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정 인문학광장#31 웅녀의 기도
시정 인문학광장#31 웅녀의 기도
  • 이재영 | ㈜뉴런 대표이사, 수필가
  • 승인 2023.08.22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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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영 | ㈜뉴런 대표이사, 수필가
이재영
이재영

[시정일보] ‘코로나 19’ 백신 예방접종 실시 100일째다. 접종률이 14%고 치사율도 60%나 급감했으며, 60세 이상 접종 예약률이 80%를 넘어섰다고 한다. 이대로 간다면 9월 하순 추석에는 온 가족이 오랜만에 둘러앉아 즐거운 한가위를 맞을 것 같단다. ‘백일기도’처럼, 석 달도 아니고, 열흘 더 많은 ‘백일’에 의미가 부여되는 건 무슨 까닭일까?

나는 40대 중반에 사업에 실패하여 살던 집을 날린 적이 있다. 대기업 연구소에서 통신장비를 개발하다 나와 개인 사업체를 차렸는데, 자금 사정이 어려워지자 집을 가등기 해주고 사채를 빌려 썼다. 그런데 제때 갚지 못하자 소송을 당했고, 재판에 진 어느 날, 아침 식전에 집달리가 들이닥쳐 가재도구를 모두 복도에 들어냈다.

아버님과 아내, 두 아들은 친척과 지인의 집으로 뿔뿔이 흩어졌고, 나는 마땅히 갈 곳이 없어 회사 사무실에서 숙식하며 지냈다. 직원들이 퇴근하면 잔업 하는 척 남아서 냄비 밥을 지어 먹고, 양말 빨아 난롯가에 말리며, 2월 초순의 추위에 의자 네 개를 연결하여 그 위에서 잠을 자야 했다. 취침 전까지 서너 시간을 그냥 보낼 수 없어 시름을 잊을 겸 ‘양방향 증폭기’라는 새로운 제품 개발에 몰두했다.

가족들과 헤어져 돈에 쪼들리며 그렇게 한 석 달 지내다 보니, 잘 나가던 지난 시절이 생각나며, 이렇게 살아서 뭐 하나 싶은 별의별 유혹이 다 들었다. 그러나 죄도 없이 고생하는 가족들 생각에 이를 악물고 버티며 개발에 몰두했다.

그러고 얼마 후에 여유가 생겨 닭장 같은 단칸 월세방을 얻어 들어갔는데, 방바닥에 누워 헤아려보니 등 대고 누운 지 꼭 100일 만이었다. 그때 연구 개발했던 ‘동일 주파수 동시 양방향 증폭기’를 특허 출원하여 유효기간 15년짜리 발명 특허를 등록했다. 그 후 그 제품으로 10년 넘게 작은 제조업체를 운영하며 수십 명을 먹여 살렸다. 회사 사무실에서 먹고 자며 올린 ‘백일기도’가 좋은 결과를 가져온 셈이다.

그 후로 나는 욕심을 버리고 몸과 마음을 다 바친 진실한 기도는 현실적으로 효험이 있다고 믿게 되었다. 그래서, 어쩌다 심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절에 가든 교회서든, 아니면 집에서라도 한번, 마음을 다한 기도를 올려보라고 권하고 싶다.

동굴 속에 함께 살던 범과 곰이 인간이 되길 기원하자 환웅이 신령스러운 쑥 한 다발과 마늘 20개를 주며 “너희는 이것을 먹되 햇빛을 100일 동안 보지 않으면 사람의 형상이 되리라.” 하였다. 범과 곰은 그것을 먹고 금기하였는데, 범은 못 지켰지만 곰은 잘 지켜 삼칠일(21일) 만에 여자가 되었다는 단군 설화가 있다.

사람이 제아무리 강한 척해도 만만치 않은 세상살이가 결코 인간의 뜻대로 순조롭게 돌아가지만은 않는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급작스레 발생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져서 회생 불가능한 처지에 놓이기도 한다. 나약한 인간이 그런 헤어날 수 없는 절박한 상황에 부닥쳤을 때, 인간보다 능력이 뛰어나다고 생각되는 어떤 절대자에게 간절히 소원을 빌면 분명히 그 소원이 이루어질 것이다.

홀연히 나타난 전염병으로 전 세계적인 팬데믹을 겪었지만, 인류는 좌절하지 않고 의기투합하여 드디어 그 질병을 격퇴할 목전에 다다랐다. ‘코로나 19’의 극복을 위해 미련한 웅녀의 기도가 필요했던 시기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새로운 역병은 벌써 여러 가지 변이를 일으켜 더 무서운 기세로 전파되고 있다. 잘 다스려진다 해도 완전히 퇴치되지는 않고, 독감처럼 우리 주변에 상존하며, 언제든 고개를 쳐들고 덤벼들어 범유행을 일으킬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배려와 공감의 지성을 지닌 우리 인간은 미련한 곰처럼, 관계부처의 지시를 잘 따르며 규정을 준수하여, 힘든 시기의 어떤 역경도 참아내고 어두운 터널이 속히 끝나기를 기도하며 기다려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