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의창#25 승진의 고수
공무원의창#25 승진의 고수
  • 양승열 전 서울 마포구 국장
  • 승인 2023.07.10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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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열 전 서울 마포구 국장
양승열
양승열

[시정일보] 2011년 한 술자리에서 전해 들은 전설의 △ 주택과장님의 따끈따끈한 신화다. 금요일 저녁 호프집에 둘러앉은 우리는 〇주임에게서 자신이 상급자로 모셨다던, 전설 속의 ‘그분’ 이야기를 들으며 혼이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분’은 전년도에 국장으로 승진했고, 승진하기 전까지 누구도 그의 승진을 예측하지 못했다고 한다.

어느 일요일 아침, △ 주택과장님은 아랫사람인 〇주임에게 당시 가톨릭 신자였던 S 구청장이 다니던 성당 주변을 자신과 함께 자전거로 돌자고 요청했다. 마침 주일미사를 보고 나오던 구청장님을 마주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당시 비정치인 출신 구청장님은 아현동 뉴타운 정비사업으로 골머리를 썩고 있었다. 구청장님은 주택과장에게 여기는 웬일이냐고 물었고, 주택과장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말했다.

“일요일이지만 집에 있을 수가 없어 아현동 뉴타운 정비사업 구역을 순찰하며 좋은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그의 답변은 청산유수였다고 한다. 이후는 물어보나 마나, 그는 곧바로 국장으로 승진했다. 게다가 그는 당시 소위 굴러온 돌이었다. 2년 전인 2008년에 서울시에서 상사로 모신 분이 구청 2인자로 오면서 함께 전입 왔으니까. 우연을 가장한 기가 막힌 조우로 감동을 선사했고, 그 역시 커다란 선물로 돌려받았다. 홉으로 주고 말로 받은 격이다.

그의 기지는 협상에서도 발휘되었다. 재개발조합과 협상이 결렬되어 헤어지는 마당에서 그는 조합장에게 손을 내밀었다. “우리 악수나 하자”며. 그 장면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그는 사전에 당시 공보관광과 직원을 통해 일간지 기자를 섭외했고, 기자는 누가 보아도 협상이 순항하고 있다고 믿을 만한 사진과 함께 협상이 잘되고 있다는 보도기사를 냈다. 이후 시간이 좀 지나자 협상은 자연스럽게 타결되었다.

이야기를 매듭짓던 〇주임이 먹태를 씹으며 말했다.

“당시 주택과장님은 얽히고설킨 현안에 대한 교통정리를 잘하셨고, 정책 결정이 나면 뚝심 있게 밀어붙이는 식이라 직원들이 일하기가 아주 좋았어요.”

난 〇주임의 열변을 들으며 뒤에서 뭔가 쿵 하고 내려앉았던 느낌을 받았다. 사실 그분이 곧바로 승진하리라고 생각한 직원들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역량이 뛰어난 분이시니 다음번 정도. 참 기발하다고 말할 수밖에. 그의 생명력은 강했다. 이후에도 그분은 승승장구하여 권력 서열 3위까지 하고 정년퇴직하였다. 모시던 구청장이 정치적인 곡절로 교체되었음에도 그는 후임 구청장의 콜을 받고 퇴임 후 산하기관 상임이사까지 지냈다.

그런 그가 정치력만 지녔던 것은 아니다. 실제로 그는 일벌레였고 역량도 뛰어났다. 그와 함께 일했던 직원들은 대개 초주검이 되었다는 풍문이 파다했다. 오죽하면 6층 국장일 때는 6병동, 9층 국장일 때는 9병동이라는 말이 나왔겠는가? 물론 그동안 좀 느슨하게 업무에 임했던 직원들의 입에서 입으로 회자하는 경우가 흔했고, 정말 내 사업처럼 일 잘하는 직원들은 되레 그분에게서 좋은 영향력과 도움을 받았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나와는 인연이 닿지 않아 멀리서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분과 일하고 싶다고 적극적으로 기획팀장을 원했는데도, 일부 호사가들의 부정적인 여론과 더 큰 힘이 작용하여 내게는 기회가 오지 않았다. 나는 그런 깐깐한 상사가 좋다. 혹독한 트레이닝을 거치면 부쩍 근육이 붙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한번 믿으면 도장까지 맡기는 스타일. 역량 면에서는 내가 많이 못 미치지만 기질과 태도는 나와 닮았다.

다만 그분은 외유내강형, 나는 외강내유형이다. 같이 근무하지는 않았지만 퇴직 전에도 퇴직 후에도 존경을 담아 식사 자리를 마련한 적이 있었는데, 그분은 소신이 뚜렷했다. 일 열심히 하고 제대로 하면 지옥에까지 따라가서라도 도와주겠다는 것. 은퇴 후에는 다문화가정을 상대로 한 한국어 선생님 노릇을 한다고 한다. 명불허전이다.

직장인들이 진정 바라고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프로이트-칼 융의 제자 라캉에 의하면 욕구(need)는 몸이 원하는 것, 요구(demand)는 욕구를 언어로 표현한 것, 욕망(desire)은 요구해서 욕구를 채웠는데도 본원적으로 충족이 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권력욕, 명예욕도 그런 욕망의 노예나 다름없다. 과장이 되면 차장, 부장, 팀장, 임원에 오르고 싶은. 그래서 월급쟁이의 꽃은 임원이라고 하였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