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문제는 나잇값이다
기고/ 문제는 나잇값이다
  • 임동준 주)동성산업 회장
  • 승인 2023.09.12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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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준 주)동성산업 회장
임동준 회장
임동준 회장

[시정일보] 내 나이도 어느덧 93살이다. 해가 바뀌면 자연스레 나이를 먹지만 나이 드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더라. 변화하는 몸을 어떻게 대할지, 과거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지나온 시간과 관계를 이어가는 방법은 무엇일지, 놓지 못하고 꾸역꾸역해내는 일들을 도대체 몇 살까지 해야 할지, 이렇게 나이 드는 게 도대체 나와 세상에 어떤 의미일지 등등. 일단 나이를 떠올려 생각을 시작하면 삶과 세계 전체가 나이를 축으로 놓이고 복잡한 상관관계가 예상하지 못한 그래프를 그리며 하루하루를 산다.

요즈음 90에 접어든 친구들과 가끔 만나 나이 듦의 대화를 나눈다. 우정, 회고, 은퇴, 사랑, 빈곤, 나눔 등 고대부터 오늘까지 이어진 나이 듦의 주제를 각자의 문제의식과 학문적 경향을 바탕으로 풀어낸다, 그리고 나이 듦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것들을 지혜롭게 맞이하는 태도와 필연적으로 따라오지 않지만 필요하거나 희망하는 것들을 관계와 공동체 속에서 현명하게 다루는 방법을 깊고 넓게 살핀다.

무엇보다 대화를 나누는 친구들과의 사려 깊은 자세와 우아한 말투, 품격 있는 사유에서 '지혜롭게 나이 든다는 것'이 어떤 모습인지 확인할 수 있으니, 올해가 지나기 전에, 그러니까 한 살 더 나이가 들기 전에 나 자신을 반추한다.

문득 남은 인생,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한다. 나이가 들면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요즘 틈틈이 선인들이 남긴 묘비명을 읽으면서 나의 삶을 정리하곤 한다. 아니 나의 묘비명은 무어라 써야 할까?

백년 전쟁 때 영국의 태자였던 에드워드(1330-1376)의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지나가는 이여! 나를 기억하라! 지금 그대가 살아있듯이 한때는 나 또한 살아 있었노라! 내가 지금 잠들어 있듯이 그대 또한 반드시 잠들리라”

어느 성직자의 묘지 입구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다. “오늘은 내 차례, 내일은 네 차례”라고 적어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유럽을 정복한 알렉산더대왕(BC356-323)은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 “내가 죽거든 나를 땅에 묻을 때 손을 땅 밖으로 내놓아라. 천하를 손에 쥐었던 이 알렉산더도 떠날 때는 빈손으로 갔다는 것을 이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 주기 위함이다.”

유명한 헨리 8세의 딸로서 왕위에 오른 엘리자베스 1세(1533-1603)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 훌륭한 정치 수완을 발휘해 영국의 왕정을 반석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그 역시 묘비명에는 다음과 같은 짧은 말을 남겼다. “오직 한순간 동안만 나의 것이었던 그 모든 것들!!”

임마누엘 칸트(1724~1804)는 수십 년 동안 규칙적으로 산책했다. 사람들은 그가 산책하는 것을 보고 시간을 짐작했다고 한다. 그랬던 칸트도 임종이 가까워지자 침대에 누워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물며 먹을 수도 없었다. 하인은 칸트가 목이 마를까 봐 설탕물에 포도주를 타서 숟가락으로 조금씩 떠먹였다. 어느 날 칸트가 더는 그것을 마시고 싶지 않다는 뜻으로 “인제 그만”이라고 말했다. 그것이 칸트가 남긴 마지막 말이다.

최근 교보문고가 발표한 세계문학 선호도 조사 결과에 따르면 50~60대가 꼽은 1위작이 ‘그리스인 조르바’였다. 저자 니코스 카잔차키스(1869-1941)가 건네는 자유와 해방의 목소리가 좋았나 보다. 그의 뜻은 묘비명에 잘 나타나 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몇 년 전 시애틀 타임스는 6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여성 작가 제인 로터의 부고를 실었는데 이 부고를 쓴 사람은 바로 작가 자신이었다. 그는 삶이란 선물을 받았고 이제 그 선물을 돌려주려 한다면서 남편에게 쓴 유언에 “당신을 만난 날은 내 생에 가장 운 좋은 날이었다”라고 전했다. 죽음 앞에서도 의연하고 살아있는 사람을 배려하는 모습이 감동을 준다.

