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식 장편소설 영화 농장 [20/ 최종화]
임동식 장편소설 영화 농장 [20/ 최종화]
  • 시정일보
  • 승인 2023.12.01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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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식
임동식

[시정일보] 1955년 6·25 동란이 끝난 지 두 해째에 이르렀지만, 그 흔적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동리마다 과부들이 천지요, 국민의 살림살이는 피폐하기 짝이 없어서 대부분 가정은 당장 끼니를 걱정해야 했고 망가진 집과 세간들을 수리하는 데 열정을 쏟지 않으면 안 되었다.

국가에서는 재건의 기치를 내걸고 관공서 건물의 어디라도 여백이 있으면 '재건'이란 글자를 새겨놓고 국가재건에 국민의 참여를 독려하였다.

이즈음 평정의 순녀네는 5년 전 보도연맹 사건에 연루되어 근식이 죽임을 당하고 나머지 식구인 순녀의 시할머니와 시어머니 그리고 순녀 자신과 근식이 죽던 해에 순녀가 낳은 딸인 종자, 이렇게 네 식구였다.

딸의 이름은 시할머니의 뜻에 따라 '종자'라고 하였으며 종갓집의 마지막 자손이라 하여 씨앗의 다른 이름인 종자라고 부르게 되었다. 근식이 죽고 없으므로 가장 역할은 순녀가 하였다.

시련과 실패를 극복해 보지 않고 어찌 성공한 삶에 이를 수 있겠는가.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것이야말로 인생의 내공을 쌓는 것이요, 보다 완벽한 성공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남편을 잃고 전쟁의 고난 속에서도 순녀는 절대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며 도리어 그것으로 말미암아 견고한 내면세계를 이뤄가게 되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순녀는 더욱 억척스럽게 살림을 꾸렸고 그러한 결실로 너 마지기 논 두 자루가 늘어나 동네에서는 가장 전답이 많은 부농이었으며 흠이라면 가정에 남정네가 없다는 것이 흠이었다.

추석 명절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순녀는 집 뒤의 고추밭에서 고추를 따 망태에 담아 머리에 이고 집으로 향한다. 여섯 살 종자는 뒤뚱거리는 걸음으로 순녀의 뒤를 따른다.

순녀는 발길을 멈추고 되돌아보았다. 종자가 온갖 해찰을 하며 저만치 뒤따르자 순녀는 성가신 듯 소리친다.

"종자야! 언능 오니라! 쩌짝 산에서 구신 나온다."

귀신이란 말에 종자는 기겁하고 허겁지겁 쫓아와 순녀의 앞장을 섰다. 대숲 사잇길을 지나 마당에 이르자, 순녀의 시할머니와 이웃 마을 사는 시 작은아버지가 대청마루에 걸터앉아 도란도란 얘기 중이었다.

"작은아버지 오셨오?"

"어이. 꼬치 따 오는가? 우리 종자랑…. 아이고 저놈이 불알만 달고 나왔더라도…. 끌끌, 질부! 거 망태 내려놓고 이리 좀 와 보시게!"

뭔가 작심을 한 듯 별렀던 얘기가 있는 모양이다. 순녀의 시 작은아버지는 가르마를 가른 단정한 머리에 회색 두루마기를 차려입고 있었으며 평소에도 늘 복장을 단정히 하고 언행을 조심히 하는 점잖은 사람이었다.

순녀가 망태를 내려놓고 시 작은아버지에게로 다가가자, 시작은 아버지가 말한다.

"질부! 내가 이런 말을 헌다고 오해는 마소!"

"야. 뭔 말씀인지 해 보시쇼!"

순녀의 시 작은아버지는 목소리를 다듬으려는 것인지 헛기침을 두어 차례 하고 말을 꺼낸다.

"으흠, 흠…. 네 다른 말이 아니고 종자네 애비가 죽은 지도 벌써 네 해가 지나 다섯 해짼디 질부는 인자 청춘인디도 불구허고 아무 불평 없이 살림을 잘도 꾸려왔네. 그런디 이것이 우리 오씨 가문으로 본다 치면 나쁠 것이 한나도 없제만 아직 새파란 청춘인 질부가 독야청청 홀로 지낸다는 것이 너머나 아깝단 말이제. 그리허여 내가 자네 할머니께도 말씀을 드렸네만 마땅헌 혼처가 생기먼 재가를 허시게나!"

"아니 아니여라우. 아무리 그렇기로 아녀자가 일부종사허는 것이 법도이고 연로허신 할머니 그라고 어무이가 계신디 재가를 해 불먼 누가 두 어르신을 모신다요?"

"그러기는 허제. 질부의 그 마음은 참 이쁜 마음이네. 그래도 앞으로 살아갈 날이 창창허니 깊이 생각을 해 보시게!"

순녀의 시 작은아버지는 마음이 넉넉하고 여유로운 사람이었다. 지금 당장 편리하면 그만일 것을 질부의 앞날까지 생각해 주는 너른 아량을 가진 것이 틀림없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순녀의 시 작은아버지는 돌아갔다.

그날 밤, 순녀와 시어머니 그리고 시할머니, 세 고부는 큰방에 모여 앉아있었다. 뒤 창문 너머로 밤바람에 나부끼는 댓잎 소리가 사르륵사르륵 들려온다.

방 귀퉁이에 말린 고추를 쌓아두고 세 고부는 나란히 앉아 그것을 다듬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도중에 순녀의 시어머니가 나직한 소리로 순녀를 불렀다.

"종자 에미야!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시방 니 나이가 이팔청춘인디 뭔 수로 기나긴 세월을 일부종사를 헌다고 독수공방 험서 살어간단 말이냐? 차말로 그것은 어려운 일인께 낮에 작은아버지 말씀대로 마땅한 혼처가 생기먼 재가를 허도록 해라!"

순녀의 시어머니는 당사자가 재가한다 하더라도 말려야 할 입장에 있는 사람이었지만 그녀 또한 고달플 수밖에 없는 처지의 순녀 삶을 걱정하는 것이었다. 분주히 고추를 다듬던 순녀는 시어머니의 말을 듣고 잠시 손길을 멈췄다.

"어무이! 말씀 잘 알겄어요. 생각해 보겄습니다."

고추 다듬기가 끝나고 순녀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다섯 살배기 종자는 요 위에서 자고 있었다. 순녀는 잠든 종자를 바라보며 낮에 시 작은아버지가 혀를 차며 하던 말을 상기해 보았다. '저놈이 불알만 달고 나왔더라도….'

27세의 젊은 여인, 육십 세를 산다고 해도 청상과부로 나머지 세월을 살아간다는 것은 까마득한 일이요, 한 여인에게 있어서 그것은 가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남편이 죽은 지 5년째에 이르렀지만, 그동안 재가를 하는 등의 생각은 꿈에도 해 본 적이 없는 순녀로서는 오늘 곤혹스러운 과제를 떠안게 된 것이었다.

재가하자니 시댁에서의 자신이 지켜야 할 도리가 마음에 걸리고 그냥 이대로 살자니 너무나 까마득한 일이다. 순녀는 잠이 든 어린 딸의 이마를 쓰다듬으며 낮의 시 작은아버지의 말을 몇 번씩이나 곱씹어 보는 것이었다. '저것이 불알만 달고 나왔더라도…. 끌끌.'

순녀는 허리를 굽혀 딸을 바라본다. 아이는 가끔 잠꼬대를 할 뿐,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있다. 뒤 창문 너머로 밤바람에 댓잎 나부끼는 소리가 사르륵사르륵 들려온다.

댓잎 소리 달빛에 실려 쓸쓸한 선율로 뜨락을 채우고 귀뚜라미 울음소리에 흩어진 달빛 문틈으로 흘러드네. 밤 깊은 줄 모르고 밤새 울어대니 이 밤이 슬픈 것은 너만 아닌가 싶어라.

순녀는 어린 딸 종자를 품에 안고 억지 잠을 청하고 있었다.

이틀 뒤,

아침상을 물릴 즈음 순녀는 아직 온기가 남은 솥 바닥을 문질러 숭늉을 만들고 김이 모락거리는 숭늉 그릇을 시할머니 앞에 갖다 놓는다.

"할무이! 여그 숭님 드시쑈!"

"오냐! 고맙다. 아가 거그 앉거 보그라!"

시할머니는 다정다감한 분으로 언제나 따뜻한 말투였다.

"이 집에 남정네들은 어찌 이렇코 복들이 없어서 며느리들마다 청상과부들을 만드는지 원…. 그래, 아가. 재가에 대해서는 생각을 해 봤냐?"

"할무이! 저도 저제만은 나 살자고 재가를 해 불면 어무이, 할무이는 어찌게 허신다우?"

"우덜이사 꺽정 말어라! 나이도 이만치 많은디 이렇코 저렇코 살다 보면 살 테제. 나이 어린 너나 갈 길 찾아서 새 출발을 해사제…. 두말 말고 마땅헌디 찾아서 재가를 허그라!"

이때 순녀의 시어머니가 시할머니의 말을 이어

"종자 에미야! 이 집안에 과부는 우리로 족하다. 젊디젊은 너까지 이 집안의 과부로 눌러 앉힐 수는 없제. 할무이 말씀대로 따르거라!"

하고 못을 박아 얘기를 했다. 이렇게 하여 결국 순녀는 친정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정이 나고 순녀의 몫으로 논 두 배미 값, 나락 70석을 주기로 하였다.

어차피 말이 나온 마당이니 차라리 어른들의 말에 순종하기로 했던 것이다. 친정 동네로 가서 집이라도 마련하여 종자와 둘이 살면 될 것이요, 마땅한 재가 자리라도 있으면 재가를 하면 될 것이다.

시어머니는 기왕에 결판이 났으니 하루라도 빨리 친정으로 돌아가라고 하였으나, 순녀는 추수기가 눈앞인데 가실 일이라도 다 마쳐 주고 가는 것이 도리라며 당장 떠나는 것을 미뤘다.

