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광장/ 고인 물은 썩는다
인문학광장/ 고인 물은 썩는다
  • 임동식 한국문학신문 사진국장, 수필가
  • 승인 2023.11.07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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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식 한국문학신문 사진국장, 수필가
임동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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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일보] 흐르지 않는 물은 썩는다. 사해(死海)는 외부로부터 유입되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끌어안는다. 밖으로 흘려보내는 것은 없다. 밖으로 내보내는 물은 자의가 아닌 타의로 증발이라는 것과 땅속으로 스며들어 밖으로 보내지는 물뿐이다. 우리 인간들은 욕심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힘들어하며 괴로워한다. 나도 인간이기에 욕심의 굴레 속에서 지금까지의 세월을 살아왔다.

지나온 삶을 뒤척여보다 사해 혹은 담수호(淡水湖)와 같은 나의 삶을 느끼게 되었다. 앞만 보며 열심히 살아왔다고,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행복한 삶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욕심을 부리자면 부족한 것이 너무나 많지만, 그렇다고 현재 그리 부족한 것이 많은 것도 아니다. 저 푸르고 아름다운 사해처럼 돌을 던지지 않으면 잔잔하고 푸르고 아름답게 보인다.

지난해 12월쯤 마음이 텅 빈 것 같은 그리고 의욕이 없고 힘이 없는 나를 발견했다. 마음은 무엇인가에 쫓기듯 불안했고 큰소리에 깜짝 놀라는가 하면 짜증을 내는 일이 잦아졌다. 출근 시간에 맞추어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출근한 후에도 책상에 한두 시간 앉아 있기가 힘들었다.

정신적으로 혼란스럽고, 안정되지 못한 생활을 했다. 내 마음을 글로 표현하기 힘들 만큼, 살아오면서 처음 느끼는 공허한 마음 상태였다. 이런 것이 우울증의 시초인가? 병원에 가서 상담받아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안정을 찾을 방법을 생각해 보았다.

책을 읽으면 될까? 어떤 책이 좋을까? 장자의 <소요유>, <제물론>, <양생주>를 다시 읽어볼까. 아니면 음악을 들으며 명상할까. 뭔가에 몰입하면 될 것 같아 사진 출사도 여행도 해보았지만 무언가 빠져 있는 듯이 허전하며 공허했다.

집사람과 이야기했다. 대답은 나이를 먹으면 애가 된다고 했다. 또한, 마음을 비우고 욕심을 버리란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큰 도움은 되지 않았다. 이런 마음 상태변화도 욕심과 교만 된 생각에서 아니면 담수호와 같은 생각에서 생기는 현상일 거라고 생각되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집에서 쉴 때면 잠자는 시간이 아까웠다. 휴일에는 등산하며 건강에 신경을 썼다. 산행하며 정신적으로 평안을 찾기 위해 많은 생각을 했다. 산행하는 동안 어느 정도 마음이 편해지면 가벼운 마음으로 집으로 왔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 지나면 예전처럼 공허한 마음이 되었다. 집사람과 사진을 찍으러 가기도 했다. 평일에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텔레비전 시청 시간도 뉴스 시간과 여행 관련 프로 한 편으로 제한했다. 새로 생긴 습관 하나는 서점에 자주 가는 일이었다.

그리고 텔레비전 보는 시간을 아껴서 책을 읽는다. 책을 읽으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허전한 마음을 메우려는 얕은 생각을 했다. 다행한 것은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하는 것도 욕심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문득 ‘구르는 돌은 이끼가 끼지 않는다. 흐르는 물은 썩지 않는다.’라는 속담이 생각났다. 담수호, 사해에 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사해는 그 오랜 시간 동안 유입되는 것들을 욕심껏 채우기만 했지, 흘려보내는 것이 있는가? 흐르지 않는 물은 썩는 법이다. 사해의 수백 미터 밑에 있는 진흙은 외부로부터 유입된 침전물이 썩어 만들어진 진흙이다. 침전물은 흘려보내지 않아 생성된 것이다.

어쩐지 나의 삶도 사해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자신도 욕심으로 모든 것을 취하기만 했지, 타인을 위해 흘려보낸 것이 있는가? 행복의 꽃은 소유하고 있는 유형무형의 자산을 사랑으로 베푸는 것이라고 한다.

따뜻한 말 한마디로 도움을 준 사람이 몇이나 될까? 몸과 마음으로 타인을 위해 조금이라도 도움을 준 일이 있는가? 반문해 본다.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담수호처럼 채울 줄만 알았지, 흘려보낼 줄 모르고 살아온 나의 삶을 반성한다. 담수호처럼 살아온 삶이었기에 황혼기에 접어들어, 허전하고 어떤 목마름을 느끼는 것이 당연한지도 모른다.

지금 시작하자,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조금 이나마 방류하자. 가진 것이 없으면 재능기부를 통해서라도 정체되어있는 나의 모든 것을 방류하자, 유입되어온 모든 것들이 썩어서 퇴적물이 되는 사해와 같은 잘못을 범하지 말자. 사랑의 필터를 통해서 밖을 보자,

사랑의 필터를 통해서 나의 일부를 밖으로 흘려보내는 나눔의 삶을 살고 싶다. 지금처럼 마음의 허전함과 정신적인 혼란 그리고 삶의 허무함은 치유되리라는 교훈을 자연의 섭리로부터 깨닫고 알게 되었다.

이런 생각을 하니 이제는 마음의 평온함과 산다는 것 그리고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인다.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항상 자연에 감사하며 앞으로의 삶 역시 자연과 교감하는 삶을 찾을 것이다. 담수호로부터 ‘고인 물은 썩는다’라는 진리를 알게 되었다.

세상 모든 것은 흐르고 또 흘러야 한다. 재능기부를 통해서라도 나눔을 실천하자. 그래도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은 사진이다. 장애인들에게 사진을 찍어주었던 봉사를 계속해도 좋을 것 같다. 그러면 지금처럼 허전함과 혼란 그리고 삶의 허무함은 치유되리라 생각한다.

남은 생(生)의 모든 것들이 썩어서 퇴적물이 되어버리는 사해와 같아서는 안 된다. 세상이 아름답고 따뜻하기를 바란다면 나 자신이 흐르는 물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담수호가 아닌 저수지와 같은 삶을 사는 것이 행복의 법칙임을 뒤늦게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