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식 장편소설/ 영화 농장 [2]
임동식 장편소설/ 영화 농장 [2]
  • 임동식
  • 승인 2023.07.28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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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식
임동식

[시정일보] 모내기가 끝난 7월 초의 영화농장,

농민들의 염원이 담긴 피땀 어린 노력으로 온 들판은 초록빛 일색으로 물들여졌다.

유월에 모내기를 마친 논에는 모가 새 뿌리를 내리고 연둣빛 모의 줄기는 햇살을 머금어 감에 따라 초록으로 짙어가고 있었으며 불어오는 해풍을 맞으며 여린 모의 잎사귀는 파르르 나풀거리며 생명의 날갯짓을 하고 있었다.

모내기 이후 지금까지는 모내기 당시 저수지에서 흘려보낸 물로 모가 잘 자랄 수 있었으나 지금부터는 비가 와야 모가 성장을 원만히 할 수 있는 것이다.

저수지의 물은 모내기 당시 다 흘려보내 버리고 지금은 바닥이 드러났기 때문에 비가 오지 않으면 모가 제대로 성장을 할 수 없는 지경에 놓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월 모내기 이후 비는 오지 않았다.

도덕지의 저수지(훗날 회산 백련단지로 명명됨)는 영화 농장의 간척과 함께 축조된 저수지로 들판 가운데 있기 때문에 자연히 흘러드는 물은 없다.

그래서 근린, 몽탄면 청룡리에 있는 파군다리 저수지에서 물을 조달받는데 그것도 수원이 풍부한 상황에서의 말이다.

파군다리 저수지는 들 가운데 있는 도덕지 저수지와 달리 승달산의 끝자락인 몽탄면 청룡리와 일로면 상신기리 사이의 계곡을 막은 저수지이기에 사철 계곡에서 물이 흘러들고 이렇게 흘러든 수량이 둑을 넘는 양을 수로를 통해 도덕지 저수지로 보내는 것이었다.(이 저수지는 봄이면 둑 아래로 벚꽃이 만발하는 것이 장관이므로 몽탄남‧일로동 국민학교의 봄 소풍 단골 장소가 됨)

이즈음에는 이 저수지도 겨울부터 이어지는 가뭄으로 담수량이 적었고 잘해야 제 앞뜰의 농사나 지을 정도였던 것이며, 그러니 영화 농장, 도덕지 앞뜰의 여름 벼농사는 전적으로 하늘 하기에 달린 문제였던 것이었다.

7월이면 우기다.

하늘은 애가 타는 농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영화농장 사람들이 기다리는 비는 오지 않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에는 붉은 태양이 이글거리고 불어오는 열풍에 대지는 말라만 갔다.

길어지는 가뭄으로 논바닥이 갈라지기 시작하자 크다 만 모는 생과 사의 한계점에 이르렀다. 잎사귀의 끄트머리가 또르르 말리며 붉게 타들어 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보는 영화 농장 농민들의 마음이라고 온전할 리 있을까.

마른 논에 타들어 가는 모 잎사귀처럼 농민들의 가슴 또한 타들어 가는 것이었다.

아침 이른 시간,

인길양반은 메마른 날씨를 걱정하며 마루에 서서 담장 너머 들판을 근심 어린 눈길로 바라보고 서서

"허허! 들판의 색깔이 하루가 다르니 큰일이네."

하고 실소 섞인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이때 소쿠리를 들고 곡광에서 나오던 인길댁이 발걸음을 멈추고 인길 양반에게 묻는다.

"뭣이 큰일 났닥 허시요?"

"아 큼메(글쎄) 들판에 모가 다 말라가는그만. 이놈의 날이 비는 안 오고 꺽정이네. 시방이라도 오면 아순 대로(아쉬운 대로) 모가 살아날 텐디…. 올 농사는 틀려 불었는갑다."

"그렁께라우. 모가 다 꼬실라져(말라) 불먼 가실(가을)에 맹심이는 어찌게(어떻게) 여울께라우?!"

"허~어허."

