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정칼럼 / 말로 하는 노인공경 지겹고 불쾌하다
시정칼럼 / 말로 하는 노인공경 지겹고 불쾌하다
  • 논설위원 임 춘 식
  • 승인 2023.10.12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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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임 춘 식
논설위원 임 춘 식
논설위원 임 춘 식

[시정일보] 무연고 노인 사망자 및 자살 노인 추모 문화제가 10월 2일 노인의 날을 맞아 ’무연고로 사망한 노인과 자살한 노인들의 문제는 빈곤과 소외로 벌어진 사회적 타살이다‘라며 서울 탑골공원 삼일문 앞 노상에서 종교계와 뜻있는 다수의 자주적 시민 단체가 연대해 조촐한 추모 모임을 했다. 그러나 산자의 눈에는 눈물은 보이지 않았으나 빈 술잔에는 눈물이 절반이었다.

한국은 해마다 65세 이상 노인 3,500여 명이 스스로 생(生)을 마감하는 나라다. 지난해 기준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이 39.9명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17.2명)의 두 배를 훨씬 웃돈다. 그만큼 한국은 노인이 숨쉬기 힘든 사회라는 뜻이다. 말로만 하는 노인공경 지겹고 불쾌하다.

어쨌든, OECD 38개 회원국 중 노인 자살률 압도적 1위, 가장 우울한 나라 1위, 노인빈곤율 또한 OECD 회원국 평균 14.6% 대비 3배에 가까운 40.4%로 치욕적인 불명예를 안고 있다. 거동이 힘들어져 돌봄이 필요한 상태에 이르렀을 때 고독과 생활고가 겹치면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악순환이 계속돼 부끄러운 현실이 반복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유엔 산하 195개국 중 경제력 세계 10위, 군사력 세계 6위, GDP 세계 10위로 일류 국가대열에 당당히 진입한 자랑스러운 나라다. 오늘날 노인 세대는 1950년 한국전쟁의 폐허 속에서 피땀으로 국가번영의 기틀을 다지고, 60~70년대 산업화와 70~80년대 민주화를 이루기까지 산파역으로서 헌신했다. 그런데 과연 작금 이분들의 삶은 어떤가?

세계 경제를 선도할 정도로 눈부시게 발전한 대한민국에서 지난 5년간 65세 이상 노인 1만 7천여 명이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노인에 대한 존엄과 인권 및 건강권과 복지가 보장되고 사회적 연결망과 안전망이 갖춰졌으며 노인에 대한 차별과 학대 등이 없었다면 그렇게 극단적인 선택으로 생을 마감하였겠는가. 이렇게 세상을 떠난 게 이분들의 잘못이고, 책임인가. 이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국가의 책임이며 무능한 정부에 의한 사회적 타살이다.

2022년 말 65세 이상 노인 취업를은 28%가량 된다. 그나마 평균연봉은 1천만 원 수준에 불과하다. 통계청에 의하면 2년 후 2025년에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율이 20.6%로 국민 5명 중 1명이 노인인 초고령사회로 접어들게 된다. 빛의 속도로 늙고 있기 때문이다.

무연고 사망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1인 가구가 늘면서 사회로부터 고립된 사람도 함께 늘어나는 탓이다. 무연고 사망자는, 2020년 3,136명, 2021년 3,795명, 2022년 4,842명으로 매년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무연고 사망은 고독사 중 가장 대표적인 종류로, 연고자가 없거나 연고자를 알 수 없는 시신, 연고자는 있지만 시신 인수를 거부·피하는 시신 등에 해당하는 사례를 말한다.

지난해 집계된 무연고 사망자를 연령대로 보면 70대 이상 노인이 2,017명(41.7%)으로 전체 연령대 중 가장 많았다. 60대는 1,533명(31.6%), 50대는 832명(17.1%), 40대는 275명(5.6%)이다. 성별로 보면 남성이 3,667명(75.7%)으로 여성보다 3배 많다. 그러나 분명한 기준에 따라 정밀하게 집계된 통계조차 없는 데다 관련 정책 역시 미흡한 수준이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1인 가구 증가와 사회적 관계망 단절로 인한 고립, 경제 불안정 등의 문제들이 서로 얽히고 연쇄적으로 작용하면서 무연고 사망자들이 늘고 있다. 공영장례를 통해서 무연고자의 외로웠던 삶이 알려지고 그들의 죽음이 삶처럼 외롭지 않게 존엄성을 보장해줘야 한다.

지금 당장 노인 문제를 국가적, 사회적 의제로 채택한다 해도 늦었다. 그런데도 재난에 버금가는 노인 문제가 현실로 다가온 만큼 하루속히 국가가 총력 대책을 마련할 것을 강력히 추구한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격언이 있잖은가. 그런데 여야정치권은 온통 정쟁(政爭)에만 몰두하고 있어 한숨만 저절로 나온다.

이제부터 고령화 사회에 대비한 노인복지에 관해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지금까지와는 반대로 과감하게 노인복지를 정책 순위의 상위에 올려놔 보자. 노인에 대한 투자는 절대 낭비가 아니다. 가령 정부가 노인복지에 많은 예산을 책정했다고 해서 잘못했다고 나무랄 사람은 없다.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닥칠 노후에 대한 가장 확실한 보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노인 문제를 재정 투입만으로 해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노인 인구가 급속하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2024이면 1,000만 명을 돌파하고 2년 단위로 100만 명씩 추가로 늘어날 전망이다. 2050년에는 노인 인구 비중이 40%를 넘을 것이라고 하니 재정만으로 노년의 고충을 해결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결국은 일할 수 있는 노인에게는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사회적 돌봄'이 필요한 노인에게는 공적 지원을 늘려야 한다.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노인 고용률은 28%에 이르지만 단순 노무와 농림어업에 집중돼 있다. 퇴직 후 저소득 일자리의 덫에 빠져드는 것이다. 정부가 세금으로 만드는 일자리 역시 아르바이트 수준이다. 노인도 능력과 성과에 걸맞은 일자리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호봉제를 폐지하고 직무급제의 도입과 정년연장을 추진해야 한다. 아울러 거동이 힘든 노인을 위해 요양보호사를 비롯한 돌봄 노동자 공급 역시 대폭 확대해야 한다. 노인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정부는 '포용 국가'를 만들고 생애 주기별로 복지를 확충한다고 하는데 사회안전망의 가장 밑바닥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정부는 무연고 사망자 현황 파악도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로 이 문제를 방치하다시피 하고 있다.

홀로 사는 노인 증가 등 사회적 요인, 노후 파산 등 경제적인 요인이 겹치면서 무연고 사망자가 늘어나는 상황은 계속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 무연고 사망자가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법과 제도 및 사회적 인식이 뒤따르지 않고 있는 현실 개선이 필요하다. 고립되기 쉬운 사회 취약계층을 발굴해 지원하는 노력이 지속되어야 한다.(한남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