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오지랖과 변죽
기고/ 오지랖과 변죽
  • 서정규 내부통제연구소 대표
  • 승인 2023.10.30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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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규 내부통제연구소 대표
서정규 내부통제연구소 대표
서정규 내부통제연구소 대표

[시정일보] 내년 4월 국회의원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온 모양이다. 문득 기업은 일류 정치는 4류라고 설파한 일류 경영인의 말씀이 떠오른다.

그 4류 정치인들이 하는 일은 변죽을 울리고, 말은 오지랖이 넓다. 그런 4류 인생들의 변죽과 오지랖이 시도 때도 없이 펄럭거리니, 또다시 4류 정치를 보아야 하는 국가의 주인은 참으로 지겹도록 속상하다.

집권 여당이 혁신위원회를 구성하여 그 내용을 발표했다. 툭하면 뭐라고 그 혁신의 결과를 보기도 전에 야당 대변인이 대뜸 폄훼( 貶毁)하는 말을 쏟아 놓는다. 그 당은 두 번이나 혁신위원회를 구성하고 사퇴하면서, 뭘 하는지 모르지만, 내부 싸움 중에 그만 중도 막을 내린 적이 있다.

폄훼란 헐뜯고 깎아내린다는 말이다. 제 놈 코가 석 자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그렇게 남의 당 일을 걱정할 여유가 있으면 내 당 일을 먼저 비평해 보아야지. 참으로 오지랖이 넓고도 넓다. 그 야당의 대표는 마치 국가의 명운이 백척간두(百尺竿頭)에라도 걸린 양하며, 단식을 무려 이십 여일 간 계속하여 역대 우리나라 단식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사람은 먹지 않으면 죽게 되어있다. 물만 먹고 영양분은 먹지 않는 기간이 길어지면 장 유착(癒着)이 온다. 서로 들러붙어서 안 될 장(腸)의 표면이 들러붙는 것이다. 그런 정도가 되면 단식자는 의식이 가물가물하게 되고, 더 진전하게 되면 생명의 위험이 오게 된다. 그 순간 가족들이 병원으로 이송하여 의료진의 병 구완을 받아야 살아날 수 있게 되는 법이다. 그 후 건강 원상회복에는 수개월이 걸리게 된다.

그런 단식 기록 갱신자가 그 오지랖 넓은 대변인이 소속된 야당의 대표이다. 어느 조직이나 그 조직의 대표자는 그에 걸맞은 인품과 식견을 가져야 한다. 그런 탁월한 재주를 가진 양하는 대표가 단식 종료 삼십 여일만의 당무에 복귀했다. 장 유착 없이 기록을 경신했으니 남보다 뛰어난 재주를 가진 게 아닌가 의심이 들기도 한다.

장삼이사 선량한 일반 백성은 작위(作僞)적 행위를 잘 안 한다. 거짓은 인류 양심을 짓밟는 가장 사악한 언행이기 때문이다. 단식을 두고 작위를 했다고 의심되는 대표를 모시고 있는 조직의 대변인 이라면, 오지랖의 뜻 정도는 알아야 한다.

오지랖은 웃옷이나 윗도리에 덮어서 입는 옷을 말한다. 그렇기에 그 옷의 앞자락은 넓을 수밖에 없다. 그런 오지랖을 펄럭이면서 아무 일에나 쓸데없이 참견하는 인사를 보고, 한탄하면서 내뱉는 말이 바로 참 오지랖도 넓다. 상대방의 기분이나 처지는 전혀 살피지 않고 오지 제 놈 흥에 겹거나 무식하여, 제 기분대로 씨부렁거리는 경우를 말한다.

변죽은 어떤 일의 핵심은 그냥 두고 변두리만 건드릴 때 사용되는 말이다. 예를 들어서 사회적으로 큰 화제를 받은 사건을 두고 흐지부지한 수사 결과를 발표할 때, 참 한심하군. 변죽만 울리고 넘어졌네 라고 말할 수가 있다. 따라서 핵심을 짚지 못하고 그 주변만 건드리는 처사를 두고 하는 말이 바로 변죽을 울리다 이다.

지금의 우리나라는 대화와 마음이 단절된 사회이다. 우선 여당과 야당이 그러하다. 이념, 지역과 세대를 가리지 않고 서로를 향하여 삿대질하며 핏대를 올린다. 딱 한 마디로 축약하면, 지금 우리나라는 나와 생각이 다르면 밥도 같이 안 먹는 세태이다.