마른 논바닥에 모는 타들어 가는데 가을에 여워야 할 딸내미를 생각하니 막막하기만 한 것인지 인길양반은 말없이 기운 빠진 실소만 지을 뿐 툇마루에 놓인 검정 고무신을 신으며 인길댁에게

"월국 앞 서숙(조) 밭에나 댕겨(다녀)올라네."

하고 집을 나서자 쥔네의 외출을 알아챈 것인지 마루 밑에 웅크리고 있던 벅구(개 이름)가 허리를 길게 늘여 기지개를 켜더니 꼬리를 치며 인길양반의 뒤를 따른다.

강 건너 희뿌옇게 보이는 월출산 앞으로는 짙은 운해가 깔려 이름 모를 야산들의 봉우리만 둥실 떠 있다. 해가 중천에 오르면 저 운해가 다 걷힐 것이고 작열하는 태양 아래 대지 위로 마른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며 데워진 대기로 날씨는 뜨거울 것이다.

이윽고 인길양반이 월곡 앞 조밭에 이르렀다. 서 마지기 반짜리 기다란 황토밭에 파종된 조는 예년의 것에 비해 키는 작고 가늘었다.

조밭 아래로 세 이랑은 무가 자라고 있었지만 조나 무나 실하지 않기는 똑같았다.

하지만 조나 무는 들녘에서 타들어 가는 모와 달리 그래도 튼실하지는 않지만 흙이 가지고 있는 미량의 수분을 찾아 깊은 뿌리를 내리며 푸르른 생명의 빛을 지켜내고 있는 것이었다.

​"벅구야! 이리 온나! 집으로 가자!"

밭을 빙 둘러본 인길양반이 벅구를 부른다.

타는 인길양반의 속내를 알 리 없는 벅구는 힘이 솟구치는 듯 조 밭과 무밭 사이를 뛰어다니고 있었다.

인길 양반이 집으로 돌아오니 아침 마실을 나온 이웃집 광암댁과 인길댁이 마루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광암댁네는 학두리에서 순녀네보다 한 해 뒤에 도덕지로 이사를 왔으며 인길댁과는 같은 또래로서 자주 순녀네로 들르곤 하였다.

광암댁이 마당으로 들어서는 인길양반을 향해 아침 인사를 겸하여 묻는다.

"서숙이 잘 되얐습디여?"

"원체(워낙) 가문디 잘 되얐을랍디여만은 그래도 말라 죽던 안 했습디다."

"그렁께 말이라우. 뒷까끔(벌렛간이 있는 농가 언저리의 야산) 우리 밭에도 건모를 심었는디 다 꼬실라져 불었드랑께라우. 인자 비가 안 오면 들판에 모도 다 꼬실라져 불 텐디 시안에(겨울에) 뭣을 먹고 살아사 쓸지…. 만주에 간 우리 아들한테서는 기별도 없고…,"​

광암댁은 기약 없는 비 소식과 만주로 간 아들을 생각하며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인길댁네 큰아들이 섬나라 일본으로 간 반면 광암댁네 큰아들은 대륙의 땅, 만주로 간 것이다.

이들이 경제나 문화가 낙후된 곳, 도덕지를 떠나게 된 이유는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만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대전은 집을 떠나면서 그의 아버지에게

“제가 일본으로 가려는 것은 그저 많은 돈이 욕심나서가 아니여라우. 그렇다고 치면 여그서 다니고 있는 면사무소에 댕기면 그때그때 봉급도 나오고 신간이 편헌디 일본으로 갈 이유가 없제라우.”

이렇게 말을 하고 떠났으니 그는 보다 넓은 미지의 세계에서 그의 이상을 펼치고 싶었던 것이며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 알 수 없는 그의 가정 내 사정이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렇게 외유한 아들들로 동병상련 관계인 두 여인은 마주하면 늘 자식들에 대한 그리운 마음을 서로에게 토로함으로써 서로 위로가 되었던 것이었다.

인길댁 내외와 광암댁이 마루에서 하는 얘기 소리를 듣고 식구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순녀와 나란히 서 있던 맹심이 인길양반에게 묻는다.

​"아부지! 밭에 가셨담서 서숙은 잘 되얐습디여?"

