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식 장편소설 영화 농장 [13]
임동식 장편소설 영화 농장 [13]
  • 임동식
  • 승인 2023.10.13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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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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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일보] 1946년 사월의 어느 이른 아침, 순녀네와 한동네에 사는 가마골댁이 숨을 헐떡이며 순녀네 집으로 달려왔다.

"아이고! 인길 성님! 큰일 났어라우. 우리 영님이가 외욕질(구토)을 험시러 이마빡이 불뎅이가 되야 불었소."

가마골댁이 숨을 몰아쉬며 인길댁의 팔을 부여잡고 말한다. 가마골댁은 인길댁의 8촌 손아래 동서이며 영님이는 다섯 살짜리 가마골댁의 딸이다.

"언제부터 그런당가? 언능 자네 시숙한테 말해사제."

"큼메 언 저녁부터 그러디만 새복에는 끙끙 앓고 난리가 아니요."

이에 인길양반이 왕진 가방을 들고 가마골댁을 따라 영님이네 집에 이르렀다. 영님이는 기진을 한 모습으로 요 위에 누워있고 머리맡에는 밤새 토한 듯 요강과 수건이 널브러져 있다.

인길양반이 영님의 머리맡으로 다가가 앉자 영님이는 잠깐 눈을 빼꼼히 떴다가는 다시 감으며 끙끙 앓고 있었다.

"으흐흐 으흐흐응!"

어린아이는 몸으로 감내할 수 없는 고통을 입으로 토해내는 것이다.

"영님이가 많이 아프구나! 어디 한번 보자! 열이 많헌갑다?!"

인길 양반은 영님의 눈꺼풀을 뒤집어보고 눈을 지그시 감으며 손목을 잡아 맥을 가늠해 본다.

"열은 높고 맥은 보채듯 빠른디다가 구토를 헌다니 이것이 어쩌면 시두손님, 두창이라고도 허는디 시두손님이 아닌가 모르겄네. 이것은 침으로도 안 되고 일단은 내가 약을 처방해 드릴 텐께 한번 달여 먹여 보이쑈! 제수씨! 집으로 같이 가입시다!"

인길양반은 가마골댁을 데리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와 한약을 처방한다.

"감꼭지 다섯 개, 이놈은 외욕질이나 설사를 멈추게 허고 새양(생강) 한 뿌리, 이놈은 뱃속에 잡균들을 몰아내고 정향 두 촉, 이놈은 몸속의 통증을 없앤께 진통 역할을 허요. 요렇게 세 탕 분을 드릴랑께 언능 갖고 가서 끓여 먹이쇼! 시두손님에 걸리먼 열에 서넛은 죽어부요. 긍께 이놈을 잘 달여 먹이먼 곰보 자국은 어짤 수 없제만 죽음은 면헐 것인께 언능 가서 달여 먹이시쑈!"

인길양반은 처방한 약을 봉지에 싸서 가마골댁에게 건네주었다.

"시숙님! 고맙소! 내가 맘이 급헌께 우선 가서 끓여 먹이고 약값은 내중에 와서 드릴라우."

"그런 꺽정은 허덜 마시고 언능 가서 달여 먹이쑈! 참, 잊어불 뻔했네. 오늘이나 내일이나 혹시 얼굴에 발진이 생기면 절대로 긁어 불면 안 돼요. 그러니 아예 손을 헝겊으로 싸매서 못 긁게 허시고, 고놈의 것이 패여서 곰보 자국이 되야 분께."

"야~아. 알었어라우."

이렇게 하여 가마골댁은 쏜살같이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이날 저녁나절, 아침에 한약을 지어 갔던 가마골댁이 순녀네 집을 다시 찾아왔다. 외상으로 가져갔던 약값을 가져온 것이다.

온종일 환자인 영님이를 돌봤던 탓에 피곤해서인지 마루 끝에 털썩 주저앉으며 인길댁을 부른다.