그리고 양력 시월 말에 이르러 가을걷이를 다 마친 어느 날 저녁나절이다. 순녀는 친정으로 돌아가기 위해 자신의 옷과 딸 종자의 옷을 주섬주섬 챙겨 보자기에 싸 놓고 시할머니에게 인사를 드리기 위해 큰방으로 들렀다.

"할무이! 어무이랑 두 분 냉겨 두고 떠날락 헌께 겁나게 맘이 안 좋으요. 쩌 요강은 아적마다 누가 비워 드리까이? 진지랑 많이 드시고 건강허시쑈! 어무이도…."

"오냐! 여그 꺽정은 말고 우리 종자 잘 키우그라! 눈에 어룽거려서 어쩌끄나!"

순녀에게 가라고는 하였으나, 막상 떠나는 마당이 되니 서운함을 감추지 못하고 시어머니나 시할머니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시어머니는 종자를 무릎에 안고 종자의 손과 볼을 자꾸 어루만지며 작별의 순간을 미뤄 본다.

어린 종자는 평소와 다른 분위기를 알아차린 것인지 어리둥절한 눈으로 제 엄마와 할머니를 번갈아 쳐다본다. 종자를 안고 있던 시어머니는 끝내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느그 애비가 살아 있으먼 얼마나 좋을 것인디…. 시상을 잘못 만나 그렇코도 빨리 가 불다니…. 쯧쯧 불쌍헌 것, 꼬치나 달고 나올 것이제."

제 할머니의 표정을 본 종자는 울상이 되었다.

"아가! 늦을라. 언능 뜨거라!"

순녀의 시할머니는 며느리의 눈물 바람을 더는 볼 수 없었던지 출발을 재촉하고 순녀는 시가의 두 어른에게 인사를 하고 대문을 나선다. 머리에는 옷 보퉁이를 이고 한 손으로 종자의 손을 붙든 채 길을 나선다.

종자의 할머니는 동구까지 따라오며 쓸쓸히 떠나는 두 모녀를 배웅하였다. 종자는 엄마 손에 붙들려 끌려가듯 서툰 발걸음을 하면서도 자꾸 뒤를 돌아봤다.

마을 어귀까지 따라 나온 종자의 할머니는 바람에 무명 치맛자락을 휘날리며 저 멀리 멀어져 가는 며느리와 손녀를 향해 하염없이 손을 흔들고 서 있었다.

"종자야. 언능 가자! 해 떨어지겄다."

아이를 앞세우고 순녀는 길을 재촉했다. 농장을 지나 도덕지가 저만치 보이는 곧게 뻗은 신작로에 이르렀다. 땅거미가 길게 늘어진 신작로, 이 길은 순녀가 열여덟 살 되던 해인 9년 전, 설레는 가슴으로 꽃가마를 타고 말을 탄 새신랑을 따라갔던 그 길이다.

그러나 지금은 9년 동안의 시가 살이를 모두 청산하고 그동안 생겨난 딸, 종자의 손을 잡고 9년 전의 그 길을 되돌아가는 길인 것이다. 해는 서산에 뉘엿거리고 빈 들판으로는 제법 쌀쌀해진 햇구녘 바람이 불어왔다.

순녀는 문득 서글픈 생각이 든 것일까,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돌이켜 보면 결혼생활 9년 동안 신혼기 일이 년 동안이나 모를까, 나머지 세월은 대체로 불행한 세월이었으며 그도 그럴 것이 열아홉에 낳은 첫아들을 홍역으로 잃고 그 불행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남편과 사별을 하고 이제 친정으로 돌아가야 하는 팔자이니 격랑기의 한 시대에 휩쓸린 기구한 여인의 운명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순녀는 터벅터벅 걸으며 하염없이 울고 있었으니 하얀 무명저고리의 앞자락은 눈물로 얼룩이 졌다. 이윽고 순녀가 친정집에 도착하였다.

인길댁은 대문 옆 돌배나무 아래 쪼그리고 앉아 곰방대에 담배를 빨며 순녀를 기다리던 중이고 태곤과 점돌은 마당에 널었던 나락을 고무래질로 모으는 중이었다.

인길댁은 곰방대를 팽개치고 순녀가 이고 온 옷 보퉁이를 받아들며 반가워한다. 순녀가 돌아오게 된 연유가 어디에 있건 인길댁은 반가운 것이다. 반갑기는 순녀도 마찬가지, 인길댁의 손을 잡고 놓을 줄 모른다.

"어서 오니라! 우리 종자도 왔구나? 어서 들어가자!"

인길댁을 따라 순녀 모녀가 마당으로 들어서자 태곤과 점돌도 고무래를 내던지고 순녀에게로 다가와 인사를 한다.

"누나! 잘 오셨오."

"고무! 안녕해겠오?"

마당의 소란한 기척을 알아챘던 것인지 부엌에 있던 경주댁과 용균도 집 모퉁이를 돌아 순녀에게로 다가왔다. 경주댁의 뒤를 따라 나온 용균은 경주댁을 제치고 순녀의 앞으로 오더니

"고무!"

하고 부르더니 허리가 꺾어지게 인사를 했다. 여덟 살 용균은 나이보다 덩치는 크고 용모는 순녀의 오라버니인 대전을 빼닮아 있었으며 순녀는 그러한 조카를 끌어안으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몇 해 전 우익의 추적을 피해 가출을 한 후로 종적을 알 수 없는 오라버니의 생각이 떠올랐던 것이다. 예전, 오라버니가 만주에서 돌아와서도 공부를 핑계로 경주댁과 각방 생활을 하던 오라버니를 꾀어 경주댁의 방으로 들게 했던 것이 누구였던가.

당시 각방을 쓰던 경주댁 내외간의 문제 해결을 위해 어느 날 순녀와 말례는 오라버니가 잘 방을 미리 점거하여 잠자리에 들게 되므로 침실을 잃은 대전은 하는 수 없이 독수공방하던 경주댁의 침실을 찾아들게 되었으니 그 후로 용균이 탄생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한 탄생의 사연을 배경으로 태어난 용균을 끌어안고 순녀는 눈물을 짓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큰방 문을 열고 경배가 나왔다. 순녀에게는 경배 역시 사랑하는 동생으로서 어려서는 목욕까지 시켜줬던 동생인 것이다.

"우리 막둥이 방에 있었냐?"

"응 누님! 방에서 공부했어라우. 근디 누님 매양 돌아가셔서 와겠소?"

철없는 경배는 순녀의 친정 귀가의 배경을 묻는 것이었다. 순녀는 고개를 끄덕일 뿐 대답은 안 했다. 인길댁은 경배의 옆구리를 찌르며

"이놈아, 그런 말은 허는 것 아니여! 그런디 우리 경배가 공부를 잘해 갖고 5학년 급장이란다. 그렁께 날마다 책만 들여다보고 딴 애기들마냥 놀러도 안 간단다. 그나저나 시장헐 텐디 언능 방으로 가자! 저녁 묵게!"

"야 어무이! 근디 오메! 우리 막둥이가 공부를 잘허는갑네. 급장을 허는 것 본께."

순녀는 경배가 공부를 잘하고 게다가 급장까지 한다는 말에 동생이 대견하고 자랑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경배는 유소년기부터 남달리 영민했다.

한 번은 인길댁이 일곱 살, 경배에게 이웃집에 놀러 간 대전을 불러오란 심부름을 시켰다. 경배에게 대전은 서른 살 가까이 차이 나는 형이다. 이웃집으로 심부름을 간 경배가 마당에 서서 대전을 부르자 이웃의 아저씨가 문을 빼꼼히 열고

"대전 씨가 너허고 뭣이 되냐?"

하고 놀려 줄 요량으로 묻자, 경배는 당황해하며 쉽사리 대답을 못 했다. 대전과 나이 차이가 아무리 많아도 아버지는 아닌 거 같고 그렇다고 형이라고 하자니 대전의 나이가 너무 많은 것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어른의 물음에 대답을 안 할 수도 없었던 경배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한 대답이 가관이었다.

"우리 삼촌이어라우."

이 대답에 방 안에서는 박장대소가 터져 나왔던 것이며 대전은 얼굴이 벌겋게 될 만큼 죽다시피 웃으며 방을 나와 경배의 등을 토닥여 주었던 것이었다.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밥상머리로 식구들이 빙 둘러앉았다. 그렇잖아도 많은 식구에 순녀네 모녀 두 식구를 더하니 대식구였다. 수젓가락을 들기 전, 인길댁은 식구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점돌 에미야! 점돌 애비도 없는 마당에 살림을 꾸려 나가니라고 니가 고상이 많다만은 이참에 이 아그할라 친정으로 돌아오다 본께 더 힘들 것제만 어짤 것이냐. 식구들이 모다 이해허고 협조험서 살아야제. 그라고 이 방에 있는 우리 애기들 태곤이, 점돌이, 저 어린 종자까지 불행허게도 모다 아부지들이 없으니 이것이 뭔 팔잔가 모르겄다. 태곤아! 점돌아! 느그들은 하이나 애비 없는 후레자식 소리를 들어서는 안 된께 어른들 눈 밖에 나는 짓을 해서는 못 쓴다."

이렇게 식구들을 향해 당부하였고 경주댁은 이렇게 대답했다.

"야. 헐 수 없제라우. 갈 디가 마땅치 않은 애기씨를 어찌게 헐 게라우. 헐 수 없제. 인자 식구가 여덟 식구로 늘었응께 올 가실에는 논 다섯 배미 다 보리를 갈아야 쓰겄소."

하고 식량 걱정을 하는 것이었다. 집안의 식솔이 장정이 둘에 아이들이 셋이요, 여인네가 셋이니 날마다 곡식 독에 줄어드는 양식이 눈에 보일 것은 사실이다.

