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 디 / 역대급 초긴축 내년 예산안, 옥석 가려내야
한 마 디 / 역대급 초긴축 내년 예산안, 옥석 가려내야
  • 박근종 서울시자치구공단이사장연합회 회장
  • 승인 2023.09.07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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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종 서울시자치구공단이사장연합회 회장
박근종 서울시자치구공단이사장연합회 회장
박근종
서울시자치구공단이사장연합회 회장

[시정일보] 정부는 지난 8월 29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2024년도 예산안’을 올해 638조 7,000억 원보다 2.8% 늘어난 656조 9,000억 원 규모로 확정했다. 올해 증가율 5.1%나 지난 정부 연평균 8.7%와 비교하면, 나라 살림 허리띠를 바짝 조인 것이다. 이는 정부가 총지출 개념을 예산 편성에 도입한 2005년 이후 19년 만에 가장 작은 증가 폭이다. 정부의 내년도 경상 경제성장률 전망치 4.9%를 한참 밑도는 초긴축 예산안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전 정부가 푹 빠졌던 ‘재정 만능주의’를 단호하게 배격하고, 건전재정 기조로 확실하게 전환했다.”라고 밝혔다. 또 “선거 매표 예산을 배격해 절약한 재원으로 서민과 취약계층, 사회적 약자를 더욱 두텁게 지원하겠다.”라고 강조했다.

지난 정부에서 코로나19 팬데믹 극복을 위해 불가피하게 적극재정 운용으로 국가채무가 400조 원이나 늘어나면서 재정건전성이 크게 흔들리고 민간 경제의 활력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국면에서 긴축을 통해서라도 재정건전성을 지키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바람직해 보인다. 하지만 한국 경제가 특별한 위기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1%대 초반의 저성장을 맞고 있다. 지난 8월 14일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바클레이즈·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BoA-ML)·씨티·골드만삭스·JP모건·HSBC·노무라·UBS 등 8개 주요 외국계 투자은행(IB)이 지난달 말 기준 보고서를 통해 밝힌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 평균을 1.1% 내로 전망한 데 이어 내년 성장률 전망치 평균 마저 1.9%로 집계했다. 2년 연속 1%대 성장률을 기록한 적은 없었다. 이러한 한국 경제의 ‘흙빛 전망’ 상황에서 과도한 긴축이 경기회복에 오히려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완전히 떨쳐버리기도 단연코 쉽지는 않다.

게다가 ‘2024년도 예산안’에 따르면 내년도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통합재정수지는 44조 8,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 역시 올해 13조 1,000억 원보다 3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조사됐다. 내년도 정부 총지출이 올해 638조 7,000억 원에서 656조 9,000억 원으로 2.8% 늘어나지만, 총수입은 올해 625조 7,000억 원에서 내년 612조 1,000억 원으로 2.2% 감소하는 데 따른 것이다. 내년도 관리재정수지는 92조 원 적자를 낼 것이라 전망됐다. 올해 목표치 58조 2,000억 원보다 33조 8,000억 원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관리재정수지는 통합재정수지에서 국민연금 등 4대 사회 보장성 기금 수지를 차감해 정부의 실질적 재정 상태를 보여주는 지표다. 국민 소득에서 세금이 차지하는 정도를 나타내는 조세부담률은 올해 23.2%보다 2.3%포인트 낮아진 20.9%로 전망됐다. 

그동안 현 정부는 미래 세대에 부담을 떠넘기는 적자 국채 발행은 최대한 억제하고, 선거 매표용 돈 풀기 정책은 안 하겠다고 누누이 밝혀 왔다. 그런데 내년 예산안은 말과 행동의 괴리를 보여주고 있다. 정부는 올해 경기침체로 내년 세수가 33조 원이나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수입보다 지출이 92조 원이나 많은 적자 예산을 편성했기 때문이다. 내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도 올해 2.6%에서 내년 3.9%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정부가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재정 준칙 기준인 ‘재정적자 GDP의 3% 이내’를 훌쩍 넘어선다. 건전재정 기조로 전환했다고 보기엔 아직 많이 어색한 수준인데 이는 경제 여건이 그만큼 순조롭지 않은 탓에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건전재정 기조와 현재 재정에 대한 수요, 국민의 기대 등을 종합하여 고민 끝에 나온 답이 2.8% 증가”라고 밝혔다. 재정적자를 3% 이내로 묶으려면 내년 예산을 10% 이상 삭감해야 하지만, 어려운 경제전망과 필수 민생 예산 확보를 위해 절충점을 찾아야 했다는 뜻이다.

이뿐만 아니라 부자 감세와 경기 예측 오류로 최악의 세수 펑크를 자초한 현 정부가 내년도 예산안을 편성하면서 가장 크게 삭감한 항목이 바로 연구개발(R&D) 분야다. 올해 31조 원보다 16.6%나 줄어든 25조 9,000억 원을 배정했는데, 연구개발 예산이 줄어든 것은 관련 통계를 작성한 1964년 이래 사실상 처음이라고 한다. 특히 미래 먹거리 투자인 기초연구 예산이 6.2% 삭감된 것에 대해서도 연구계의 실망과 함께 우려가 크다. 그동안 우리는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코로나19 팬데믹 등 외부 충격으로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때도 연구개발(R&D) 예산만은 오히려 늘려왔다. 지금 당장 어렵더라도 미래를 위한 투자만은 줄이지 않았다. 

내년은 국회의원 총선이 있는 해임에도 눈앞의 의석보다 ‘재정 만능주의’ 타성을 차단하기 위해 예산 증액을 최소화했다는 충정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재정 확대와 긴축은 당시 경제 흐름을 고려해 신중히 선택하고 무겁게 결정해야만 경제성장과 재정건전성 강화에 도움이 된다. 내년 경제성장률이 2%대 초반에 머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가운데 정부가 재정 지출을 줄인다면, 경기침체 탈출 시기가 오히려 늦어질 수밖에 없다. 올해 2분기 정부가 지출을 줄인 탓에 0.6% 성장에 그쳤다는 추산은 이를 방증하기에 충분하다. 이는 세수 감소로 이어져 올해 상반기 재정적자는 83조 원으로 올 한 해 예상 적자 58조 원을 이미 훌쩍 넘어섰다. 상반기 재정적자 규모가 연간 관리 목표치를 43.1%나 초과한 셈이다. 

재정 지출을 통한 경기부양 요구는 더욱 커지고 있는데 정부의 재정 긴축이야말로 경기회복을 더디게 할 뿐만 아니라 재정건전성마저도 악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 국가재정 운용은 재정적자 비율이나 국가부채 비율을 낮추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재정이 지속 가능한 범위에서 국가가 해야 할 일을 제때 제대로 하는 것이 중요한 관건이다. 정부는 필요한 지출 분야 선택과 집중을 통해 이런 우려를 지우겠다고 약속했다. 따라서 정부는 약속대로 ‘경제회복’과 ‘재정건전성’이란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 민생을 살리고 미래 세대의 짐도 덜어줘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는 재정 역할을 키워 민생과 취약계층을 더욱 살펴야 한다. 국회도 힘 떨어진 경제 ‘펀더멘털(Fundamental │ 기초체력)’ 회복과 국민의 삶에 최우선을 두고 국회의 심의과정에서 저성장의 고착(固着)이 없도록 옥석(玉石)을 가려내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철저히 심의해야만 한다.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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