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식 장편소설 영화 농장 [17]
임동식 장편소설 영화 농장 [17]
  • 임동식
  • 승인 2023.11.10 08:55
  • 댓글 0

매주 금요일 연재됩니다
임동식
임동식

[시정일보] ​평정은 도덕지와 한가지로 영산강을 향해 흘러내린 승달산의 한 끝자락으로 야트막한 야산을 배경으로 하여 앞은 너른 들판이 펼쳐진 마을이다.

영산강 유역의 간척사업 이전에는 바로 마을 앞까지 들물, 날물의 바닷물이 들락거렸을 것이고 갈대밭에는 게와 짱뚱어가 기어 다녔을 것이며 들판 복판을 흐르는 개웅 쯤에서는 논밭 일을 마친 선머슴들이 드는 물에 운저리 낚시를 즐겼을 법한 갯마을이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 그러한 모습들은 동네 안 나이든 노인네들의 기억 속에나 들락거리는 먼 과거 속의 모습이 된 것이다.

마을 왼쪽으로 호남선의 철길이 지척의 거리에 있고, 일설에 의하면 동네에 아이들이 많은 까닭은 밤중에 기차의 정적소리에 깬 청춘의 남녀가 마땅히 할 일이 따로 없었을 것이니 아이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전해져 오는 마을이기도 하다.

동네 뒤편은 산을 개간한 붉은 황토밭이며 마을 앞 신작로를 경계로 하여 그 아래쪽은 1920년대에 간척사업으로 생겨난 잿빛 옥토의 들판이 펼쳐져 있다.

마을 안으로 파고드는 신작로를 따라가다 보면 그 중간쯤에 오래된 팽나무가 마을의 수호신처럼 넓은 땅을 차지하고 서 있고 거기서 오른쪽으로 꺾어진 골목을 따라 올라가면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위치에 순녀네 집이 있다.

순녀네 집은 평정에 한 채밖에 없는 기와집으로 뒤안에 무성한 대밭이 병풍처럼 둘러 있고 마당은 넓었으며 사랑채에 대문과 외양간이 붙어 있었다.

순녀가 이러한 평정집으로 시집을 와 그 이듬해 가을이 되어 추수를 마친 밭이 겨울 동안 놀게 될 것을 본 순녀가 남편인 근식에게 제안했다.

"여보! 우리 시안에 밭을 빈 밭으로 놀릴 것이 아니라 뭣이라도 심는 것이 어쩌께라우?"

이에 근식이 생뚱스럽다는 듯이 반문한다.

"뭔 시안에 밭농사를 짓는단 말이요?"

"시안에 비금, 도초에서 나는 시금치가 목포 시장에서 보면 겁나게 잘 팔립디다. 그 시금치를 숭거 보면 어쩌께라우?"

순녀의 말에 근식은 얼토당토 않은 말이라며 처음에는 일갈하였으나 대체 겨울 동안 밭을 비워두느니 밑져야 본전이라며 결국 순녀의 말대로 하였다.

그런데 과연 눈밭에서 자란 짙은 초록의 시금치는 때깔이 좋고 영양이 풍부하여 여남은 마지기 밭에 재배한 시금치가 삽시간에 다 팔린 것이다.

소득으로 치면 조나 고구마 농사의 몇 곱절에 이르는 것으로 이는 여느 평정 사람들, 그 누구도 생각지 못한 상상 이외의 결실이었던 것이다.

이후 순녀의 지모나 성실한 성향을 알게 된 시할머니나 시어머니는 살림살이의 전반적인 것들을 모두 순녀에게 맡기게 되었던 것이었다. 집 안에서는 소와 닭, 돼지를 기르고 논밭은 논밭대로 놀리는 철없이 계절에 알맞는 작물을 심으니 집안은 늘 생동감이 넘치고 살림은 날로 늘어갔다.

그랬다. 열아홉 살 순녀는 열혈의 강인한 생명력이 넘쳐나는 여인이었다. 할 일이 없다 하여 두 손발을 묶어두고 우두커니 앉아있는 것을 그녀 스스로 내버려 두지 않는 성미로 자는 시간을 제쳐 둔 나머지 시간에는 가만히 있지를 않았다.

