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의창#31 심장은 언제 뛰는가
공무원의창#31 심장은 언제 뛰는가
  • 양승열 전 서울 마포구 국장
  • 승인 2023.07.24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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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열 전 서울 마포구 국장
양승열
양승열

=때론 탐정처럼

[시정일보]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자 광고업체들은 관내 유동인구가 많은 오피스텔 사거리를 중심으로 경쟁적으로 분양 광고와 족자 현수막을 부착했다. 현수막 지정 게시대가 있었지만 업체들은 사람의 시선이 닿는 모든 곳을 광고판으로 삼으려 했다. 불법 광고물은 사거리 대로변과 지하철 역사 주변을 점령하고 있었다. 보기에도 지저분하고, 보행 안전에도 좋지 않았다. 문제는 이 광고업체들이 대포폰을 사용해서 추적이 어려워 과태료 부과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추적을 회피하려는 자와 추적하려는 자. 우리(도시경관과)는 수사관들의 수사기법을 활용하기로 했다. 과의 전 직원이 고객을 가장해 광고물에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해서 해당 분양사무실을 전격 방문하는 방법으로 추적했다. 기습적인 방문으로 ‘자인서’를 받고 과태료를 부과한 후 병과(倂科)하여 팀장인 내 이름으로 진술서를 첨부해 경찰에 고발했다.

담당 부서인 도시경관과 전 직원이 발로 뛴 결과 ‘아침에 광고물을 떼면 밤에 다시 부착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지면서 거리는 깔끔해졌다. 2013년 1월부터 6월까지 436건에 1억 2천만 원 남짓한 과태료를 부과해 그중 364건 1억 4백만 원가량을 징수했다. 징수율 86%로 전년 동기 대비 184% 세외수입 증대 효과까지 얻었다.

이 사례는 그해 7월 ‘창의 경진대회’에 출전(대본・연출・출연 등)해 장려상을 받았다. 이른바 ‘미스터리 쇼퍼(Mystery Shopper) 기법을 응용한 불법 현수막 정비 아이디어’였다. 그리고 불법 광고물·불법 건축물 등 행정처분 일정을 꼬박꼬박 전산으로 알려 주는 「행정처분 일정 통합관리시스템」은 ‘마이 잡 아이디어’ 부문에서 은상을 수상했다. 이 시스템은 우리 팀에서 자체적으로 개발한 것으로 지금도 인트라넷에서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공무원의 마음이 맞을 때

2021년 봄 5년 전 서강동장 시절 알았던 한 지인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상수동에 살던 그는 관내 △△직업전문학교의 학장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학교 진입로 코너에 불법 주차 차량으로 인해 어제 SUV 차량이 마주오던 차량을 피하려다 학교 담장을 들이받아 보험사에서 조사 중이라고 했다. 해당 구간은 대로에선 떨어진 외진 곳이었다. 그는 상습적인 불법 주차로 초행길 운전자들이나 보행자에게 매우 위험한 구간이니 구조적인 대책을 부탁한다고 했다.

나는 관계부서 팀장님과 관할 동장님께 현장에서 대책을 좀 마련해 보자고 부탁했다. 그리고 닷새 지난 오후 교통행정과, 교통지도과, 관할 동장님까지 6명이 운동화 차림으로 현장에 모였다. 우린 먼저 민원인으로부터 자세한 경위를 들었고 이후 부서별로 처리 방안을 내기로 하였다. 그리고 우회전하는 데 장애가 되는 코너 녹지의 모서리 정리는 관할 동장님이 공원녹지과장에게 요청하기로 하였다.

우선 집중적이고 지속적인 상시 주차단속을 했고, 탈색된 도로 라인을 다시 도색하고 말발굽 모양(∩)의 가드레일을 설치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후에 예산을 확보하는 대로 CCTV를 설치하기로 했다. 당시 이 일을 맡았던 교통행정과, 교통지도과, 도로과 팀장님들은 정말 자신의 일처럼 집중해서 문제를 해결했다. 그분들에게 난 지금도 고마운 마음이 남아 있다.

이듬해 봄에 다시 현장에 가 보았다. 깔끔하게 도색된 주차선과 황색 가드레일, 그래서인지 차도의 양팔이 눈에 띄게 넓어 보였다.

=보물 1호, 노트

2016년 서강동장으로 부임하자 직능단체장의 쇳소리가 나를 격하게 반겼다. 서강동은 전임 동장과 전임 주민자치위원장과의 불화로 몸살을 앓았던 곳이라 한다. 직원 열에 일곱은 전임 주민자치위원장의 독선과 고압적 행태에 몸서리를 친다고. 나는 민원행정팀장과 서무주임으로부터 들은 조각 정보를 토대로 지역을 파악했다. 그리고 바로 직능단체장을 바로 오시게 했다. 그간 마음고생하며 무척 서운했는지, 동장이 바뀌었다니까 눈썹이 휘날리게 달려오셨다.

