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의창#27 미치광이 여행자병과 떠남의 미학
공무원의창#27 미치광이 여행자병과 떠남의 미학
  • 양승열 전 서울 마포구 국장
  • 승인 2023.07.14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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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열 전 서울 마포구 국장
양승열
양승열

[시정일보] 수잔 서랜든와 지나 데이비스 주연의 〈델마와 루이스〉(1991)의 엔딩 장면이 떠오르는가? 관광이든 여행이든 언제 하는 게 좋을까?

“여행은 다리 떨릴 때 하지 말고, 가슴 떨릴 때 하라!”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건강한 청년기엔 돈이 없고, 결혼 이후엔 아이들 키우고 업무에 집중하느라 시간이 없다. 그리고 일상 도처에 남는 시간이 넘실거리는 황혼녘이 되면 건강이 허락하지 않는다. 이것이 보편적인 우리네 삶이다. 수천 명 신자들 종부성사(임종성사)를 엄수했던 한 신부님은 가장 존엄하고 이상적인 죽음을 ‘걷다 지쳐서 죽는 것’이라며 늘 노년의 신자들에게 지금 떠나라고 재촉하곤 한다.

인류에게 영감을 주었던 작가와 음악인들 역시 정주지를 떠난 이역(異域)의 길 위에서 자신의 예술이 익었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떠남과 걷기는 이미 충분히 굳어 버린 인연과 굳은 몸의 족쇄를 끊고 자신의 진정한 내면을 찾아 나서는 철학하는 과정이라고 말하는 철학자들도 많다.

미국의 사상가이자 작가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와 프랑스 철학자 장 자크 루소, 알베르트 까뮈 모두 걷기가 지친 영혼을 회복시키고, 창의적이고 지적인 일에 필수적이라고 했다. 빈센트 반 고흐는 걷기야말로 세상을 가장 명확히 보게 하고 세계의 심오한 진리를 접근하는 도구라고까지 말하곤 했다.

18세기 프랑스에선 둔주병(遁走病), 일명 ‘미치광이 여행자병’이라는 것이 유행한 적 있었다. 어느 날 아침 출근을 위해 집을 나선 가장은 무작정 걸어서 터키나 러시아 등지에서 발견되어 추방당하곤 했다. 그들은 몸이 상할 정도로 걸었다. 자신이 왜 고향을 등지고 떠나야 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진 못했지만 어디서 죽든지 자신의 집에선 멀리 벗어나야 한다는 것은 명확히 알고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 7번 넘게 집에서 탈주하고 잡혀온 사람도 있다고 한다.

많은 의료인들이 이들을 연구했지만, 그 원인을 끝내 밝혀내지 못했다. 다만 가정과 사회에서 부여받는 높은 사회적 압력이 그들을 ‘탈출’하게 했을 것이라는 사회학자의 분석과, 어떤 소수의 사람들은 애초 한곳에서 정주하지 못하는 선대의 DNA를 가졌을 것이라는 추측만이 남아 있다.

이렇듯 인간은 내면의 해방을 위해서 떠나기도 하고, 사람들로부터 잊히기 위해 고향을 떠나기도 한다. 800㎞ 산티아고 순례를 떠난 이들은 일부는 철저한 고독과 극심한 육체적 고통을 통해 온전히 자신이 살아 있음과 절대자의 존재를 느꼈다고 말하고, 또 어떤 이들은 자신의 관계와 생의 목표, 그리고 삶의 가치 이 모든 것을 재검토하기 위해 떠나서 엄청난 영적 경험을 하게 되었다고 밝히기도 한다. 떠남, 여행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이기도 하다.

20년 정도 되었을 것 같다. 사람들은 관광과 여행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혼용되어 사용해 왔던 관광과 여행은 그 목적과 형태에 있어 분명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먼저 관광, 마드리드에 있는 유일한 정부 간 관광기구인 ‘세계관광기구(UNWTO)’의 정의에 의하면 관광은 1년 미만의 기간 동안 일상 생활권을 벗어나 여가·업무·기타의 목적으로 여행을 하거나 머무르는 인간의 활동이다. 정리하면, 관광은 1년 미만의 기간 동안 일상 생활권을 떠나 다양한 목적으로 여행을 하거나 머무르는 인간의 활동으로, 보수를 받는 활동과 관련이 없어야 한다. 속성은 자발성, 탈일상성, 일시성, 유희성, 비영리성, 교육성(17~18C 그랜드투어가 시초)이다.