인길양반은 뻔한 사실을 새삼 설명하기가 성가신 듯 입맛을 다시더니

"논바닥에 모 마냥 타던 안 했어도 근다고(그런다고) 실겁게 잘돼도 안 했드라. 논이나 밭이나 비가 와야 쓸 텐디…"

하고 대답했다.

끝을 흐리는 아버지의 말에 안쓰러움을 느꼈던지 순녀가 제안을 한다.

​"그러면 당아(아직) 방죽에는 물이 짜박짜박 남아 있응께 그 물을 여다 밭에다 뿌려주면 어쩌께라우?"

먼 곳을 바라보던 인길 양반이 이 말을 듣고 화들짝 얼굴에 미소 가득한 모습으로 순녀를 바라보며

"니 말이 맞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 했응께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그것이고 가실에 결실은 하늘의 뜻이다. 순녀 말대로 우리가 힘은 들더라도 식구들이 다 나서서 물이라도 져 날라다 뿌려봐사 쓰겄다."

이렇게 하여 밭에 물을 주기 위해 온 가족이 다 동원되었다.

물동이를 이고 물지게를 지고 저수지 물은 다 마르고 바닥이 낮아 깊은 곳에 종아리 깊이로 고여있을 뿐이었다.

여인네들은 물동이에 물을 퍼 담아 머리에 이고 인길양반은 지게를 지고 하여 신원목 뒤 고개를 넘고 외곬 논길을 따라가 순녀네 밭에 이른다.

인길댁은 만삭의 몸이라 임질은 할 수 없고 이고 온 물을 받아 조 밭에 물을 뿌린다.

이렇게 급수 작업은 해 질 녘이 다 돼서야 끝이 났다.

이날 이후 도덕지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신원목, 용호동, 회산 사람들이 앞을 다퉈 저수지의 물을 퍼다 밭에 뿌리는 바람에 저수지는 곧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던 것이었다.

8월이 돼도 비는 오지 않고 염천 아래 논바닥은 거북등처럼 갈라져 버리고 타버린 모들 사이로 듬성듬성 이름 모를 잡초들만이 자랄 뿐이다.

이로써 이른 봄 못자리 일부터 초여름 모내기에 이르기까지 공들였던 영화농장 사람들의 수고는 모두 허사가 되고 만 것이었다.

8월 19일 이른 새벽, 인길 양반이 큰방을 나와 다급하게 마루를 건너 작은방으로 가더니 방문을 두드린다.

이내 잠이 덜 깬 맹심이 부스스한 얼굴로 눈을 비비며 문을 열고 나온다.

​"맹심아! 느그 어메가 산통이 심헌갑다. 언능 느그 올케언니를 깨워라!"

"야~아! 알었어라우."

맹심이 자다 말고 일어나 놀란 토끼마냥 허겁지겁 경주댁의 방으로 가 경주댁에게 큰방의 사실을 알린 후 곧바로 큰방으로 들어갔고 이어서 경주댁도 퉁퉁퉁 바닥을 차는 다급한 걸음으로 마루를 건너와 큰방으로 들어갔다.

딸과 자부가 큰방으로 들어가자 인길양반은 마루 끄트머리에 걸터앉아 궐련을 말면서도 생각은 온통 큰방 쪽에 있는 듯 힐끗힐끗 큰방 쪽을 바라본다.

밖이 소란스러움을 알아차린 순녀가 마루로 나와 인길양반에게 무슨 일인지 묻자 인길 양반은 말없이 손짓으로 큰방을 가리켰다. 순녀가 누구이던가.

과연 눈치가 빠른 순녀는 큰방으로 들어가 잠이 덜 깬 말례와 태곤을 끌다시피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태곤은 제 누나인 순녀를 탓하여 짜증을 부리며 인길양반 옆으로 가 마루에 걸터앉았고 순녀는 말례를 데리고 부엌으로 갔다.

"언니가 솥에다 물을 붓어 주께 너는 부샄(아궁이)에다 불을 때라! 비땅(부지깽이)으로 또작(뒤적)임서 때면 잘 타! 뜨건 물이 있어야 우리 동생 나오면 씻어 주제."

"알었어. 언니!"

순녀는 말례에게 아궁이에 불을 지피게 하고 방으로 들어간다.