그러니 놀리는 전답이 없이 한 떼기 땅이라도 더 농사를 지어야 할 터이다.

밤이 깊어지자 모두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고 큰방에는 인길댁과 순녀의 모녀가 남았다. 종자는 요 위에서 쌔근쌔근 잠이 들어있고 그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인길댁이

"아이고! 애린 것이 지 애미 따라서 먼 길 오니라고 힘들었든갑다. 그나저나 복도 지지리도 없제. 애비 얼굴도 모르고 시상에 나와서 어찌게 살아갈지…. 쯧쯧."

하고 걱정스러운 듯 잠든 종자를 바라보았다. 순녀는 잠자리에 들 생각은 않고 우두커니 앉아있다가 말을 꺼낸다.

"어무이! 어무이야 저를 이해허실 테제만 성님 앞에서는 참말로 까시방석이여라우. 오라부지라도 계시먼 모를까…. 장승만한 장정들이 셋이나 되는디 우리까지 더부살이를 허게 된께 성님 보기가 여간 죄스럽소."

하고 속엣말을 하자 인길댁은

"당최 그런 소리 허덜 마라! 지 형제들이 어려우먼 서로 다둑임서 돕고 사는 것이 세상의 이치제…. 당최 그런 소리 마라!"

이렇게 이지러진 순녀의 마음을 달래주고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의 마음처럼 넓고 높고 깊은 은혜가 어디에 있으랴. 자식이 아무리 미운 짓을 해도 그것을 원수로 갚는 어머니는 없다.

자식이 아무리 못났어도 그것을 트집 잡는 어머니는 없다. 인길댁은 친정으로 되돌아온 딸, 순녀를 그 누가 손가락질을 하든 자신의 품에 안고 싶은 것이었으며 역경의 현실을 탓하기보다는 딸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만 더할 뿐인 것이었다.

순녀와 인길댁은 종자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누웠다. 세월은 유수와 같고 일체가 무상하다니 달이 가고 해가 가니 변치 않는 것이 어디에 있으랴.

1940년 시월 열여드렛날에 순녀네가 복룡촌에서 이사를 올 때 순녀의 나이는 열두 살 소녀였다. 그렇던 소녀가 성장하여 시집을 가고 한국동란의 파고에 휩쓸려 남편을 잃게 되니 친정으로 돌아와 이렇게 어머니 옆을 잠자리 삼아 눕게 된 것이다.

순녀는 쉽사리 잠들지 못하고 몸을 뒤척이며 지난 과거를 돌이켜 보는 것이었다. 도덕지로 이사를 올 때의 식구가 아홉 식구였다. 이사를 하여 순녀의 아버지가 죽고 이어서 오라버니마저 잃게 되었으며 두 자매는 출가하였다.

그리고 막냇동생인 경배와 조카 용균이 태어나게 되었으며 거기에 딸인 종자가 늘어났으니 지금은 여덟 식구인 것이다.

이렇게 세상의 흐름 속에서 순녀네도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이며 이제 든든한 가장이 없는 마당에 많은 식구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림을 꾸려나가야 할지 걱정하며 순녀는 잠을 못 이루고 있는 것이었다.

동짓달 초,

아침 식사 후 설거지를 마친 순녀가 마당으로 나가 태곤을 불렀다.

"야~."

태곤이 마루로 나오며 대답하자 순녀가 헛간에서 곰방메를 손에 들고나오며

"태곤아! 점돌이랑 데꼬 가서 보리논에 곰배질 좀 허고 오자!"

하고 말하자 눈치 빠른 태곤이 방에서 점돌을 데리고 나왔다. 영화농장의 다른 논들은 이미 보리 파종을 다 마친 후였으나, 순녀네 논은 이제야 파종을 하는 것이었다.

순녀의 시댁에서 논값으로 주기로 했던 칠십 석의 나락이 시월 말에야 도착했고 동짓달 초에 논문서와 나락을 교환하게 됨으로써 비로소 순녀네 논이 되었던 것이니 보리 파종이 늦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세 사람이 한 이랑씩 각기 맡아 곰방메질을 해나간다. '탁 드르륵 타닥 드르륵 타닥 탁 타닥' 보리논 바닥을 두드리는 곰방메 소리.

젊은 두 장정은 곰방메를 등 뒤까지 치켜들었다 내리치는 속도가 빨라 '쉬익' 하는 바람 가르는 소리와 함께 바닥을 때리는 소리가 '탁 드르륵' 하고 일정한 간격으로 들리는데, 힘이 넘쳐 곰방메가 바닥에 부딪히고도 남는 운동력을 이용, 곰방메의 몸체로 바닥을 문지르듯 긁으면 효율적인 곰방메질이 되는 것이었다.

순녀의 곰방메질은 달랐다. 한 번 내리칠 때 잘해야 두세 개 흙덩이를 두드리고 아니면 한 덩이씩을 두드리니 힘에서 장정들과 차이가 나고 더뎠다.

곰방메를 맞은 논바닥의 흙덩이는 잘게 부서지고 보리의 씨앗은 흙덩이 사이로 굴러내려 뿌리를 내릴 자리를 잡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곰방메질의 이유이다.

정오가 가까워지자 인길댁이 손자인 용균을 앞세우고 광주리에 점심을 담아 곰방메질을 하는 순녀네 논으로 왔다. 이 모습을 본 점돌이 곰방메를 팽개치듯 내던지며 논 어귀로 향하며 말한다.

"고무! 삼촌! 할매가 점심 이고 오셨소. 갑시다!"

도대체 점돌은 배고픔을 못 참아 하는 습관을 갖고 있었다. 점돌을 따라 순녀와 태곤도 논 어귀로 갔다. 인길댁은 논둑 바닥에 반찬을 차려 놓은 후 밥 소쿠리에서 밥을 담고 있었다. 점돌이 논둑에 차려진 반찬을 보더니

"할매! 깡다리(조기새끼) 젓은 안 갖고 와겠소?"

하고 묻자 인길댁은

"깡다리 젓은 우리 점돌이 반찬인디 안 갖고 왔겄냐? 인자 놔 주마!"

대답하며 젓갈 그릇을 내놓았다. 깡다리 젓, 한 뼘이 채 안 되는 조기 새끼들에 소금 간을 하여 오래도록 삭힌 젓갈을 영화농장 사람들은 깡다리 젓이라고 했으며 오래 곰삭아도 소금간을 많이 하므로 몸체는 탱글탱글하고 먹을 때 단재기에서 꺼내어 소금을 털어내고 마른 듯 젖은 듯한 조기를 고운 고춧가루와 통깨에 묻혀 먹노라면 그 맛이 일품이라 밥도둑이 따로 없다.

조기젓을 내놓자 구수하고 꼬릿한 냄새가 퍼지니 그 냄새에 없던 식욕도 생길 판이다.

"곰배질 허니라고 고생들 했다. 언능들 둘러앉거라!"

인길댁이 말하자 세 사람은 숟갈들을 들었다. 순녀는 그녀의 막내 조카인 용균에게 한입이라도 먹여줄 요량으로 용균을 부른다.

"용균아! 이리 고무 젙에로 오니라! 고무랑 밥 묵자!"

용균은 순녀의 곁으로 가더니 순녀가 덜어주는 밥을 얼씨구나 하고 받아 들었다. 늘 먹거리가 부족하므로 배를 주린 아이들은 언제건 먹을 수 있는 기회만 있으면 사양하거나 양보하지 않고 먹어두려는 것이 성장기 영화농장 아이들의 습관인 것이었으니 용균도 거기에서 예외일 리 없었던 것이다.

해거름이 다 되자 두 배미 곰방메질을 모두 마친 세 사람은 곰방메를 어깨에 걸머지고 논둑길을 따라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노을이 붉게 물든 창공으로 길고 짧게 줄나래비 비행을 하는 기러기들은 들판의 어딘가에 하룻밤 쉴 곳을 찾아 내려앉고 있었으며 햇구녘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은 어둠과 함께 점점 거세져 갔다.

영화농장 농가들은 한 해 마무리 농사인 보리 파종이 끝나면 대체로 겨울 동안은 크게 할 일이 없다. 잘해야 지붕의 묵은 이엉을 거둬내고 새 이엉으로 덮어주는 일이나 새끼를 꼬거나 가마니, 멍석을 절는 일 이외에는 특별히 할 일 없이 농한기를 보내게 되는 것이었다.

이즈음 보리논의 곰방메질을 다 마침으로 농한기를 맞게 된 순녀는 영산강으로 갯일을 다녔다. 한겨울의 추위를 앞둔 이 시기, 영산강 뻘밭에서 잡히는 맛조개나 게의 맛은 연중 가장 맛있는 철이며 그렇기에 찾는 사람들이 많을 때이다.

영화농장 끄트머리 둑 너머 영산강에는 밀물이 한창이어서 물결은 둑 바로 밑까지 밀려오고 물길 따라 불어오는 바람은 차가웠다. 영화농장 여인네들은 둑 밑 석축에 늘어서서 종일 갯벌 속에서 캐 온 맛조개가 담긴 바구니를 밀려오는 밀물에 헹구고 있었다.

그 일행들은 순녀의 팔촌 여동생인 정님과 왜정 말 목포에서 시집을 온 목포댁을 비롯하여 예닐곱 명의 도덕지 여인네들이다. 이 여인네들은 궁핍한 농갓집의 살림에 보탬을 위해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며 이즈음의 그 일이 갯일인 것이었다.

갯벌에 만신창이가 된 옷을 갈아입는 것은 갯바구니를 다 헹군 다음 일이다. 여인네들이 허리를 구부리고 한창 헹굼질을 하는 중 정님이 허리를 펴며 고단함을 내뱉듯이 구시렁거린다.

"아이고메 추와러. 바람은 염병허게도 불어쌌네."

