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정인문학산책/ 우크라이나 사태와 한반도 정세
시정인문학산책/ 우크라이나 사태와 한반도 정세
  • 임종니(전 국방연구원 국장)
  • 승인 2023.04.17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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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니(전 국방연구원 국장)

[시정일보] 러시아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위협으로부터 안전을 보장하고 돈바스에 거주하는 자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2022년 2월 24일 시작된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푸틴 대통령은 모스크바 시각으로 05시 50분경 대국민담화 직후 우크라이나에 대한 특별군사작전을 전격적으로 감행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3월 25일 전황 브리핑을 통해 1단계 작전을 성공적으로 종결하고 동부 축선의 돈바스 지역을 조기 점령한다는 2단계 작전 구상을 발표했다.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부 장관은 러시아군이 루한스크를 완전하게 점령했다고 밝히면서 의도된 작전적 정지를 통해 전투력을 복원하고 향후 도네츠크주에 군사력을 집중할 것임을 예고했다.

현재까지 러시아 및 우크라이나 양측에서 최소 3만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산된다. 전쟁으로 인해 우크라이나 국민 중 약 900만 명이 해외로 피난했다.

격전지인 동부 지역을 떠나 타 지역으로 이동한 국내 피란민을 고려하면 실제 우크라이나 난민은 약 1,200만 명 이상으로 파악된다. 전쟁으로 인한 일일 평균 우크라이나의 경제적 손실은 약 5조 원으로 평가되며, 재건에 소요되는 비용은 최소 970조에 이른다.

러시아군은 개전 이후 최소 한 달 이내에 전쟁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2014년 러시아가 크림을 강제 병합할 당시 우크라이나 정치 엘리트들이 보여줬던 위기관리 능력의 총체적 부실과 동부 지역의 전통적 반정부 성향이 러시아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정보 판단에 기인한다.

하지만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을 중심으로 우크라이나 국민의 결사 항전 의지가 결집했으며, 국제사회의 반전여론과 러시아 혐오 정서가 크게 확산했다.

여기에 장기간 전쟁 준비에 따른 장병의 전투 피로증 누적과 전쟁목표의 모호성은 러시아군의 공격 기세 유지에 마찰요인으로 작용했다. 또한, 1,500km가 넘는 ‘작전 정면’ 유지에 필요한 적시적 지속지원의 한계는 개전 초기 러시아군의 인적・물적 손실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할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 지상군은 대대전술단 중심의 제병협동 작전을 구사하고 있다. 대대전술단의 핵심은 임무형 지휘다. 임무형 지휘는 급변하는 전장 환경에서 작전목표 달성을 위해 예하 지휘관에게 ‘융통성’을 용인한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강력한 위계질서에 기반한 러시아군의 폐쇄적 전략문화를 고려할 때 이번 전쟁에서 대대전술단의 효용성은 근본적으로 한계를 내재했다고 볼 수 있다.

러시아 전쟁지도부의 세대교체 실패는 러시아군의 폐쇄적 전략문화를 심화시키고 공격 템포를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분석된다. 2020년 세계보건기구의 발표에 따르면, 러시아 남성의 평균연령은 약 68세이다.

쇼이구 국방부 장관과 발레리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은 각각 1955년생으로 한국 나이로 67세이다. 한국의 각 군 총장에 해당하는 군종 사령관들의 평균연령은 57~58세이다.

러시아 남성의 평균연령을 고려할 때 러시아군 주요 지휘관들의 연령은 초고령화 국면으로 진입한 것이다. 이는 러시아군의 폐쇄적 전략문화와 맞물려 적시적 결심지원 한계 등 통합 전투력 발휘에 제한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러시아군은 2단계 작전부터 지상군 위주의 근접작전 대신 포병 및 항공우주군의 화력 작전을 통해 우크라이나군의 피해를 강요하는 등 작전적・전술적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루한스크 점령과정에서 러시아군은 이지움과 리만을 우선적으로 점령하여 세베로도네츠크에 배치된 우크라이나군 주력의 이동 및 전환 그리고 다른 지역의 군사력 유입을 차단했다.

