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의창#37 공덕동 언덕 위 귀곡산장
공무원의창#37 공덕동 언덕 위 귀곡산장
  • 양승열 전 서울 마포구 국장
  • 승인 2023.08.07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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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열 전 서울 마포구 국장
양승열
양승열

[시정일보] 2014년 화창한 봄날이었다. 당시 난 건축물정비팀의 팀장이었다. 업무의 성격상 민원인 대부분은 상담을 하러 온다기보다 핏대를 퍼렇게 세우고 온갖 저주를 퍼붓기 위해 ‘쳐들어오는’ 항거자들이었다.

“왜 나만 갖고 그래! 온천지가 불법인데…”로 시작해서 “니들 뭐 하는 사람이야? 책상에서 펜대만 굴리지, 서민이 얼마나 힘들게 사는지 아느냐?”로 이어지다가 궁색해지면 “다 알겠는데, 니들은 시민에 대한 태도가 글러 먹었다.”로 끝나곤 했다.

건축 이행강제금 통지를 받은 분들은 한결같았다. 수인한도를 넘는 거친 욕설에 감정을 자제하지 못한 직원이 응수하는 순간, 언제나 본질이 아닌 태도 논란으로 이어지곤 했다.

정비팀의 내부도 엉망진창이었다. 다는 아니지만 조직에서 업무 태도가 불량하거나 불화를 조성하는 이들이 떠밀려 배치되었기에, 난 때로 ‘진상 민원인’보다 ‘내부자’에 더 신경이 곤두서곤 했다. 거기에 더해 나리님들의 민원까지. 격무지, 기피부서 1순위라는 조직 내의 평판은 과장이 아니었다.

사무실의 문을 두드리며 들어온 이는 주민이 아니라 주차장시설팀의 팀장과 주임이었다. 문지방 앞에 놓인 동그란 테이블에 앉은 그는 예의 인상 좋게 웃으면서도 업무 내용이 본격화되려 치면 무언가 우물쭈물하며 눈동자가 흔들렸다. 무언가 있구나, 직감이 왔다. 분명 자신의 일을 떠넘기려 하는 것 같은데, 그 실체가 분명하지 않았다. 물에 술 탄 듯, 술에 물 탄 듯. 성격상 흐지부지 넘어갈 수가 없었다.

일주일 후 담당 직원과 함께 현장으로 나갔다. 앞니가 부러진 폭풍의 언덕 위에 폐가 3채가 있었다. 이곳은 주거환경개선지구에서 제외된 슬럼가였다. 바로 코앞에 있던 고등학교의 학생들이 밤마다 찾았는지 소주병과 담배꽁초가 뒹굴고 주변은 온통 쓰레기 산이었다. 구둣발로 차면 당장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무허가건축물 3채가 겨우 버티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 사람이 살았던가? 행정의 사각지대였다.

당시 공덕동 구도시의 언덕배기엔 무허가건축물들이 유난히 많았다. 졸참나무 우듬지의 벌집처럼 늘 아슬아슬했던 비탈, 아래층의 지붕이 윗집의 바닥과 연결된 층층의 구옥들이 언덕 위에 촘촘히 서 있었다. 물론 요즘은 환히 열린 하늘과 조망을 볼 수 있는 값비싼 입지로 바뀌어 부러움을 사는 곳이 되었다. 지금은 부동산 노른자로 꼽히는 ‘마용성(마포·용산·성동)의 예루살렘’은 10년 전만 해도 ‘폭풍의 언덕 귀곡산장’이었다.

연유가 어찌 되었든, 지금 중요한 일은 당장 이 위험한 지대를 정비하는 것이었다. 우범지역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언제든 사람이 다칠 수 있었다. 일을 진척시키기 위해 이 집에서 살았던 이들을 추적해야 했다. 인근 주민들은 그들이 오래전에 떠났다고 했고, 그들의 자취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부동산에 나온 매물도 없었다.

불법으로 집을 짓고, 주인은 떠나고 집은 폐허로 남겨지는 익숙한 흐름이었다. 업무를 진척할수록 내게 이 일이 떨어진 경위가 하나씩 드러났다. 온갖 쓰레기가 악취를 풍기며 뒹굴고 있는 이곳은 지역민에게 숙원사업이었고 지역구 의원들에겐 골칫거리였다.

당시 그 지역의 젖꼭지를 물고 있던 J 구의원은 자신의 구의회 사무실로 찾아온 민원인들 앞에서 평소 친분이 있는 K 과장을 불렀다. 그리고 오랫동안 방치된 언덕배기의 그 집터에 끝없이 쌓이고 있는 쓰레기만이라도 당장 치워 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지장물 정비가 되면 그곳에 공영주차장을 건립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그럼 그렇지. 조직이 이렇게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때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는 법이다. K 과장은 동물적인 감각으로 이 일을 전광석화처럼 해치워야 한다고 마음먹었다. 치타만큼 은밀하고 신속하게 일이 떨어지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지난주에 찾아왔던 주차장시설팀장이 왜 우물쭈물하며 말을 더듬었는지 아귀가 들어맞았다. 이 일은 어디 한 부서가 나서서 맡기 어려운 일이었다. 많은 부서가 동원되어야 하는 복합적인 성격의 업무였던 것이다. 지난주 날 찾아왔던 주차장시설팀장이 속한 교통행정과가 주관이 돼, 도시경관과(무허가건축물), 도시계획과·건설관리과(보상), 주택과(이주 대책), 청소행정과(쓰레기), 부동산정보과(지적 정리), 환경과(석면), 관할 동주민센터 등이 T/F를 꾸려 해결해야 하는 일이었다.

