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의창#43 Just do it
공무원의창#43 Just do it
  • 양승열 전 서울 마포구 국장
  • 승인 2023.08.21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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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열 전 서울 마포구 국장
양승열
양승열

[시정일보] 이 일을 하다 보면 다양한 재능을 가진 직원을 만나게 된다. 직장에 들어와 10년 차 정도 되었을 때 기존의 방식을 혁신하는 실력가로 성장하기도 하고, 좋은 스펙과 열정을 가지고 들어왔지만 관성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대부분은 자신이 맡은 업무에선 펑크 내지 않는 수준의 전문성을 지니게 된다.

그런데 자기 업무에 대해서만 잘하는 이를 과연 실력가라고 할 수 있을까? 적어도 내게는 아니다. 칸막이를 넘어 유연한 사고로 기존의 지식을 새롭게 응용해서 현장의 문제에 답을 주는 사람이 능력자다. 그리고 어떤 경우엔 가진 재능이 없어도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만으로도 일은 진척된다. 흐름을 읽으면 돛 하나 올려 사람도 얻고 예산도 확보할 수 있다.

2021년 상암동장 시절 내게는 서무주임이 있었다. 당시 팬데믹으로 모든 사업이 중단되자 우린 의기투합했다. 사실 아무런 새로운 사업을 하지 않아도 누가 뭐라 할 수 있는 시국은 아니었다. 다만 그와 나는 생각이 통했다. 이럴 때 적극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

상암동은 월드컵을 전후로 아파트가 들어서고 디지털미디어시티에는 방송타운이 조성돼 눈부신 발전이 있었지만 그 그림자도 있었다. 주거환경개선지구, 바로 올드 타운이다. 주민 일부는 주거환경개선 사업에 호응하지 않았기에 동네는 구석진 시골 같은 낡고 어두운 분위기였다. 신도시와 연결할 그 무엇이 필요했다.

첫 번째 프로젝트로 DMC에 있는 서울산업진흥원(SBA)과 협업(SBA부담)하여 비 예산으로 구시가지 맛집 지도인 ‘거슐랭(거인+미슐랭 가이드) 가이드북’ 1,000권을 제작·배포(2020. 4~9월)하였다. 반응은 과히 폭발적이었다. 수요가 많아 다시 2쇄 1,000권을 추가로 찍었다. 중앙일보 등 11개 언론에서 보도되었다. 이에 고무된 부구청장은 주요업무보고회(2021. 09. 22)에서 ‘거슐랭가이드’를 손으로 들어 보이면서 말했다.

“사소한 것 같지만 이런 것이다. 공무원이 만들어졌다고 믿어지지 않는다.”

소통과 혁신의 우수사례로 언급한 데 이어 며칠 후 구청장님도 보행환경 개선구간 라운딩을 하면서 치하했다.

두 번째 프로젝트로 6개월 후 상암동 올드 타운을 활성화하기 위해 공식 도로명이 아닌 친숙하게 부를 이름을 주민과 이용 시민에게 공모했다. 당시 구 본청에서 발주한 ‘DMC~상암동 구시가지 보행자 중심의 연결도로 환경 개선사업’이 진행 중이었기에 시기가 적절했다. 응모한 230건 중 ‘상암하늘미디어길’로 선정하였다.

도로 환경 개선사업의 마지막 순서인 보행 환경 개선은 보도와 차도의 구분이 없는 상암동 구시가지 생활도로의 보행자 안정성을 확보하고 차량의 주행속도 저감을 유도하여 교통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사업으로, 노면 평삭 후 축구공 패턴의 디자인 도막을 포장하는 것으로 마무리하였다. 마침맞게 시민 공모하여 선정한 친숙한 길 이름인 ‘상암하늘미디어길’ 글자를 축구공에 넣어 스템프를 찍었고 양방향 표시까지 하였던 것이다. 그것도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이렇게 차려진 밥상에 두 번째 숟가락을 얹었다. 비예산으로 화룡점정! 이것 역시 별도로 추진하였으면 돈이 얼마나 들었을꼬?

세 번째는 팬데믹 기간, 장기 휴지기를 활용해 상암동주민센터를 대대적으로 정비한 것이다. 사무용 집기 등 쌓아 놓은 물건이 고물상 같았던 주민센터 옥상에 녹지를 조성하고 주민과 직원들이 편히 쉴 수 있는 러브하우스를 꾸몄다. 시기도 적절했다. 다른 곳에서 코로나로 인해 사업을 못 하니 예산을 따오기도 한결 수월했다. 총예산 2천만 원가량이 들어갔지만, 찔끔찔끔 두어 번 하는 것보다 한 번에 제대로 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었다.

기업과 마찬가지로 공무원의 업무도 누가 맡느냐에 따라 성취 정도는 크게 차이 난다. 전임으로부터 업무를 인계받을 때 난 곳간을 연상한다. 적어도 1년 넘게 그 일을 했다면 곳간은 각종 곡식으로 잘 정돈되어야 있어야 한다.

하지만 곳간 열쇠와 장부를 받아서 곳간 문을 열면 두터운 먼지 가득한 공간에 양곡이 썩어 가고 있는 것을 확인할 때도 있다. 장부와 품목은 맞지 않고, 먹을 수 없는 음식도 양호한 곡식으로 분류해 놓은 것이다. 난 세상과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 즉 세계관에서 이 모든 것들이 차이 난다고 생각한다. 팬데믹 시절엔 이러한 차이가 더욱 잘 보였다.

Just do it. 그냥 하라고 했다. 몸을 먼저 들이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