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정칼럼/ 정치인의 말은 정직해야 한다
시정칼럼/ 정치인의 말은 정직해야 한다
  • 임춘식 논설위원
  • 승인 2023.08.02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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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춘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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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춘식 논설위원

[시정일보] 요즘 신문·방송에서 정치 기사를 보면 짜증부터 난다. 정치인들의 말이 너무 거칠고 천박하기 때문이다. 누가 더하고 덜하고가 없다. 여야를 막론하고 시정잡배들이 쓰는 말을 함부로 내뱉곤 한다.

말이 거칠다고 해서 상대방이 항복하는 게 아니다. 언어가 거칠고 천박하면 행동도 따라간다.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은 국격(國格)과도 직결된다. 한국의 위상을 정치인들이 거친 말로 무너뜨리는 짓을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나. 너무나 혼란스럽다.

요새 정치판은 대화와 타협과 협상은 없고 이전투구식 싸움만 펼쳐지고 있다. 모든 것을 흑과 백으로만 구분하는 이분법적 사고뿐이고 회색은 없고 다양성과 포용성도 없다. 모든 것이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고 줄서기에 발버둥 친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만 존재하는 ‘내로남불’이라는 단어도 정치권에서 탄생시켰다. 거짓이 참이 되기도 하고 참이 거짓이 되기도 하는 사회, 누구 말이 맞고 누구 말이 틀린 것인지 헷갈리는 사회가 되어 버렸다. 자기 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불리하면 열성 조직원 동원과 정치 프레임으로 몰고 간다.

자신이 하는 일은 뭐든 옳고 관대하면서 남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정치인들, 어디서든 남의 잘못은 예리하게 지적하면서 정작 자기 잘못에는 변명하기에 급급한 정치인들, 심지어 남에게 잘못을 덮어씌우기까지 하는 적반하장뿐이다.

공자는 자신에게 엄하게 책망하고 남에게는 가볍게 한다면 원망을 멀리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고, 예수는 어찌하여 너는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끌은 보면서 제 눈 속에 들어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했다. 최소한 자기 잘못을 남 탓으로 돌리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한다.

정치는 그 본질이 사납고, 위험한 세계다. 그러나 정치가 꼭 갈등의 원천이기만 한 건 아니다. 역으로 정치는 갈등 해결을 촉진하는 활동이기도 하다. 꼭 싸우기 위해 정치가 있는 게 아니다. 싸움이 있기에 정치의 역할이 필요한 것이다.

최근 한국의 정치 언어는 지나치게 공격적이고 때로는 혐오스럽고 폭력적이다. 금도(襟度)를 벗어나고 있다.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살벌하고 섬뜩한 얘기들이 등장하고 있다. 상스럽고 혐오스러운 막말 행렬이 펼쳐지고 있다.

그런데도 정치인의 막말에 대해 언론이나 고매한 정치평론가들은 상당수가 그들의 계산된 발언이라며 정치공학적 전략쯤으로 치부하고 넘어간다. 이게 어디 정치인들이 할 말인가. 어린아이나 청소년들이 배울까 걱정된다. 선진국 문턱에 들어선 한국 뉴스는 외신도 주목한다. 외신 기자들이 한국 정치인들의 언어를 자국어로 옮길 때 어떻게 표현할까 생각하니 낯이 후끈거린다.

이제 정치인들은 신뢰부터 회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언어 순화부터 하시라. 말은 귀소본능(歸巢本能)이 있다. 법구경(法句經)에도 악담은 돌고 돌아 고통을 몰고 끝내는 나에게로 반드시 되돌아온다고 했지 않았던가.

말은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오지만 천 사람의 귀로 들어가고 만 사람의 입으로 옮겨진다. 퍼지는 속도가 코로나보다 빠르다. 정치인은 국민을 대표하는 리더다. 정치인의 언격(言格)이 곧 국격(國格)이 된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정치인이 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오가는 말에 독단과 독선이 넘쳐나는 세태에 정치인들이 휘말려 들면 안 된다. 품격을 내팽개치고 어떻게 해서든 표만 챙기려고 하면 민주주의가 바로 설 수 없다. 정치는 언어적 행위임을 정치인들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정치인의 말은 반드시 품격성, 공정성, 용이성, 소통성, 진정성, 정확성 등이 요구된다. △비속어나 욕설, 모욕, 갑질, 새빨간 거짓말 등 저속한 표현을 하는가 △상대의 말을 정확히 듣는가 △실천 가능성이 보이는 주장을 하는가 △상황에 맞는 어휘를 사용하는가 등이다. 아무리 정확하고 논리적이고 설득력이 있어도 진정성이 없다면 헛소리가 된다.

정치는 국민의 믿음을 얻는 것(民信)이 가장 중요하다. 국민에게 믿음을 얻지 못하면 나라는 설 수가 없게 된다. 무신불립(無信不立), 그러니까 아무리 훌륭한 정책이나 정치도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한다면 허사가 된다. 그래서 신뢰가 정치의 으뜸 덕목이다. 비단 정치뿐만 아니라 우리의 대인관계도 믿음이 가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스포츠에서도 믿음이 가는 선수가 되어야 한다.

중국 당나라 때 관료를 발탁하던 네 가지 기준인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는 말이 있다. 즉 용모가 준수하고, 말을 잘하고, 글을 잘 쓰고, 판단력이 정확하다는 정도의 의미일 것이다.

또 다산 정약용이 강진에 유배됐을 때 살던 집이 ‘사의재’(四宜齋)다. ‘네 가지를 마땅히 해야 하는 곳’이라는 의미이다. 생각은 담백해야 하고, 용모는 엄숙해야 하고, 말은 참아야 하고, 행동은 진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언서판과 사의재에는 모두 ‘말’이 포함되어 있다. 말의 중요성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특히 정치인은 말을 잘해야 한다. 정치는 말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인의 말은 진실을 담아야 하고 정직해야 한다.(한남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