러시아군은 근접전투는 최대한 회피하면서 좁은 공간에 우크라이나군을 몰아넣고 대규모 화력 작전으로 피해를 강요하는 ‘깔때기 전술’을 적극적으로 구사하고 있다.

중국-대만 대립 또는 양안 관계 갈등은 중화인민공화국(중국)과 중화민국(대만) 간에 중국을 대표하는 합법적 정부 지위를 둘러싼 갈등으로 시작하였다.

1949년 12월 중국 본토에서 국민당·공산당 간의 내전에서 패한 국민당 정부가 대만 타이베이로 중화민국 정부를 이전함에 따라 동년 10월에 수립된 본토의 중화인민공화국과 함께 중국을 계승하는 두 개의 정부가 들어선 것에 기인한다.

중화민국 역시 중화민국 주도의 통일(하나의 중국)을 목표로 내세웠으나, 대만 정치지형의 변화와 더불어 중국과의 경제력, 군사력 격차로 인해 사실상 현상 유지로 선회하였다.

중국 역시 무력통일에서 일국양제하의 평화통일로 선회한 한편, 궁극적인 목표로서의 통일을 포기하지는 않았지만, 급격한 현상변경을 추진하기보다는 현상 유지하에 중국에 유리한 환경을 만드는 데 더 역점을 두어 왔다.

그러나 ‘하나의 중국’ 원칙을 둘러싼 중국-대만 간의 갈등이 지속되는 한편, 미·중 갈등이 미-대만-중국 간의 관계와 맞물리면서 지난 몇 년간 대만 주변 해·공역에서 군사적 시위가 빈도와 강도 면에서 계속해서 증가해 왔으며, 지난 8월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을 계기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중국은 대만을 에워싸는 형태로 봉쇄하는 한편, 27년 만에 대만을 향해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긴장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중국은 이번 펠로시 하원의장 방문을 계기로 대만 위협 수준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만들었으며, 향후의 위협 수위는 새로운 기준점에 따라 더욱 상승할 우려가 있다.

현재 양안 관계는 ‘하나의 중국’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주요 쟁점으로 대립하고 있는 한편, 미·중 전략경쟁과 같은 외부적 요인에 따라 분쟁의 강도가 크게 고조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에 더해 전통적인 범주에서의 군사적 위기가 아닌 위기도 평시도 아닌 불안정한 그레이존 상황이 지속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이하에서는 최근 분쟁이 고조된 원인과 현재의 분쟁 양상으로 중심으로 서술한다.

양안 관계는 홍콩 사태를 기점으로 또 한 번 변화를 맞이했다. 홍콩 사태는 홍콩의 행정 수반의 선출 방식을 두고 홍콩 시민과 홍콩 자치행정부·중국 간의 갈등이 발생, 결국 홍콩 당국의 진압으로 끝난 사건이다.

중국 당국은 홍콩을 사실상 수복한 이후 중국 영토 통일의 최대의 걸림돌인 대만에 대한 공세의 수위를 높이기 시작했다. 한편, 홍콩 사태는 대만 국내정치에 의도하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당시 차이 총통은 대만의 경제 성장률 저하로 인해 지지율이 떨어지며 고전하고 있었는데, 홍콩 사태로 인한 반중 감정확산에 힘입어 2020년 재선에 성공했다.

현재 양안 관계는 ‘하나의 중국’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주요 쟁점으로 대립하고 있는 한편, 미·중 전략경쟁과 같은 외부적 요인에 따라 분쟁의 강도가 크게 고조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에 더해 전통적인 범주에서의 군사적 위기가 아닌 위기도 평시도 아닌 불안정한 그레이존 상황이 지속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이하에서는 최근 분쟁이 고조된 원인과 현재의 분쟁 양상으로 중심으로 서술한다.

올해 11월로 예정된 대만 수도 타이베이 시장선거에서 민진당 후보(천스중, 陳時中)가 국민당 후보에 대해 약간 우세를 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중국의 군사 위협이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2020년의 총통선거 및 대만인들의 반발심리에 비추어보자면 민진당에 유리하게 상황이 전개될 것으로 판단된다. 타이베이 시장선거는 총통선거의 바로미터 역할을 하는 만큼 2024년의 총통 선거까지는 시일이 남았지만, 이번 시장선거에서 민진당이 승리한다면 민진당 정권의 지속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민진당 정권은 대만인 정체성의 고조와 더불어 양안 갈등과 미·중 갈등이 연계되어 진행되게끔 하는 요인 중의 하나로, 민진당 정권이 지속된다면 양안 간 긴장의 수위는 쉽게 낮아지기 어려울 것이다.