섣달이 눈앞이라 더구나 갯가인지라 바람이 차지 않을 수 없다. 순녀가 정님 쪽을 돌아다 보며 말한다.

"아, 그렁께 언능 구덕을 헹게불고 옷을 갈아입어야!"

순녀의 말에 정님은 파래진 입술을 부들거리며 다시 헹굼질을 한다. 헹굼질을 마치자 바구니에는 씨알이 또렷또렷한 맛조개들이 바구니마다 그득히 담겨있었다.

이 맛조개들은 목포 사람들에게 좋은 별미요, 반찬거리가 되어 밥상의 한 부분을 채울 것이며 그 대가로 영화농장 여인네들은 동란 이후 빈곤해진 살림살이를 채워 가는 것이었다.

헹굼질을 다 마친 여인네들은 석축 위로 올라와 허리에 묶었던 새끼줄을 풀고 옷을 갈아입는다. 젖은 개옷을 벗은 여인네들은 반라가 되고 희고 탱글탱글한 속살은 석양빛에 번들거렸다. 옷을 갈아입던 순녀가 장난기가 발동되어 정님에게 농담을 건다.

"우메 정님이 젖가슴을 본께 시집가도 쓰겄다."

태천댁과 목포댁도 히히거리며 끼어든다. 정님을 제외한 다른 여인네들은 모두가 유부녀였으며 그런 가운데 숫처녀인 정님이 장난 거리가 된 것이었다.

"우메! 참말로 크네. 잘 익은 복송처럼 탱글탱글하니…. 올 시안에는 시집을 가도 되겠네."

정님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 펄쩍 뛰었다.

"아따! 언니들 어째 그러요! 내 가슴 크도 안 해. 그라고 나 같은 곰보를 누가 델꼬 간다우?"

정님이 앙당거릴수록 여인네들은 재미가 더하는 듯 더욱 킬킬거렸다. 아니나 다를까 과연 정님의 얼굴은 수년 전에 앓은 마마 자국이 심하여 낮바닥이 마치 자갈길과 같았으므로 숫처녀인 정님의 앞날을 여인네들은 자신들의 일마냥 걱정하던 차이다.

옷을 주섬주섬 다 갈아입은 여인네들은 둑을 넘어 땅거미가 늘어진 논둑길을 걷는다. 좁은 논둑길은 수로와 나란히 하여 영화농장 사람들은 이 수로를 한 개통이라 하였으며 그다음 수로는 두 개통, 이렇게 다섯 개통까지 이어졌다.

좁은 외길을 늘어서서 도덕지로 향하는 여인네들은 종일 고단한 뻘밭 작업을 하고도 기운이 남는 것인지 한없이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영화농장 아낙들이 신작로에 다 이를 즈음 맨 앞장을 서가던 나주댁이 말한다.

"쩌그 군인이 오는디 알만 헌 사람 같으네."

"맞어. 가마골떡네 아들 성배그만, 성배."

신작로를 오고 있는 사람은 가마골댁네 둘째 아들인 성배였다. 성배는 가뭄이 심하던 몇 해 전, 양식이 부족하여 끼니를 거르는 게 잦아지자 군 입대를 하면 끼니 걱정은 안 해도 될 것이 아니겠냐며 부잣집 아들 대신 자발적으로 군 입대를 했었다.

그랬던 성배가 신작로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누구보다도 그의 동생인 정님이 반가워 소리를 지른다.

"오빠! 우리 오빠 오시네."

성배는 정님의 오라버니였으며 성배는 다가와 정님의 손을 반갑게 잡아 주었다.

"응! 정님아, 개에 갔다 오냐? 아이고, 순녀 누님이랑 아짐들도 개에 댕겨오신갑소?"

성배는 정님의 바구니 위에 얹힌 단재기를 받아주며 말하자, 순녀도 성배를 반기며

"응. 성배 동생 고상이 얼마나 많했냐? 제대해 갖고 오는 것이제?"

하고 묻는다.

"아닙니다. 이제 마지막 휴가를 나옵니다. 그나저나 누님도 고생 많으시지요?"

성배는 순녀가 남편과의 사별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마지막 휴가를 나온다고 대답을 했다. 그는 본래 재담꾼으로 똑같은 말도 그가 하는 말은 구수하고 듣는 이의 귀에 쩍쩍 달라붙게 하는 재담꾼인데 달라진 것은 의식적으로 그러는 것인지 영화농장 사투리를 쓰지 않는다는 것과 각이 진 말투가 달라진 것이었다.

성배와 영화농장 아낙네들은 신작로에 들어서며 옆으로 늘어서서 걷는다. 성배는 푸른 제복을 뽐내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아휴~, 전방에는 벌써 눈이 오고 손이 곱을 정도로 추운데 아랫녘은 참 따습습니다."

하고 북녘 소식을 자랑이라도 하듯 말한다. 이에 목포댁이

"그러먼 그럴 테제. 전방은 겁나게 추울 것이여."

이렇게 지레짐작하여 맞장구를 쳤다. 동네 앞에 이르러 모두 헤어지기 전 순녀는 성배를 불러

​"그래. 언능 가서 어무이한테 인사드리고 놀러 오소!"

하고 말하자 성배는 몸을 빳빳이 하고 차렷 자세로 거수경례를 했다.

"녯! 알겠습니다. 필승!"

성배와 영님 그리고 아낙네들은 마을 입구에서 제각기 헤어졌다.

순녀가 마당으로 들어서자 인길댁의 치맛자락을 붙들고 놀던 종자가 하룻낮 동안 제 엄마가 그리웠던 탓일까 쏜살같이 달려들어 순녀의 품으로 안기는 것이다.

인길댁은 이엉을 엮고 있는 태곤을 부르자 태곤은 달려와 순녀의 머리에 인 대바구니를 받아 토방에 내려놓는다.

"어이쌰! 우메 누님, 뭔 수로 이렇코나 많이 잡아겠소?"

바구니가 워낙 무거운지라 사내인 태곤도 낑낑거리며 내려놓으며 묻자 인길댁도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묻는다.

"워따워따, 구덕이 모잘라서 오가리까지 하나 잔뜩 채 왔네. 시상에 많이도 잡었다. 다들 이렇코 많이들 잡었다냐?"

하고 인길댁이 묻는다. 대바구니에는 맛조개를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 단재기에까지 채워서 바구니 위에 쫑쫑이 얹어 왔으니 많은 양을 잡아 온 것이었다.

"어무이! 오늘 여섯 물이라 물대가 질어서 다들 한 구덕씩 잡었어라우."

넘치는 바구니를 보고 놀라워하기는 바구니를 둘러싼 식구들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순녀는 바구니 위에 얹혀있는 단재기를 올케인 경주댁에게 건네주며 삶아서 식구들 저녁 찬으로 하자고 하자 경주댁은 얼씨구나 하고 단재기를 받아 들고 부엌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이날 밤이 늦은 시간, 영화농장 여인네들은 목포의 큰 시장 골목 여기저기에 산발적으로 늘어앉아 낮에 잡은 맛조개를 팔기 위해 앉아있다.

시장 안으로는 야채전, 과일전, 옷가게, 어물전, 양곡전들이 골목 양쪽으로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선창이 멀리 있어도 항구도시의 시장이니만큼 꼬릿한 비린내가 진동하였지만, 그 냄새는 역겹기보다는 도리어 구수한 냄새이다.

골목 이쪽저쪽으로 산재하여 앉아있는 영화농장 여인네들은 열심히 맛조개를 까며 행여나 지나가는 사람들이 눈길이라도 주면 호객을 하기에 여념이 없다.

맛조개를 까고 있는 순녀 앞을 지나가던 중년 부인이 순녀의 맛조개 광주리 앞으로 다가와 쪼그려 앉으며 말한다.

"그 맛 한 델에 얼마라우?"

"야! 아짐, 이놈 한 보세기에 5원만 주이쑈!"

순녀가 상체를 구부려 부인에게 대답하자 부인은 흥정하려는 듯

"에따 쩌그 입구에 샥시는 4원이락 허드만 이놈은 틀리간디?"

순녀는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쨌든 흥정을 하려는 부인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요놈 쪼깐 더 드리께 사 가시쑈! 맛있어라우."

하고 부인을 어르자 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순녀는 한 그릇에 예닐곱 마리 정도를 더 얹어 그릇에 담아 주었다. 그러자 부인은 지갑에서 돈을 꺼내다 말고 말했다.

"샥시! 시방 까다 만 놈까지 다 떨이로 팔아불어! 자! 4십 원 어쩌요? 4십 원…. 샥시도 언능 폴고 집으로 가사제."

순녀는 두 손을 저으며 펄쩍 뛰듯이

"우메! 아짐, 이놈을 다 허먼 열 보세기는 나오는디 4십 원이먼 너머 싸제. 5십 원 내이쑈! 기분 좋게 다 털어 드리께."

"아따 참 샥시도 겁나게 짜부네. 그러지 말고 45원에 떨이해 부이쑈!"

이렇게 하여 순녀는 이날 잡은 맛조개를 다 팔고 아직도 다 팔지 못한 영화농장 동행들을 돕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이튿날, 이날 순녀는 전날 밤새워 맛조개를 팔았던 까닭에 갯일을 가지 않고 느긋하니 아침 식사를 하는 중이다. 그때 성배가 찾아왔다.

"당숙모 계시요! 저 성배입니다."

밥을 먹던 인길댁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는 양

"누구? 성배라고? 오냐 들어오니라!"

인길댁이 문밖을 향해 말하자 성배가 문을 열고 성큼 방으로 들어오며 인길댁에게 인사를 하고 뒤이어 가마골댁도 들어왔다.

"필승! 당숙모님, 안녕하십니까? 경주 성수님도요…."

인길댁이 성배의 손을 잡아 주며

"오냐. 어지께 왔담서야? 이리 앉거 밥 묵자! 동서도 이리 앉소!"

하고 반겨 맞이한다.

