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의창#17 시스템 안에서의 사적 보복
공무원의창#17 시스템 안에서의 사적 보복
  • 양승열 전 서울 마포구 국장
  • 승인 2023.06.21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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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열 전 서울 마포구 국장
양승열
양승열

[시정일보] 라디오에 한 여성이 자기 부모님에 대한 사연을 보냈다. 그날은 부모님의 40주기 결혼기념일이었단다. 맛나게 정찬을 먹다 말고 엄마가 아빠에게 대뜸 물었단다.

“당신 그때 왜 그랬어?”

아빠는 웬 자다가 봉창이냐는 식으로 엄마를 물끄러미 보았다.

“그때 말이야. 나 첫째 임신해서 딸기 먹고 싶다고 그러니까 당신이 퇴근길에 사 오겠다고 그랬잖아. 당신 그때 술에 취해 12시가 넘어 집에 와선 나한테 뭘 줬는지 알아?”

아빠는 점점 더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어 그저 황당하다는 표정이다.

“딸기우유 사 왔잖아. 임신한 아내가 딸기가 먹고 싶어서 그렇게 조르는데…. 기껏 술 먹고 사 온 게 딸기우유였어.”

아빠의 기억은 달랐다.

“아니, 당신이 딸기우유 사 달라고 해서 딸기우유 사 준 거 아냐?”

“어머, 어머…. 이 양반이 세월 지났다고 무슨 소리를….”

그러니까 황혼을 걸으면서도 엄마는 문득 39년 전의 일화를 꺼내 아버지를 궁지로 몰았고, 그것 때문에 자식들은 웃지도 울지도 못하고 밥을 먹었다는 이야기다. 라디오에서 들려준 사연의 진상은 누구도 모른다. 부모님의 뇌리에 쌓인 기억을 모두 뒤적일 수밖에.

39년 전의 일화를 기억해서 39년 후에 아빠에게 들이미는 엄마의 복수는 소박하고 귀엽다. 하지만 조직 내에서 서열이 높은 자가 아랫사람에 대해 가진 앙심은 그 성질이 전혀 다르다. 전자가 코믹멜로 가족영화 정도 된다면, 후자는 그야말로 노동인권을 다룬 호러쯤 된다.

우선 앞에서 언급한, 부사장이 내게 ‘수’를 주라고 했음에도 이를 묵살하고 낮은 평점을 주었던 후임 직위에 있던 A팀장과의 일이다. 감사총괄 담당이던 내게 그는 회계 업무를 부적절하게 처리한 자신의 친구에 대한 청탁을 한 적이 있다. 종합감사가 끝나고 회계 문제로 당사자에게 내가 ‘훈계’ 처분을 내리기 직전이었다. A팀장은 당사자와 함께 식사 중이라며 이번엔 좀 봐 달라고 청탁했다. 하지만 나는 훈계 처분을 고수했다.

징계보다 훨씬 가벼운 훈계 처분이라 내 딴엔 배려를 했다고 생각했지만, 당시 실세였던 인사과 A팀장은 이 조치를 모욕적으로 받아들인 듯했다. 감히 누구 부탁인데, 이를 거절하느냐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한때는 나는 그와 함께 일했다. 당시 그는 나를 자신이 가장 아끼는 동생이라고 규정하며 자기 사람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 시절 그는 산업정책대상 응모전을 준비하면서 산업정책연구원과 모종의 거래를 통해 아이디어를 준비했다. 차 안에서 주고받는 얘기(비리)를 볼펜 녹음기로 녹취까지 해 가며 결국은 ‘대상’을 받아 냈는데, 그의 기질과 특징을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청탁 거절. 이것으로 그와 나는 엇갈린 길을 걸었다. 이후에도 좋지 않았다. ‘사내 정치질’을 통해 자신의 출셋길을 닦고 작은 치적도 과대포장하며 아랫사람에게 공을 돌리지 않는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조직 내 비밀은 없는 법. 내가 그런 그에 대해 나쁘게 말했다는 소식이 그의 귀에 들어갔고, 그는 이후 나를 정조준했다. 인사 조직이라는 것이 그렇다. 누구를 지목해 마음만 먹으면 잘 되게도, 안 되게도 할 수 있다.