관광객(tourist)이란, 방문지에서 최소 1박 이상을 체류하는 방문객이다. ‘tourism’의 근간이 되는 tour의 어원은 라틴어의 ‘tornus’로 ‘순회하다’이다. ‘tourism’은 ‘tour’의 파생어로 1811년 영국의 『The Sporting Magazine』이라는 월간잡지에서 처음으로 사용되었으며, 1975년부터 모든 국제기구에서 관광의 영어적 표현을 ‘tourism’으로 통일하여 사용하고 있다.

다음은 여행. 여행은 관광을 포함하는 조금 더 포괄적인 개념이다. 여행자(traveler)란, 둘 또는 그이상의 지점 간을 통행하는 사람이다. 이동 행위에 방점을 두고 있다. 그래서 관광은 tour의 파생어인 tourism이고 여행은 travel 또는 trip이라고 부른다. 관광은 다시 돌아올 것을 전제로 하나, 여행은 한곳에서 다른 지점으로의 이동행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비슷한 용어로 여가(leisure)는 시간, 활동, 마음상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게 통설(모험·문화·복지·생태·농촌관광 등)이다. 관광은 대부분 여가 영역에 포함되지만, 비즈니스관광과 MICE는 오직 관광만의 영역이다. 레크리에이션(Recreation)은 일을 하지 않는 여가시간에의 활동이다. 부등식으로 구분하면, ‘여가 ≥ 관광 ≥ 레크리에이션’이 될 듯하다.

유엔세계관광기구(UNWTO)의 2015년 백서에 의하면, 국제관광객은 2012년 최초로 10억 명을 돌파했으며, 2015년에는 (인바운드) 11억 8,400만 명이 국경을 넘었다고 한다. 이는 세계 인구를 73억 명으로 추산했을 때 무려 16.2%를 웃도는 수치다.

여행업계의 빅데이터를 보유한 영국 트래블포트(Travelport)의 고든 윌슨 최고경영자(CEO)는 여행업계의 성장을 주도하는 핵심 키워드 세 가지로 모바일(Mobile), 아시아(Asia), 경험(Experience)을 꼽는다. 여행객 중 70%는 본인의 경험을 온라인에서 공유하고, 5명 중 1명은 지인이 소셜 미디어에 올린 게시물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이러한 트렌드 속에서 단체 여행 대신 개인 여행 수요가 늘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세계가 봉쇄에서 벗어나 국경을 개방하기 시작한 2023년 2월. 미국 매체 USA 투데이는 글로벌 숙박 플랫폼 에어비앤비(airbnb)의 통계를 인용하며 “최근 일어났던 문화적 변혁 중 가장 흥미로운 사실”이라면서 네티즌들의 여행지 검색 순위를 공개했다. 1위는 역시 부동의 이탈리아 로마였고, 3위 영국 런던, 4위 포르투갈의 포르투이, 5위 스페인 바르셀로나, 6위 아일랜드의 더블린이었다. 2위는 대한민국 서울. 10위권 나라 중 유럽을 제외한 아시아 국가는 오직 대한민국밖에 없었다.

세계적인 여행 전문 칼럼니스트들은 이 현상을 이렇게 설명하기도 한다. 과거의 여행이 아름답고 이국적인 정취를 체험하거나 쉬기 위한 목적이 많았다면, 2023년의 여행 트렌드는 자신이 영화관과 동영상, 블로그 사진에서 보았던 그 장소와 맛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가는 것으로 바뀌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즉, 이미지라는 기호를 체험을 통해 그 실재(實在)를 확인하고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여행이 되고 있다는 말이다.

물론 이런 변화는 한류의 영향 탓이다. 한 시간이면 국경을 넘어 마트에서 장을 보는 것이 가능한 유럽과 달리 분단의 섬으로 남아야 했던 우리 민족사로 보더라도 혁명적 변화다. 해상과 대륙으로의 통행을 봉쇄했던 조선 창건 이후 가장 많은 이들의 ‘여행’이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나 역시 마포구청 관광일자리국장으로 재직하면서 외국인의 한국(마포) 방문을 고심해야 했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고 준비해야 하는지 틈틈이 고민하고 아이디어를 내주시기 바랍니다. Ladies and gentlemen, Thank you for all.”

당시 국장실에서 관광과 5명에게 한 OJT 내용이다. 당시 나는 서울시에서 추진한 국외 교역전 2건, 국내 교역전 1건 등 핸드아웃 자료와 경험을 제공했다. 토론의 핵심은 “마포관광, 외래 관광객 어떻게 오게 할 것인가?”였다.

『참회록』의 성(聖) 아우구스티누스는 말했다.

“세상은 한 권의 책이다. 여행하지 않는 사람은 그 책의 단지 한 페이지만을 읽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