"아니, 아닙니다. 저는 집에서 먹고 왔습니다. 당숙모님, 건강은 좋으세요?"

"그러기는 허네마는 집안이 편허덜 않네. 남정네들이 지대로 있어야제."

"허기사 그러시기는 허겄네요."

성배는 수년 전 인길양반이 장티푸스로 죽은 사실을 비롯해 대전과 순녀의 남편이 죽게 된 내막들을 잘 아는 터라 안타까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다 문득 생각난 듯 무릎을 치며 이렇게 말했다.

"참 그렇제. 제가 누님에게 좋은 분을 소개해 드리고 싶은데 누님! 어쩌세요?"

"......"

느닷없는 성배의 제안에 순녀나 인길댁, 그 누구도 성배만 바라볼 뿐 대답이 없었다. 그렇다고 꺼낸 말을 도로 집어넣거나 얼버무릴 성배가 아니었다. 성배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분은 올해 서른세 살인데 참 성실허고 선한 분입니다."

성배의 설명이 이어짐에도 당사자인 순녀는 자존심과 체면 때문인 것인지 듣기만 할 뿐 말이 없고 경주댁이 물었다.

"아제! 그 사람이 어디 사는 사람이라우?"

"몽탄면 약곡리 사람인데 원래 본가는 양장리 월산이랍니다."

성배는 대답하며 경주댁과 인길댁 그리고 순녀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경주댁이

"그러면 거그서 농사짓고 산다우?"

하고 물으니 정작 화제에 관심을 가져야 할 사람인 순녀보다도, 인길댁보다도 경주댁이 집요하게 케묻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경주댁의 입장에서 보면 두 사람의 식솔이 주는 것이요, 또 어차피 떠날 사람에게 마땅한 자리가 있다면 제 갈 길을 찾아 보내는 것이 가는 사람에게도 안정적인 삶이 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인 것이었다. 경주댁의 물음에 성배가 대답한다.

"성수님! 지금 그 사람은 저랑 군대 생활 중이고 곧 제대를 앞두고 있습니다."

지금껏 두 사람의 얘기를 듣고 있던 인길댁이 물었다.

"그러먼 성씨는 뭣이다냐? 즈그 어매 아부지는 계시고?"

인길댁의 관심을 감지한 성배는 자신감이 생긴 듯 다소 높아진 어조로 설명을 했다. 그 사람의 성씨는 임 씨요, 두 분의 양친을 모신 가운데 형제는 셋이라는 둥, 마치 그 집안의 내력을 외우듯이 성배의 설명은 적나라하면서도 열성적이었다. 깊은 관심으로 진지하게 듣고 있던 인길댁이 순녀를 바라보며 말한다.

"아가! 종자 에미야! 들음에는 좋은 사람인 것 같다. 그러고 성배 조카가 소개를 허는디 어련히 알어서 허겄냐. 한번 봐 보그라! 보고 아니먼 말제 어쩌것이냐?"

경주댁도

"애기씨! 괜찮헌 사람인 것 같은께 한번 만나 보이쑈! 돈이 드는 것도 아닌디…."

하고 인길댁의 말을 거들었으며 거기에 한술을 더하여 성배도

"누님! 그 사람 참말로 성실하고 착해서 쓸만한 분입니다. 제 말 듣고 만나 보세요!"

분위기가 이렇게 되자 순녀는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던 것이며 또 종단에는 그 길이 앞으로 자신이 가야 할 숙명의 길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사흘 뒤,

과연 성배는 자신이 말한 대로 임 씨 사나이를 데리고 인길댁네 집을 들어섰다. 때마침 마당에 널어진 벼를 맨발로 젓고 있던 점돌이 다가가 인사를 한다.

"당숙! 오시오? 할매! 성배 당숙 오셨어라우."

이윽고 방문이 열리고 인길댁이 나와 두 사람을 반가이 맞았다. 성배가 양측을 번갈아 가며 소개를 시킨다.

"당숙모! 말씀드렸던 그 사람입니다. 형님! 인사드리세요!"

임 씨 사나이는 성배와 같이 군복에 군화를 신고 있었으며 아담한 키에 왜소한 체격 그리고 곱상한 인상을 한 사람이었다. 임 씨는 인길댁 앞으로 한 발짝 나서며 인사를 한다.

"어머니!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성배 아우한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제 이름은 임 익순입니다."

"오! 그러신가? 여기 섰지 말고 방으로 들어가세!"

인길댁은 임익순이 마치 사위라도 다 된 양, 반존대어로 말을 했다. 세 사람이 방으로 들어서고 인길댁이 부엌을 향해 경주댁을 부르자 경주댁은 삶은 고구마가 담긴 쟁반을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인길댁이 고구마 쟁반을 상 위에 놓으며

"자. 마땅히 내놓을 것도 없고 시장헐 텐디 고구마나들 들어보소! 체정 성헌께 짐챗국이랑 마심서…. 근디 해필이먼 순녀는 개에 가고 없네그랴! 조카한테 말을 들었는가 모르겄네만은 이 애기가 순녀 딸이라네."

하며 무릎에 앉아있는 아이를 가르친다. 임 익순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자신의 무릎으로 오라고 하였지만, 종자는 수줍어 몸을 비틀 뿐 임 익순의 품으로 가지는 않았다. 그리고 임 익순은 인길댁의 말에 대답한다.

"개에 갔어도 어머님을 뵈니 본 거나 한가지로 보나 마나 제 맘에 쏙 들 것 같습니다."

쪽머리에 시골 여인치고는 하얀 피부, 게다가 맑은 눈동자를 한 인길댁은 자태가 매우 정갈스러웠으며 이런 인길댁의 모습을 본 임 익순은 순녀의 모습을 미루어 짐작한 것이다.

"오호! 나를 그렇코나 잘 봐줘서 참으로 고맙네만 그래도 종자 에미를 봐사제. 그러고 자네 본처는 돌아가 불고 애기들은 둘이 있담서 어찌게 둘인가?"

"그렇습니다. 작년에 개에 갔다가 그만 잘못돼서 죽었지요. 저는 군대에 있어서 그 내막은 소상히 모르지만, 물에 빠져서 죽었습니다. 애기들은 남매가 있고요."

임 익순은 이렇게 대답하며 잠시 침울한 표정을 짓더니 이어서 말한다.

"저도 순녀씨를 꼭 보고 싶지만, 모레가 귀대 날이라서 순녀 씨를 볼 수는 없을 것 같고 이제부터 어머니를 장모님이라 부르게 해 주십시오!"

이렇게 결정적 담판을 짓는 말을 한 것이다. 쾌도난마, 뒤엉킨 마의 줄기를 단칼에 시원히 베어내어 정리 해버리는 것처럼 임 익순은 양가가 처한 정황을 직관하고 앉은 자리에서 바로 결정을 하였던 것이니 이는 마치 쾌도난마와도 같은 것이었다.

임 익순의 이러한 결정이 섣부르고 경솔한 결단일지 아니면 명철한 결단력일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이처럼 임 익순의 완고하고 분명한 태도에 인길댁도 결국

"좋네. 그렇코 허세."

이렇게 짤막하지만 분명한 대답을 하였던 것이니 이는 평소 성배에 대한 신뢰감과 문제의 당사자인 임 익순의 단호한 태도, 거기에 불안정한 생활 중인 순녀에 대한 부담 등, 이처럼 종합적인 상황이 인길댁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였던 것이었다.

사실 이 시기, 지난 인공 사건과 보도연맹 사건 그리고 6‧25 동란을 겪으며 수많은 남자가 희생되므로 '한 남자에 여자가 세 트럭 반'이란 말이 유행할 정도였으니 청상과부가 된 딸을 둔 인길댁의 심정을 이해하고도 남을 일이다.

인길댁의 대답을 듣고 임 익순과 성배는 마치 개선장군처럼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임 익순과 성배는 순녀네 집을 나와 도란도란 얘기하며 일로로 나가는 신작로를 걷고 있었다. 임 익순은

"아우야! 혹시 저 어머니의 마음이 변하지는 않을까? 거기다 순녀 씨는 얼굴도 안 봤으니…."

하고 성배를 쳐다봤다.

"아이고 성님! 인길 당숙모가 보통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항시 언행이 바르고 분명한, 그런 분이어요."

"그래도. 당사자인 순녀 씨랑은 말도 안 해 본 데다가 그 마음도 모를 일이고…."

임 익순의 이 말에 두 사람은 발길을 멈추고 수군거리더니 가던 발길을 돌려 인길댁네로 향했다. 임 익순과 성배가 인길댁네 마당에 들어서자 인길댁을 비롯하여 온 식구들이 모여 마당에 널었던 나락을 긁어모으고 있었다.

인길댁은 되돌아오는 두 사람을 보고 뜻밖이라는 표정으로

"아니 뭔 일로 다께(다시) 왔당가?"

하고 묻자 임 익순이 인길댁에게로 한발 다가서며 소곤거리듯 말한다.

"말씀드리기 참 거북스럽습니다만 사실은 제 바로 밑 남동생이 목포 병원에 입원했는데 그 비용을 성배 동생에게 좀 빌려달라니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목포로 나가다가 할 수 없이 돌아왔습니다. 장모님 나락 한 가마니 값만 빌려주세요! 이제 제대가 한 두어 달 남았으니 그때 틀림없이 돌려 드리겠습니다."

"아이고 이 사람아! 이런 촌에서 누구를 꿔 준다고, 뭔 돈을 준비허고 있겄는가?"

사실 사위를 삼자고 언약은 하였으나 대면 첫날, 초면인 사람에게 무엇을 담보로 해 돈을 빌려줄 수 있단 말인가. 인길댁의 대답은 당연한 것이요, 돈을 빌리려는 임 익순의 행동은 낯이 두껍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처사인 것이다.