2010년 말 보고를 하러 부사장 사무실로 올라갔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자네 그동안 고생 많았다고, 이번 인사발령에서 당신 배려해 준다고 A팀장이 그러던데…?”

그리고 새해 1월 1일에 내가 발령받은 업무는 주택과의 ‘재개발·재건축 등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사업 공공관리팀장’이었다. 발령받고 가 보니 책상, 의자, 공간, 자리도 없고 예산은 1원도 없었다. 이 팀의 신설은 예고되었으나 기술직 위주의 부서이다 보니 누구 하나 신경 쓰지 않았다. 팀원으로 온 2명은 다른 팀에서 그 둘은 받지 않겠다고 해서 떠밀려 온 6급, 7급 올드 멤버였다.

A팀장의 노림수는 단순히 나를 고된 업무에 배치하는 데 있지 않았다. 문제는 그곳이 고과(考課)에서 배제당하기 딱 좋은 죽음의 조였다는 점이다. 본선은 고사하고 예비에서도 평정을 받을 수 없는 곳이다. 왜냐면 국(局) 조직 내에 직위 공모는 2자리(뉴타운팀장・건축물정비팀장)인데, 수(秀)를 받는 인원은 2할 이라고 법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는 나이 많은 도시관리국 1번 주무 팀장도 받지 못하는 국(局)에 고참 팀장인 날 보내면서 윗선에는 배려를 해 줬다고 말장난을 해 댄 것이다.

‘구정을 농단해 사적 앙갚음을 하는구나.’

같은 팀장인데도 그와 나의 위치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노점상과 구두 수선대(구둣방) 정비 등, 3년 전쟁을 치르고 고생했다고 배려해서 보낸 곳이 또다시 단속팀장이라니.

이런 말장난은 내게 처음이 아니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2002 월드컵을 앞두고 가장 힘들었던 부서 중 하나인 산업위생과(지역경제과)에서 위생업소를 단속하고, 이후엔 세외수입 징수사업에 뛰어들어 조직에서 전례 없는 불법 광고물 과태료와 건축 이행강제금 체납액 징수 실적을 기록했다.

3회 연속 수(秀)를 받았고, 그 어느 해보다 분골쇄신했기에 부사장 직권으로 내게 조정 수(秀)를 주라 했건만, 문고리 실세였던 앞의 그 직위에 있던 전임 팀장은 지시를 묵살하고 우(優)를 고수했다.

나에게 앙심을 품었던 또 한 사람은 같은 국에서 일하던 동료였다. 그는 나 때문에 자신이 고과를 못 받았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신분 상승에 성공한 그는 사사건건 내 발목을 잡고 늘어졌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더니….

‘아니, 고과를 내가 주나?’

그 시절 나는 너무 큰 고통을 받았다. 조직 내에서의 경쟁은 조직 혁신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경쟁자 자체를 인격화된 ‘적’으로 생각하면 정말 답이 없어진다.

한 선배는 내가 인사를 해도 번번이 외면하곤 했다. 처음엔 우연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노골적인 적대와 무시의 표현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느 순간 나도 똑같이 인사를 안 하게 되었다. 이후 비서실장 위치에 버금가는 위치로 올라간 그는 내가 선배를 봐도 인사를 하지 않는다는 둥 버르장머리가 없다는 둥 속내를 숨긴 채 다른 이유를 들어 유언비어까지 만들어 나를 괴롭혔다.

시간이 많이 흐른 후, 진실을 알게 되었다. 나를 유난히 괴롭히던 그도 세월이 흐르자 미안했는지 내게 털어놓았다. 그는 과거에 나 때문에 맡아 놓은 고과 받을 자리를 뺏겼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리 배치나 보직 또한 부서장의 권한이지, 내가 하는 것 아니지 않는가? 내가 무슨 ‘빽’이 있다고. 하지만 그는 모종의 여러 가능성을 조합하고 조합해 나의 선발로 그가 탈락했다고 확신했다. 어이가 없었다.

