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배타성, 시급히 탈피해야 한다
기고/ 배타성, 시급히 탈피해야 한다
  • 임종은 (한국문학신문 전 편집국장)
  • 승인 2023.06.21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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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은 (한국문학신문 전 편집국장)
임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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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일보] 배타성이라 하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상대방을 거부하고 내치는 성질, 또는 밀어내고 인정하지 않는 성질을 말한다. 유사한 의미로는 폐쇄성, 폐쇄적이라고 표현하며 국가와 국가 사이에서는 국수주의적이라고 한다.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에서 개인이건 국가건 서로 우호적이고 상대를 인정하며 살아간다면 분열이나 분쟁이 없을 뿐 아니라, 서로 성장과 화평을 지속할 수 있으련만 현실은 그렇게 쉽지 않은 것 같다.

먼저 우리 역사에서 국가 간 파워게임에서 밀려난 쓰라린 과거지만, 착잡한 심경으로 반추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가까운 예로, 흥선대원군의 ‘쇄국양이정책’이 대표적인 배타적 쇄국정책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세도정치의 최고 권력기관인 비변사를 혁파하고 양반에게도 군포를 부과하여 군정 문란을 시정하는 등 개혁 정치를 실시하기도 했으나, 권력에 대한 집착과 국제정세에 어두워 근대화 물결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결국 우리가 근대 국가로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한 인물로 비난받고 있다.

이웃 나라인 중국과 일본은 선진 문물을 받아들여 부국강병을 위해 여념이 없는데, 우리는 척화비를 세워 쇄국정책을 국가 지도이념으로 하여 우물 안에서 큰소리만 치고 있었으니, 일본 등 인접국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가소로웠으리라.

냉철하게 분석해 보면 일본인은 진취적 개방적 사고를, 한국인은 현실 안주와 폐쇄적 사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일본은 1600년대 에도막부시대 나가사키에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를 차려 무역을 통해 국력을 키워나가는 등, 외국인에 융숭한 대우를 해가며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였다. 특히 유럽 강국인 네덜란드 등의 선진문명을 마음껏 흡수하게 된다. 대조적으로 우리는 외국인이 우리 땅을 밟는 순간 우리와 다르다는 이유로 죄인 시 하여 잡아 가두고 노예로 취급하였다.

대표적인 예로 17세기 조선시대 일본으로 가던 중 제주에 표류해 온 하멜 일행도 13년이 넘도록 억류되어 노예만도 못한 비참한 생활을 하다가 돌아가게 된다. 이러한 조상들의 폐쇄주의는 훗날 후손들에게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하였다. 근대화된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숨도 제대로 못 쉬고, 또 일본의 신식무기 앞에 무릎을 꿇고 국권을 넘겨주게 되었으니 참으로 비참한 역사의 교훈이 아닐 수 없다.

우리의 혈통 속에는 대부분 배타인자(排他因子)가 잠복해 있다고 본다. 같은 민족이면서도 고구려. 백제. 신라라는 영역으로 분산되어 견원지간으로 지내다가 고려. 조선대로 넘어와서는 망국적인 사색당파의 늪에 빠지게 된다. 처음에는 동인. 서인으로 시작하여, 남인. 북인. 노론. 소론으로 분열 하고, 명분만 있으면 파벌을 만들어 편 가르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렇다면 최첨단의 문명 속에 살고 있다는 지금은 모든 폐쇄성을 탈피하고 배타성을 벗어 던져버렸을까? 가슴 아픈 일이지만, 예전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진 않은, 소아병적 분열병에 충만해 있다.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등으로 줄을 세우며, 혈연. 학연. 지연으로 편 가르기를 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지연(地緣)이 가장 파장의 범위가 넓다. 지성의 격이 한층 높아지고, 일일생활권의 시공(時空) 속에서 살아가면서도 왜 배타성을 탈피하지 못할까?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지도층의 탐욕과 무지한 정치인의 선동과 개념 없는 언론의 탓이다. 이러한 행태는 선거철이 되면 극에 달한다. 좁은 땅덩어리 안에서 통탄할 일이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구호도 한목을 하면서∙∙∙

‘누구는 어느 지방 사람이고, 어느 당 사람이니까’ 하며 무조건 싫어하고 배척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특정 지역 출신이 정부 요직을 독식하고 있는 현실이 이를 확인해 준다. 입으로는 글로벌시대니, 정의사회니 하지만 의식은 뒷걸음질이다. 앞으로는 어느 조직이건 지도자의 첫째 조건으로 배타성이 없는 사람을 선정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숫자가 150만 명에 육박하면서 다문화가정 문제가 사회적 난제로 등장하고 있다. 이 역시 배타성에서 나온 멸시. 왕따. 차별 등이 문제이다. 뜻있는 인사들이 걱정하고 있지만 국민성이 개조되지 않고는 해결하기 어려운 부끄러운 우리의 현실이다. 이렇듯 다른 지방 사람을 배타시하고, 다른 나라에서 건너와 한국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우리의 이웃을 멀리하고, 차별하고, 홀대하는 속 좁은 백성들에게는 성씨의 역사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우리나라에 280여 성씨가 있는데 그중에서 130여 성씨가 중국(漢族)에서 귀화해 왔으며 임진왜란 때 일본에서 64개 성씨가 귀화해 왔다고 한다.

