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정칼럼 / 100살까지 살고 싶다
시정칼럼 / 100살까지 살고 싶다
  • 임 춘 식 논설위원
  • 승인 2023.07.27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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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춘식 논설위원​
​임춘식 논설위원​

[시정일보] 요즘 카카오톡 단톡방 유행어 중에 100세 시대엔 ‘9988231’이란 게 있다.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2~3일 앓고 다시 벌떡 일(1)어나서’ 100세까지 살자는 의미다. 어느새 우리 곁에 성큼 다가온 ‘100세 시대’는 축복이니까 충분히 누려보자는 소망이 담겨 있다.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40.4%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지만, 지난 5월 조선일보 조사보고서는 성인 두 명 중 한 명은 ‘100살까지 살고 싶다’라고 했다. 그렇지만 22%에 불과한 일본의 경우와는 사뭇 결이 다르다.

구체적인 이유로는 ‘조금이라도 더 인생을 즐기고 싶어서’ 31.9%, 후손이 크는 걸 보고 싶어서(24.3%), 세상이 발전하는 걸 보려고(22.1%) 등 아울러 ‘100세까지 살기 싫다’라는 ‘주변에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서(49.8%), 몸이 약해질까 봐(47.9%), 경제적 불안감(36.1%)’ 등을 이유로 꼽았다.

어느 사람도 이렇게 오래 사는 시대가 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한국이 얼마나 늙었는지 나타내는 고령화율(총인구 중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2022년 12월 말 기준 18.0%로, 일본(29.0%)보다는 아직 낮다. 하지만 2045년엔 일본을 추월해 전 세계에서 가장 늙은 나라가 된다.

한국과 일본의 견해차가 큰 것은 일본은 오래 살게 되면 결국 남에게 돌봄을 받게 되고, 이에 대한 심리적 저항감이 있다. 100세 장수에 대해 양국의 생각이 지금은 매우 다르지만,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한국도 일본처럼 바뀌게 될 것이다. 2022년 12월 말 기준 일본의 100세 이상 인구는 약 9만 명, 한국은 8천여 명으로 이제 100세가 그다지 특별할 필요가 없는 나이가 되었다.

이미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일본은 100세의 삶이 어떤 것인지 주변에서 접할 기회가 많아서 장수가 축복이 아니라는 걸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다 그리고 “무전(無錢)·무위(無爲)·무연(無緣)의 삶을 사실적으로 지켜봤던 일본에선 100세 삶을 마냥 기대하진 않는다. 장수 리스크라는 말이 많이 회자하고 있지만, 아직 한국에서는 이를 실감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어쨌든, 경제력과 활동 능력이 없는 노후는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살지도 죽지도 못하는 고통의 세월이 길어진다면, 그게 바로 생지옥 아니겠는가. 노년을 고통이 아니라 행복으로 채우려면, 돈과 건강이 필요하다.

‘노후 준비가 보통 이상 되어 있다’라는 사람들은 10명 중 6명꼴로 ‘100세까지 살고 싶다’라고 답했다. 반면 ‘노후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라는 사람들은 ‘100세까지 살기 싫다’라는 비율이 75%로 높았다. 즉 경제 수준과 건강은 통상 오래 살고 싶은 욕구와 양(+)의 상관 관계가 있다면서 노후에 자신을 돌봐줄 가족이 없어도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으면 필요한 부분은 해결할 수 있다.

고령자들 사이에선 팔팔하게 생활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고통 없이 죽는 것을 원한다. 하지만 이렇게 마지막까지 건강하게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자기 뜻대로 죽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극소수의 운 좋은(?)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쌩쌩→비실비실→보살핌’의 사이클을 피할 수 없다. 몸이 점점 쇠약해져 결국 움직일 수 없게 되고, 결국엔 다른 사람(배우자 혹은 자녀 등)에게 돌봄을 받아야 한다.

한일 양국 모두 ‘어느 날 갑자기 심장병 등으로 죽고 싶다’라는 비율이 각각 59%, 70.6%로, ‘병들어 침대에 누운 채라도 좋으니 서서히 죽고 싶다’라는 비율보다 더 높았다. 특히 일본은 한국보다 ‘갑자기 죽고 싶다’라고 답한 비율이 10% 이상 높았다.

한국보다 고령화를 훨씬 앞서 경험한 일본인들은 부모나 조부모가 나이 들면서 돌봄 등 주변의 도움이 많이 필요해지고 삶의 질이 훼손당하는 모습을 보며 살았다. 그래서 반사적으로 오래 살고 싶지 않다거나 돌연사를 원한다고 비율이 높았다고 보인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사는 게 익숙한 일본인의 민족성일 수도 있다

노후엔 부부 둘만 남게 되는데, 자신이 죽는 것보다도 나 홀로 노년이 되는 걸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종국에는 아파서 병원에 가야 할 때도 보호자가 없어 고생하는 독거노인이 많은데, 이들을 사회가 어떻게 지원해야 할지가 큰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부부 중 어느 쪽이 먼저 떠나길 바라느냐”는 질문에도 한일 양국은 비슷한 성향을 보였다. ‘배우자보다 먼저 세상을 뜨고 싶다’고한 비율은 한국과 일본이 각각 58.3%, 68.5%였다. ‘배우자보다 늦게 죽고 싶다’라는 비율은 41.7%, 31.5%였다.

고령자들이 장수를 두려워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질병과 돌봄 때문이며 본인 병치레만큼 힘든 게 배우자 병치레여서 배우자보다 하루라도 먼저 죽길 바라는 것일 수도 있다는 점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배우자와의 사별은 남편과 아내 모두에게 엄청난 충격이다. ‘한날한시에 같이 가는 것이 소망’이라는 부부도 있지만, 현실에선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배우자 상실로 인한 심적 충격은 특히 해로한 부부일수록 더욱 크다. 여생을 홀로 살아야 한다는 것도, 모든 걸 혼자서 결정해야 한다는 것도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괴롭고 지독하게 슬픈 일 중 하나가 바로 배우자와의 사별이기 때문에 부부가 함께 있을 때 미리 혼자 사는 연습을 해야 한다.

100세까지 살고 싶어 하는 한국의 노인들에게 일본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지금부터라도 국가 차원에서 일상생활 영위가 어려운 고령 노인에게 적절한 돌봄서비스를 제공하여 안정적인 노후 생활 보장, 노인의 기능·건강 유지 및 악화 예방을 위한 돌봄 강화를 위한 다양한 서비스 제도를 하루빨리 구축해야 한다.

그와 더불어 사회적 고립의 위험이 큰 고령의 독거노인들을 우선으로 찾아내고, 이들의 고독감을 덜어주기 위해 인간과 교감하는 사회적 로봇이나 인공지능(AI) 스피커 등 고령 친화 기술(Age Tech)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한남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