‘그랬었구나. 그래서 윗분이 내게 사람을 봐도 인사를 하지 않는다고 하였고, 팀원들을 쥐 잡듯이 한다고 했던 거였구나.’ 나를 한때 미워했던 그 선배가 솔직해서 좋았다. 남자답다고나 할까.

그러고 보니 모두 승진에 얽힌 사적 복수와 억울함에 대한 이야기다. 승진이라는 것이 그렇다. 자리는 한정적이고 원하는 사람은 많다. 그럼에도 어김없이 인사고과와 승진 시즌은 돌아온다. 지금은 실적과 관계, 직무전문성 등을 종합해서 결정한다. 과거에 비해 많이 좋아졌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결정권자나 추천권자의 의중이 절대적으로 반영되기 마련이다.

가장 큰 문제는 회전문 인사와 이너서클. 자치구의 경우 고위층과 접촉이 잦은 인사, 감사, 기획 관련 부서나 승진을 어느 정도 보장받는 주무 과 등 선호 부서만 회전문처럼 돌아다니는 인사들이 있다. 문제는 이런 인사들이 제때 걸러지지 않고 소위 ‘라인’을 잘 타서 승승장구한다는 것이다.

직원들의 사기는 이럴 때 급락한다. 물론 정말 그 사람의 역량이 탁월하다고 두둔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머지 고되고 열악한 부서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그 역량 발휘의 기회는 제공되고 있을까. 공정한 사회는, 누구에게나 기회는 균등하게 주되 그 결과에 대해서 스스로 책임지도록 하는 것 아니겠는가?

필자는 보직과 관련해선 경직될 정도의 순환보직 제도의 적용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결국 직원 역량이라는 것은 현장에서 물음을 얻어 혁신하는 데에서 발전하기 마련이다. 현업부서를 경험하지 않고서 구민들의 다양한 니즈를 정책에 반영하려 한다면 우리(공급자)만의 플랜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순환보직, 현업부서와 선호부서 간 예외 없는 순환근무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밑바닥에서는 누구보다도 훤히 아는, 그래서 많은 직원들이 현장에서 인정하는 묵묵히 일 잘하는 인재들이 있음에도 고과에서 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따라서 보완 장치로 승진심사나 전보인사 때, 이런 친구들이 발탁될 수 있도록 사전에 전 직원에게 설문을 하여 수렴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겠다.

그냥 단순히 추천한다가 아니라, 왜 그 사람이 발탁승진을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의견을 제시하게 하되, 담합을 막을 수 있고 사실관계와 다른 이가 발탁되는 경우를 예방할 수 있는 장치도 필요하다. 일 잘하는 직원은 누구보다도 직원들이 더 잘 안다. 친분 관계에 의해서 정실 발탁이 되지 않게 하려면 보다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지수 개발이 우선이다.

관리자에 대한 평점제도 역시 그 내용을 옳게 보아야 한다. 갑질과 폭언으로 일관해서 낮은 평점을 받는 사람이 있지만, 일을 더 잘하기 위해 혁신하고 새로운 일을 더 하는 관리자도 좋은 평점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기피부서·격무부서는 팀장뿐 아니라 7급 이하의 직원에 대해서도 직위공모를 통해 선발 배치하고, 일정 기간(2년) 이상 근무하면서 평가 결과를 근무평정과 승진에 반영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어떤 인사정책을 도입하면 그 정책에만 달달달 올인하는 소위 본말이 전도된 구성원들을 어떻게 가려낼 것인지, 일 열심히 하고 제대로 해내면 당연히 점수를 잘 받는 시스템, 달랑 자기 필요한 것만 쏙 빼먹는 얌체들에 대한 변별력을 확보할 시스템도 필요하다.

혁신의 ‘혁(革)’은 갓 벗겨 낸 가죽(皮)을 무두질하여 새롭게 만든 가죽이므로, 면모를 일신한다는 뜻. 기존의 것, 즉 일체의 묵은 제도나 방식을 고쳐 새롭게 한다는 의미이다. ‘자기 조직적 개혁’ 내지는 ‘지속가능한 개혁’을 통해 그 열매가 누구한테 갈지를 깊이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부디 열심히 일해서 당해 아니면 그다음 해, 아니면 그다음 해라도 꼭 승진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