또 연안이씨는 몽골에서, 경주설씨는 위구르에서, 덕수장씨와 한양조씨는 아랍에서, 정선이씨와 화산이씨는 베트남에서, 청해이씨는 여진족계에서 귀화해 왔으며 그 이외에도 수없이 많다. 중국의 10대 성씨인 이(李), 왕(王), 장(張), 유(劉), 진(陳), 양(楊), 황(黃), 조(趙), 주(周), 오(吳)는 물론이고, 남(南), 송(宋), 안(安), 맹(孟) 씨 등도 귀화한 성씨로 잘 알려져 있다. 그뿐만 아니라 김해 김씨 계파 우륵 김씨 시조인 김충선은 일본인 장수로 임진란 때 부하들과 함께 귀순하여 그의 부장 김계층 등과 함께 사성(賜姓)을 받았다.

특히 최근에도 언론에 보도된 베트남과의 역사는 800여 년 전인 1226년 한반도에 귀화한 베트남 리 왕조의 왕자 이용상(李龍祥·리 롱 뜨엉)으로부터 시작된다. 그의 28대손 이창근(64) 주한 베트남 관광대사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 리 왕조는 9대, 216년 만에 몰락했는데, 다음 왕조인 쩐 왕조는 리 왕조 후손을 거의 몰살했다고 한다. 이때 7대 왕자인 이용상은 가까스로 도망쳐 남송과 타이완, 금나라, 몽골 등을 거쳐 지금의 황해도 옹진에 정착했다.

고려 조정은 이용상을 크게 환영하고, 고려 여인과 결혼시켜 일대의 땅을 식읍으로 하사했으며, 그가 정착한 '화산'(황해도 옹진군)을 본관으로 삼게 했다. 현재 이용상의 후손인 '화산 이씨'는 1,300여 명이라고 한다. 이 가운데 이창근 주한 베트남 관광대사는 양국을 오가며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인물이다. 그는 2000년에 가족과 함께 베트남으로 이주한 뒤 2010년엔 베트남 국적을 취득했다.

이처럼 우리는 단일민족이라고 하지만 엄밀히 따져보면 수십 혈통이 섞여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적게는 백 년, 많게는 오백여 년 전부터 이 땅에 뼈를 묻으며 완전히 융화되어 살고 있다.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서 우리나라에 귀화하여 정착한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귀화 당시에는 갖은 홀대와 멸시, 텃세 속에서 살기도 했겠지만, 지금은 아무런 혼혈의 흔적 없이 우리 친척으로 우리 이웃으로 살고 있다. 전문가들은 얼굴의 골격이나 체형, 피부 등을 보면 조상을 대충 구별할 수 있다고 하지만 전혀 부질없는 일이다. 그런데 불가사의한 현상은 그들의 조상이 몽골이나, 위구르나, 베트남이나, 아랍에서 귀화한 후손일 수 있으면서도, 최근에 몽골이나 베트남이나 아랍 등에서 들어온 다문화가정의 구성원들을 무시하고 텃세를 부리는 현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는지 답답하다.

옛날에는 중앙에서 벼슬을 하다가 지방 수령으로 발령받아 근무하게 되면, 그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대대손손 눌러 살게 되고 결국 자기 성씨의 계파 중간 시조(始祖)가 되는 일들이 허다했다. 그래서 전주이씨나 나주나씨가 부산이나 대구나 강릉에서 그 자손들이 지파를 형성하여 살고 있으며, 경주최씨나 김해김씨가 전주나 광주나 인천에서 그 후손이 정착하여 번성하게 살게 된다. 어느 성씨든 본관을 떠나 타관에서 뿌리를 내리면 그곳이 고향이 되는 것이다.

역대 대통령의 예를 보더라도 이승만 대통령은 전주이씨, 전두환 대통령은 완산전씨, 김대중 대통령은 김해김씨, 노무현 대통령은 광주노씨인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순박한 백성들은 정치꾼들에게 현혹되어 상대 지역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자기의 형제와 혈족들을 싸잡아 험담하고 증오하고 배척하는 못난 짓을 반복하고 있으니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마음의 벽을 헐어버리고 포용과 배려의 정신으로 다른 지방, 다른 나라 사람도 우리의 이웃, 우리의 형제가 될 수 있다는 홍익이념으로 세계화시대에 걸맞은 생각의 틀을 다듬어야 할 것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의 문화가 세계 곳곳에서 한류열풍을 일으키며 휘날리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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