아직도 마루 끄트머리의 인길양반은 궐련을 태우며 초조한 듯 큰방 쪽을 힐끗힐끗 쳐다본다.

기다림의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응애! 응애!"

이윽고 큰방에서 아기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새생명의 신호인 것이다,

아이는 인길댁의 육신을 얻고 인길양반의 부름을 받아 저 세상에서 이 세상으로 온 것이다.

아기의 울음소리에 인길양반은 벌떡 일어나 큰 방문을 쳐다보는데 마침 문이 열리고 순녀가 화들짝 웃는 모습으로 마루로 나와서는 방안의 소식을 알린다.

"아부지! 꼬치(고추)여라우. 꼬치 달린 동생이 나왔어라우."

"오냐. 어메는 괜찮허냐? 허! 허! 허!"

"야~아! 어메도 괜찮허제라우."

인길양반은 화색이 만면하여 얼굴 가득 즐거움 이 넘치는 모습을 하고 있었으며 순녀는 따신 물이 담긴 대야를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이윽고 방안에서의 산후 정리가 다 끝나자 인길 양반이 방으로 들어섰다.

아기는 아직 물기도 마르지 않은 채 하얀 무명 요 위에 뉘어져서 가냘프게 숨을 쉬고 있었다. 아기의 옆에 누워 있는 인길댁은 산고의 흔적으로 머리는 헝클어지고 얼굴은 창백했다.

한 사람이 또 하나의 사람을 잉태하는 고통, 산고의 고통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으랴! 인길양반은 핏기없는 인길댁의 손을 잡으며

"고생했오."

하고 말했으며 눈을 감고 있던 인길댁은 겨우 눈을 뜨고는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인길 양반이 적삼 주머니를 뒤적이며 순녀를 부른다.

"순녀야! 이 돈을 갖고 돈도리에 가서 미역을 좀 사 오니라!"

순녀는 대답할 겨를도 없이 지전을 손에 쥐고 들 건너 돈도리로 향했다. 모가 벌겋게 타버린 들판을 건너고 절강(切江)을 지나 한달음으로 돈도리 포구에 이르렀으며 도덕지에서 돈도리까지는 약 1.5 킬로미터에 이르는 거리이다.

물대는 밀물이 끝나가는 만조 시간이라 유속이 없어져 잔잔해진 물은 포구 가득 차 있었으며 간밤 고기잡이를 나갔다 돌아온 배들이 서너 척 말뚝에 매어져 물결 따라 흔들거리고 있었다.

해물전은 포구의 강물과 불과 50여 보 떨어진 곳에 있었으며 예사 집과 다를 바 없이 허름한 초가집의 추녀 끝에 전빵(店房)이라고 쓰인 판자때기가 걸려있어서 비로소 그곳이 해물 가게임을 알 수 있을 만치이다.

순녀가 점빵 앞에 이르자 흰 저고리에 검은 무명치마를 입은 중년의 여인이 문 앞을 쓸다 말고 순녀에게 다가서며 묻는다.

"어디서 온 처녀여? 뭣 사실라고?"

해물 가게는 진열대나 전시판이 따로 없이 보통의 마루에 건어물이 쭈욱 널려있다.

"야아~, 도덕지서 왔는디 미역 좀 사 갈라고라우."

"오메! 어짜까이. 요새는 찾는 사람도 많덜 않체만 우리 배가 고장 나 진도에 갔다 온 지가 오래 되야서 미역이 없는디 어짜까이? 오늘 아직(아침)에 누구 생일이간디?"

순녀는 쥔네의 말을 확인하고자 어판을 쭈욱 훑어보았다. 마룻바닥에는 마른 홍어와 멸치, 전어 등의 마른 생선과 똬리 지어진 감태가 먼지와 섞여 있을 뿐, 미역은 없었다.

사 오라는 미역은 없고 먼지를 뒤집어쓴 홍어나 감태 따위만 있으니 어찌해야 될지…. 순녀는 당혹스러운 생각에 여쥔네의 물음에는 아랑곳없이 해산물 가게를 나와 걸음을 재촉하여 일로 읍내로 향했다.