"아이고 다리야! 인길 성님 지곘소(계시요)?"

인길댁이 큰방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오제 물레에(마루에) 앉는가!"

하고 말하자 가마골댁이 방으로 들어섰다.

"아칙에(아침에) 약값을 안 드리고 가서라우."

"뭣이 약값 주는 것이 그리 급허다고 역불로(일부러) 왔는가? 나중에 줘도 되제. 약값은 그러제만 영님이는 어쩐가?"

"야~아. 약효가 있는갑서라우. 열이 내리고 앓는 것도 덜허요. 근디 시두손님이 깜송께 꺽정이요."

"큼메 여식 알라 된께 시두손님은 아니여사 쓰껏인디…."

인길댁은 내 일마냥 가마골댁의 걱정을 함께했으며 지금껏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인길양반이 끼어들어 가마골댁을 향해 말한다.

"제수씨! 혹시라도 모른께 말이요. 영님이 거처를 뒷방으로 옮겨서 식구들하고 따로 허게 허이쑈! 특히나 애기들이 위험헌께 근배랑 영배는 절대 접촉을 못 허게 해야쓰요!"

이렇게 신신당부를 하는 것이었다. 이때 문밖에서 누군가 인길댁을 부른다. 윗동네 사는 내동댁이었다.

"내동떡! 들어오이쑈! 꼬작(꼭대기) 집이서 여까지 뭔 일이라우?"

인길댁이 내동댁에게 말하자 내동댁은 손을 가로저으며

"아니여라우. 인길 아제 계시면 우리 연심이 좀 봐 주시락 허이쑈! 아, 글씨 우리 연심이가 이불을 흠목 뒤집어쓰고는 춥다고 덜덜 떨고 있소."

하고 토방에 선 채 호소한다. 이에 인길양반과 내동댁은 다급히 내동댁네로 갔다. 연심이는 열 살 여자아이다. 연심의 이마를 짚어 보고 손목을 잡아 맥을 짚어 본 인길 양반은 얼굴을 어둡게 하며

"역질, 그렁께 시두손님인 모양이요."

이렇게 말한다. 시두손님이 몸 안에 들어오면 자칫 목숨이 위태로워진다는 것을 알고 있는 내동댁은 놀란 얼굴로 눈이 휘둥그레져서

"오메! 어째야쓰까이. 시두손님이라고라우?"

하고 묻자 인길 양반이

"거정(거의) 그런 것 같으요. 언능 나 따라 오이쑈! 당장 약을 먹여사제 안 되겄소."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내동댁을 데리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 인길 양반은 아침나절 가마골댁에게 지어준 약과 똑같은 처방을 하여 내동댁에게 건네주며

"언능 가셔서 그 약을 달여 먹이시고 걸막에다(마당으로 들어서는 길목) 간짓대(장대)로 걸장을 치쑈!"

이런 당부를 하였다. 내동댁이 돌아가자 인길양반은 순녀와 말례를 불러 놓고

"동네에 역질이 도는 모양이다. 시두손님 말이다. 이 시두손님은 대체로 애기들이 많이 걸리는디 걸린 애기들 중 열에 두서너 명은 죽는다. 긍께 말례는 월국으로 가고 순녀는 신원목으로 가서 집집마다 돌아댕김서 걸막에다 걸장을 치락 허드라고 전해라!"

이렇게 심부름을 시키는 것이었다. 더불어 인길댁과 며느리인 경주댁을 불러 역질의 창궐에 대비하여 식기의 청결과 아이들의 문밖출입을 단속하게 하였던 것이다.

마당의 출입구에 걸장을 치는 것, 이것은 이웃들과의 왕래를 끊어서 서로 간의 전염을 막기 위해서인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사나흘이 지나자 영화농장 언저리, 이 동네 저 동네에 역질인 마마가 창궐하고 동네 사람들은 만나면 시두손님이 화두가 되었다.

