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광장/ 정원이 주는 기쁨
인문학광장/ 정원이 주는 기쁨
  • 임 정 희 재독 EU 정간호사
  • 승인 2023.12.04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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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정 희
임 정 희

[시정일보] 발 마사지와 접지의 장소! 요즘 맨발 걷기운동이 유행하고 있다. 발 마사지와 접지 그리고 어씽의 효능을 직접 경험한 사람들의 경험담을 유튜브를 통하여 보고 들으며 내가 정원을 오랫동안 가꾸며 얻은 기쁨이 떠 오른다.

코로나 시대의 피난처! 우리 정원은 400㎡ 크기로 본 시청에서 세내주어 약 25년 전부터 가꾸어 오고 있으며 집에서 5분 거리에 위치하여 있다. 코로나로 인하여 외부와의 접촉이 없고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이 불가능할 때 이곳은 유일한 나의 피난처였다.

정원에는 채소를 심어 놔서 날마다 물을 주고 풀도 뽑아 줘야 한다. 그때마다 경험하는 것이 있다. 나의 몸과 마음의 피로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한 시간만 일하고 나면 벌써 피로가 풀리고 기분이 상쾌해진다.

그리곤 늘 생각나는 분들이 있다. 나의 부모님이시다. 농촌에서 힘에 겨운 농사를 하시고도 장수하신 원인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우리 어머니는 93세로 별세하실 때까지 한 번도 병원 신세를 져보신 적이 없다. 아버지도 85세까지 장수하셨다.

그리고 돌아가시던 날까지 건강하셨다. 돌아가시던 날조차도 자전거로 4km 떨어진 시장에 가서 식료품을 사 오셨고 어머니와 함께 저녁을 드시고 대화를 나누신 후 밤 중에 숨을 거두셨다.

난 항상 두 분이 건강하게 사신 원인이 의문이었다. 우린 지병 관리 예방프로그램이니 뭐니 뭐니 하여 늘 의사의 도움을 받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어떻게 우리 어머니는 병원 신세 지지 않고 장수하실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내가 정원에서 잔디밭을 가꾸고, 풀 뽑고, 채소 심고, 물주면서 기쁜 마음으로 채워짐을 경험하며 감사하는 마음도 가득하다. 그러면서 얻은 답이 하나 있다. 부모님께서 흙을 접지하며 얻으신 것이 바로 건강이었으리라는 것이다.

걷기 명상지! 나는 몇 주 전부터 맨발로 흙을 밝으며 일하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만 해도 물이 발에 젖는 것이 싫어서 정원 신발을 신고 일했다. 그러나 이제는 정원에 들어서자마자 신발을 벗고 맨발로 잔디밭을 한 바퀴 돈다. 비 온 후의 잔디는 축축해서 기분이 상쾌하다. 그리고 자연스레 천천히 걷게 된다. 천천히 걸으면서 걷기 명상하게 된다.

빨리 걸으면 벌을 밟을 수도 있기에 어디를 딛는지 보면서 밟는다. 우리 정원에는 아들이 취미로 가꾸는 벌통들이 놓여있다. 벌들은 잔디밭에 핀 클로버꽃의 넥타를 빨고 있을 때가 많다. 그래서 유난히 자세히 보지 않으면 벌을 밟을 수 있다. 밭에는 돌길과 잔디 그리고 흙으로 된 부분이 있다. 이 세 가지 다른 부분들을 천천히 번갈아서 걸어 본다.

돌길은 햇볕을 받아 따스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잔디밭은 차가우며 신선함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나선 흙을 밟으며 일하기 시작한다. 신발을 신고 일하던 때의 감상과 정원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현저하게 달라졌다.

힐링의 장소! 전에는 일해야 한다는 선입감이 앞섰다. 그 중압감이 이젠 기쁨으로 변했다. 맨발로 잔디밭을 몇 번 돌고 나면 기분이 벌써 상쾌하여진다. 한 시간만 흙을 밝으며 밭에서 풀을 매고 나면 머리가 맑아짐을 느낀다.

이젠 정원이 나의 몸과 마음을 치료해 주는 힐링 처소로 변했다. 일이 끝나고 나면 흙에 젖은 발을 미리 받아 둔 빗물 속에 담가 족욕을 한다. 그 상쾌함은 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그야말로 웰네스이다. 따라서 건강에 여러 가지 변화가 생겼다.