인길댁의 대답에 임 익순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성배를 쳐다봤다. 이번에는 성배가 인길댁에게로 다가서며

"당숙모님! 저 형님이 워낙 다급한 모양입니다. 제가라도 갚아 드릴 테니 좀 꿔 주십시오!"

인길댁은 진퇴양난, 거절도 못 하고 끄응 앓는 소리를 하며 한참을 서 있다가

"조카까지 그러니 헐 수 없네. 경배 월사금을 준비해 논 돈이 있는디 병원비가 급허단께 헐 수 없제. 쪼깐 지다리소!"

하고 큰방으로 들어갔다. 어차피 임 익순은 사위가 될 사람이요, 거기다 조카인 성배까지 사정하니 일이 잘못된다고 해야 나락 한 석인데 그까짓 것으로 장래의 사위에게 박절할 수 있냐고 인길댁은 생각했던 것이다. 잠시 후, 인길댁이 방에서 나와

"자! 이 돈을 갖고 언능 병원으로 가 보소! 그 대신 꼭 갚어야 쓰네."

하며 임 익순에 돈을 건네주었다. 임 익순은 그 돈을 받아들고

"장모님! 정말 감사합니다. 절대로 실망하지 않으시게 꼭 갚아드리겠습니다."

라며 허리가 꺾어지게 넙죽 절을 하자 인길댁은

"그래. 동상이 병원에 있담서 언능 가보소!"

하고 예비 사위를 걱정하였다.

"예, 장모님! 그럼 내년에 뵐 때까지 건강히 계십시오! 순녀 씨에게도 안부를 전해 주시고요! 저기 성수님도 안녕히 계시고 처남들도. .,.!"

임 익순은 마당에 선 순녀네 식구들에게 두루 인사를 마치고 성배와 일로로 향했다. 이들은 일로의 역 앞에 이르러 차부 아래쪽에 있는 주막으로 들어갔다.

성배는 이전에도 이 주막을 들락거린 적이 있었던지 주모를 불러 아는 체를 하며

"아짐! 홍어 한 접시에다 탁배기 한 주전자 줘 보세요!"

하고 주문을 하였다. 이윽고 술상이 차려져 나왔다. 붉은 살 홍어, 선홍빛 연한 살에 빗살처럼 박힌 물렁뼈가 씹히는 맛과 입안을 가득 채우는 쫄깃한 식감에 코를 후벼 파듯 후각을 자극하는 꼬릿한 냄새가 탁배기 한 잔과 어우러지면 이 맛이 천하의 일품이라 영화농장 사람들은 이 별척스러운 맛을 무척 좋아했다.

​"성배 아우! 자! 한 잔 받고 홍에 한 볼테기 허소!"

"아니 아니 성님! 찬물도 우게아래가 있죠. 제가 먼저 한 잔 올릴게요. 자, 한 잔 받으세요!"

임 익순과 성배는 1953년도, 육이오 동란이 막바지에 접어들며 전선의 고지를 하나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전투가 이어지던 시기에 입대하여 전방의 같은 부대에서 복무하게 되었고 성배는 그의 형이 종갓집의 귀한 장손이라며 스스로 형 대신 입대를 하였던 것이니 임 익순보다는 나이가 어리기도 했지만 같은 동향이라며 군 복무 중에도 임 익순을 형으로서 깎듯이 대우했던 것이었다.

두 사람은 막걸리를 한 잔씩 마신 후 초장에 묻힌 홍어를 한 입씩 입에 넣고 오물거린다.

"아따 홍에가 제대로 썩어불었네. 킁~킁~."

매콤하고 꼬릿한 홍어 맛에 콧구멍이 쾡 하게 뚫리는지 두 사람은 킁킁거리면서도 홍어 접시를 향한 젓가락질은 연신 이어졌다.

"아우! 한 잔 더 받으시게! 안주도 들어 감서... 모자라면 더 시키게."

"예. 성님도 많이 드세요! 근데 성님! 아까 인길 당숙모에게 한 석 값을 잘 꿨습니다. 이제 당숙모나 순녀 누님은 꼼짝없이 성님만 쳐다볼 수밖에 없게 됐다니까요."

"맞아. 아우가 좋은 생각을 해냈어. 한 석 값을 받아 오니 나도 맘이 놓이네. 자! 기분도 좋고 홍에 맛도 좋고 한 잔씩 들세!"

임 익순이 도덕지에서 선을 보고 나와 일로로 향하던 길에 순녀와 결혼에 대한 인길댁의 약조를 받아내긴 했어도 당사자인 순녀와는 대면도 안 했으니 인길댁의 약조가 혹여 틀어지지는 않을지 그것이 내내 마음에 걸린다며 그 심경을 성배에게 토로하니 성배는 병원을 빙자하여 인길댁에게 돈을 빌리라 했던 것이며 그것이 그 약조가 틀어지지 않게 쐐기를 박는 방법이라고 임 익순에게 제안하자 임 익순은 성배의 말대로 실천하였던 것이었다.

술자리를 마친 임 익순과 성배는 이틀 뒤 몽탄역에서 만나서 상경 열차를 타기로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한편, 석양이 다 되어 갯일을 갔다 온 순녀는 잡아 온 맛조개를 팔러 갈 채비를 해 놓고 식사 중이다. 인길댁은 낮에 임 익순이 왔다 간 자초지종의 얘기를 순녀에게 하였다.

"집은 몽탄 약곡리 바굴뫼고 키는 아다막허드라. 그런디 성배가 말헌 대로 여편네허고 사별허고 애기들이 둘이란다."

순녀는 하행열차 시간에 맞추기 위해 급하게 식사를 하면서도 귀를 쫑긋하여 듣고 있었다.

"사람이 서근서근허고 인물도 곱상허드라. 저도 우리 집안을 쑤욱 훑어보고는 맘에 드는지 나한테 덥쑥 장모라고 그런다. 그래서 나도 사우처럼 대했제."

여기까지 듣고 있던 순녀도 심중의 말을 했다.

"어무이가 맘에 드신다는디 더 뭣이라고 허께라우. 저도 딸린 딸이 있어서 어따 내놓고 얘기 헐 처지도 못 되고 어무이 말씀에 따라야제라우."

"근디 말이다. 즈그 동상이 아퍼서 목포 병원에 있다고 험서 나락 한 석 값을 꿔달라는디 헐 수 없이 꿔 줬다."

인길댁의 이 말을 듣고 순녀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리고 반박하는 것이었다.

"뭣이라고라우? 뭔 돈을 그것도 첨 보는 사람이 어찌게 돈을 꿔 달락 허고 어무이는 또 어쩌자고 꿔 줘불어겠오?"

"종자 에미야! 사람 인연이 맺어지냐 마냐 허는 판에 나락 한 석이 중허겄냐? 거그다가 성배 조카가 꺽정 말고 꿔 주락 해서 두말 않고 꿔 줘 불었다."

경주댁도 끼어들어 인길댁의 말을 거들었다.

"애기씨! 시누이 양반 될 사람이 여간 착허겄습디다. 꺽정 마이쑈!"

두 어른의 의견이 이러하니 순녀는 더 말을 할 수 없었으며 한편으로는 임 익순에 대한 어머니의 호의적인 모습에 앞으로 남편이 될지도 모를 임 익순에 대한 기대감과 호기심이 마음 한편에 움트고 있을 뿐인 것이었다.

순녀는 좀 전의 인길댁을 타박했던 말을 후회하며 도리어 달래는 말을 한다.

"어무이! 그 사람이 하이나 그 돈을 떼어 먹기사 헐랍디여. 글고 어무이랑 성님이 좋닥 허신께 보던 안 했어도 나는 믿을라우. 그 사람을 만나서 잘살고 못 사는 것은 내 운명일 테제라우."

"그래. 너도 혼자는 살 수 없다. 어따라도 지댈 디가 있어야제 혼자 사는 시상이 오죽 허겄냐! 그 사람은 니가 지대고 살 만헌 사람일 것이여. 명년 정이월에 제대헌다고 헌께 그때 보자!"

자식이 못 되라는 부모는 없을 것이며 부모의 그 마음을 믿지 않을 자식 또한 없을 것이다. 순녀는 부모의 그러한 마음을 믿고 있는 것이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순녀가 맛조개를 팔러 나갈 채비를 한다. 그때 마루에서 용균과 놀고 있던 종자가 토방을 내려서서 마당 가운데에 버티고 서있다.

엄마의 출타 낌새를 알아차리고 따라나설 심산인 것이다. 이것을 안 인길댁이 종자를 부른다.

"종자야! 이리 오니라!"

종자는 인길댁의 부름에 아랑곳없이 발끝은 대문 쪽을 향해서 요지부동으로 서 있다.

"종자야! 어서 와. 그래 종자, 참말로 이쁘다. 어서 오니라!"

그러나 종자는 여전하였고 순녀가 광주리를 이고 나서자 종자는 막무가내로 앞서 나간다. 집을 나서던 순녀는 발걸음을 멈추고 종자를 불렀다.

"종자야! 엄마 따라오면 못 써. 언능 할매한테 가! 옳지. 이쁘지! 엄마가 오사탕 사다 줄게 할매한테 가그라!"

종자는 울음보를 한바탕 터뜨린 다음에야 겨우 태곤의 손에 끌려 방으로 들어갔고 순녀는 종자의 앙앙거리는 울음소리의 여운을 귓전에 담은 채 떨어지지 않는 발길로 집을 나서서 동구에서 기다리는 영화농장 아낙들과 어울려 목포로 향하고 있는 것이었다.

해가 바뀌어 1956년 양력 2월 28일, 정월 대보름이 지나고 이틀째 되는 날이다. 지난 설을 쇠고 사나흘 뒤에 제대한 성배가 임 익순의 기별을 전해왔다.

대보름을 쇠고 음력 열이렛날에 순녀를 데리러 올 것이니 떠날 채비를 하고 있으란 것이었으며 이날이 그 날이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해가 초가의 추녀쯤에 채 이르기 전, 임 익순이 빈 지게를 지고 순녀네 마당으로 들어섰다.

