자 마누라조차 포기할 정도로 불쌍·비참한 백수다.

백수 1년 차는 '권사'로 아무런 권한 없이 사는 사람, 2년 차는 '집사'로 직장만 사랑하다 집을 사랑하게 된 사람, 3년 차는 '장로'로 장기간 노는 사람, 4년 차는 '전도사'로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사람, 5년 차는 '목사'로 목적 없이 사는 사람이라고도 한다.

화백도 골프 가방을 메고 나설 때만 화려할 뿐, 집에 오면 심적 공황 상태인 방콕은 어쩔 수 없다. 화백도 마음은 “눈물 나도록 외롭다”라는 현실은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다. 고독, 단절 속에 늙는다는 것은 분명 서러운 일이다. 오늘 진 태양은 내일 아침 다시 떠오르지만, 백수들은 어제도, 오늘도 갈 곳이 없다.

누군가 한바탕 웃어보자고 만든 유머이지만 은퇴 칼바람 시대에 그냥 웃고 넘길 일이 아니다. 누구나 실직을 한다는 것은 슬픈 이야기다, 이젠 무엇으로 빌어먹고 살아야 하는가는 문제에 봉착한다. 이러한 현실이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한편 고령이라는 이유만으로 백수건달의 상태로 벼랑 끝에 몰린 노인들의 심정은 오죽하겠는가?

그런데 요즘 반백(叛白)이란 말이 돌고 있다. 백수들의 반란이란 말이다. 다행이면서 소망스럽다. 우리가 잘 아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반백의 반란 꾼들에게 모범이 되고 있다. 그가 가장 성공적인 ‘반백’이다. 카터가 펴낸 “아름다운 노년”이라는 책엔 인생 후반전을 어떻게 헤져나갈 것인가에 대한 혜안(慧眼)으로 가득하다. 반백들(백수의 반란)을 위한 좋은 교과서이다.

앞으로 백수 반란(반백)의 사회를 만들자. 노인들이 사회적 일자리에 참여하거나, 자원봉사 활동을 수행하거나, 사회운동이나 정치활동을 하거나, 여가활동을 즐기는 등 사회참여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게 되면 개인, 가정, 지역사회 및 국가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리고 규칙적인 생활로 인하여 건강증진에도 큰 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

또한 백수의 반란은 노인소득의 증진, 노인 의료비의 절감, 가족 부양 부담의 경감, 장기요양 비용의 절감 등은 물론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생활을 하게 되어 의존적 존재가 아닌 독립적이고 자립적인 존재가 되므로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자긍심을 갖게 되어 성공적인 인생 말년의 행복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한다.(한남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