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 반일 감정과 국가 발전의 우선 순위
특별기고 / 반일 감정과 국가 발전의 우선 순위
  • 조 상 진 정치학박사
  • 승인 2023.03.23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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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상 진 정치학박사
조상진 정치학 박사
조상진 정치학 박사

[시정일보] 지난 3월16일 일본 도쿄의 한일 정상회담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공동기자회견문을 발표했다. 그 주요 내용으로 한국과 일본은 자유, 인권, 법치의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 경제, 글로벌 어젠다에서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가장 가까운 이웃이자 파트너라고 밝혔다. 그리고 그동안 얼어붙은 양국관계로 인해 양국 국민들이 상호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입어왔다는데 공감하고, 한일관계를 조속히 회복시켜 나가자는 데 뜻을 같이했다고 발표했다. 또한 양국이 긴밀히 소통한 결과 우리 정부가 발표한 강제징용 해법을 계기로 양국의 미래지향적 발전방향을 본격 논의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고 평가한 것이다. 그러한 차원에서 한일 미래파트너십 기금을 설립하기로 합의했다.

더 나아가 금년은 과거사를 직시하고 상호이해와 신뢰에 기초한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1998년 김대중·오부치의 공동선언 정신을 발전적으로 계승함으로서 양국간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고 한일간 협력의 새시대를 여는 첫 걸음이라 평가한 것이다.

따라서 두 정상은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필요하면 수시로 만나는 셔틀외교를 통해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끝을 맺은 것이다.

이상과 같이 지난 정부들이 불필요한 양국 감정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소극적 외교와는 달리 윤석열 정부의 금번 대일외교 일정에서 발표한 내용은 과거회귀적 반일감정을 탈피해 21세기 미래지향적 발상으로 획기적인 외교성과라고 평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탁월한 정책이라고 하더라도 국민들의 소망과 기대를 모두 충족시킬 수는 없다. 더구나 국가간의 문제에 있어서는 상대국 국민들의 입장과 이익도 공감돼야 한다는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이러한 한계점에 따라서 국내의 진보적 시민단체들이 이번 윤대통령의 일본방문 외교정책에 대해 연일 비판과 반대시위를 벌이고 있다. 서울시청 광장 등의 시위대열은 물론 각 지방도시에서도 플래카드 홍보물 등을 통해 윤석열정부의 대일외교 정책을 혹독하게 비판하고 있다. 비판과 반대의 주요내용으로는 대일 굴종외교라는 주장과 함께 역사와 국익포기, 굴욕적 야합 등등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진보성 언론매체들도 부정적 시각을 클로즈업 시키면서 대국민 선동을 부추기고 있다. 이에 대해 유튜브 등 보수성 언론매체들은, 진보 야당에서 정치인 방탄용으로 시민단체를 앞세운 반일 죽창가를 부르면서 진보세력들을 선동하고 있다고 역공을 하기도 한다.

한편, 일반국민들 입장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의 대일 정책방향이 시의적절한 미래지향적 첫걸음으로 공감을 할 것인지 아니면 반일감정을 다시 되살리고 죽창가에 동의해야 할 것인지 혼란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각종 TV방송 매체들이 쏟아내는 애매한 보도 태도도 문제가 심각하다. 예를 들면 방송보도에 있어서 사회적 경험과 경륜들이 풍부한 숙련된 방송인의 지성보다는 젊은 일선기자의 시각에 너무 의존함으로서 감성적이고 편협적인 보도로 흐르게 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뉴스보도를 듣는 대중적 시청자들은 간접 피선동의 대상자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일반론으로, 진보주의는 새로운 이슈와 애매모호한 주장을 선호하게 되고 보수주의는 안정성에 무게를 두는 성향을 가진다는 연구가 발표된 적이 있다. 현재 우리 한국사회의 이념적 스펙트럼은 이번 윤석열 대통령의 대일외교 정책발표에 대해 부정적인 주장을 갖는 세력은 진보좌파로, 긍정적인 입장을 갖는 세력은 보수우파로 봐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현실적 한국정치 상황은 그 반대로 가고 있다고 보여진다. 왜냐하면 과거를 지키는 것은 보수의 몫이고 새로운 비전 제시는 오히려 진보의 몫이라고 역설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진보나 보수의 논리나 성향 구조를 떠나서 반일감정의 문제는 이미 케케묵은 과거사이므로 국가발전의 우선순위에서 우위가 될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금번 윤석열 정부의 대일외교 정책은, 반대를 위한 반대의 소아적 아집에서 탈피하고 대승적으로 큰 틀에서 또 한 단계의 국가발전 비전으로 승화시켜야 한다는 발상의 전환이 절실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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