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의창#13 축구, 그 아름다움에 대하여
공무원의창#13 축구, 그 아름다움에 대하여
  • 양승열 전 서울 마포구 국장
  • 승인 2023.06.12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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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열 전 서울 마포구 국장
양승열
양승열

[시정일보] “컴퓨터를 끄고 / 냄비를 불에서 내리고 / 설거지를 하다 말고 / 내가 텔레비전 앞에 앉을 때, / 지구 반대편에 사는 어느 소년도 총을 내려놓고 / 휘슬이 울리기를 기다린다 / 우리의 몸은 서로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 놀며 사랑하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 / 그들의 경기는 유리처럼 투명하다 / 누가 잘했는지 잘못했는지, / 어느 선수가 심판을 속였는지, / 수천만의 눈이 지켜보는 / 운동장에서는 위선이 숨을 구석이 없다 / 하늘이 내려다보는 푸른 잔디 위에 / 너희들의 기쁨과 슬픔을 묻어라.”

최영미 시인의 「정의는 축구장에만 있다」이다. 7년 전에 이 시를 접하고 난 1970년대의 초등학교 운동장을 생각했다. 물론 당시엔 최영미 시인도, 이 시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 시절 난 축구공만 보면 사족을 못 썼다. 얼룩빼기 공만 보면 달려가서 차야 직성이 풀렸다.

축구가 세계에서 가장 대중화된 스포츠로 자리 잡은 이유를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공 하나만 있으면 공터에서도 즐길 수 있다. 야구와 크리켓, 스케이트에서 필요로 하는 장비가 필요 없다. 룰도 간단했다. 지금이야 조기축구에도 아마추어 심판이 있어서 업사이드 라인을 체크하고, 페널티 라인에서의 반칙에 휘슬을 불지만 그 시절 이런 규칙은 게임을 재미없게 만드는 요소였을 뿐이다. 그저 발로 차서 넣으면 골인이었고, 골키퍼는 동네에서 뜀박질이 제일 느린 막내들 차지였다.

전교생이 동원되어 학교 뒷산에서 손에 손을 잡고 산토끼몰이를 했던 시절이었다. 벽촌에 운동기구라는 것이 있을 턱이 없다. 그래서 축구공은 학교에서나 그것도 체육 시간에만 만질 수 있는 귀한 물건이었다.

방과 후엔 친구들과 볏짚으로 꼬아서 만든 공으로 놀았고, 동네 형들은 가끔 돼지 오줌보를 구해 볼이 미어터지게 바람을 불어넣어 탱탱한 축구공을 만들기도 했다. 새끼로 꼬아서 만든 것과 돼지 오줌보로 만든 공은 정말 차원이 달랐다. 그날만큼은 공의 보드라움으로 발이 호강했다.

발에 맞는 운동화 대신 깜장 고무신을 신고 뛰었기에 공을 차면 물체 2개가 허공에 떴다. 하나는 공이고 또 하나는 고무신인데, 때로 고무신은 공보다 높이 올라가 아이들의 머리로 떨어지곤 했다. 골대 앞에서 골을 차면 골키퍼는 늘 날아오는 2개의 물체를 분별해야 했다. 영악한 아이는 냅다 고무신부터 날려 골키퍼를 홀린 다음 볼을 차 골인에 성공하기도 했다.

뭐 축구 실력이라고 말할 것도 없었다. 그저 공 하나에 우르르 쫓아가는 동네 축구였고, 그러다 보니 죽어라 뛰어도 공을 찰 수 있는 기회는 고작 서너 번이었다. 어느 날 체육 시간에 내가 찬 볼이 허공을 갈랐다. 하필 공은 철조망 너머 비탈 아래의 배추밭으로 굴러들어 갔다. 그렇잖아도 혼구녕을 내주려고 벼르던 안쪽 동네 할머니는 공을 든 채 “느그 엄마 아부지 데려오라!”며 호통을 쳤다.

난 공을 내주지 않던 할머니 집으로 찾아가 몸을 배배 꼬며 이삼 일을 간청해서야 공을 받을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체육 선생님이 가서 공을 받아 오는 것이 당연했다. 체육 시간에 운동 장구가 넘어간 일 아닌가. 선생님도 그 할머니가 무서우셨을 것이다. 어디 학교 울타리 넘어 그 밭에 떨어진 공이 한두 개만 있었겠는가.

축구를 그토록 좋아했지만, 난 학교 대표로는 한 번도 뛰지 못해 늘 벤치 신세였다. 나름 잘 찬다고 생각했지만, 선생님은 키도 작고 주력도 좋지 않은 나를 굳이 선발하고 싶진 않으셨을 것이다. 축구에 대한 사랑은 계속 이어져 직장 생활을 할 때에도 주말이면 난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구장으로 향하곤 했다.

축구는 달리는 운동이며 공 하나를 탈취하기 위해 몸싸움과 발재간, 점프 등 온몸을 동원해야 하는 격렬한 스포츠다. 뛰지 않는 선수는 수비 라인을 돌파할 수 없고, 상대팀 문전에서 어슬렁거리는 선수에겐 골을 주지 않는다. (물론 군 시절엔 연대장님이 팀에 들어오면 거친 태클을 돌파해 낮은 패스로 문전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연대장님의 오른발 앞에 척 하니 패스하는 병사가 사랑받았다. 그게 ‘군데스리가’의 국룰이었다.)

스포츠 중에 변수가 가장 많다는 축구, 드넓은 경기장에서 22명의 선수들은 오직 공 하나의 활동과 바운드에 따라 파도가 일듯 움직인다. 가로질러 오는 공을 짧은 퍼스트 터치로 받아 몸을 흔들어 수비수를 농락하고 가로질러 전진했을 때의 기분이란. 그래서 언제나 난 축구공만 보면 ‘꼭지가 도는 남자’였다. 1988년 서초동 서울시교육원(인재개발원)의 러프한 잔디구장에서 종횡무진, 부서별 대항전에서도 스트라이커 역할을 한 적도 있었다.

몸의 모든 에너지를 순간적으로 폭발시키며 뛰어야 하고, 비지땀을 흘리지 않으면 안 되는 스포츠. 단지 한두 골을 만들기 위해, 또는 그 골을 막기 위해 22명이 거대한 매머드라도 포획하려는 듯 숨이 끊어질 듯 달린다. 죽어라 달려 얻은 단 한 골이 주는 거친 희열. 모든 스포츠 중에서 골의 가치를 가장 귀중하게 환산해 주고, 심지어 0:0 무승부에도 관중들이 모두 기립해서 박수를 보내며 품위와 영광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스포츠.

축구는 아름답고, 난 그 축구를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