순녀네 집 앞 신작로로 건너는 나무다리는 동네 사람들의 만남의 장소다. 역질이 이 집 저 집으로 번져가던 어느 날, 다리목에 광암댁과 나주댁이 얘기를 하고 서 있다. 나주댁이

"신원목에 연술이도 시두손님에 걸렸닥 허요."

하고 혀를 차며 얘기하자 광암댁이 맞장구를 친다.

"아, 글씨. 이 동네뿐이 아니랑께. 어지께 백호동으로 새기지름(석유) 받으러 갔디만 거그도 애기들이 여섯이나 그노무 시두손님에 걸렸닥 허드랑께"

"이놈의 시두손님 땀세 큰일이네. 농사철은 다가오는디…."

두 여인네의 하얀 무명 치맛자락이 때마침 영화농장 들판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에 하늘거린다. 이때 집을 나서던 인길양반이 이야기 중인 두 여인 곁으로 다가가 말한다.

"아짐들! 이렇코 모태서 얘기들을 허면 안 된당께요. 지금 바람이 분께 아짐들 치맛자락이 펄럭거리는디 시두손님은 이런 바람을 타고 댕기고 사람을 타고 댕기기도 허니 역질이 돌 때는 이유제(이웃의) 사람을 만나는 것도 삼가해사 써라우."

인길양반의 이런 말에 다리목에 서 있던 두 여인은 봄바람에 치맛자락을 펄럭이며 제각기 돌아갔다. 며칠 뒤, 다리목에서 광암댁과 얘기를 나누던 나주댁네 딸인 옥자가 여지없이 역질에 감염이 되었다.

몸을 으스스 떨며 이불을 덮고 아랫목에 누워있는 옥자의 이마에 손을 짚어 본 나주댁은

"오메! 우리 옥자 이맛박이 불덩어리네. 어째야 쓰끄나! 옥자 아부지! 어찌게 한번 해봐라우!"

이렇게 발을 동동 구르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주댁의 성화에도 별 방법이 없는 옥자 아버지는 그저 안타까운 마음에 눈만 껌벅거릴 뿐이었다.

이렇게 역질은 이 아이에게서 저 아이로, 이 집에서 저 집으로 번져 나갔던 것이며 이러한 상황은 도덕지나 신원목, 회산, 백호동, 돈도리 어느 동네도 예외일 수 없었다.

시두손님, 이는 이름도 많다. 마마, 호창, 천연두, 두창 등의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초기에 발열과 두통이 있고 얼굴과 손발에 발진이 생기며 이 발진은 병이 다 나았다 하더라도 흉터(곰보)가 남게 되는데 이 흉터는 죽음의 사선을 넘어선 흔적인 것이며 한 삶에 있어서 이 흉터가 주는 정신적인 파급력은 악몽과 같은 것이 아니런가.

이 역질은 전염력이 강해 접촉 감염은 물론이요, 밀폐된 공간에서는 공기로도 감염이 되기 때문에 영화농장 사람들은 이웃 간의 전염을 막기 위하여 대문에 긴 막대를 치고 사람들의 왕래를 막았던 것이었다.

7월이 되자 봄내 창궐하던 시두손님은 사그라들었다. 그러나 역질을 앓고 난 아이들의 얼굴은 병마를 이겨낸 흔적이 선연하여 보는 이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였다.

이 시기 이 병을 앓고 난 혼기의 남녀를 지칭하여 생겨 난 말이 '곰보의 흔적마다 복이 소복소복 쌓였다.'라는 염려와 위로 차원의 말이 생겨나기도 하였던 것인데 이 말은 어쩌면 비아냥으로 잘못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말인 것이다.

7월 맹하의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날 밤, 일로 인민위원장 선출을 하였던 곳 농장의 양곡창에 일로의 인민남로당원들이 모였다. 이즈음 일로 인민남로당원으로써 맹활약을 한 인물은 남로당일로인민위원장인 박대전을 비롯하여 그의 친구인 광암리의 임종기와 양도의 배한두, 평정의 오근식 등등이 일로 남로당 활동의 주축이 되는 인물들이었다.

