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의 창#8 그 동네 꼴통 동장
공무원의 창#8 그 동네 꼴통 동장
  • 양승열 전 서울 마포구 국장
  • 승인 2023.05.31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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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열 전 서울 마포구 국장
양승열
양승열

[시정일보] 2020년 상암동장이 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일이다. 동장실로 불쑥 찾아오신 손님. 걸음마다 바람을 몰고 다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위풍당당 C 의원님이었다. 초선 비례대표 구의원으로 안면은 있었지만, 구청에 있을 때 함께 일한 적이 없어 그저 데면데면한 사이였다. 초선이었지만 매사 적극적이었고 밝은 목소리로 사람에게 다가서는 외향적인 분이었다.

통상 동장이 부임해서 먼서 인사 전화를 하고 직능단체 회의나 행사 때 서로 안면을 트는 관례를 무참히 깨 버리고 성큼성큼 내 방문을 두드렸다. 예전에 개인 사업을 했던 경험이 있어 사람을 빨리 사귀는 기질인 데다, 새로 온 동장과 안면을 터서 이후 활용하려는 것 같았다. 내심 화끈한 성격이 싫지 않았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점차 사적인 이야기로도 깊어졌다. 알고 보니 고향 후배다. 동향인이라는 점이 마음의 빗장을 더욱 느슨하게 했던 것 같다. 그녀가 내게 말했다.

“동장님 꼴통으로 소문난 것 아시죠?”

“그래요? 강성이라는 얘기는 가끔 듣는데 ‘꼴통’은 처음이네요. 아주 흥미진진한데요. 누가 그래요?”

솔방울 눈으로 물었다.

“의원님들이 다 그래요. 동장님은 골나면 의원들도 패 버린다면서요? 시방 동장님과 얘기해 보니 많이 달라 보이는데요?”

꼴통이라. 난 그 꼴통이라는 말이 싫지 않았다. 이름값 못하는 이들에 비하면 이 얼마나 홀가분한가. 밑져야 본전인데, 이보다 더 좋은 장사가 어디 있겠는가? 조금 엇나가도 사람들은 “원래 걔는 꼴통이잖아.”라며 넘어갈 것이다. 거침없는 걸음걸이와 닮은 그녀의 직설 화법에 내 마음도 그녀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나의 잘못을 말하는 자는 나의 스승이고, 나를 좋게 말하는 자는 나의 적이다.”

임진왜란 때 경상우도순찰사였던 학봉(鶴峰) 김성일(金誠一)의 말이다. 말이 그렇지, 면전에서 한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는 내가 가진 첫인상을 배신하지 않았다. 첫날 그녀가 구사했던 화법만큼이나 일도 만남도 투명했다. 이후에도 날 많이 도와주었다.

2020년 3월 비 오는 날이었다. 퇴근 무렵 동장실에 들른 그는 그날따라 유난히 풀 죽은 목소리로 울먹였다. 당시는 신천지 교인들을 중심으로 대구에서 코로나가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었다. 마침 자원봉사캠프 일원 중 미싱 기술이 뛰어난 분이 있어 방역 마스크를 만들어 대구에 내려보내는 사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원단비 등 150만 원 정도 드는 비용까지 마련할 계획을 구체화하고 있었으나, 동주민센터에서는 코로나 집단 감염 우려 때문에 마스크 공동 제작에 부정적이었다. 게다가 그녀와 경쟁 관계에 있었던 구의원들은 이를 정치적 행사로 보고 못마땅하게 여겼다. 자신의 본심이 곡해되어 공격받는다고 생각한 그녀는 상처받은 듯했다. 평소 바람을 일으키며 활달하게 다니는 모습에 감춰졌던 그녀의 본모습이랄까.

그녀는 많이 서운해했다. 담당 팀장은 물론 이 일을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않은 나에게도. 난 자초지종을 듣고 마음을 풀어 주었다. 그녀는 이제 비례대표의 한계에서 벗어나 당당하게 지역구의원으로 재선하여 지금은 맹활약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