아직 몇 주 되지 않았는데도 밤에 잠이 잘 온다. 차던 발이 따스하게 느껴진다. 잔디밭과 콘크리트 길 그리고 흙을 밝으며 큰 차이를 느끼게 된다. 나의 건강에 도움을 주고 기쁨을 안겨다 준 정원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한국인의 채소! 정원이 주는 기쁨에 또 한 가지가 있다.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상추, 부추, 들깨, 쑥갓, 도라지와 더덕까지 심었다. 부추, 도라지, 더덕은 다년생이라 해마다 심지 않아도 된다. 쑥갓 역시 따로 심을 필요가 없다.

늦은 가을까지 꽃이 피는 쑥갓은 정원에서 여름 내내 노란색으로 빛을 발한다. 그리고 벌과 나비들이 좋아하는 꽃 중의 하나이다. 저절로 씨앗이 떨어지면 다음 해 봄에 새로 새싹이 돋아난다. 얼마나 예쁘고 기특한지!

작년에는 오래되어 낡아진 온상을 헐고 새로운 온상을 마련했고 토마토와 오이를 함께 심었다. 온상 밖에 심는 것보다 수확이 더 좋았다. 여름 내내 신선한 오이와 맛있는 토마토를 먹을 수 있었다. 토마토를 심기 전에는 온상에서 상추씨와 들깨 씨를 뿌려 모종을 만들어 냈다. 상추는 봄부터 여름 내내 샐러드로 먹을 수 있다.

밭에는 주로 감자를 심었고 나머지 밭엔 고추, 양파, 호박, 비트를 심었다. 올해는 감자의 수확이 작년보다 떨어졌다. 어떤 크기의 종자 감자를 심어 주느냐가 수확을 결정하는 것 같다. 큰 종자 감자는 큰 감자가 나왔고 작은 종자의 감자는 작았다. 그래서 경험이 중요한 것 같다. 그리고 우리 정원에서 생산한 감자의 맛이 현저히 다른 것을 경험한다.

아로마가 있고 맛이 훨씬 좋다. 얼마나 좋은 경험인가? 감자와 반대로 주키니 호박은 두 그루만 심었는데도 거의 30여 개의 주키니를 수확했다. 얼마나 무럭무럭 잘 자라는지 다음날 가서 보면 벌써 새로 익은 주키니 호박을 딸 수 있었다. 올해 들어 비가 많아 더 잘 자랐다.

나누는 기쁨! 어쨌든 그 많은 호박을 우리가 다 먹을 수 없어서 이웃과도 나누고 멀리서 사는 딸과 친척들 그리고 합창단 단원들과도 나누었다. 이젠 반 자급자족하는 삶이 되었다.

봄에 심어 여름과 가을에 추수하는 채소만큼은 그렇다. 많은 사람이 소원하는 것이 작은 땅 한쪽을 가꾸는 것이다. 그러나 이젠 땅이 부족한 때가 되었다. 이러한 때에 집에서 5분 거리에 400㎡의 밭을 가꾸는 나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유실수들! 심지 않는데도 해마다 철 따라 꽃 피우고 풍성하게 열매를 맺는 고마운 과일나무들이 있다. 25년 이상 자라다 보니 크고 오래된 이 과일나무들이 주는 기쁨 또한 대단하다. 체리 나무, 사과나무, 배나무, 자두나무, 라즈베리 복분자, 산딸기, 구스베리와 각종 베리들, 50kg 정도 생산해내는 포도나무 두 그루·이들이 맛있는 과일을 선물해 주면 다 먹지 못해 나누는 기쁨도 크다.

만남의 장소!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가꿀 수 있는 이 정원은 하나의 파라다이스인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실행하게 된 것은 나와 관련된 여러 그룹별로 일 년에 한 번 정도 정원으로 초대해서 베푸는 것이다. 남편이 아직 직장 근무를 할 적엔 볼리볼, 배구 그룹 동료들이 왔었다. 퇴직 이후 남편의 건강이 나빠지면서부터는 힘이 들어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2022년에는 봄부터 가을까지 계속 우리 무지개 앙상블이 와서 노래를 불렀다. 다른 곳에서는 노래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올 2023년에도 역시 식구들, 옛 동료들 그리고 무지개 친구들을 정원으로 초대하여 즐거운 시간을 나누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