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예절교육이 전혀 되어 있지 않다
기고/ 예절교육이 전혀 되어 있지 않다
  • 임갑섭 전 서울특별시 교육위원회의장
  • 승인 2023.09.18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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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갑섭 전 서울특별시 교육위원회의장
임갑섭
임갑섭

[시정일보] ‘예절교육이 전혀 되어 있지 않다.’라는 신입사원들의 모습에 대한 신문 보도를 읽고 사족(蛇足)을 달아 본다. 예전에는 가정교육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갖춰졌던 기본예절이 이제 가정교육이 아주 부실 해졌기 때문에 20대, 30대 초반 신입사원들을 기업이나 회사에서 아이 키우듯 기본적인 예절을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쳐야 한단다.

따라서 ‘오피스 교육’을 넘어서 ‘오피스 육아 교육’이 절실히 필요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기본적인 생활 매너도 갖추어지지 못한 신입사원의 유아 수준의 예절교육에 어려움이 크다는 설명이다.

오피스 예절교육의 가장 큰 이슈로 잡는 것은 식사 예절에 두고 있단다. 내부나 외부 고객 등과 회식할 때이면 신입사원은 자기 앞 상위에 수저를 놓아 주거나 컵에 물을 채워주는 등의 일을 상대가 해 줄 때까지 멀뚱멀뚱 앉아 있다는 것이다.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회사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데 이렇게 기본예절 자체도 모르는 데는 낯 뜨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고 한다. 더욱이 비즈니스를 위한 자리에서 고객과 일을 잘 풀어가자는 식사가 오히려 상대의 기분을 망치게 되는 경우가 있다며 신입사원들의 자세나 모습이 이 지경에 이르니 회사에서라도 가르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또 동료 또는 상사와 고깃집의 회식 자리에서‘고기는 누가 굽나, 찌개는 누가 드러나누나.’등으로 눈치를 살피거나 신경전을 할 일이 아니겠다. 집게나 국자를 누구든 간에 서둘러 잡아야 할 것이고, 먼저 잡은 사람의 몫이 될 일이다.

그렇다면 누가 앞서 잡아들어야 할 것인가. 윗사람이나 나이 든 사람이 앞장서야 할 일인가, 요즈음 젊은 사람들은 이러한 일들이‘배려’가 아닌 위계에 따른‘굴종’이라는 차원으로 여긴다고 한다.

서로를 위하고 격려하는 식사 자리에서 고기 판의 고기를 뒤집고 자른 일이며 옆 사람에게 국을 덜어 나누는 일이 어찌 굴종이고 자존심을 내세울 일이겠는가.

더욱이 식사 요금은 윗사람이 내는 경우가 많을 것으로 젊은 사람은 식사 대접받는 차원에서라도 거들어야 할 일이다. 매사 사고나 인식의 차가 아닌가 한다.

나 같은 경우는 예나 지금 할 것 없이 아랫사람이나 후배들과 같이하는 식탁일지라도 자리에 앉자마자 곧 숟가락 통에서 숟가락, 젓가락을 챙겨 각자 앞에 놓아주고, 물컵에 물을 따라 옮긴다.

학교 근무할 적에 이런 내 모습에 젊은 여자 선생님의 말씀이 “교장 선생님께서 수저를 놓아주면 어떻게 해요”라 했다. 그러면 난“선생님은 아이들 가르치시며 고생하시는 데 나는 교장실에서 맨날 놀기만 하지 않아요.”하며 웃기도 했다.

한편 ‘나이가 꽤 든 사람이 경망스럽다.’라 여길 수도 있겠으나 ‘당신을 존경하고 또 나이가 한참 아래라면 당신이 사랑스러워서다.’ 라는 뜻을 담아 물을 따르고 숟가락을 놓아주게 되는 것이다.

숟가락을 놓고 물을 따르는 일 등은 힘이 드는 일이 아니다. 또 힘이 조금 쓰일 고기를 굽는 것도 그렇다. 이런 일들을 먼저 서둘러 하는 것은 몸에 밴 배려 정신이고 평소 다져진 바른 인성이고 자세이겠다.

더욱이 예쁜 또는 듬직한 신입사원이 고기를 타지 않고 알맞게 구워서 옆 사람의 접시에 나누어 놓아준다면 얼마나 싹싹하고 정이 넘치는 모습이겠는가. 직장이나 사무실의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사람이 분명하겠다. 입사 동기 중 첫 번째 승진자가 틀림없겠다. 나아가 나의 작은 수고로 상대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 줄 수 있다면 내가 더 행복할 일이다.