정리하면, J 구의원이 교통행정과장에게, 주차장시설팀장은 우리 과에 이첩한 것이다. 결국 이첩된 ‘죄명’은 무허가건축물, 땅은 1곳의 구유지와 나머지의 사유지로 분류되어 있었다.

현장을 확인한 순간, 앞으로 닥칠 일의 고단함과 복잡함보다는 이곳을 정비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솟아올라 삭신이 욱신거렸다. 우선 주인을 찾아야 했다. 당시 우리에겐 아무런 단서가 없었다. 그리고 떠올린 아이디어. 범인(?)은 반드시 현장을 찾는다….

우선 홍대 앞 화방에 가서 우드록(보드지)을 사 와서 매직으로 크게 방(榜)을 붙였다. 우리는 누구이고, 이곳을 앞으로 어떻게 할 테니 꼭 연락을 주시라! 뭐 특별한 경험에 따른 과학적 기법이라기보다 실오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이었다. 도처 벽에 걸린 대자보를 행인들이 주춤주춤 쳐다보는 모습이 꿈에도 아른거렸다.

쓰레기 산의 폐허에도 주인은 있었다. 기별은 생각보다 일찍 왔다. 가끔 궁금함과 멀어지지 않기 위해 돌아보는 모양이었다. 그들이라고 왜 걱정이 없었겠는가? 즉각 반응이 왔다. 해당 건축물은 재난위험시설물 E등급이므로 당장 철거해야 하는 대상이라고 설명하며 자진철거를 요청했다. 하지만 답이 없었다. 철거할 요량이었다면, 저렇게 오래 방치하지도 않았겠지. 3명 모두 철거에 응하지 않았다.

미리 생각해 둔 매뉴얼대로 난 ‘무허가건물에 대한 권리 포기 각서 및 철거동의서’를 내밀었다. 여기에 응하면 대집행(철거)비용을 청구하지 않겠다고 제안했다. 위반건축물 단속부서이다 보니 철거 대집행비용이 없어 재난부서의 예산으로 처리하였다.

“올해 풍수해가 심하다는 예보가 있습니다. 경주 리조트 붕괴(2.17), 세월호 참사(4.16), 장성의 요양병원 화재 참사(5.28) 등 안전사고가 온 나라의 걱정거리지 않습니까. 이 와중에 선생님 댁의 건물로 인해 주민들이 피해를 본다면 민·형사상 책임을 면할 수 없습니다. 붕괴나 화재로 인해 타인에게 인명피해 발생 시 배상 책임이 있으며, 이 정도라면 우리도 직권으로 ‘재난법’에 의해 조치할 수도 있습니다. 무허가건물은 자진철거가 원칙입니다. 자진철거가 안 되면 부득이 안전 문제로 ‘재난법’에 의거 대집행 후 비용을 청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슬레이트 지붕은 고용노동부 등 복잡한 절차를 거쳐 석면 처리(창원)를 해야 하고 그 비용도 만만찮습니다. 생각해 보시고 답을 주십시오.”

한 분은 멀리 남쪽 지방에 계셨다. 양자로 입적한 계모가 사망했음에도 관공서의 공부(公簿)상 권리승계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 ○○읍사무소에 연락하니 “농촌은 시방 농번기이어라우, 집에 아무도 읎어요, 하니 들판에 방송을 해야 헝께라우. 기다려 보쇼이.” 마을 스피커로 방송해서 필요한 내용은 읍사무소를 통해 팩스로 주고받기로 하였다.

또 한 분은 한눈에 봐도 촌사람 같았다. 그는 엉뚱한 지적 관계를 가진 얼룩덜룩한 매매계약서를 가지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냐 물었더니, “둘렸다”고 한다. 속았다는 전북 방언이다. 그 집은 다른 곳의 건물이었다. 건물도 말짱하고 주인이 옆에 살면서 창고처럼 쓰고 있었다. 그 집은 나중에 도시계획사업으로 처리하도록 했다.

유독 한 분만은 구청과 시청 그리고 사정기관에까지 진정서를 제출하면서 격렬하게 저항했다. 이럴 땐 도리가 없다. 꾸준히 설득해서 분노와 오해로 가득 찬 머리를 식혀야 한다. 당시 내가 그에게 했던 말이다.