동절기의 끝자락 이어서인지 기온은 그리 차갑지 않았지만 해를 따라 바람이 일기 시작하며 손이 곱은지 손을 입김으로 호호 불며 토방 앞에 이른 것이다. 큰방에는 여러 사람이 있는 듯 왁자지껄 시끄러웠다.

"장모님! 저 왔습니다."

임 익순이 토방에서 소리치자 작은방 문이 열리고 순녀의 동생 태곤이 마루로 나오며 외치듯이

"어무이! 매양 오셨어라우."

하고 큰방 쪽을 향해 소리치자 인길댁이 마루로 나오며 임 익순을 반겨 맞는다.

"오니라고 고상했네. 지게 그리 내려놓고 방으로 들세!"

임 익순이 방으로 들어섰다. 방에는 인길댁네 식구들과 순녀의 작은어머니인 신촌댁, 성배와 그의 어머니인 가마골댁이 임 익순을 기다리고 있었다. 임 익순은 다듬어진 매끈한 목소리로 여러 사람을 향해 인사를 한다.

"안녕들 하세요! 저는 몽탄면 약곡리 바굴뫼 사는 임 익순입니다. 이렇게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사람들은 박수를 쳤다.

"아따 우리 조카 사우 야무지네. 겁나게 이뻐…."

신촌댁은 넉살 좋게 조카사위의 기분을 추켜세우고 이어서 인길댁이 임 익순과 순녀를 서로 소개시키며 인사를 하게 하였다.

"나는 임 익순이요. 우리 서로 힘을 합하고 협조하며 잘살아봅시다!"

"야. 저는 박 순녀여라우."

이렇게 간략한 인사가 끝나자 인길댁은 식구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지칭하며 모두 인사소개를 시켰다. 임 익순은 긴장을 하였을까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라 연신 벙실거리며 일일이 악수를 청하였다.

이렇게 하여 순녀와 임 익순은 두 사람 다 재혼자인 관계로 공식적인 예식을 갖지 않고 더 이상은 단조로울 수 없으리만큼 최소한의 의식으로 부부가 된 것이었다. 인사를 마치자 인길댁이 새 사위를 불러 묻는다.

"자네 집에서 여까지 족히 삼십 리는 될 것인디 오니라고 고상했네. 두 어러신들허고 가내에는 다 무탈허신가?"

임 익순은 여전히 만면에 미소 가득한 모습으로 대답한다.

"네! 염려해 주신 덕택에 두 분 다 건강히 잘 계시고 동생들도 잘 있습니다."

그 사이 경주댁은 대례상을 봐왔다. 격식이 다 갖춰진 상은 아니지만, 명절 끝이라 조청에 식혜를 비롯해 떡과 나물로 대례상을 대신하였고 온 식구들이 둘러앉아 담소를 곁들이니 행복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었다. 대례가 끝나 갈 즈음, 인길댁이 임 익순을 불렀다.

"임 서방! 오늘이 음력으로 열이렌디 북쪽으로 손이 있는 날이네. 여그서 약곡리가 북쪽이 아닌가? 그러니 오늘, 내일 양 이틀을 여그서 묵고 모레 손 없는 날 함꾼에 떠나소!"

이날 임 익순이 순녀와 같이 바굴뫼로 떠나기로 얘기가 돼 있던 터라 인길댁이 사정 얘기를 한 것이다. 뜻밖의 이 말에 임 익순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장모님! 제가 여기서 묵을 수가 없습니다. 실은 집에 암소가 새끼를 가졌는데 낳을 날이 오늘 낼이니 제가 지켜봐야 합니다. 그리고 죄송한 말씀입니다마는 장모님 말씀하신 거 그런 거는 미신이고 요즘 사람들은 그런 거 잘 안 믿어요. 그래서 기왕 온 김에 오늘 같이 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헙니다."

이렇게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그러나 인길댁은 완고했다.

"아니네. 한 이틀 참으먼 쓸 것을 뿌담씨 일이 생기먼 그때 후회해 본들 뭘 허겄는가? 정 그렇다먼 오늘은 우선 자네 혼자 출발허고 모레 순녀랑 점돌 에미를 보냄세. 종자 에미야! 그렇코 해야제?"

순녀는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고 곁에 있던 가마골댁이

"맞어라우. 쇠양치할라 낳을 날이담서 잘못되먼 큰일인께 성님 말대로 허이쑈!"

이렇게 인길댁의 말을 거들고 나서자 임 익순은 하는 수 없이

"예. 그럼 할 수 없죠, 뭐. 저 혼자 먼저 나서겠습니다."

이렇게 대답하였다. 점심때가 조금 기울어 임 익순은 순녀와 주변 식구들의 도움을 받아 가며 토방에 세워 둔 지게에 짐을 싣고 있다. 순녀가 시가로 가져갈 물품들로 자신의 신변잡화와 더불어 시댁의 어른들에게 혼례 인사로 드릴 선물들이었다.

"안 떨어지게 띠꾸리로 잘 묶으소! 글고 양 어르신들 옷 한 벌씩밖에 선물은 안 했응께 그리 알소!"

인길댁은 옆에 서서 단도리 하는 것을 간섭하였고 짐을 싣는 임 익순은 싱글벙글 밝은 표정으로 대답한다.

"하하! 장모님, 염려하지 마십시오! 서로가 어려운 가운데 식도 제대로 못 올리고 이러니 제가 송구스럽고 또 양해해 주는 종자 엄마에게도 고마울 따름입니다. 그리고 짐은 두 줄 석 줄로 묶었으니 굴러도 짐은 안 빴습니다. 걱정 마세요!"

"어이. 그래. 나도 고맙게 생각허네. 해도 짧은디 언능 출발허소!"

"예! 종자 엄마! 모레 조심히 오기 바라오!"

임 익순은 순녀에게 조심히 오라는 인사말을 남기고 인길댁과 순녀 그리고 동네 사람들의 배웅 속에서 떠나갔다.

이틀 뒤, 순녀와 경주댁은 지게를 진 태곤의 뒤를 따라 학두리 앞 들 가운데 둑길을 걷고 있었다.

이날 순녀를 데리러 오기로 한 임 익순이 약속한 시간이 되도록 오지 않자 순녀와 경주댁이 임 익순네로 가는 중이었으며 태곤은 두 여인이 이고 가야 할 보퉁이를 자청하여 지게에 짊어지고 가는 길의 절반까지 배웅해 주겠노라고 했던 것이다.

순녀의 전 남편과 사이에서 낳은 딸 종자는 버젓이 데려갈 수 없어서 새로운 시댁에서의 생활에 안정적인 적응을 하면 그때 데려가기로 하고 지금은 친정에 떼어 두고 가는 길이었다.

이것은 비록 짧은 기간이 되겠지만 어린 딸과 떨어짐은 순녀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었다. 병고의 아픔 없이 어찌 성한 몸의 편안함을 알 수 있을 것이며 고단한 노동 없이 어찌 휴식의 참 행복을 알 수 있으랴.

순녀는 세파 세월을 하나, 둘, 극기해 가며 새로운 행복의 길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약관의 나이에 이른 태곤은 기운이 넘치는 듯 지게를 졌음에도 두 여인보다는 한참을 앞서가고 뒤를 따르는 두 여인은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면서도 태곤에게서 뒤처지지 않으려 부지런히 걷는다. 순녀가 들 건너 복룡촌을 가르치며 말했다.

"성님! 쩌그 옛날 우리 집이 보이요. 우리가 살던 집."

그 집은 15년 전 순녀네가 살던 집으로 복룡촌 마을의 꼭대기 집이었으며 둑길에서 아스라이 보였다.

"맞소. 거가 우리가 살던 집이요. 애기씨도 그때 생각이 나요?"

하고 경주댁이 묻자 순녀는

"아이고 성님. 그때 내 나이가 열두 살이었는디 눈에 선히 생각 나제라우. 쩌 둑길에 우리 이삿짐을 진 사람들이 줄나래비를 서불었제라우."

하고 마치 눈앞에 보이는 것처럼 묻지 않은 것까지 대답한다. 순녀가 가리키는 둑길은 들 아랫녘으로 아스라이 보이는 복룡촌과 용호동을 잇는 영산강 둑이다. 경주댁은 순녀의 말을 듣고 한숨 섞인 말로

"함마 그때가 열다섯 해가 지났으니 한세월이 다 가불고 이놈의 팔자는 어째 이리 사나운지 서방도 없이…. 저렇코 짐승들도 짝을 지어 잘도 노는구만."

하고 신세를 한탄하였다. 둑 아래 폭이 너른 수로에는 마른 부들 사이로 몇 쌍의 짝을 이룬 청둥오리들이 푸드덕거리며 먹이를 찾아 물속으로 머리를 처박기를 반복하고 이 모습을 보고 경주댁은 신세를 한탄하는 것이었다.

어디선가 더 많은 무리의 청둥오리가 날아와 첨벙첨벙 물 위에 내려앉는다.

순녀는 올케언니인 경주댁과 유전적으로는 완연한 남남이지만 오라버니와 혼인 관계로 한 가족이 되어 18년여를 함께 살아왔으니 누구보다도 경주댁의 속내를 잘 알았다.

경주댁은 몸매나 성격이 투박스러워서 섬세하지 않기 때문에 여성으로서의 매력이 전혀 없다는 것을 순녀는 잘 알고 있었던 것이며 그런 점에서 측은지심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성님! 홀몸으로 심이사 드시겄제마는 점돌이랑 용균이 보고 살아사제 어찌게 허겄소! 점돌이도 인자 다 컸고 용균이도 오빠만치로 이쁘게 생겼습디어안?"

순녀의 이 말에 경주댁은 감정이 혼란스러운지 내뱉듯이

"큼메 별수 있겄소! 기냥 살아가사제."

