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의창#23 요행과 다행, 우연과 운명 사이에서
공무원의창#23 요행과 다행, 우연과 운명 사이에서
  • 양승열 전 서울 마포구 국장
  • 승인 2023.07.05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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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열 전 서울 마포구 국장
양승열
양승열

[시정일보] 언젠가 선물로 늘 복권을 주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이는 매주 로또 복권을 여러 장 사서 그 주에 특별히 고맙거나 애정을 표현하고 싶은 이에게 로또 한 장씩을 선물로 주곤 했단다. 로또 1장에 5회의 응모번호가 있으니, 그는 5천 원짜리 ‘대박의 꿈’을 선물한 셈이다. 그는 로또를 선물로 주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5천 원으로 1주일 내내 설렐 수 있다면 복권보다 좋은 선물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리고 1등 당첨 가능성은 적어도 ‘814만 5060분의 1’이라는 확률로 분명히 존재하니 ‘인생 대박’이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 않느냐.”

그렇게 듣고 보면 또 그런 것도 같다. 복권을 산 자가 대낮에 벼락 맞을 확률보다 운이 좋다면 기적을 얻을 수 있다. 로또 역대 최고 당첨금은 2003년 봄의 19회 1등 당첨금이었다. 무려 407억 2,295만 9,400원이었는데, 이는 통상 5명 정도 나오던 1등이 3회 연속 나오지 않아 금액이 이월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인생의 모든 운을 모아 한 번에 쓴 것이 분명했다.

성인이라면 카지노나 파친코, 복권과 같은 도박성 게임에서 딸 확률보다 잃을 확률이 더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특별한 행운에 돈을 건다. 누구나 당첨이 되는 게임이라면 승률은 높지만 상금도 적다. 확률이 적을수록 상금은 올라간다.

행동경제학자들은 경제 주체들의 행동을 분석한 결과, 비이성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는 것을 규명했다. 그리고 뇌 과학자들은 인간의 뇌는 애초에 타인의 불행과 죽음은 쉽게 떠올리지만 자신에게 닥칠 불행은 생각하지 않는 방향으로 진화했다는 것을 밝혀냈다. 과도한 긴장과 공포심은 인간의 진화에 유리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요한 결정을 운에 맡기는 행동은 얼핏 불합리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대부분 축구 리그에선 중앙선에서 양 팀의 공수(攻守)를 결정하기 위해 동전을 던진다. 심지어 국가도 이 운발의 시스템을 활용한다. 태국의 경우 징병 대상자를 제비뽑기로 고른다. 병역 대상자로 뽑힐 확률이 20% 정도라고 하니 태국 젊은이 입장에선 해 볼 만한 승률이다.

다만 태국은 자발적 지원병을 늘리기 위해 복무 기간을 조정했다. 자발적으로 지원할 경우 대졸자의 경우 6개월, 고졸자는 1년이지만, 제비뽑기로 당첨(?)되는 비자발적 병역 선발인원은 2년 동안 복무해야 한다. 이런 제도는 젊은이에게 재미있는 심리적 교훈을 준다.

우선 제비뽑기 결과에 대해 누구도 불공정하다고 불만을 품지 않는다고 한다. 제비뽑기 자체가 운이니까, 운이 나빠 징병된 사람은 그저 자신의 불운(?)을 탓하거나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요행을 갈구하면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보여 준다. 남들보다 1년 이상 더 복무하면서 자신의 선택을 두고두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태국인은 그것조차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구약에도 제비뽑기에 대한 기록이 있다. 레위기 16장 8절에서 대제사장은 속죄일에 두 염소 중 어느 것을 제물로 바칠 것인지를 결정하기 위해 제비를 뽑으라는 지시를 받았고, 여호수아 18장 6~10절에 가나안 땅이 이스라엘 지파들에게 제비를 뽑아 분배되었다. 역대기 상 24장 5절에서 제사장들은 성전에서 직무를 수행할 순서를 결정하기 위해 제비를 뽑았다. 이런 걸 보면 아마도 복권의 기원은 하늘이 열릴 때부터 이미 존재한 것은 아닐까?

기적과 요행으로 일확천금을 딴 자들에 대한 뉴스도 흥미롭다. 과거에는 당첨금 수백억을 딴 사람이 방종과 사기로 전 재산을 잃고 노숙자가 되었다는 뉴스가 단골이었다. 이런 뉴스는 ‘쉽게 번 돈은 쉽게 빠져나간다.’는 진리를 각인시켰고, 오직 자신의 땀으로 얻는 성취가 참된 것이라는 교훈을 주었다.

이런 뉴스에 심술이 난 기자들도 많았나 보다. 그들은 주식의 급등 또는 복권 당첨으로 거부가 된 사람들의 행복한 일상을 전한다. 당첨자들은 학자금 대출을 모두 갚고 부모님께 저택을 사 드린 후, 연인과 함께 15년째 고급 요트로 세계 여행을 하고 있거나 스페인의 알카사르성과 같은 거대한 저택에서 당첨금보다 100배나 많은 투자금을 굴리는 부자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서운하게도(?) 그들은 지금이 과거보다 훨씬 행복하다고 말한다.