농장의 양곡창고 안은 모여든 인민당원들로 빼곡히 들어차고 남포등 불빛에 비치는 당원들의 얼굴은 낮에 땀을 흘렸던 까닭으로 반짝거렸다.

이들이 낮에 흘리는 땀에 아랑곳하지 않을 수 있음은 곧 도래할 세상, 즉 유토피아에 대한 희망 때문인 것이며 이들이 이 밤에 모인 까닭도 그것 때문이다.

이윽고 박대전이 단상으로 올라섰다.

"존경허는 당원 여러분들! 안녕하십니까? 나라는 어수선허고 시두손님 창궐로 인심 또한 흉흉해진 시기인디 이러코들 나와 주셔서 감사헙니다. 아시는 분은 아실 테고 모르시는 분은 모르겄지만, 지난 시월에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으로 조선공산당은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대전이 말하는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의 전모는 이렇다. 8·15 광복 직후 여러 정치 집단들이 난립하여 사회가 어수선하던 시기, 조선공산당원이며 해방일보사 사장인 권 오직과 이 관술은 당 운영비와 선전활동비의 조달을 위해 해방 전 일제가 조선은행 100원권을 발행하던 차카자와인쇄소를 접수하여 조선정판사라 개칭하고 운영 중이던 박 낙종 사장에게 위조지폐 발행을 지시했다.

이에 박 낙종은 1945년 10월 20일 부사장인 송 언필과 그의 휘하인 김 창선, 박 정상, 정 명관 등의 직원들과 협의한 후 이날 오후 7시 다른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시간을 이용 위조지폐를 발행하였으며 이때부터 이 일행들은 6회에 걸쳐 100원권 1,200만 원을 찍어 조선공산당에 건네주었다.

출처 불명의 위조지폐가 나돌며 시중 경기가 혼란스러워지자 경찰은 수사에 착수했다. 1946년 5월 5일 김 창선이 지폐 원판 1매를 서울오프셋인쇄소 윤 석현에게 보관한 사실의 정보를 입수하고 김 창선을 비롯한 일당 7명이 서울중부경찰서에 체포되었다.

이에 이어 5월 7일 이미 체포된 범인들의 자백으로 위조지폐 관련자 14명이 추가로 체포되었으며 이들은 모두가 조선공산당 당원이었던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이후, 미군정은 조선공산당에 대한 강경 대응을 시작하게 되었던 것이다.

대전의 말은 이어졌다,

"그러나 이 사건은 미군정이 조선공산당을 탄압허기 위해 만들어 낸 날조된 사건이라고 헙니다. 말허자면 우리 조선공산당을 와해시킬라고 허는데 미군정에게는 좋은 구실이 되야분 것입니다. 그래서 중앙의 박 헌영 동지를 비롯헌 여러 동지들이 거기에 대응허는 모양입니다. 시방 이 사건에 연루되야서 여러 당원들이 구속되고 재판을 지다리는 중이라고 허는디 세상의 이치는 사필귀정허는 것인께 우리 당원들은 차분히 그것을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대전의 말이 끝나자 장내는 제각기 한마디씩 내뱉는 말로 술렁거린다.

"고놈들이 우리 공산당 씨를 말릴라고 그런갑네."

"아무리 그래도 그러제. 뭣 헌다고 그라게 많은 돈을 찍어불었으까이. 사람이 정정당당허게 살아야제."

"아니여. 재판을 받아 봐사 알제. 저놈들이 음모를 꾸몄을 수도 있응께 지켜봐사 쓸 것이여."

그렇다. 정판사 사건이 어찌 되었건 이들 영화농장의 일로공산당원들은 그들의 이상인 유토피아를 향한 질주를 멈추지 않고 있었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