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의창#28 폐문부재
공무원의창#28 폐문부재
  • 시정일보
  • 승인 2023.07.18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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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열 전 서울 마포구 국장
양승열
양승열

[시정일보] 2022년 1월27일,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었다. ‘중대재해’의 책임자에게 과거에 비해 더욱 적극적으로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뉴스를 보다 떠오른 추억이 있다. 2013년 아현동의 한 집에 대한 이야기다.

고지대의 아현동 골목, 언덕 다랑이 위에 위태롭게 세워진 작고 낡은 판잣집. 인근 지역이 모두 자력 재개발되어 다세대주택들이 광휘를 드러낼 때도 그 집만은 흉물스럽게 방치되어 있었다. 그 집의 터는 서울시 자산관리과 소관의 시유지였고, 건축물은 기존무허가건물(스레트/목조/시멘트 구조)로 당시 기준으로 8년 전에 자력 재개발이 끝난 상태였다.

붕괴 우려가 있었으므로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건축신고를 하고 정비를 해야 함에도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그해 1월부터 집주인에게 자진 보수토록 공문을 보내고 안전표지판을 부착했다. 그래도 답이 없어 자진 철거 공문을 보냈다.

봄이 되자 그 집은 발 틈새로 겨우내 얼린 물을 쏟아 내었고, 적어도 내 눈에는 물이 빠져나간 자리가 헐거워 조금씩 기우는 듯한 느낌이었다. 3월부터 나는 신입인 ‘노랑머리 L’을 데리고 추적을 시작했다. 마포구를 떠난 집주인은 성북구에서도 여러 차례 주소를 옮겼는데, 봄에 시작한 추적은 여름까지 이어졌고, 마침내 7월 집주인의 주소를 확인할 수 있었다.

찾아갔던 석관동 빌라에 그 사람은 없었다. 퇴근 시간이 훌쩍 지난 저녁에 장위시장 인근의 한 아귀찜 식당으로 가서 대구탕을 먹고 잠복을 시작했다. 그렇게 3시간가량이 지났을 때 빌라 지하층에 불이 들어왔다. 지하에서부터 올라온 노란 불빛이 어찌나 반갑던지. 불이 다시 꺼질세라 L과 함께 불빛을 향해 달려갔다.

“똑똑.”

“…….”

현관문 깔때기 렌즈를 통해 커다란 눈망울 하나가 안쪽에서 다가왔다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짧은 침묵이 이어졌다. 밤늦게 시커먼 남정네 둘이 서서 문을 두드리니 두려웠을 것이다. 자초지종을 짧게 설명하고, 연두색 대문 앞에 포스트잇을 붙였다. 연락처와 함께 시간 나시면 이곳으로 찾아오시라고.

일주일이 지난 어느 날 아침, 작은 키의 여성이 딸과 함께 사무실에 찾아왔다.

“며칠 전 밤 너무 죄송했어요. 공무원인지 아닌지 의심해서요.”

그녀는 아현동 그 집은 57년 전 자신이 태어난 곳이라 했다. 여력이 있었으면 고치든지 재개발 때 다시 짓든지 했을 텐데 먹고사는 것이 힘들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고.

굳이 캐어묻진 못했지만 알 만한 사연이다. 우리네 부모님의 이야기.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를 그 집에서 낳아 길렀고, 그녀와 함께 자란 남매들에겐 그 다랑이처럼 쌓인 위태로운 계단이 하나의 우주이자 놀이터였을 것이다. 그녀는 성인이 되어 집을 떠났을 것이고 세월이 흐른 어느 날 그 집의 슬레이트를 얹었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담벼락에서 민들레를 살피던 어머니도 가셨을 것이다. 그녀에게 그 집은 포근한 동글 속 놀이터였고, 가족과의 사연을 구들장 바닥에 촘촘히 박아 넣던 유년기 전체였겠지.

생활이 어렵다는 말을 반복하며 연신 도와 달라는 그녀의 요청에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여북하면 그러시겠습니까? 아믄요!”

그분의 동의를 구해 인근 대형공사장의 B 건설사의 협조로 펜스를 설치하고 출입구를 봉했다. 결국 이듬해 장마가 시작되기 전, 그 집은 철거되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2022년 봄에 나는 그곳을 다시 찾았다. 그 자리에 우리가 설치했던 EGI 펜스는 말끔히 걷어지고 대신 군더더기 없는 몸매의 매시 철망이 단단히 뿌리박고 있었다. 그 앞 확장된 도로 위론 차량이 무심히 질주하고 있었다. 그해 여름의 흔적이라곤 “서울시주택도시공사 사유지”라는 안내 표지판 하나.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그 좁은 터 위에 위태롭게 매달린 둥지가 하나 있었고, 그 둥지에 한 가족의 일생이 담겨 있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