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정칼럼/ “내 탓이오" 깨어나야 할 정치인
시정칼럼/ “내 탓이오" 깨어나야 할 정치인
  • 시정일보
  • 승인 2023.08.07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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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춘식 논설위원
임춘식 논설위원
임춘식 논설위원

[시정일보] 중학생 시절 어른들의 손에 이끌려 성당에 다닐 때, 미사 중에 가슴을 세 번 치면서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큰 탓이로소이다”라고 외며, 고백의 기도를 했던 기억이 새롭다. 요새는 이 기도문이 “제 탓이요, 제 탓이요, 저의 큰 탓이옵니다”라고 바뀌었다.

평생을 살면서 내 마음이 메마르고 외롭고 부정적인 일로 인해서 어려움에 직면할 때마다 늘 다른 사람을 보았다. 다른 사람을 탓하면서 나를 위로하곤 했다. 이제야 남 때문이 아니라 내 속에 사랑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좋지 않은 일이 있을 때마다 우리는 누구를 먼저 탓한다. 그래서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 그 마음에 미움만 쌓였다. 좋은 일이 있을 땐, '덕분에', 좋지 않은 일이 있을 땐 '괜히 저 때문에'라는 말로 시작한다면 따뜻한 일상이 될 수 있다. 과거의 탓, 남의 탓이라는 생각을 버릴 때 인생은 호전된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성찰과 반성의 목소리는 듣기 힘들어졌다. 잘못을 남의 탓으로 돌리고 반목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사회도 서로 믿지 못하는 불신 풍조가 만연되고 윤리와 도덕이 타락할 대로 타락했기 때문에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살피고 해결 방도를 찾아야 할 때이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든 티는 보고 내 눈 속에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마태복음 7~3)고 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처럼 자기 잘못은 깨닫지 못하고 남의 잘못만을 비난하는 사회 분위기에 앞장서서 반성하자는 범국가 차원의 국민운동이라도 전개해야 할 판이다. 그렇지 않고는 이 사회의 바람직한 모습은 기대할 수 없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을 만큼 정치 사회 모든 분야에서 혼돈과 갈등을 겪는 것은 사회에 만연된 너나 없는 ‘네 탓’ 풍조 때문이 아닐까. 작게는 가정에서부터 지역사회, 국가에 이르기까지 모든 잘못은 오로지 ‘너 때문이야’라는 ‘네 탓 병’이 만연하고 있다.

‘잘 되면 내 탓 못되면 조상 탓’이라는 고약한 속담마저 있을 정도이니 남을 탓하는 못된 폐습은 이미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 세상 나와 관련된 모든 일은 나로부터 비롯된다. 불가에서 업보(業報)를 강조함도 그 때문이요, 유가의 일체유아(一切由我) 역시 모든 일은 나로 말미암아 생긴다는 성찰의 의미일 터이다.

내 책임은 항상 그럴듯한 핑계 속에 숨어 버리고 언제나 남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길게 남는다. 사람이 가장 하기 어려운 말이 “내가 잘못했습니다.”라는 말이다. 이 말을 분명히 할 수 있는 사람은 신뢰와 존경을 받을만한 인격자이다

요새 정치판 보면 한심스럽다. 하물며 대통령이 자신의 미숙한 국정운영은 부끄러워하지 않고 야당을 원망하는 데 익숙해져 있고, 야당 대표라는 사람 또한 사사건건 대통령 헐뜯기를 아이 나무라듯 즐기고 있지 않은가, 대통령이, 야당 대표가 그리하건대 장삼이사(張三李四)의 보통 사람들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우리 정치인들은 특히 남의 탓들만 하고 있으니 큰일이다. 대통령이 됐든, 국회의원이 됐든, 시어머니가 됐든, 며느리가 됐든, 서로 먼저 내 탓을 인정하고 겸허하게 통회(痛悔)할 때 국가이든 가정이든 화평을 누릴 수 있다. 다 같이 한번 가슴을 치면서 소리쳐보자.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탓이오”라고 말이다.

여당은 야당의 탓, 야당은 여당의 탓, 정치인은 언론 탓, 언론은 정치 탓, 사장은 사원 탓, 근로자는 사용자 탓, 어른들은 젊은이 탓, 젊은 세대는 늙은 세대 탓, 자식은 부모 탓, 못난 제자는 스승 탓 등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된다고 자신을 한 번이라도 되돌아보자.

정치적 경쟁자는 이미 청산되어야 할 적(敵)이 된 모양세다. 상대방이 집권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말은 단순히 선거운동의 수사학이 아니다. 분열과 대립이 정치적 숙명이 되어버린 한국 사회에서 사회통합은 헛된 희망처럼 보인다. 요사이 말끝마다 대통령은 카르텔, 카르텔을 말하고 있는데 아니 사법 카르텔, 기득권 카르텔은 없는지 자문자답해 보시라.

전쟁과 같은 우리 정치는 타협과 협상의 자리에 독선과 독재를 세워놓은 것처럼 보인다. 대통령이 수시로 말한 공정과 상식과 정의가 살아 있는 정부인가. 여야는 서로 전, 현 정권 탓이라고 공격하며 싸우기만 한다.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근본 원인과 그 구조를 밝히고 대책을 세워야 할 상황에서 엉뚱하게 서로에게 책임을 씌우기 위한 여야 간 물불 안 가리는 정쟁 때문에 국민이 피해를 봐서야 되겠는가.

문제는 이러한 한국의 극단적 대립정치가 우리 사회를 두 동강으로 분열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는 지지 정당이 다르거나 사회적 문제에 대한 의견이 다르면 사람들은 서로를 불편해한다. 정치적 입장이 서로 같지 않으면 말을 섞기도 싫은데 하물며 술과 식사 자리를 함께한다는 것은 어림없는 일이다.

또한 지지하는 정당이 다르면 결혼도 꺼려질 정도로 사랑도 결코 정치적 성향의 차이를 넘지 못한다. 화목한 가족의 식탁에서도 정치 얘기로 서로 얼굴을 붉히는 일이 적지 않다. 사회를 두 동강 내는 것은 바로 정치인 것이다. 결국 정치권은 국민을 ‘편 가르기, 갈라치기’ 하면서, 정치혐오와 국민 분열을 조장해 버렸다.

한 사람이 길을 가다가 다치는 데도 여러 가지 요인이 동시에 영향을 미친다. 그런 사실을 무시하고 정치적 반대진영에 모든 책임을 몰아 씌운 채 정죄하고 저주하는 저급한 광기(狂氣)에서 이제라도 벗어나야 한다. 어떤 일이 일어났건 사태의 모든 당사자가 각자의 자리에서 ‘내가 무엇을 잘못했나’,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게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나’를 조목조목 치열하게 성찰하고 실천하는 게 제대로 된 사회의 모습이다.

'내 탓' 과 '네 탓'은 글자로는 불과 한 획의 차이밖에 없지만, 그 품은 뜻은 별자리들 사이만큼이나 서로 멀다. 내 것과 네 것을 구별하지 못하면 내 탓과 네 탓도 구별하지 못한다. 네 탓은 물론이고 '내 탓'도 모두 네 탓'이 된다. 이제 정치인들이 솔선하여 네 탓이 아닌 ‘내 탓이오‘라고 깨어나야 한다.(한남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