하고 짤막하게 대답했다. 사교 마을 앞 철둑에 다 이르자 순녀가 빠른 걸음으로 태곤에게 다가갔다. 철로는 간이역인 명산역에서 개꼴재를 넘어와 아래쪽인 일로역을 거쳐 호남선의 종착역인 목포로 가는 철로이다.

"태곤아! 인자 보따리를 주고 집으로 돌아가그라!"

태곤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태곤은 한사코 더 져다 주겠노라며 몽탄면의 초입인 파군다리에 이르렀다. 주막 앞에 지게를 받쳐 세운 태곤은 소맷자락으로 이마에 땀을 닦으며 뒤따라 온 순녀에게

"누님! 역서 나는 집으로 갈라우. 가시거든 집 걱정은 마시고 잘사시쑈."

이렇게 말하며 순녀의 손을 잡아 주었다. 평소 강인하기만 한 순녀이지만 동생의 이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을 글썽이며

"응. 고맙다. 너도 엄마 모시고 잘살아라! 니가 돌아가신 성님 대신해야제."

하고 긴 헤어짐에 앞서 당부의 이별사를 하였다. 태곤은 누나의 말을 듣자 고개를 돌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으며 쌩 가버렸다. 얼마나 흘리고 싶은 눈물이 많았던 것일까….

태곤이 돌아가고 보퉁이를 머리에 인 순녀와 경주댁은 마을 사잇길을 지나 노루 한 마리쯤이나 지날 만큼 좁다란 오솔길을 오른다. 미풍에 나뭇가지는 하늘거리고 솔밭 사이로 잔설을 스친 바람은 차가웠다.

가끔 이름 모를 산새들만이 숲의 정적을 깰 뿐, 인적이라고는 없었다. 몸매가 호리한 순녀는 몇 걸음을 앞서가고 신체가 풍만한 경주댁은 숨을 할딱이며 저만치 뒤처졌다.

"애기씨, 기운 다 빴겄네. 쌀쌀 좀 가!"

"언능 오이쑈! 나 쩌그 바우에 앉것으께."

순녀는 바위께까지 빠른 걸음으로 가더니 보퉁이를 내려놓고 바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순녀가 앉아있는 바위 옆에는 돌무더기가 있었다. 가쁜 숨을 쉬며 보퉁이를 내려놓는 경주댁에게 순녀가

"성님! 저 독은 뭣 허니라고 저렇코 싸 놨으께라우?"

하고 돌무더기를 가르치며 묻자 경주댁이 대답한다.

"저것은 말이여, 요 고개를 넘는 사람들이 저런 자갈을 주워와서는 쩌그다 띵김서 산신한테 비는 것이여. 무사허게 고개를 넘어가게 해 돌라고…. 그나저나 아따 고노무 고개 올라오기가 겁나게도 뻦히네."

"그 말이 맞기는 맞소. 산신령한테 비는 것을 빌미로 길에 독을 주워내 불어야 뒤에 지나는 사람들이 돌부리에 안 채이제. 하이나 즈그 동생이라도 지남서 돌에 체여 불면 어쩌겄소!"

두 여인은 이마에 땀이 식자 길을 나섰다. 내리막 고개를 다 내려서자 산기슭과 결을 같이한 실개천이 흐르고 건너편으로는 다락논이 계단처럼 이어져 골짜기 안쪽으로 서너 채 초가집이 아스라이 보이는 마을 앞까지 펼쳐졌다.

논둑길을 건너자 산자락을 따라 올라오는 도로와 만나고 이 도로는 두대산 자락을 따라 파군다리에서 돌아오는 길이며 두 여인은 산을 가로지르는 두대산 허리의 재를 넘어왔던 것이다.

이 길을 따라 오갈재를 넘어가면 두 여인의 목적지, 임 익순의 집이 있는 약곡리가 있다. 정오를 지나 해는 서산 쪽으로 절반쯤은 기울었다.

산중의 해는 늦게 솟아 빨리 지며 골짜기의 깊이에 따라 달라진다. 이것을 알고 있는 두 여인은 빠른 걸음으로 길을 재촉했다. 산은 굽이굽이 흘러내리고 그 산의 어귀를 따라 길은 구불구불 이어졌다.

"애기씨! 해 전에 당도할라먼 싸게싸게 갑시다!"

경주댁은 아까의 가파른 오솔길을 오를 때와는 달리 여유로워진 걸음걸이로 도리어 순녀에게 재촉하는 것이었다.

"야~ 성님. 해가 많이 지울어 불었소. 언능언능 가입시다!"

이윽고 두 여인이 오갈재 정상에 다다랐다. 이제 고개만 내려가면 약곡리 바굴뫼 마을이다.

"성님, 인자 거정 다 왔응께 쪼깐 쉬었다 갑시다. 성님 이맛박에 땀이 숭얼숭얼 맺었소."

두 여인은 보퉁이를 내려놓고 마른 풀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앞으로 내려다보이는 전경은 마치 한 폭의 풍경화처럼 펼쳐졌다. 멀리 들 건너 철길의 끄트머리에 몽탄역이 아스라이 보이고 그 오른쪽으로는 배뫼의 뒷산이 우뚝 솟아있다.

배뫼와 느러지 건너편이 나주군 동강면이요, 배뫼와 동강면 사이로 영산강이 흐른다.

배뫼 앞을 회돌이 쳐 흘러내린 강줄기는 발아래로 보이는 도요마을, 몽강리 앞까지 흘러내리고 있었으며 유유히 흐르는 강물 위로 석양 노을에 물든 황포 돛배 한 척이 영산포 쪽으로 강을 거슬러 오르고 있었다. 경주댁이 나지막이 순녀를 부른다.

"애기씨!"

"....."

어떤 상심에라도 젖어 든 까닭일까, 순녀는 강 위로 흘러가는 황포 돛배를 바라보고 있을 뿐 대답이 없자 경주댁이 재차 부르자 그제서야 대답했다.

"야~."

"애기씨는 시누이 양반을 어찌게 생각허요? 내 봄에는 괜찮헙디다만은…."

순녀는 잠시 감았던 눈을 뜨며

"성님! 어무이랑 성님이 그렇코 좋다고들 허시고 거그다가 어무이는 사우가 되얐다고 나락 한 석까지 꿔 줬는디 그 냥반이 어쩐 사람인들 인자 와서 뭣 허겄소! 다 내 운명으로 알고 받어 들여사제…. 그것보다도 내 말은 이런 좁디좁은 산중에서 논밭뙈기를 가진들 고것이 얼마나 될 것이며 뭣을 해 묵고 살고 있는지가 꺽정스럽소."

​"허기사 이런 산중에서 전답을 얼마나 짓고 사는지는 모르겄소마는 그 말도 맞소."

일로의 영화농장은 개활지로 펀펀하고 너른 들판에서 많은 식량이 생산되는 반면에 약곡리는 달랐다. 승달산의 높은 봉우리가 동남 쪽으로 흐르며 여러 능선으로 갈라지고 영산강에 다 이를 즈음이면 평야 지대로 바뀐다.

약곡리는 그 중간쯤에 위치하여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협곡의 마을로 인가는 드물고 전답 또한 귀하다. 순녀는 이러한 점을 염려하는 것이었다.

그렇다.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고민거리요, 과제인 먹거리에 대해 걱정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순녀가 염려하는 것 또한 지당한 것이라고 봐야겠다. 순녀는 자리를 털고 일어서며 경주댁에게

"성님! 인자는 꺽정을 해도 소양 없는 일이고 가서 부닥쳐 살먼 될 테제라우. 갑시다!"

하고 말하자 경주댁도 일어나 보퉁이를 머리에 이었다. 그리고 두 여인은 내리막길 아래 바굴뫼 마을, 순녀의 새로운 삶의 터전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으며 해는 기울어 땅거미를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다.

박 순녀, 그녀는 왜정 말기와 한국전쟁 등의 대격변기를 겪으며 살아온 여인이다. 왜인들의 민족혼 말살 정책에 따른 한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의 혼미한 시기와 미소로 갈린 요동하는 국제질서의 파고로부터 결코 헤어나지 못하고 직간접적인 피해자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누구를 원망하기보다는 다가선 운명에 순응하며 오로지 현실에 충실하였으며 이것은 주어진 삶에 대한 성실함의 표상이라 해야겠다.

생존의 본능, 이것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이며 기초적 고민거리요, 과제이며 또한 행복의 여건이기도 하다. 만약 내게 내일 먹을거리가 없다거나 어떠한 이유로 생존을 보장받을 수 없다면 오늘 어찌 행복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까닭에 인류는 생존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 왔고 경쟁과 투쟁의 역사를 만들어 왔다. 멀게는 춘추전국시대의 전투나 근세기의 세계 제1, 2차대전 그리고 육이오 동란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전쟁들의 종국적인 목적은 생존을 위한 투쟁에서 비롯된 것 아닐까.

뿐만 아니라 광대나 정치인, 농부, 건축가, 종교인 등등의 직업을 가진 이 사회의 모든 사람들은 그 하는 일들의 이유가 생존을 위한 것들이다.

이처럼 어떠한 전쟁이나 사람들의 행위는 결국 먹거리를 구하기 위한 것들이 그 목적이었으니 인간에게 있어서 생존의 본능이란 과연 가장 원초적인 고민거리요, 과제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생존본능을 위한 성실한 활동, 이것은 결국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또한 우리를 위한 것이기도 하며 이때 우리는 그 행위를 아름다운 선으로 승화시켜 이해하게 된다.

격변기의 난관 속에서도 결코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아름다운 선을 성실히 이행해 나아가는 순녀, 그녀에게는 어떠한 이름을 붙여 줘야 할까 고민을 해 보며 그녀가 찾아가는 곳, 바굴뫼에 평화가 깃들기를 바랄 뿐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