이렇듯 그녀의 품 안에는 늘 세상을 향한 생명력이 끊임없이 꿈틀대고 있었던 것이며 그녀의 내면에 잠재된 그 왕성한 생명력은 일상에 그대로 반영되어 근면하고 성실한 생활상으로 여실히 나타나는 것이었으니 장차 그녀는 평정의 오씨 일가를 성대한 가문으로 꾸려 나아갈 자질이 충분히 갖춘 훌륭한 여인이요, 인재임에 틀림이 없었다.

순녀의 시집살이 두 해가 되던 춘삼월에 아들을 낳았는데 아이의 아버지가 되는 근식은 물론 시어머니나 시할머니는 대를 이을 아들을 낳았다며 좋아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근식 자신이 형제자매가 없는 독자였으니 당연한 것이었으리라.

그러나 득남의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를 못하였으니 3월에 낳았던 아이가 때마침 마을에 유행하던 홍역에 걸려 11월에 그만 죽고 말았던 것이었다.

시어머니와 시할머니, 두 고부는 대를 이을 종손을 잃었다며 통탄을 하고 게다가 근식은 한술을 더 떠 식음을 전폐하고 애절해 하며 못 마시는 술로 슬픔을 달래 가는 것이었다. 순녀는 슬퍼하는 식구들을 위로하고 달랬다.

위로를 받아야 할 사람이 도리어 위로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술이 고주망태가 된 근식에게 순녀가

"한 번 죽은 아이를 못 잊어 험서 몸까지 해치먼 어찌게 헌다요. 또 내가 아들을 낳아 드릴랑께 인자 다 잊어 불고 기운 차리시쑈!"

이렇게 달래는 것이었다. 이후로 날이 감에 따라 식구들은 차츰 슬픔의 늪에서 벗어나게 되었던 것이다. 어찌 순녀라고 비탄스럽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러나 순녀는 밀려드는 슬픔을 가슴에 묻고 끝내 담담한 모습을 지켜 나아가고 있었던 것이며 그만큼 순녀는 주어진 현실에 순응하며 어떠한 난관에도 그것을 극기해 내는 적응력이나 대처 능력 또한 좋았던 것이었다.

1949년 정월 어느 날, 목포에서 찾아온 야채 상인과 순녀가 산밭으로 갔다. 이 야채 상인은 작년에 밭떼기로 순녀네 시금치를 사 갔던 사람으로 그때 재미를 좀 봤던 모양이다.

그때 그 상인과 순녀가 밭으로 간 것이다. 이해는 순녀네뿐만 아니라 순녀네를 따라 시금치를 재배한 이웃들이 많아 동네 뒤의 황토밭은 아직 잔설이 남아 있고 추위가 이어지는데도 튼실히 자란 시금치로 가득하여 푸른 초원과 같았다.

밭으로 들어선 야채 상인이 구둣발로 시금치 위에 쌓여있는 잔설을 밀쳐 본다. 붉은 황토밭의 땅심을 물씬 머금은 시금치는 생명력이 넘쳐나는 짙은 초록으로 싱싱하였다.

야채 상인은 시금치를 바라보며 시장에 내다 팔았을 때 두둑해질 주머니를 생각하는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입을 뗀다.

"아짐! 올해는 섬초가 많이 나왔는디 얼마에 주실라우?"

상인의 이 물음에 작년과 달리 순녀네 이웃 밭들에도 빼곡히 자란 시금치들을 바라보며 야채 상인의 배짱이 두둑해진 것을 순녀는 벌써 알아차렸지만, 일체의 감정 변화 없이 태연하게 대답한다.

"작년에 500원 했응께 올해는 600원 줘야 쓰제라우!"

"오메 아짐! 내나 말헌 께는 금년에는 비금, 도초, 임자도까지 섬초가 많당께라우. 600원이면 우리가 사다가 팔들 못 헌디 500원에 넘게 부이쑈!"

덜 주려는 쪽과 더 받으려는 쪽의 의견이 상충, 결국 흥정은 틀어졌고 야채 상인은 돌아가 버렸다. 순녀가 집으로 들어서자 시어머니가 반색하며 묻는다.

"어찌게 잘 쳐 주디야?"

궁금하기는 근식도 마찬가지로 순녀를 바라보며 대답을 기다린다. 순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올해는 섬초가 많다고 금사를 작년허고 똑같이 500원백께 안 준닥 해서 기냥 내비 두라고 해 불었어라우."

하고 대답하자 시어머니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그놈이라도 받고 줘 불제 그랬냐!"