사람의 생각은 서로 달라서, 밥을 같이 먹으며 서로의 안색과 말의 뉘앙스를 살펴보면서 대화해야 화합의 길이 열리게 되는 법이다. 잘하면 진지한 대화 가운데 소통 부재로 인한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열릴 수도 있다.

국가수반은 모든 국민 중 제1인자이다. 협치는 국민의 명령이다. 그런 국가 원수가 협치의 상대방당 대표와 밥을 같이 먹지 않는다고 한다. 국민 대다수는 왜 그러는지 미루어 짐작은 하고 있다.

야당 대표가 만나자는 얘기를 여러 번 해도 나는 여당 일에 불간섭이라면서, 응하지 않은 지가 어언 1년 하고도 5개월이 넘어가고 있다. 그런 불간섭 주장하는 국가수반이 서울 모 지역 구청장 선거에 바로 전직 구청장에 대한 졸속한 사면으로 재입후보의 길을 텄었다. 국민은 그 사면의 뒷면 뜻만은 잘 안다.

그래 놓고 불간섭이 야당 대표와 밥을 먹지 않는 이유라고 하니, 삼척동자도 믿지 못할 눈 가리고 아웅 꼴이다. 바로 협치의 핵심은 비껴가면서 말만으로 협치에 임하고 있다. 그 불간섭이라는 말도 앞뒤가 안 맞게 되어버렸다. 이거야말로 협치의 변죽만 울리는 모양새이다.

미국의 대통령 중 오바마 전 대통령은 그 나라 민주당 소속이었다. 전통적으로 하원은 공화당이 다수를 점유해 왔다. 오바마 대통령 때도 여전하게 공화당이 하원을 주도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하원의원들을 두고 전화로 설명하고, 찾아가서 설득하며, 백악관 관저로 초청하여 밥을 같이 먹으면서, 대통령이 추진하는 국가 일에 필수 불가결한 법률을 통과시켰다. 참으로 협치의 모범을 보인 것이다.

초점은 약간 다르지만, 세종임금님께서도 그런 통 넓은 면모가 있었다. 황희정승은 원래 양녕대군 지지자이셨다. 태종임금님이 세자 양녕대군을 폐하고 충녕대군을 세우자, 젊은 황희는 장자 세자의 원칙을 깼다면서 그 처사를 극구 반대했다. 그렇지만 황희정승의 자질과 능력을 꿰뚫어 보신 세종임금님은 10년간 황정승을 세우신 것이다. 국가 대사를 생각해야지 개인 간 호불호에 집착하면 그 대사를 망치는 우(愚)를 범할 수가 있는 법이다.

이태원 참사 1주년이 되었다. 어떤 조직의 책임자는 그 조직 최고위 자의 임무와 그에 걸맞은 책임이 있다. 국가의 커다란 사고가 일어났을 때는 직접 범죄자의 책임 외에, 조직 최고책임자의 더 무거운 책임이 있는 법이다. 책임자를 가려내겠다는 국민과 한 약속은 아직도 지켜지지 않았다.

물론, 좁은 골목에 한꺼번에 몰린 군중의 힘 때문에 일어난 순간 참사의 경우는 그 책임을 가리기가 참으로 어려울 수가 있다. 그렇더라도 1년여가 흘렀으면 최소한 조직 최고 자의 책임은 물었어야 한다. 이 사태 수사를 두고 변죽만 울린 사태이군이라고 아니 할 수가 있겠는가?

이름도 민망한 X 딸들의 작태를 오랜 기간 방치한 야당 수장의 업무 복귀 첫마디가 통합을 강조한다. 무얼 위한 통합인가? 내년 선거철을 위한 말이라고 삼척동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우리나라는 법치주의 국가이다. 어떤 범죄의 처벌은 사법부가 담당하고, 대법원판결이 나와야 그 죄에 대한 형벌이 확정된다.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라는 법언이 있다. 아무리 촘촘하게 법망을 구성해도 빠져나갈 구멍은 생기게 마련이다. 그래서 법 이전에 도덕을 강조하는 것이다. 인품의 첫째는 부끄러움을 아는 도덕성에 있다.

삼심주의 법치국가에서 대법원판결 전에 함부로 유무죄를 단정 지어서는 안 되는 법이다. 이를 핑계로 나는 바람 풍성하여도 너는 바람풍 하여라. 일주일에 4회씩 법정에 출석해야 할 당 대표자가 어떻게 최선을 다하여 당대표직을 수행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본인의 처지가 이러한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당원들에게 통합을 주문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그런 생각과 자세로 어떻게 당을 단합시킬 수가 있다는 말인가? 이것도 당 운명 결정 사안의 변죽만 울리는 일일 뿐이다. 아!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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