5일 장이면 미역쯤이야 얼마든지 살 수 있으련만 이날은 장 서는 날이 아니어서 미역 대신 푸줏간에서 소고기를 살 생각에서였다. 소고기는 비싸고 귀해서 아무나, 아무 때나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예사 농가의 사람들이라면 평생에 몇 차례밖에 먹을 수가 없으며 어쩌면 평생을 두고 먹어보지 못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귀한 것이다.

그러나 아이를 잉태한 어머니, 한 몸을 갈라 두 몸이 된 어머니는 무엇이라도 영양 진 음식을 먹어야 비로소 덜어진 몸을 채울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 순녀의 생각이었던 것이므로 냉큼 소고기를 사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던 것이었다.

한 편, 인길양반은 순녀에게 심부름을 보내놓고 마루에 앉아 새끼를 꼬고 있고 이웃집 광암양반이 마실을 와 말동무가 되었다.

"아들을 낳으셨닥 허던디 금줄 치실라고 새내끼(새끼) 꽈시는갑네요. 축하드리요!"

"고맙네. 근디 외약손(왼손) 새내끼라 잘 못 꽈겄네. 식사는 허고 오셨는가?"

"아먼(암)이요. 벌써 먹었제라우."

꼬는 새끼줄이 서너 발가량에 이르자 인길 양반은 꼬인 새끼줄의 틈을 벌려 한 뼘 간격으로 까만 숯과 빨간 고추와 하얀 무명천을 차례로 반복하여 끼운다.

이렇게 금줄을 다 만들어 대문의 기둥에 달고 있을 때였다. 미역을 사러 갔던 순녀가 새끼줄에 묶인 소고기를 치렁치렁 들고 집 앞 다리를 건너 마당으로 들어섰다.

인길양반이 순녀에게 묻는다.

"어째 이리 늦었냐?"

"야~ 아부지! 돈도리에 갔디만 미역이 없어서 일로 읍내로 가서 미역 대신 소고기를 사 오니라고 인자사 왔어라우."

순녀가 심부름 내력을 이야기하자 인길양반은 순녀의 임기응변에 크게 만족해하며

"사 오라는 미역이 없으먼 딴 애기들 같으먼 그냥 올 텐디 우리 순녀는 소고기로라도 대체하는 융통성을 가졌구나! 그래, 그것을 임기응변이락 허고 사람은 그때그때 그렇게 상황에 적응헐 줄 알아야 쓴다. 잘했다."

하고 순녀를 칭찬하는 것이었다. 순녀는 바쁜 걸음으로 그것도 식전 공복에 영화 농장을 한 바퀴 돌아왔기에 허기지고 파곤죽이 되었을 텐데도 아버지의 칭찬 한마디에 도리어 힘은 솟고 마음은 즐겁기 이를 데 없는 것이었다.

이윽고 술참에 가까운 아침상이 큰방으로 들여졌다. 갓난아이는 아랫목 요 위에서 깊은 잠에 빠져있었으며 상을 들이는 모습을 보고 인길댁은 일어나 앉으며 헝클어진 머리와 옷매무새를 고쳤다.

갓난아이가 태어남으로써 순녀네 식구는 아홉이 되고 식구가 다 앉으니 밥상 둘레로 빼곡하다.

"자! 고깃국에 한 술 드시고 기운 차리시게!"

인길양반이 권하자 인길댁은 국물을 후루룩 한 모금 맛보더니 입맛이 돌아온 것인지 연신 잘 먹었으며 이 모습을 지켜보던 점돌이 빈 숟갈을 들고 입맛을 다시자 인길댁은 먹던 고깃국 그릇을 점돌 앞에 놓아주는 것이었다.

요람에 뉘어진 아이는 여전히 잠들고 있었으며 인길양반은 신기한 듯 아이를 들여다보다 문득 생각난 것인지 아니면 이미 생각해 놨던 것인지

"대전 어메! 울 애기 이름을 경배라 해야 쓰겄오. 겨엉~배, 경배. 이름이 어쩌요?"

하고 고개를 돌려 인길댁을 바라본다. 인길댁은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경배는 더위가 성성하던 어느 여름날에 이 세상으로 왔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