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정인문학산책/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다
시정인문학산책/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다
  • 임문영(계명대 명예교수, 사회학 박사)
  • 승인 2023.03.23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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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문영(계명대 명예교수, 사회학 박사)
임문영 교수
임문영 교수

[시정일보] 정년퇴임이 가까워질 무렵, 일간신문에서 우연히 산티아고 순례길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순간 머리에 스치는 한 줄기 빛이 결국은 이 길을 걷도록 만들었다. 당장은 막연한 생각뿐이었다.

드디어 정년퇴임식이 있던 날, 나는 학생들과 동료 교수들 앞에서 정년 후에 하고 싶은 두 가지를 언급했다. 인도여행과 산티아고 순례길. 이에 대해서 젊은 총장 자신도 언젠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싶다고 맞장구를 쳤다.

퇴임식에 참석한 아내는 산티아고가 어떤 곳인지도 모르고 남편이 하고 싶다고 하니 함께하면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그렇게 해서 인도여행과 산티아고 순례길은 정년퇴임 후 내가 하고 싶은 버킷리스트 최우선순위에 오르게 되었다.

첫째, 인도여행은 예술의 전당 특강프로그램에 마침 <인도문화와 역사>라는 강좌가 개설되어 아내와 함께 12주 동안 강의를 듣고 인도 답사 여행으로 인도를 11박 12일간 여행했다.

뉴델리를 포함해 중부 인도 지방을 중심으로 불교와 힌두교 발상지 유적을 돌아보고 바라나시와 아그라 요새 등지를 답사 여행 형식으로 뜻깊은 여행을 하게 되어 매우 흡족했다.

둘째, 산티아고 순례길 걷기는 우선 책자를 사 정보를 입수하고 실제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던 분들이 주축이 되어 새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싶은 분들을 위한 강좌를 부지런히 쫓아다녔다.

다행히 김효선 산티아고 전도사를 만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데 유용한 지식을 얻을 수 있었고 함께 배낭을 메고 반포에서 잠실까지 실제로 함께 걸어가며 주의할 점 등을 일러주어 자신감을 갖게 되었고 실행에 옮길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도와주었다.

당시로써는 우리 부부가 제일 나이가 많은 도전자였기 때문이었다. 혼자 걷는 것이 아니라 아내와 함께 걷는 것이니 한편 안심되면서도 다른 한편 걱정도 함께했다.

하지만 용기와 자신감을 가질 수 있어 드디어 2008년 4월 산티아고 순례길 800㎞에 도전장을 내고 특히 프랑스 길을 걷기로 하고 파리로 떠났다.

유학 시절의 파리를 며칠이나마 다시 추억을 음미하고는 아내를 위한 가톨릭 성지인 루르드 성지로 간다. 아내는 가톨릭 신자였다. 함께 성지순례를 하고는 기차를 타고 산티아고 프랑스길 출발지점인 생장피에드포행 기차에서 한국인 부부를 만나 함께 가기로 한다.

그들은 한국외방선교회 소속 후원자들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중간까지만 걷는단다. 피부과 의사인데 거주지가 우리 집 근처여서 동네 분을 만난 셈이었다. 반가웠다.

사무실에 들러 등록하고서 산티아고순례길 여권에 숙소마다 스탬프를 찍어 최종착지 사무실에 제출하면 산티아고 순례길 완주 증명서를 받게 된다.

이렇게 동네 분을 외지에서 만나 반가웠지만, 그들과 우리의 걷기계획이나 기간이 달라 그들은 먼저 떠났고 우린 피레네산맥 기슭에서 하룻밤을 지내며 다음날 여력을 모아 피레네산맥을 걸어서 넘었다.

마음은 상쾌했지만, 12킬로 무게의 배낭을 각자 짊어지고 넘어야 하니 몸이 힘들었다. 그렇게 피레네를 넘어 군대 숙소 같은 공동숙소에서 하룻밤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다 함께 코를 골며 잠을 잔다.

자기 전에 가만히 누워 생각해보니 세계 곳곳에서 저마다의 이유와 나름의 바램으로 이 길을 걷고자 하는데 나는 과연 이 길을 왜 걷고자 하는 것인지, 과연 아내와 함께 800㎞를 끝까지 걸을 수 있을지 등등 여러 생각이 겹쳐 질문하고 응답하며 잠을 내몰고 있다.

유럽학과 교수로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정년 퇴임하기까지 전연 알지 못한 그것에 대해 놀라움으로, 이미 알았어야 한다는 어떤 후회스러움, 알아야 할 사실을 알지 못한 한스러움, 게다가 이 길이 꼭 신자들만이 걷는 길이 아님을 알고서 나 같은 비신자도 유럽의 역사현장을 답사하는 차원에서 걸을 수 있다는 사실에서도 걷는 것이 뜻깊다는 생각.

아내는 가톨릭 신자이니 당연히 미사 참여하면서 순례길을 걷는 신자로서 해야 할 도리와 의무라고 할 수 있겠다. 아무튼, 끝까지 그러나 정년퇴임자이니 시간 많고 나름 호기심도 많으니 이것저것 다 보면서 가자는 원칙을 세운다.

그렇게 얼마를 걸었을까? 계획이 어긋나 하루 걸을 수 있는 거리만큼 걷고 나면 숙소를 정해야 하는데 숙소가 만원이라 거처할 곳이 없다는 사실에 온 만큼 더 걸어야 할 처지이니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에 어찌할 것인가?