중국의 동산(洞山) 선사(홍인 601-674)는 살아 있을 때는 철저하게 삶에 충실하고 죽을 때는 철저하게 죽음에 충실히 하라고 가르쳤다. 그가 죽기 전 남긴 말은 다음과 같다. “이생은 멋진 여행이었다. 다음 생은 어떤 여행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이 밖에도 많은 묘비명이 있지만 제일 충격적인 것은 버나드 쇼(1856~1950)의 묘비명이다. 그는 1950년 사망할 때까지 극작가, 평론가, 사회운동가 등으로 폭넓은 활동을 하면서 1925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당시 인기 절정이었던 무용가 덩컨(1878-1927)이 “저와 같이 뛰어난 용모의 여자와 당신처럼 뛰어난 자질의 남자가 결혼해 2세를 낳으면 훌륭한 아기가 태어날 것”이라며 구혼의 편지를 보내오자, 버나드 쇼는 “나처럼 못생긴 용모에 당신처럼 멍청한 아기가 태어날 수도 있지 않겠소”라며 거절했다.

이렇게 오만함과 익살스러움으로 명성을 떨쳤던 버나드 쇼는 94세까지 장수하며 자기의 소신대로 살았다. 하지만 그가 남긴 묘비명이 충격적이다. “내 우물쭈물하다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 그는 동서양에 걸쳐 명성을 떨치고 의미 있는 삶을 살다 간 문인이요, 철학자며 노벨상까지 받은 인물이다. 이런 사람이 자기의 삶을 되돌아보며 우물쭈물했다고 자평한 것이다. 그도 삶의 마지막 순간에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고 살았다고 후회했을까?

세월은 이처럼 유수같이 흘러간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더 빨리 지나갈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영원히 살 것처럼 생활하다가 임종이 다가와서야 쩔쩔매며 후회한다. 먼저 살았던 사람들의 묘비명이 그것을 말해준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그들이 알려주는 조언을 듣고 똑같은 후회를 반복하지 않도록 준비하는 것이다. 자신이 사후에 어떻게 기억됐으면 하는지 생각해 보는 것도 좋다. 남은 생은 그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과정이다. 바쁜 일상에서 잠깐 일손을 멈추고 자신의 묘비명을 그려보는 것도 인생 2막을 설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하더라도 누군가와 비교하지 않은 나만의 삶, 현재의 처지와 입장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겸허한 나만의 삶이 자신을 풍요롭게 할 것으로 믿어본다. 인생 2막 한 번쯤 되뇌며 성찰하고 생각해 볼 일이다.

살다 보니, 늙어가는 모습은 똑같더라. 세월에 장사 없다고 몸도 오래 쓰니 고장이 잦아지는 것 같다. 슬픈 일이다. 이 몸 오랫동안 내 것인 양 잘 쓰고 있지만, 버리고 갈 것에 불과한 썩어 갈 거죽에 불과한 것을 사는 동안은 별 탈 없이 잘 쓰고 돌려주고 갔으면 한다. 멀어지는 젊음을 놓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는 모습은 가엾음을 들게 한다. 세월은 속일 수 없는 법 이런저런 수단으로 붙잡고 늘어져 봐야 결국 늙어가는 모습은 똑같더라.

독일 민요에 이런 내용이 있다. "나는 살고 있다. 그러나 나의 목숨의 길이는 모른다.''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았느냐가 중요하고, 몇 살인가 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만큼 나잇값을 하며 올바르게 살고 곱게 늙어가고 있느냐가 중요하지 않을까.

문제는 나잇값이다. 고희(古稀), 즉 70이 넘으면 많은 사람이 이렇게 말한다. "추하게 늙고 싶진 않다!'' 하지만 현실은 바람과 다르다. 쉰이 넘고 예순이 지나 일흔이 되면서 외로워지고, 자기 삶에 만족할 수 없는 사람이 많아진다. 과연 오래 산다는 것은 우리에게 축복이 되어줄까? 아니면 비극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 운명적인 사건일까? 우주의 깊은 나이를 가늠할 때, 100년이라는 시간을 놓고 오래 산다고 따지는 것도 우스운 얘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