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광장/ 절차적 정당성이란 무엇인가?
인문학광장/ 절차적 정당성이란 무엇인가?
  • 임 창 진
  • 승인 2023.11.23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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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창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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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창 진

[시정일보] 필자가 지난 2018년 6.13지방선거에 모정당의 무안군수 후보로 출마했다가 소위 공당이라는 정당들이 행하고 있던 기준도 원칙도 없는 비민주적, 비인간적 부당한 갑질 전략 공천 작태를 언론과 유권자들께 고발하고 탈당하여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고 행동에 옮긴 적이 있다.

당시 무안군수 후보자 공모를 지난 3월 29일 2명의 신청으로 마감하였다. 단수라면 몰라도 2명의 복수 후보가 있었음에도 전략 공천을 위한 후보를 탐색하다 4월 5일 추가 지원자 없이 2차 공모까지 마감하였다.

추가지원 후보가 없자 도당에서는 2명의 후보로 경선을 시행한다는 말만 하고, 지역위원장 본인은 공천에 관여하지 않는다며 입후보자들을 속이고, 내적으로는 전략 공천을 지속해서 모색하는 이중 행동을 펼치다 4월 19일 3차 공모까지 마감하였다.

그래도 추가 후보가 없자 2명의 후보로 경선한다는 원칙을 한 달이 넘게 고수하고, 지역위원장이 비당원이었던 사람을 전격 입당시켜 전략적으로 공천하는 과정에서 너무나 많은 관여 정황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권모술수를 보며 지역위원장의 인간적 자질을 의심했다.

필자는 80년대 전남대 재학시절에 독재정권에 항거하는 민주화 투쟁에 동참하여 학창 시절을 보냈다. 이에 모정당의 독재적 부당한 공천행위에 대해 민주화 투쟁을 선언한 것이다.

필자가 이러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절차적 정당성이나 민주적, 공정성 등은 우리 인간이 살아가는 데 귀중한 가치를 지니고 정의롭고 정당하게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삶의 가치이기도 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물며 피를 나눈 형제 종친 간의 공동체적 삶에서도 그 가치의 중요성은 더욱 공정하고 정의롭게 지켜져야 한다.

사회학에서 ‘절차적 정당성(正當性)’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절차적 정의라고도 불리는 이 말은 실질적 정당성과 함께 사회정의 이루는데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다. 사회적 쟁점을 해결하기 위해선 이 두 가지 정당성이 갖춰져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절차적 정당성은 문제나 갈등 해결 과정에서 사회구성원이 공정하고 공평하다고 느끼는 규칙의 준수를 의미한다.

실질적 정당성은 문제나 갈등 해결의 결과가 형평성 있고 공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절차적 정당성은 ‘수단’, 실질적 정당성은 ‘목적’에 해당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정당성이 잘 굴러가는 사회가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다. 아무리 좋은 목적이 있더라도 수단이 바르지 못하면 사회정의와 쟁점은 해결할 수 없다는 의미가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절차적 정당성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너무 자주 생긴다. 요새 국민의힘이 총선 대비 카드로 꺼낸 ‘메가 서울 프로젝트’에 참여를 희망하는 도시들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경기도 김포시에 이어 구리시, 하남시, 안양시 등도 서울시로의 편입을 요구하며 논의에 들어가는 모습이다. 하지만 곳곳에서 절차적 정당성이 없는 모습이 나온다.

예를 들어, 구리시는 최근 지역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서울시로의 편입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구리시는 개발제한구역, 상수원보호구역, 군사 보호지역, 수도권정비계획법에 따른 과밀억제권역 등 중첩규제로 도시 개발이 억제됐다. 그리고 “서울시로 편입되면 교통망 확충이나 자산가치 변동, 한강 변 개발사업 등 도시 발전에 도움이 되는 부분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지만 전문가들은 실현되기 쉽지 않은 정책이라고 입을 모은다. 지금으로써는 단발성 이벤트로 전락할 공산이 크다는 추측이다. 주민 의견 일치 여부나 지방자치단체 간 의견 충돌이 예고되고, 사업 승인이 나더라도 가시화까지 오랜 기간이 걸리는 만큼 당장 주택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제한적일 것이다

이처럼 중대한 문제를 국회 내에서 제대로 된 논의나 토의도 없이, 국민의 의사를 충분히 들어 보지도 않은 채 밀어붙인 것은 주권자인 국민을 무시하는 오만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목적이나 결과가 좋아도 그 절차가 즉 과정이 정당하지 않으면 그것은 모래위에 쌓은 성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피해와 혼란은 고스란히 그 사회 구성원에게 돌아간다. 부디 여권과 정부, 어떤 사회든 단체든 목적을 가지고 업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리더와 구성원들은 이런 절차적 정당성의 중요성을 반드시 인식하고 매사에 임했으면 한다.

선출된 권력은 민주적 정당성을 내세우며, 임명된 권력에 대해 민주적 통제를 요구한다. "국회가 우습냐?", "일개 장관 후보자가"라는 말은 국민이 직접 뽑은 선출된 권력의 민주적 정당성 우위의 사고에서 나오는 것이다. 임명된 권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는 당연하다. 그러나 선출된 권력의 임명된 권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는 호통 소리가 아니라 법절차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다.

선출된 권력이 자신들의 권력을 시원적(始原的)이라고 착각하게 되면 모든 국가권력에 대해 복종을 요구하게 된다. 선출된 권력의 권력은 주권자, 곧 근원적이고 시원적인 권력자인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다.

국민은 선출된 권력에 대해 권력을 부여하면서 동시에 법치적 통제하에 있을 것을 명령하고 있다. 그러기에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나 입법부도 법치적 통제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법치적 통제에서 벗어나는 순간 선출된 권력으로서의 민주적 정당성도 사라지게 된다.

입법의 민주적 정당성은 실체적 정당성과 절차적 정당성 모두에 있어 민주적 정당성을 갖추어야 한다. 직접민주주의가 아닌 대의제하에서의 입법은 충분한 논의와 토의, 공론의 수렴 과정을 통해 공동체의 이익을 최대한 실현이 가능하게 하는 방향으로 이끈다는 점에 그 민주적 정당성의 근거가 있다.

그와 같은 과정과 방향성이 없다면 입법의 민주적 정당성은 담보되지 않는다. 다수결은 그 결론에 이르는 과정이 민주적일 때 민주주의 원리에 부합하는 것이다. 또한 국가나 사회단체에서 불법적이거나 정당하지 못한 업무처리로 어떤 결과가 나왔다면 그 결과가 어떠하든 부당한 행위에서의 산물이며, 실체적·절차적 정당성 모두에 있어 민주적 정당성이 없는 결과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국회의 입법권은 위인입법(爲人立法)이 아닌 위민입법(爲民立法)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면에서 국가가 아닌 사회나 단체 역시 그 단체의 구성원을 위한 규정, 규약을 마련해야 한다. 주권자인 국민의 반대 여론이 높고, 국민만 피해를 볼 것이라고 함에도 사회나 단체의 구성원의 피해가 있다고 하는데 이를 무시하거나 한다면 그로 인한 책임은 오롯이 무시한 사람에게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