하고 짠해한다. 그러나 순녀는

"뭔 물가라도 모다 다 오르는디 시금치라고 고대로 있을랍디여? 지다려 보먼 그 양반이 다시 오 껏인께 쬐깐 지다려 보입시다! 정히나 안 오먼 광주로 내다 팔아불면 되제라우."

이렇게 단호하게 장담했으며 근식이나 시어머니는 애써 지은 농사를 헛되이 버리는 것은 아닌지 하고 우려했으며 순녀도 내심으로는 은근히 걱정하는 것이었다.

흥정이 틀어진 날로부터 이틀이 되고 사흘이 지나도 목포의 상인이 오지를 않았다. 닷새가 되어도 소식이 없자 순녀의 시어머니는 100원을 더 받으려는 욕심 때문에 그나마 다 날리는 것 아니냐며 걱정을 한다.

엿새째가 되는 날, 근식은 아랫방에서 혼자 책을 보고 세 사람의 고부, 자부들은 큰방에 모여 앉아 병집을 엮고 있었다.

병집은 병의 파손을 막기 위해 술병에 뒤집어씌우는, 집으로 엮어 만든 것으로 평정 사람들은 이것을 만들어 겨울 농한기의 소득을 올리는 것이었으며 순녀네는 이러한 병집을 엮고 있는 중이었다.

저녁나절 배가 출출할 때쯤에 이르러서 순녀가 김이 모락거리는 고구마를 쪄 동치미 김치와 함께 바구니에 담아 방으로 들고 들어왔다.

"할무이! 어무이! 시장허신디 감자 드시고 허이쑈!"

순녀의 시할머니는 고구마를 집어 들며

"아랫방 저 아그한테도 좀 갖다 주제 그랬냐?"

하고 손자를 챙긴다.

"야. 벌써 갖다 줬어라우."

"그래. 잘했다. 너도 앉거서 까 묵어라!"

손자가 아깝지 않은 할머니가 있을까마는 순녀의 시할머니는 유달리 근식을 챙기고 아꼈다. 술참으로 한창 고구마 간식을 즐기고 있을 즈음,

"쥔네 계시요?"

누군가 찾아왔다. 순녀가 먹던 고구마를 쟁반에 놓고 밖으로 나갔다. 며칠 전 시금치밭의 흥정이 틀어져 다시 오지 않을 것처럼 가버렸던 목포의 야채 상인이 찾아온 것이다.

안 그래도 순녀네는 이제나저제나 하며 기다리던 참이라 얼씨구나 하고 반겼다.

"오메 아제! 날도 이렇코 춘디 오셨네. 이리 방으로 쪼깐 들어오시쑈!"

순녀의 안내에 따라 야채 상인이 방으로 들어섰다. 반갑기는 순녀의 시어머니, 시할머니도 마찬가지다.

"여그 요 감자 좀 잡솨 보시쑈! 밤감자요. 동치미 국물에 자시먼 체정도 안 생겨라우."

고구마에 시원한 동치미까지 내미는 친절함에 야채 상인은 고구마 하나를 먹어치운 후 방문 목적을 털어놓는다.

"그렁께 아짐들! 모냐 번에 내가 말씀드렸소만 올 시안에는 섬에서 시금치를 많이들 숭거 불었어라우. 그래서 시금치 금사가 좋덜 않은디 젊은 아짐이 600원을 달락 허신께 그렇코 많이는 못 드리고 550원 쳐 드리먼 되겄지라우?"

야채 상인은 열 마지기 시금치밭의 가격을 양쪽이 반반의 양보를 주장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두 번의 발걸음을 한 야채 상인의 속내를 알고 있는 순녀는 쉽사리 양보하지 않고 애초에 자신이 제시한 가격을 주장했다.

야채상은 머릿속에 뭣인가를 굴리듯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금세 얼굴을 찌그리며 말한다.

"아이고메 아짐들! 나도 발품 삯은 해사제 안 냉기고 어찌게 헌다요! 좋소! 580원 허먼 됐지라우?"

이렇게 하여 이 해의 시금치밭은 580원에 팔기로 계약을 하였던 것이다. 계약금을 받아 든 순녀는

"낼부터 아무 적에라도 캐 가시쑈! 인부들이 없으먼 내가 소개해 드릴 텡께…."

하고 말하자 야채 상인은 흔쾌히 그러자고 대답을 하고는 콧노래를 부르며 돌아갔다. 그날 밤 순녀의 방, 이즈음 근식은 사법고시를 준비하느라 밤늦도록 책을 들여다보기 일쑤였다.