우린 서로를 단박에 알아보았다. 하고자 하는 뜻이 분명했고, 하려는 말 또한 에둘러 하지 않았다. 자기주장이 강한, 한마디로 청양고추 같은 사람이었다. 애당초 물에 술 탄 듯 흥얼거리는 종족과는 결이 달랐다. 게다가 꽃집을 해서 그런지 공주과다. 그분은 그때부터 쭉 둘도 셋도 없는 나의 찐 팬이 되셨다.

나는 과장직이나 동장직 등의 직위와 상관없이 항상 나만의 일하는 방식을 다듬어 왔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물적 자원을 찾아내고, 큰 나무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실력자를 발굴하는 일, 특히 나의 노트(치부책)엔 내가 만난 사람과 해결해야 할 일들이 빼곡히 담겨 있다.

그렇게 작은 노트로 인력풀을 관리했고, 이 노트엔 사람과 사연이 모두 담겨 있다. 필요할 때만 꺼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진정성 있게 일을 해결해 나가는 것. 무엇보다 민원인이나 사업 관계자들이 일원화된 부서 창구로 접촉하고 일할 수 있게 하는 원스톱 체계를 차분차분 구축했다.

서강동장 시절인 2016년엔 상수동의 서울패션직업전문학교를 발굴했다. 이를 민간시설로는 최초로 동정보고 회의장으로 활용했다. 이후 서강동에서 자체 개발한 주민자치 프로그램인 〈패션학교〉를 이곳에서 열어 패션 드래이핑(마름질)을 시연하고 장학금 전달식을 하기도 했다.

독창적인 주민자치프로그램인 〈온 마을이 학교다〉 프로젝트의 책임 교장 10명에 대한 임명장 수여도 이곳에서 진행되었다. 활용되지 않는 마을 자원을 주민과 협력해 발굴, 이용하는 사업이었다. 이후에도 서울패션직업전문학교에서 개최하는 SFC플리마켓을 서강동주민센터에서 적극 지원하기도 했다.

2020년 상암동장 시절엔 500만 그루의 나무를 심는 청정 숲 조성 사업을 했다. 청정 숲 사업은 관의 예산으로는 한계가 역력했다. 관과 주민이 협력해 숲 조성 지역을 선정하고 주민이 직접 참여해 식목하는, 그야말로 시민이 주인이 되어 진행하는 의미 있는 사업이었다. 따라서 지역 사회에 공익 지원을 할 수 있는 기업이나 단체를 찾아 후원을 받는 일이 매우 중요했다. 당시 지역 곳곳을 방문하며 사업 취지를 설명하고 동참을 호소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던 중 서울드와이트외국인학교에서 예상치 못한 성과가 있었다. 드와이트스쿨은 1872년 미국의 뉴욕과 뉴저지의 12년제 명문 사립학교로 런던과 한국, 중국 등지에 분교를 두고 있다. 처음엔 반응이 우호적이지 않았다. 찾아가서 설명하겠다고 하니 그렇게 달가워하는 것 같진 않았다. 내 성격 그대로 오후에 학교를 향해 직진.

홍보부의 그레이스 지머맨 팀장과 알렉스 심 대리가 나를 맞아 주었다. 논의 결과, 10그루 100만 원어치를 심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교장 선생님과 학생들도 참여하겠다는 약속까지. 그들은 동주민센터가 뭐 하는 곳인지 몰랐는데 이번에 알았다며 신기해했다. 식목 행사는 케빈 스키오 교장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었고, 숲 이름은 ‘드와이트 존’으로 명명했다.

하지만 옆집인 서울일본인학교는 성과가 없었다. 내 전화를 받은 사람은 일본인 실장님이셨는데, 일본 어투가 섞인 우리말로 말했다. “스케줄이 안 맞아서 이번엔 좀….”

=유레카!

2020년 한 커피숍에 대한 민원이 접수되었다. 내용은 당황스럽게도 ‘의료법’ 위반이라는 것. 해당 민원을 접수한 의약과는 과태료를 부과하겠다고 예고했다. 당연히 커피숍 사장과 지역 구의원들이 합세해 강하게 항의했다. 호떡집에 불난 듯 정신없는 파상 공세가 이어졌다. 아마 민원은 인근의 병원 관계자들이 제기한 듯하다.

그 커피숍에선 커피를 알약처럼 봉지에 넣어 제공했고, 간판(상호) 또한 병원을 연상케 하는 ‘□□ 커피 호스피탈’이었다. 업주는 선친의 병원 건물을 그대로 활용했다. 사안은 간단하지 않았다. 의약과는 과태료 처분이 정당하다고 판단했지만, 실제로 2014년 간판에 약국 상호를 사용한 일반음식점에 영업정지를 처분했다가 이에 불복한 업주의 행정소송에서 우리(위생과)가 패소한 선례가 있었다.