우리 동네 역 광장에도 소위 ‘로또 명당’이란 곳이 있다. 1등 당첨자가 다른 곳에 비해 곱절이란다. 토요일 오전이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문전성시다. 나라고 흔들리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내 안에 황금과 영혼을 맞바꾸게 한 『파우스트』의 악마, ‘메피스토(Mephisto)’가 왜 없겠는가. 다만 기질적으로 그런 요행이나 벼락 맞을 운 같은 것에 기대지 않았다. 그런 천운이 내게 오지도 않았지만, 무엇보다 행운은 노력의 산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시험 합격은 최선을 다한 사람에게 하늘이 내려 주는 선물인 듯하다.

최선을 다하고 결과는 하늘에 맡기자는 생각은 고3 시절 취득했던 자격증으로 인해 생긴 것 같다. 고3이었던 1981년 봄에 정밀설계 기능사 2급 자격증(FIC)을 따고 10월에는 기계제도기능사 2급을 취득했다.

시험에도 운이 필요하지만 내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시험은 객관적이다. 특히 정밀설계기능사는 내게 놀라움을 안겨 줬다. 실습시간에 늘 과제물을 늦게 제출하고 번번이 헤맸던 나. 열에 아홉 문제는 정답지를 보고서야 완성할 수 있었던 실력이었음에도 150명 중 10명이 합격하는 정밀설계기능사 2급에 도전했다. 실기시험은 심리적인 백병전이었다.

결과물을 제출하고 나오니 거의 탈출하듯 시험장을 나온 친구들이 밤샌 몰골로 웅성거리고 있었다. 작업지시서의 지문(地文)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시간도 부족하여 대부분 중간에서 포기하고 나왔다는 것이다. 주관적 판단으로는 내가 떨어져야 정상이었지만, 기능사 시험이라는 객관의 영역에선 나보다 빨리 과제를 이해하고 제출했던 급우들이 떨어지고 나는 합격했다.

마감종이 땡 칠 때까지 매번 끙끙대며 과제를 완료했던 습관이 도움이 되었다. 문제가 너무 어려워 지레 친구들이 포기하고 있을 때, 난 종이 울릴 때까지 붙잡고 있었다. 지금은 허용되지 않지만, 당시에는 종료 후 1~2분은 허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에게 문제란 늘 어려운 것이었다. 그래서 당일 지문이 더 특별히 어렵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평소와 같이 하나씩 단계를 밟으며 마지막까지 풀어 종료 시간이 넘어서야 답안을 제출했던 것이 나에게 합격을 가져다주었다. 꼼꼼히 들여다보고 하나씩 생각하다 보면, 접신(接神)하는 경우가 있다.

운전면허시험을 볼 때도 특유의 ‘끝까지 매달리기’ 근성은 빛을 발했다. 도봉면허시험장에서의 기능시험(수동 클러치 면허). 당일 추적추적 비는 내리고 오르막 정지선에서 잠깐 신호에 맞게 멈춰야 하는데, 이런…. 시동이 꺼진다. 시험관으로 동석한 매서운 여경(시험감독관)의 눈빛.

“내리세요.”

통상 감독관이 내리라고 하면 수험생들은 탈락을 받아들이고 내릴 것이다. 하지만 난 시동이 꺼지자마자 잽싸게 다시 시동을 걸었다. 감독관은 ‘얘는 뭐지?’ 하는 표정에서 짐짓 봐주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도봉시험장의 ‘언덕길 정차’는 마의 구간, 즉 지뢰밭이라고 소문이 났다. 1995년 4월에 드디어 2종 보통 면허증을 한 번에 취득했다.

재직 30년 즈음에 장기재직 휴가를 갔다. 그간 쓰지 않은 휴가가 꽤 남았다. 이번에도 쓰지 않으면 끝이라는 각오로 마지막 배수진을 치고 3종류의 휴가를 몰아서 썼다. 4분의 1가량은 훼손(출근)됐지만, 나는 휴가 기간 중에 소방안전관리자 2급 자격증을 땄다.

3전 4기. 그러니 자랑은 결코 아니나 ‘포기’와 친했더라면 결코 내 것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퇴직 후 바로 1급 자격증을 땄다. 통상 합격률은 20% 내외란다. 오르지 못할 나무도 많지만 지레 겁을 먹고 시도하지 않는 것은 기질상 맞지 않았다.

시험처럼 정직한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운도 따른다. 최상위 클래스에서 1점차로 당락이 결정되는 경우, 시험 전에 특별히 많이 풀어 보았던 문제가 출제되면 당연히 유리하다. 하지만 그것도 열심히 한 사람에게 따르는 것이다.

중학교 때 울 동네 젤 갑부의 아들 내 친구는 전교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친구의 도움(커닝)을 받아 늘 우수 학생으로 뽑히곤 했다. 그 친구는 커닝으로 인한 도움이 별것 아니라 생각했는지, 아니면 오래 커닝으로 받은 점수를 자신의 실력으로 착각했는지 명문 고등학교에 원서를 넣었다. 결과는 탈락. 친구의 부모님은 꽤 충격을 받았겠지만, 당연한 일이었다. 남을 속이다 보면 자신까지 속이게 된다는 말이 이런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