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정칼럼/ ‘방 안의 코끼리’는 누구일까?
시정칼럼/ ‘방 안의 코끼리’는 누구일까?
  • 시정일보
  • 승인 2023.11.06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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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춘식 논설위원
임춘식 논설위원
임춘식 논설위원

[시정일보] '방 안의 코끼리'라는 말이 있다. 모두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누구도 말하지 않는 커다란 문제를 말한다. 방 안에 코끼리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황당하겠지만 누구나 큰 문제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코끼리를 못 본 척,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다. 크고 무거운 문제를 코끼리에 비유한 표현으로, 어떤 사실이 너무 거대하고 무거워 덮어두고 언급하는 것을 꺼리는 상황일 때 쓰인다. 쉽게 말해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이라는 집, ‘방 안의 코끼리’는 무엇일까? 고령화가 세계에서 가장 빨리 진행되는 상황 속에서 가족의 돌봄 부담과 스트레스 증가는 물론 농촌 고령화율은 심각한 수준, 돌봄을 비롯한 ‘삶의 질’의 인프라 격차가 참으로 심각한 편이다.

노인 인구 증가와 그에 따른 노인 돌봄(부양)의 문제는 큰일이다. 부모님을 시설로 보내거나 가족 보호자가 희생하지 않으면 ‘불효’라는 사회적 인식도 변화하고 있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해법을 모르거나 해법이 가져오는 고통이 커서 외면해 왔던 문제다. 무시하기에는 너무나 커져 버린 코끼리, 즉 노인 돌봄 문제 해법의 실마리를 빨리 찾아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면서 삶을 마감할 때까지 누군가를 부양하거나 누군가로부터 돌봄을 받아야 하는 존재이다. 노인 돌봄 문제는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의 문제라는 인식에 따라 더 이상 방치되어서는 안 된다. 노인 돌봄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중요한 문제다. 노인 당사자는 물론 미래의 노인이 될 젊은이도 해당하기 때문이다.

과거 노인 돌봄 문제는 여성의 책임으로 여겨졌던 시대가 있었다. 지금은 정부의 개입이 당연시되는 사회적 돌봄으로 확대되었고, 무급 의무였던 가족에 의한 서비스 제공에서 더욱 광범위한 요구와 함께 관련 전문가에 의한 사회적 노인돌봄 서비스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면서 제공되는 노인 돌봄에 대한 서비스의 양은 많아졌는지는 몰라도 살던 곳에서 여생을 마치고 싶다는 노인들의 기대에는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자신이 사는 집에서 온전한 돌봄을 받지 못하고, 원하지 않는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으로 가고 있다.

며칠 전 요양원에 있는 지인의 사례다. “나는 어디서 영면(永眠)하는 것이 좋을까?” 아니 '요양원 생활이 어떤지 아느냐?', "아무리 고달프다고 해도 요양원은 가지 않는 것이 좋다"라며, 노인을 부양할 수 없는 자식들이 원하는 바 그대로 '서서히 죽어가도록 하는 곳이 바로 요양원’이라는 하소연이었다

매일 군사훈련보다도 엄격한 통제 속의 생활, 기상이 5시 30분, 조식은 6시 30분, 겨우 운동한다는 것이 복도 끝에서 끝까지 왔다 갔다 하는 것. 그러니 하루 대부분을 침대에 누워 지내는 수밖에 없으니 몸은 자연히 더 악화할 수밖에 없도록 인위적으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철저한 통제 속에 가둬놓은 상태로 최소한의 음식으로 서서히 죽어가도록 유도하는 곳이 요양원이란다.

특히 요양원을 나가려 해도, 본인의 의사와는 전혀 무관하게 퇴소하지 못하게 규정되어 있다 꼼짝없이 오지도 가지도 못하게 계약했으니 나중에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가 없다는 곳, 대부분 자식이 있어도 연락도, 면회도, 전화도, 오지 않는 외로운 삶의 현장 속에서 연명하고 있어
고려장이 아닌 요양장(療養葬)을 당하게 되어 있다는 눈물의 하소연이었다.

어쨌든, 노인들에게 편안하고 익숙한 곳은 다름 아닌 집이다. 노인들은 사생활이 제한되는 단체생활을 힘들어한다. 필요한 돌봄과 의학적 처치가 매우 가능하다면 집이 더 좋다는 데에는 이견의 여지가 별로 없다.

그런데도 어르신들은 스스로 몸을 돌보기 어려워져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요양병원이나 요양원 등의 시설에 대부분 머물게 된다. 이에 따라 생의 마지막 단계를 본인이 원치 않는 곳에서 보내야 하는 것은 경우도 적지 않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의료와 보건 서비스 간에 연계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기본적으로 보건소 중심의 서비스는 공공에 기반하고, 의료서비스는 민간에 기반해서 협조가 어려운데다 보건과 복지 서비스 간에 공식적 연계 체계도 미흡하다. 돌봄을 원하는 노인 본인이나 그 가족이 알아서 다양한 서비스 패키지를 만들어 연계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초고령화 사회 대비와 함께 언급되는 것 중 하나가 ‘커뮤니티 케어’이다. 다른 말로 ‘지역사회 통합 돌봄'이라고 부른다. 돌봄 불안 해소를 위해 어르신이 살던 곳에서 건강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지자체 단위의 주거·의료·요양·돌봄 서비스를 개선해 운영하는 정책을 말한다. 우리나라보다 10년 앞서 고령화 사회를 맞이한 일본이 기반을 잡아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는 시스템이다.

우리나라도 그러한 미래가 머지않았다. 우리나라에는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발급받은 사람이 많지만, 노동집약적 업무의 문제를 비롯해 사회적으로 하대받는 인식이 여전하다. 반면 급여는 이러한 모든 것을 극복할 만큼 충분하지 않아 실제로 돌봄을 하는 요양보호사와 간병인은 턱없이 부족하다.

간병인과 요양보호사가 충분해야 소비자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인력에 대한 평가도 가능해진다. 노인 돌봄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중요한 문제다. 가장 가까운 선배 고령 국가 일본이나 대만에서는 돌봄 종사자, 즉 요양보호사와 간병인이 부족해 2018년부터 베트남과 동남아에서 1만 명 이상 유치하고 있다.

재가 돌봄은 전문 교육을 이수한 요양보호사·간병인 등이 가정에 직접 파견돼 신체활동부터 가사, 일상생활을 돕는 것을 말한다. 가족 부담도 줄어드는 것은 물론, 노인과 보호자가 가장 선호하는 돌봄 방식이다. 실제로 노인은 자기 집에서 여생을 보내는 이른바 'AIP(Aging in place, 지역사회 계속 거주)'를 원하는 경우가 많다. 거동이 불편하더라도 재가 돌봄 서비스를 받으며 집에서 계속 살고 싶다는 노인은 전체의 56.5%에 이른다.

2026년이면 국내 인구 5명 중 1명이 65세 이상 고령자에 해당하는 초고령 시대에 접어들 예정이다. ‘돌봄’ 관련 사회적 인프라 구축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커져야 한다. 노인 돌봄 문제는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의 문제라는 인식으로 더 이상 방치되어서는 안 된다. 노인 돌봄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하루빨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