커피숍의 젊은 사장은 적법하게 신고해서 영업하는데, 이를 왜 문제 삼느냐며 불복하겠다고 항의했다. 반대로 민원인들은 병원도 아닌데 호스피탈이라는 상호를 사용하는 것은 명백한 의료법 위반이라며 흥분했다. 식품위생법과 관련한 소송은 과거의 판례도 있어 커피숍이 유리할 수 있지만, 의료법이라면 해당 업주에게 불리할 수 있었다.

당시 난 위생과장을 떠난 지 막 1년이 되던 차다. 사안을 몰랐다면 모르겠지만, 이미 내용을 알게 되어 양심상 모른 체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나라고 뚜렷한 방안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1박 2일 식음을 전폐한 것은 아니지만,) 난 다음 날까지 이 문제를 고심했다.

유레카! ‘호스피탈리티(Hospitality)’라는 단어가 머리에 번뜩 떠올랐다. 그렇다. 호스피탈을 호스피탈리티로 바꾸는 것이다. 호스피탈리티는 환대, 후한 접대를 뜻한다. 호스피탈리티의 어원 또한 호스피탈이다. 의료법에 저촉되지 않으면서도 ‘비즈니스 프렌들리’한 간판. 업주는 다행히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후 그 커피숍을 방문했을 때 하얀 벽에 흰 글자로 박힌 간판이 내 눈에 또렷이 들어왔다.

COFFEE HOSPITALITY

어쩔 수 없이 유사한 일을 반복하고 또 일에 대한 특별한 보상을 기대하기 어려운 공무원 조직 안엔 관료주의와 형식주의의 위험이 상존한다. 일부 공직자는 세월이 흐르면 관성으로 일을 하고 자신도 모르게 거대한 위계조직의 부속처럼 행동하면서도 자각하지 못한다. 이 문제를 정치학자들은 철학과 관점, 시스템의 문제로 접근하고, 생리의학자들은 호르몬의 문제로 접근했다.

그들은 왜 사람이 초심을 금방 잃어버리는지, 사람의 열정은 왜 오래가지 못하는지와 같은 문제를 연구했다. 사람에게 행복감을 선사하는 대표적인 호르몬이 도파민과 세로토닌이라고 한다. 도파민이 즉각적이고 강한 쾌감을 선사하는 물질이라면, 세로토닌은 보다 지속적인 만족감을 주는 신경전달물질이다. 도파민이 선사하는 행복감은 반복할수록 떨어진다. 몸은 더 강한 자극을 원하게 되고, 나중엔 내성이 생겨 웬만한 자극으로는 행복감을 얻지 못한다.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은 꾸준히 변함없이 열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요인으로 ‘계획과 성취’를 들었다. 일반적으로 도파민과 세로토닌은 약효 소멸 효과로 인해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기 마련이지만, 예외적으로 사람은 자신이 세운 계획을 성취했을 때의 행복감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한다. 일상은 매일 반복되는 것으로 보이지만, 작은 결심과 소소한 계획을 세우고 이를 달성하는 사람은 늘 세로토닌으로 충만할 수 있다고 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바로 작은 습관 같은 것들이다.

그렇다면 공무원의 심장은 언제 뛰는가. 발자크는 저서 『공무원 생리학』을 통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살기 위해 봉급이 필요한 자, 자신의 자리를 떠날 자유가 없는 자, 쓸데없이 서류를 뒤적이는 것 외에 할 줄 아는 게 없는 자. 그런데 이런 질문이 갑자기 나온 것은 아니다. (…) 도덕 및 정치학 아카데미는 다음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는 자에게 상을 줘야 할 것이다. 다음 중 최상의 국가는 어떤 국가인가? 적은 공무원으로 많은 일을 하는 국가인가, 아니면 많은 공무원으로 적은 일을 하는 국가인가?”

만약 그가 살아 있었다면, 나는 이 말을 해 주고 싶다.

“사회가 건강하게 유지되고 발전하기 위해선 하고 싶지만 하지 말아야 할 일과, 하기 싫지만 꼭 해야 할 일들을 분별할 수 있는 슬기가 필요합니다.”

공공재는 비배제성·비경합성의 성격을 가진다. 공공재는 마을의 공동 우물 또는 목장들 간의 공유방목지와 같이 개인의 탐욕을 통제하지 못하거나, 이기심으로 개인을 적대하는 행동으로 쉽게 파괴될 수 있다. 그래서 이 공공재를 관리하는 종사자, 즉 공무원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리고 시민이 형식주의와 관료주의에 의해 피해받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현장을 우선하며 현장에서 일을 하는 공직자의 헌신이 반드시 필요하다.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주의의무. 공무원의 열성은 이 공동선을 실현하고 있다는 사명감과 가치에 대한 인식에서 온다. 그럴 때 자신의 노고를 그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그들의 심장은 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