방도가 없다. 우리 부부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함께 택시를 타고 다음 경유지까지 가자고 한 프랑스 부부도 같은 처지이고 보면 순례길은 죽어도 걸어야 하는 원칙도 있고 이런 경우엔 변칙도 있게 마련인 것이다.

기진맥진해서 다음 경유지의 숙소에 거처를 마련해놓고는 피곤이 몰아쳐 바로 잠을 청해야 했던 때의 추억이 새롭다. 어느 숙소에서 점심 후 낮잠을 자며 휴식을 취하고 있을 즈음, 컴퓨터에서 메일을 확인하다가 흑백사진 한 장이 올라온 것을 확인해보니 우리의 첫 손자 사진이라는 점에 경이로움과 황홀감을 어찌 누구에게 표출할 수도 없이 우리 부부만 좋아 날뛰며 물이라도 마시며 서로에게 감사한다고 연발했던 그 기쁨의 날, 드디어 아내의 발가락이 꼬이는 바람에 걷기가 힘들고 힘주어 걷다 보면 발가락 사이가 짓물러 아프고 피가 나는 바람에 지나가는 순례자 간호사가 자기 약을 발라주는 애인 정신과 이타심에 감사하고 또 감사한 날, 그로부터 계속 만나게 된 핀란드 부부와는 지금도 함께 연말연시 인사를 나누며 생일 인사를 빠트리지 않는 예의를 갖추며 지내고 있는 친구들, 언젠가 우린 헬싱키여행 때 유독 핀란드 부부를 만나며 함께 간 여행객들과 따로 반나절을 그들과 함께 지낸 순례길에서 쌓은 우정의 끈, 레온시에 도착했을 때 스페인 부부와 함께 점심을 스페인 스타일의 시골밥상을 주문해 먹으며 이들 스페인 부부는 순례길을 맛여행처럼 시간 날 때마다 걷는다는 사실에 참 멋있는 부부를 만났던 일, 덴마크에서 말썽꾸러기 아들과 함께 순례길을 걸으며 함께 대화하며 치유하는 그 노력을 보며 순례길이 치유의 길이라는 점에서도 중요할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느 숙소에서는 독일 여자 자매가 걷다가 다리를 다쳐서 하루밖에 묵을 수 없는 숙소(알베르게)를 며칠씩 묵을 수 있다는 점과 그녀들도 가정사 때문에 순례길을 걷고 있다는 점에서 또 놀랐던 점, 그곳에서 만난 프랑스 철학 교수는 왜 젊은이들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그렇게 빨리만 걷고 있는지를 이해할 수 없다고 나한테 목청을 높였던 그도 생각이 난다.

이런저런 인생사들이 순례자 길에서도 똑같이 일어난다는 점에서 나는 호기심과 피곤으로 인해 덤덤함이 겹쳐 목적지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왜 걷고 있는지를 잊어버리고 그냥 걷는다는 사실 하나만 잊지 않고 끝까지 가야지 하는 그 목적 하나만이 머릿속에 남아있다.

걸으며 생각하는 처음의 계획은 여지없이 사라지고 그냥 걸을 땐 걷기만 하고 하루 치를 걷고 나서 숙소를 잡고 나서 빨래하고 내일을 위한 준비를 다 해놓고 카페에 앉아 일기를 쓰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우리 부부의 친손자는 지금쯤 어느 정도 자랐을까 하는 생각도 간간이 떠오르고 걸으면 걸을수록 길의 위대함이라든지 밀밭의 초록색 연속, 그 위에 푸른 하늘이 길게 늘어져 이어지는 그림, 게다가 봄의 향기를 머금고 뽐내는 체리의 맛이란 역시 자연의 맛이 최고.

순례길을 걷는 우리가 가상했는지 아니면 뿌듯했는지 시골 소년이 체리나무에서 체리를 한 움큼 따다 주는 그 순박하고 친절함이여, 길에는 정이 넘쳐나고 그래서 더 걸을 만하구나.

그렇게 바라던 800㎞가 눈앞에 보인다. ‘천릿길도 한걸음부터’라고 하는 속담처럼 그렇게 까맣게 멀기만 했던 그 길이 바로 눈앞에 있을 때 그 느낌은 무어라 말할 수 없이 몸이 알아서 눈물부터 난다.

아무 말도 필요 없이 서로 모르는 사람들끼리도 껴안고 그냥 가만히 서 있다. 살아있으되 살아있지 않는 인간조각상들이 여기저기 서 있다. 그렇게 한참이 흘러간 뒤에서야 제정신 차리고 이제 끝이 났구나 싶다.

아니 내일도 걸어가야 하지 않나? 갈 곳이 없음이 더 문제가 아닌가? 삶을 걸어가는 것이다. 어디든 걸어가야 한다. 그냥 걷는 것이 아닌 삶의 연속으로.

왜 나는 고통스러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싶어 했을까?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은 지 벌써 14년이란 세월이 흘러갔다. 지금도 여전히 나의 머릿속엔 생생하게 그 길이 기억되며 살아있다.

고생을 자처하며 걸었던 그 길을 다시 한번 더 걷고 싶었지만 결국은 걷지 못했다. 하지만 난 매일 마음속의 순례길을 걷고 또 걷고 있다. 하루하루의 삶이 산티아고의 순례길인 셈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