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정칼럼/ 노인학대로 고통받는 노인들
시정칼럼/ 노인학대로 고통받는 노인들
  • 임춘식 논설위원
  • 승인 2023.06.20 16:30
  • 댓글 0

임춘식 논설위원
임춘식 논설위원
임춘식 논설위원

[시정일보] 노인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여러 가지 노인 문제가 분출하고 있다. 새롭게 등장하는 노인 문제도 있고, 그동안 은폐되었던 노인 문제가 노인 인구의 수적인 증가, 사회 인식의 변화와 함께 사회적으로 주목 받는 일도 있다. 노인학대는 새롭게 등장한 문제라기보다는 그동안 사적인 문제라 여기고 숨겨졌던 사례들이 인권 인식 향상 등으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요즘 뉴스에서는 노인학대보다 아동학대에 관한 소식이 많이 나온다. 하지만 노인 학대에 관한 뉴스가 없다고 해서 그 사실까지 없는 것이 되진 않는다. 노인 인구가 빠르게 늘면서 노인학대 사례도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그 범죄의 심각성도 커지고 있다.

노인학대는 여러 측면에서 아동학대나 배우자 학대 등 다른 학대 유형과 닮았다. 기본적으로 가해자가 자신보다 약한 대상에게 폭력을 가하며, 학대가 동시에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피해자 스스로 법적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는 점, 피해자의 경제적 독립성이 높다는 점, 신체적 학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작다는 점 등에서 차이를 보인다. 이 같은 차이는 다른 학대에 비해 노인 학대를 쉽게 판별할 수 없도록 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노인학대는 크게 △신체적 학대 △정서적 학대 △성(性)적 학대 △경제적 학대(착취) 등으로 구분된다. 이 밖에 부양의무자에 의한 ‘방임’과 노인 스스로 자기 보호를 포기하는 ‘자기 방임’, 보호자 또는 부양의무자가 노인을 의도적·강제적으로 분리하는 ‘유기’도 노인 학대에 포함된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6월 15일 ‘노인학대 예방의 날’을 맞아 발간한 ‘2022년 노인학대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노인학대 실태는 대부분이 가정 내 학대였다. 부양과 돌봄에 대한 부담을 줄이고 적극적 신고를 위한 지방자치단체와 관계기관의 협력이 필요하단 지적이 나온다.

2022년 전국 37개 노인보호전문기관을 통해 노인학대 신고 건수를 집계한 결과 1만9,522건 가운데 34.8%(6,807건)의 노인학대 사례가 발생하였으며, 신고 건수 및 학대 사례 건수는 각각 전년 대비 0.8%, 0.5% 증가한 것으로 급속도로 증가하였다.

특히, 학대는 가정 내 학대가 86.2%를 차지했으나 생활시설(9.7%), 이용시설(0.8%)에서도 다수의 학대 사례가 발생했다. 이는 노인 부부 가구가 증가하면서 노인학대 행위자는 배우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빠르게 늘고 있다. 바로 노노(老老) 학대가 심각하다는 점이다

노인학대 행위자 가운데 배우자는 2,615건(34.9%), 아들 2,092건(27.9%)의 순이다. 학대 배우자 성비는 남성 배우자가 87.8%를 차지한다. 2021년 아들-배우자 순에서 배우자-아들 순으로 변경된 이후 배우자 비율 증가 폭은 더 커졌다. 이는 가구 형태 변화가 자녀 동거가구에서 노인 부부 가구로 증가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고, 노인 부부간 돌봄 부담 및 부양 스트레스 등으로 인한 것으로 보인다.

학대 유형은 정서적 학대(43.3%), 신체적 학대(42.0%), 방임(6.5%), 경제적 학대(3.8%), 성적 학대(2.5%) 등의 순으로 많았다. 최근에는 혼자 사는 노인들이 늘면서 스스로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권리를 포기하는 자기 방임 역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노인학대 신고는 경찰 4,302건(63.2%)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친족 507건(7.4%), 학대 피해자 본인 334건(4.9%), 노인복지시설 종사자나 노인복지상담원 298건(4.4%), 사회복지 전담 공무원 211건(3.1%) 등의 순이었다. 이는 노인복지법 개정에 따라 의료인이나 의료기관의 종사자 등 18개 신고 의무자 직군 단체의 신고 건수는 전년 대비 30.8%(1,125건) 늘어나는 등 신고 의무자 신고제도가 정착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와중에 22일부터 장기 요양기관 내에는 CCTV 설치관리가 의무화되며, 노인학대 현장 조사를 거부·방해하면 1,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 부과와 노인학대 범죄자의 취업제한 대상을 확대하는 노인복지법 개정안이 지난달 국회를 통과해 시행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노인학대 예방에 대한 국가책임을 명시하지 않은 현재 노인복지법으로는 노인학대 예방대책을 효과적으로 실행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

문제는 노인학대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노인학대 대부분이 가족에 의해 학대가 발생하다 보니 피해자들이 외부로 피해 사실을 알리지 않거나 피해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특히 학대 사실이 발견되더라도 당사자인 노인이 도움을 거부하는 경우 또한 적지 않다. 여기에 아직 다른 학대 유형에 비해 사회적 관심이 적고 학대를 가정의 문제로만 여기는 분위기 또한 노인학대가 지속해서 발생하는 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학대당하는 노인의 약 75%는 여성이다. 학대 행위자의 대부분은 남편과 아들 등 남성 가족이다. 물론 같이 살면 학대가 일어난다는 식으로 단순화할 수는 없다. 피해 노인과 학대자가 처한 상황의 특성과 누적되는 스트레스가 학대의 요인이라는 점이다. △생활고에 시달리거나 △과거 나쁜 사건이 쌓였거나 △가족 간에 과거 관계가 나쁘거나 △가족 내 폭력이 이어졌거나 △부양자의 스트레스가 증가하거나 하는 상황에서 노인학대가 일어날 수 있다. 이외에도 노인혐오 문화 등 노인학대에 영향을 끼치는 요인이 매우 다양하다.

학대 피해 노인 중에는 ‘자신이 잘못해서, 자신이 늙어서, 자식에게 부담을 줘서’ 등의 이유로 오히려 미안해하며 자신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이 있다. 교제 폭력에 많이 등장하는 심리적 지배(gaslighting)가 노인학대에서도 일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 주변을 향한 작은 관심이 아닐까? 이웃 노인을 지켜보는 따뜻한 시선이 노인학대 줄이는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어쨌든 노인학대 조기 발견 및 재학대 방지를 위한 대책 강화가 필요하다. 바로, 우리의 작은 관심이 학대로 고통받는 노인들에게는 큰 희망이 되므로 학대 신고에 사회 전체가 협력할 필요가 있다. (한남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