그러한 근식이 이날은 여느 때와 달리 하품을 하며 일찍이 책을 덮어 놓는다. 이상히 여긴 순녀가 묻는다.

"어째 오늘은 일찍 잘라우?"

"낮부터 책을 들여다봤디만 머리가 찌끈거리요. 그런디 당신은 참 야무지요. 어찌게 닳고 닳은 장사꾼을 그리 잘 구슬러서 80원씩이나 더 받어 냈으니 말이요."

근식은 장사꾼, 그것도 나이가 지긋하여 능청스럽기 그지없는 장사꾼을 상대하여 시금치 값을 제대로 받아 낸 마누라가 유달리 고와 보였던 모양이다.

"아, 그것이사 당연헌 것이제라우! 해년마다 모든 금사가 다 올르는디…."

"그 말이 맞기는 맞소. 피곤헐 텐디 언능 잡시다!"

순녀의 내외가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 나란히 누웠다. 근식이 옆에 누운 순녀의 두둑해진 배를 만지더니

"배가 많이 불렀네. 당신 홀몸이 아닌디 집안일 너머 심들게 허지 마이쑈! 산달이 언제요?"

하고 묻는다. 순녀가 아이를 가진 것이다.

"팔 월 달이 산달이여라우."

"그래 홀몸이 아닌디 어르신들 모시랴 살림 꾸리랴 고상이 많소. 우리, 이 녀석은 낳아서 절대로 실패허지 말고 잘 키웁시다!"

근식이 홍역으로 잃어버린 첫 자식에 대한 슬픈 기억을 상기하며 하는 말이었다.

"야~! 모든 것에 당신이 단단한 울타리가 되야 준께 고맙소."

"여보! 사랑허요."

근식은 두둑한 순녀의 배를 만지며 잠이 들고 순녀는 그 손을 잡고 스르르 눈을 감았다. 자신의 몸 안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싹을 키운다는 것은 여자만의 능력이요, 여자만의 헌신이요, 여자만이 느낄 수 있는 행복인 것이다. 순녀는 아늑하고 오롯한 감정 속에서 잠이 들고 있었던 것이었다.

1949년 5월, 순녀의 집에 일로 지서에서 두 명의 순사들이 찾아왔다.

"오 근식 씨 집에 계시오? 오 근식 씨! 오 근식 씨!"

대답이 없자 순사들은 마당에 서서 연거푸 집안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근식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었다. 이윽고 뒤안에 있던 근식의 할머니가 잔뜩 구부러진 허리에 지팡이를 짚고 부엌을 통하여 마당으로 나와 난데없이 나타난 두 순사를 보고 짐짓 놀라는 표정으로 묻는다.

"순사 아제들이 뭔 일이시라우?"

노인의 질문에 순사들은 조금 실망스러운 듯

"여가 오 근식씨네 집이 맞지라우?"

하고 다짜고짜 묻자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순사들이 재차 근식이 어디 있냐고 묻자 노인은 밭에 나갔노라 순순히 대답을 해주었고 순사들은 밭의 위치를 물은 다음 허둥지둥 밭으로 갔다.

순녀와 그녀의 시어머니는 조밭에 쭈그려 앉아 김매기를 하고 근식은 밭둑에서 삽질을 하고 있었다. 순녀가 밭둑을 따라 근식에게 다가가는 순사를 발견하고 짐짓 놀라며

"순사가 여까지 먼 일이께라우?"

하고 들고 있던 호미를 내동댕이치고는 댕댕해진 배로 무거운 몸을 뒤뚱거리며 순사들 쪽으로 다가가고 이를 지켜보던 순녀의 시어머니 역시 놀라워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당신이 오 근식 씨 맞소?"

순사는 거만한 말투로 근식에게 물었다. 근식이 그렇다고 대답하자 순사는 자신의 신분을 밝힌 다음 가방에서 종이쪽지를 꺼내 근식에게 내보이며 지시한다.

"여그다 당신 이름을 쓰고 지장을 찍으시오!"

근식이 무슨 까닭인지 이유를 물었다.

"이거 말이요, 상부의 지시인디 당신네들을 보도 연맹에 가입시키라는 명령이요. 이것을 안 쓰먼 사상 불순자로 감옥으로 가야 쓰요. 이것 한번 읽어보고 거그 밑에다 이름 자를 쓰시오!"