“감정평가다 뭐다 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흘러 그사이 비바람이라도 몰아치면 오히려 선생님이 손해 보실 수도 있습니다. 당장 철거를 필요로 하는 재난위험시설물 E등급인데 붕괴나 화재로 인해 타인에게 인명 피해 발생 시 민·형사상 책임이 따릅니다. 언제 무너져도 이상할 것이 없는 건물이라 시간적 여유가 없습니다. 되레 철거 비용이 문제인데요, 선생님 댁은 슬레이트 지붕이라 철거하면 창원까지 내려보내야 하고 석면 처리비용이 또 별도로 들어갑니다. 따라서 무허가 건물 보상보다는 철거 비용이 더 많이 나올 듯합니다.

시간을 드릴 테니 알아보시고 철거 비용과 비교하여, 실익을 따져 보시고 6월 5일까지 답을 주세요. 더는 기다릴 시간이 없습니다. 비바람이 몰아치기 전에 빨리 철거해야 합니다.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하여 우리 일정에 협조하신다면 대집행비용은 구에서 보조하는 것도 검토해 보겠습니다. 대신에 선생님이 해 주실 것이 있습니다. ‘무허가건물에 대한 권리 포기 각서 및 철거동의서’를 작성(부친이 하실 경우 위임장 추가)하시되 수도, 전기, 가스(LPG), 재래식 화장실 등은 사전에 조치를 해 주셔야 합니다.”

예상했던 대로 일은 쉽게 풀리지만은 않았다. 주인들에 대한 설득에서부터 서류 처리, 그리고 진정 민원과 부서간의 업무 교통정리 등. 철거 기간에도 민원은 쉬지 않고 이어졌다. 임시 배수시설을 만들었는데 흙탕물이 아랫집 하수구에 유입되었다는 민원과 철거 공간 바로 윗집의 담장이 기울어져 내려앉고 있다는 좀 심한 민원까지. 결국 추가로 옹벽까지 쳐 주어야 했다. 추가 비용까지 2천만 원이 소요되었다.

철거 소식을 들은 주민들은 앓던 이가 빠졌다며 크게 반겼다. ○○ 어린이집 인근 골목의 한 아주머니는 공사 현장에 옥수수를 쪄 왔다. 이제 가슴 졸이지 않고 살게 됐다며 너무너무 좋아하셨다. 현장을 감회 어린 눈으로 지긋이 바라보던 한 노인분이 있었다. 어르신은 이 동네에서 수십 년을 살며 통반장도 했다고 했다. 그리고 등골이 오싹한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이게 말이여 한 이십 년은 빈집으로 있었지. 우리 동네의 골칫거리였어. 십 년 전쯤에는 저기 끝 집에서 여대생 토막 살인사건까지 났던 곳이었거든. 시신은 냉장고에….”

공덕동 귀곡산장이 바로 이곳이었구나. 살인사건이 난 집이라 주민들은 어서 빨리 철거하고 녹지 쉼터 등 조성을 원한다는 말을 하며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결국 해당 건축물은 우기가 시작되기 바로 전인 7월 말에 대집행을 완료했다. 정신없이 휘몰아쳤던 사업이 마감되자 약간의 공허함이 찾아왔다. 다른 부서 직원들이 모두 기피했던 일이었지만 다른 이들보다 더 열정적으로 달라붙어 끝내 해결했다. 꼬박꼬박 봉급 받는 사람이면 당연히 해야 할 일. 하지만 마음 한구석의 서운함은 어쩔 수가 없었다. 왜 이런 감정이 드는 것일까. 내게 필요했던 것은 주변인들의 공치사였나? 단지 윗분들의 격려 한마디 없어서 섭섭한 것일까.

지장물이 모두 철거되고 본래의 속살이 드러난 벌건 대지가 탐스럽게 눈을 이글거리니, 이 터의 용처를 두고 정치꾼들이 여기저기서 달려들었다. 그리고 흔적도 없이 사라진 폐가의 부족으로 터를 확대해서 ‘△△ 제1-2 공영주차장’이 건립되었다.

퇴임을 앞둔 2022년 4월에 난 그곳을 다시 찾았다. 경사로는 완만해졌고 공영주차장 옆의 도로는 깔끔하게 포장되어 있었다. 그리고 여유 있는 걸음으로 산책을 하는 한 아주머니. 철거와 단속 업무. 분명 이 일은 사람의 극렬한 반대를 불러오기도 하고, 마음을 다치기 쉬운 일이다.

언젠가 한 건설노동자가 올림픽대교를 타고 가면서 한 교량을 가리키며 아이에게 말하는 장면을 TV에서 보았다. “그거 알아? 저거 아빠가 만들었어.” 누군가는 자신이 손으로 올린 건물과 다리로 자신의 청춘을 증명한다. 그리고 내 청춘의 기록은 흉물을 거둬 낸 새로운 대지, 그리고 그 위에서 펼쳐지는 변화의 모습들이다. 그러니 그 일이 지긋지긋해도 용케 버텨 여기까지 걸어오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