한편, 대만은 일정 정도 문화적·민족적 정체성을 강화하고 미국의 지원하 국제사회에서의 국가로서의 존재감을 강화할 것으로 보이나 독립추진 가능성은 높지 않다.

미국 정부는 여전히 ‘하나의 중국’의 원칙을 존중하고 있으며 대만 정부의 법적 지위 변경으로 이어질 수 있는 사안에는 매우 신중한 편이다.

중국은 대만의 독립 추진 움직임이 가시화될 경우 이를 방관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어 전쟁 리스크를 고려할 때 중국, 대만, 미국 어느 일방도 통일이나 독립을 우선적으로 추진할 가능성은 낮다.

현실적으로 미국을 비롯한 국가들의 ‘외교적 살라미’와 중국의 ‘군사적 살라미’가 상호 경쟁하면서 상시적인 불안정과 상황에 따른 위기의 고조·안정 국면이 반복될 것으로 판단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우크라이나는 물론 러시아의 인적・물적 손실이 증가하고 있으며 세계 경제가 신음하고 있다. NATO는 군사동맹이라는 본연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있으며 비동맹을 유지했던 국가들이 NATO에 접근을 강화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과 NATO의 확장 반대를 분명히 하는 가운데 동북아 지역에서 NATO와 인도-태평양 전략의 연계성 강화를 저지하기 위해 전략적 협력을 발전시키고 있다.

러시아는 지상군 중심의 근접전투는 회피하면서 특정 지역에 대한 대규모 화력 작전을 통해 우크라이나의 전쟁 지속능력을 지속적으로 약화시킬 것이다.

또한, 러시아군은 돈바스 및 자포자, 헤르손 지역 안정화 및 정부 통치 지원을 병행하면서 점령 지역에 대한 실효 지배 가속화를 위해 행정력을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러시아군은 이번 전쟁의 직접적인 배경이 된 돈바스 지역 외에도 하르키우 및 미콜라이우 등 최소 6개 지역을 완전 혹은 부분 점령하고 있다. 러시아군의 이러한 의도를 고려할 때 향후 특별군사작전은 ‘노보 러시아’ 점령을 위한 장기전 수순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러시아 당국은 에너지 가격 및 수출량을 인위적으로 조정하여 유럽연합 개별국가의 에너지 대란 및 사회 혼란을 유도할 가능성이 있으며, 궁극적으로 대러(對露) 제재 약화 등 서방의 정책 공조를 무력화하고자 할 것이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휴전협상을 위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러시아와 서방 간 비공식 접촉이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휴전협상이 성공적으로 개최되어 이스탄불 협정과 같은 성과도 전망할 수 있다.

하지만 민스크 협정이 특별군사작전의 배경이 되었던 점을 고려할 때 향후 휴전협상의 성과가 이번 사태의 완전한 종식을 위한 근본적 조치가 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우크라이나 사태의 장기화로 한러 관계의 동결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러시아는 주변 4강이자 북핵 문제 해결에 있어 주요한 행위자이기 때문에 우리의 국익과 관련된 사안에 대해 차별화된 접근법이 필요하다.

우리는 국제사회의 대러 제재 정신을 존중하고 합의사항을 온전하게 이행하면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러시아의 건설적 역할을 지속 견인해 나가야 한다.

특히 러시아 군용기의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 진입과 같은 군사 상황이 양국 간 우발적 충돌로 비화하지 않도록 국방 당국 간 소통 채널 유지가 어느 때보다 긴요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글로벌 중추 국가로서의 역할을 강화하고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로 인한 인도적 참사를 예방하기 위한 다양한 외교·안보 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국제사회에서 국격에 걸맞은 기여를 통해 한국의 위상을 제고하고 중추적 역할을 확립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