반 죄인을 대하듯 퉁명스러운 말투와 불손한 순사들의 태도였으나 근식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근식의 인품이 대범하고 두루 사랑하는 인자한 마음을 가진 까닭이리라. 근식은 서면의 내용을 읽어 본다.

- 국민 보도 연맹 가입증 -

본인은 대한민국의 정체에 반하는 공산주의 교육 및 활동을 해 온 자로서 이후 국민보도연맹에 가입하여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정착에 기여할 것과 반공 이데올로기에 부합한 대한민국의 정책에 적극적으로 협조함은 물론 지하 조직화하여 활동 중인 좌익 및 공산주의 세력의 분쇄와 타파에 앞장설 것을 다짐합니다.

​단기 4282년 월 일

주소

성명 인

​이른바 국민 보도 연맹 가입 증서인 것이다. 내용을 다 읽고 난 근식은 순사들의 지시대로 자신의 주소와 이름을 써 주었다. 이름 석 자를 써 주는 것이 무슨 대수랴.

더구나 어차피 일로의 남로당 조직원 활동을 포기한 마당이니 저들의 의도대로 순순히 따라 주는 것이 편안한 일이라고 근식은 생각하였던 것이었다.

느닷없는 순사들의 등장에 놀란 근식의 할머니는 순사들의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하여 잔뜩 구부러진 허리에 지팡이를 짚고 밭둑을 따라 다가왔다.

"어째 우리 아그가 뭔 일을 저질렀다우?"

하고 노인이 순사들에게 묻자 순사들은 별것 아니라며 무성의하게 짤뚝한 대답을 했다.

왜정 때부터 강압적이던 순사들에 대한 곱잖은 인식을 가지고 있는 노인은 뜻하지 않은 순사들의 등장이 불안한 것인지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근식과 순사들을 번갈아 쳐다보지만, 누구도 노인의 답답함에는 관심이 없다.

순사들은 근식이 이름을 쓰고 지장을 질러 준 보도 연맹 가입증을 가방에 챙겨 넣으며 용산리 구장집이 어디냐고 묻는다. 근식은 내키지 않은 대답으로 구장집을 가르쳐 주었다.

순사들은 구장집을 찾아간다며 마을 안으로 사라졌으며 그들은 또 다른 그들의 실적을 올리기 위해 근식에 이어 제2, 제3의 목적 인물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잠시 눈앞에서 전개되었던 상황이 궁금해진 순녀가 근식에게 묻는다.

"여보! 그것이 뭣인디 당신 이름을 써 줘도 암시랑토(아무렇지도) 안 허께라우?"

근식은 지금은 유야무야 되어 버린 지난날의 일로 남로당 활동 시절을 아쉬워하며 대답한다.

"응! 어차피 남로당 활동을 안 허는디 써 줘 부는 것이 시끄럽덜 안 허겄제. 이름 시 자 써줬다고 뭔 일 있겄소? 꺽정허덜 마시오!"

그러나 태연한 근식과는 달리 식구들은 무언중에도 이 일에 대하여 근심을 하고 있었던 것이며 이렇게 근식은 국민보도연맹에 가입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국민보도연맹, 이는 오 제도 검사의 제안을 받아들여 당시 내무부, 법무부, 국방부와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주도하에 1949년 4월 10일 국민보도연맹이 창설되었으며 목적은 좌익 사상자들을 계몽, 지도하여 온전한 대한민국 국민으로 전향시킨다는 것이 명분이었으나 기실은 지하 좌익세력의 분쇄, 타파하는 데 더 큰 목적이 있었지 않냐는 것이 후세의 이야기이다.

연맹원들의 명부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애초의 순수한 창설 취지와는 달리 조직을 관리하는 군경들은 실적을 올리는 데 급급한 나머지 사상과는 전혀 무관한 무고한 사람들을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연맹원 명부에 끼워 넣는가 하면 사적인 원한을 가진 사람들의 허위 밀고로 엉뚱한 사람들이 보도 연맹원이 된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근식이 국민 보도 연맹에 가입한 그 뒷날의 저녁나절, 근식이 부엌에서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순녀를 불러

"여보! 어지께 보도 연맹에 가입헌 것이 앞으로 어찌게 될 것인지 좀 알어보고 올 것인께 그리 아시게!"

하고 집을 나서겠다고 한다.

"어디로 간다고 그러요? 저녁밥이나 들고 가시제!"

"도덕지 대전이 성님에게 가 봐사 쓰겄어."

순녀는 친정 오라버니에게 간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더 묻지 않았으며 근식은 집을 나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