글의 서두에서 요즈음 젊은이들의 가정 예절 지도가 전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직장에서 지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요즘 친구 같은 부모 밑에서 떠받들어 자란 자식이 직장에서 부모가 아닌 다른 어른과의 관계를 난생처음으로 쌓아 가다 보니 대처 방향을 찾지 못하고 우왕좌왕이며 갈등이 있게 마련이라 한다. 진정 예쁜 자식이라면 누구에게나 예쁜 자식으로 길러져야 하겠다.

무엇보다도 우선 자식 예절교육에 노력하고 모범을 보여야 할 근자의 부모가 예절 정신과 자세가 갖추어져 있는지 자성해 보자. 한 중소기업대표가 미숙한 신입사원을 꾸짖었더니 그 신입사원의 어머니가 대뜸 전화해서 “왜 우리 애를 야단치느냐”며 항의하고 “우리 아이 내일부터 회사안 나간다.” 전화로 일방적인 퇴사 통보까지 하더란다. 그 자식 훌륭한 인간이 되겠는가.

학교 현장도 비슷하다. 툭하면 학부모의 항의가 계속된다. “우리 자식 왜 나무라며 기죽이느냐”라 대들고 나댄다. 옛날 우리 부모는 선생님들께“우리 아이 때려서라도 사람 되게 해주세요.”라 당부하고 당부했다.

개념 없는 부모가 자식의 교육이며 직장생활을 망치는 데 앞장서고 있음이다. 그 부모에 그 자식은 어느 직장을 가던 적응할 수 없을 것으로 영원한 유아로 부유(浮遊)할 일이다. 그 어머니부터 우선 예절교육을 철저히 받아야 하겠다.

젊은 사람들의 식사 예절을 탓했는데, 예로부터 우리는‘밥상머리 교육’을 강조해 왔다. 밥상머리 교육이 무엇이겠는가. 내가 어렸을 적에는 부모는 물론 할아버지 할머니를 중심으로 모든 가족이 함께 모여 식사하곤 했다.

특히 할아버지며 아버지와 겸상(兼床)할 때이면 무릎 꿇어 단정한 자세로 숟가락, 젓가락의 사용은 물론 밥이며 반찬을 떠먹는 것도 나름대로 방식에 따라서 단정해야 했다. 혹이라도 부실할 때는 예외 없이 지적받고 곧 시정했다.

더욱이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지도보다도 옆에서 지켜보시는 할머니와 어머니의 눈초리, 눈빛이 더 엄격했었다. 전근대적인 가부장제를 높이 산 것 같으나 할아버지 아버지의 권위가 존중되고 받들어져 가정의 위계질서가 정립되었으며, 그에 따라 바른생활 자세가 확립되고 그 속에서 생활 예절이 단단히 가꾸어졌었다.

반면 오늘의 가정의 현실은 어떤가. 핵가족화 되어 엄격한 조부모의 지도를 받을 기회가 상실되었고, 가정생활상은 농경사회와 다르게 안정과 질서가 잡히지 못하고 분주하며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 몇 되지 않는 가족만이라도 모두가 뿔뿔이다. 식사 역시도 시간과 내용이 각자 다르다. 가정교육 운운할 계제가 아닌 것 같다.

또한 어머니라면 자식들의 음식만은 손수 주무르고 짜서 간을 보아 가면서 정성을 담아야 할 것이다. 그 음식 속에 엄마의 알뜰한 사랑과 정이 살아 움직이겠다. 그것도 아니라면 최소한 자식들이 무엇을 얼마만큼 어떻게 먹는 것만이라도 지켜보아야 할 일이다.

더욱이 근래는 가부장제(家父長制)가 아닌 가모장제(家母長制)가 되어가고, 엄부자모(嚴父慈母)가 엄모자부(嚴母慈父)로 뒤바뀌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가정의 표상이고 상징이 아닌 아버지 자리에 어머니가 서게 된 것이다.

어느 성을 비하하거나 존중하자는 것이 아니다. 사회의 흐름에 따를 수밖에 없겠으나 이제 가정교육의 중심이 되고 몫이 어머니의 책임이 아닌가 한다. 현모양처가 더욱 요구되고 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