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정칼럼/ 칼 든 미친 사람 갑자기 안 생긴다
시정칼럼/ 칼 든 미친 사람 갑자기 안 생긴다
  • 시정일보
  • 승인 2023.08.22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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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춘식 논설위원
임춘식 논설위원
임춘식 논설위원

[시정일보] 서울 신림역,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에 이어 신림동 대낮 성폭행 사건에 이어 지하철 흉기 난동, 칼부림 예고 등 흉악 범죄가 잇따르면서 근래 시민 불안이 커지고 있다. 집 나설 때 호신 장비를 챙긴다. 인기척에 둔감해질까 봐 늘 끼고 다니던 이어폰을 빼고 다닌다고 할 정도다.

‘묻지 마 흉기 난동’ 사건 이후 살인 예고 글이 쏟아지고 실제로 모방 범죄가 이어지고 있다. 관심을 갈구하는 영웅심리의 발현과 절대 붙잡히지 않을 거라는 젊은 층의 안일함이 그릇된 사회 풍토를 낳고 있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과 양극화 탓에 분노를 매개로 한 범죄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한국 사회는 이제 규범과 제도의 설 자리가 좁아지면서 누구나 불만이 커진 분노 사회가 됐다. 묻지 마 범죄는 이를 해결할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타인을 희생양 삼는다는 점에서 일종의 ‘사회적 테러’인 것이다

묻지 마 범죄는 없다. 동기가 없으니 예방할 수 없는 것처럼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이상동기( 異常動機: 정신질환형, 현실불만형, 만성분노형) 사회를 향한 적대감이나 남에 대한 분풀이로 전혀 상관없는 사람을 때리는 묻지 마 폭행 사건이 전국에서 매일 3건씩 발생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정신질환 방치해 비극 불렀다? 망상으로 인한 사건이 맞는다면 증상 변화가 나타났을 때 적절한 치료로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조현성 성격장애는 물론 조현병도 범죄로 직결되는 것은 아닌 만큼 범죄의 원인을 피의자의 정신질환에 초점을 맞춰 찾는 것에는 신중해야 한다.

정신질환을 원인으로 본 것과 달리 소외형 아노미 현상이다. 병 때문에 저렇게 됐으니, 병만 치료하면 된다는 식의 접근이나 정신 질환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묻지 마 범죄, 예전에도 더러 있었다. 세상이 나한테만 불공평하다는 느낌이 사회 경제적으로 뒤처진 남성들의 범행 동기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장기적으로 빈곤하고 고립된 청년들에게 기본 소득 등 재정 지원을 하거나 직업 교육을 강화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제 우리나라도 그런 이들이 벌이는 예측 불가의 테러 공포에서 벗어나지 않은 사회가 되고 있다. 해마다 늘어나는 묻지 마 범죄는 살인 등 중범죄가 80% 이상을 차지한다. 사이코패스의 난동이란 시각에서 벗어나 어떻게든 대응에 나서야 할 때다

‘외로운 늑대’(Lone wolf)는 사회에 속해 있지만 고립된 상태에서 불만과 분노를 키우다 반사회적 범죄자가 된 이들을 말한다. 그동안 비교적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던 우리 사회의 치안이 흔들리자 국민은 불안해하고 있다.

외로운 늑대는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랜 기간 불만과 분노와 일탈이 누적된 결과물이며, 그 과정에서 사회 시스템이 포착하고 제어할 수 있는 틈을 찾아내야 한다. 당장 이번 사건부터 심리 부검에 따르는 분석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외로운 늑대 테러가 발생할 때 단체에 의한 테러 못지않게 피해가 크다. 또 개인이 혼자서 테러를 감행하다 보니 당국에서 공격 시점과 방법에 대한 정보를 예측하고 추적해 나가기 어렵다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외로운 늑대 테러는 범행을 통해 파급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의도가 있어서 백화점·지하철 등 다중이용시설이나 다중운집 행사장이 주 표적이 될 수밖에 없다.

어쨌든, 묻지 마 테러를 가중 처벌하는 입법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정신 질환자 관리 체계나 경쟁 사회에서 낙오한 이들에 대한 사회 안전망에 허점이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잔인한 폭력물로 넘쳐나는 한국 영화와 방송이 이런 범죄를 조장하는 것은 아닌지도 논의할 필요가 있다.

요즘 연이어 발생하는 이 사건들이 치료와 관리만 잘 이루어졌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비극이다. 환청, 망상, 사고 장애 등 조현병 환자에게 나타나는 급성 증상인 양성 증상은 약으로 관리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하기 때문에 더 나빠지기 전에 조기에 치료받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하지만 문제는 치료에 손을 놓고 있는 정신 질환자들을 관리해줄 국가 차원의 체계적인 시스템이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정신 질환자를 강제로 입원시키려면 절차가 꽤 까다롭다. 현행법상 정신 질환자를 비(非)자의, 다시 말해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입원시키는 방법으로 △보호자 2명 이상의 신청 △서로 다른 병원에 소속된 전문의 2명 이상의 일치된 소견 △경찰과 의사 동의로 3일 입원하는 ‘응급 입원’ △전문의 진단에 따라 지방자치단체장이 명령하는 ‘행정 입원’ 등이 있다.

미국과 유럽, 대만은 자해·타해 우려가 있는 정신 질환자를 발견하면 경찰, 소방이 의료기관까지 책임지고 이송해야 한다. 이웃 일본도 신고가 접수되면 지자체가 전문의를 집으로 보내 상태를 평가한다. 우리나라는 정신건강복지법 응급 입원 규정에 따라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 이상 격리 조치를 할 수 없다. 정신건강복지센터가 할 수 있는 조치는 환자를 설득하는 방법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비자 입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보호의무자 입원과 의무조항의 폐지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초기 현장 대응 인력에 적절한 권한을 부여하고 경찰에 의한 병원 이송 또는 찾아가는 평가를 제도화해야 한다고 치료에만 중점을 두기보다 예방·조기 발견-치료 내실화-일상 복귀·퇴원 후 체계적 지원 등 전 주기적으로 관리하는 방안을 조속히 만들어야 한다.

가난과 사회적 편견으로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문제를 오직 경찰만의 힘으로 해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지역주민을 가까이서 접하고 인적, 물적 지원이 가능한 지방자치단체, 외국인 체류 관리를 담당하는 법무부, 노사정책을 수립하는 노동부 그리고 교육·문화·자활을 지원하는 복지단체와 종교단체 등 사회 모든 구성원이 관심을 기울일 때 테러로부터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한남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