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누구 명철한 지도자 없소?
기고/ 누구 명철한 지도자 없소?
  • 서정규 내부통제연구소 대표
  • 승인 2023.12.05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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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규 내부통제연구소 대표
서정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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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일보] ‘명철(明哲)과 우둔(愚鈍)’이란 말이 새삼스럽게 오늘따라 생각이 난다. 명철은 총명하고 사리에 밝다는 말이다. 우둔은 어리석고 무디다는 뜻이다. 누구나 명철하다는 칭찬을 좋아하고 우둔하다는 업신여김을 싫어한다.

명철한 장군은 전쟁의 역사에서 승리하여, 나라를 망하지 않고 살려서 유지한다. 우리 역사에 기록된 가장 깊게 감동을 주는 명철한 장군은 고구려 을지문덕 장군이다. 살수 상류에 보를 막아서 물을 가둬 두었다가, 일시에 터뜨림으로써 수양제 30만 대군을 수장시켜 고구려 수나라 간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고려시대 강감찬 장군도 빼놓을 수 없이 명철한 장군이다. 귀주대첩에서 거란군 10만 명을 궤멸시켜 승리함으로써, 고려 국력의 강성함을 중국에 떨치고 종국에는 거란이 망하여 역사에서 사라지게 하였다. 이순신 장군의 임진왜란 수군 23전 23승의 무패 전략은 영국의 넬슨 해군 제독조차 칭찬할 정도로 명철함의 극치이었다. 우리 역사상 가장 우둔한 결정은 무엇일까? 역사를 획기적으로 바꿀 수가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친 가장 우둔한 결정은, 지금에 와서도 살펴보지 않을 수가 없다.

임진왜란 발발 2년 전 일본사람이 그들이 개발한 조총(鳥銃) 두 자루를 조선에 가져다주었다. 선조 임금 앞에서 총포 발사 시연하였다. 화승(火繩, 심지)에 불을 붙여서 발사하였다. 조선의 승자총통(勝字銃筒)보다 격발 방식도 쉬웠고 위력도 우수하였다. 선조 임금은 그 화승식 조총을 군기 시에 보내라고 하셨다. 그리고 창고에 잘 보관하였다. 그 후 조총의 위력을 걱정한 류성룡 대감이 신립 장군에게 조총(나는 새도 맞춘다는 의미에서 조선은 조총이라고 불렀다)에 관하여 물었다. 신 장군 왈 "쏜다고 다 맞습니까?"

우리나라가 왜놈이라고 업신여기던 왜국은 달랐다. 1475년 포르투갈 상인 2명이 일본 종자도에 표류하였다. 그들은 화승총을 시연해 보였다. 그 위력에 깜짝 놀란 도주는 거금을 주고 그 총 두 자루를 샀다. 뒤에서 탄알을 장착하고 불을 붙여서 격발하며, 긴 총신에 의한 우수한 명중률이 왜국 도주를 탐나게 한 것이다. 그리고 화승총 개발에 착수했다. 포르투갈의 기술 도움으로 드디어 일본의 화승총 댓 뽑(鐵砲)는 개발해 냈다. 이것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왜국 천하를 통일하는 주 무기가 되었다.

고려시대 최무선이 개발한 화약과 총통(銃筒)을 계승한 조선에서, 세종임금님은 승자총통을 여러 가지로 개발시켜서 그 성능을 향상하게 시켰었다. 그리고 명종조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개선에 주력했다. 그러나 총구에 화약과 포탄을 넣고 불을 붙여서 격발하는 방식은 여전하였다.

그런데 왜국이 전해준 화승총은 조선의 승자총통보다 훨씬 쉽게 불이 붙게 되어 있었다. 불이 쉽게 붙는다는 것은 총을 빨리 쏠 수 있다는 것이다. 빨리 쏜다는 것은 적을 먼저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 전쟁의 핵심이다.

임금님 앞 화승총의 시연이 그 당시 승자총통의 문제점에 대한 개선 방법임을 눈앞에서 보고도, 선조 임금님과 조정의 어느 사람도 그 총의 가치를 몰랐다. 더구나 조선 최고라는 신립 장군 조차도 그 왜놈 무기를 깔보았다. 우둔하다고 혹평하기는 지나치지만 명철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전쟁 역사를 더듬어보니 선조 조 조정의 명철하지 못함을 왜의 명철함이 짓밟은 것이다. 그 역사가 바로 임진왜란 전투에서 일어났다.

조선 승자총통의 사거리는 약 4보 거리에 불과하고 불을 붙이는 시간이 긴 데 반하여, 왜놈들의 포르투갈 화승총 모방으로 생산한 조총은 사거리도 5보 거리로 길고 격발하는 시간도 빨랐다. 육전에서 조선 조정 군이 대패한 이유가 바로 왜놈 조총 대비 약한 조선 승자총통에 있었다.

왜놈들은 신식 총과 기선의 제조 기술을 포르투갈과 유럽으로부터 배워 국력을 키워서, 우리나라를 병탄하고 동아시아를 삼켜서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다. 화승총에 관한 생각이 조선과 왜의 역사적 운명을 가른 것이다.

총 기술개발에 대하여 왜 명철을 논하는가? 인류의 역사는 문(文)과 무(武)의 균형적 발전위에 이루어진다. 세종대왕 조에서 훈민정음을 창제할 정도로 문의 문화가 융성했지만, 승자총통•측우기• 천문대•해시계•물시계 등 과학기술 개발 즉 무의 증진에도 힘을 기울인 것이다.

총과 화약의 발명은 중국 원나라에서 세계 최초로 이루어졌다. 그 기술이 유럽으로 전해져 총포개발은 유럽이 앞서게 되었다. 19세기 강철 개발로 인한 대포 기술에서 중국은 영국에 뒤떨어져, 청나라 시절 아편전쟁에 져 홍콩섬과 구룡반도를 할양해야 했다.

거대한 덩치로 잠자는 사자로 인식되었던 세계 제일 영토를 가진 청나라가 조그만 섬나라 영국에 총포의 전쟁에서 진 것이다. 청나라 대포는 대영제국 기선 코앞에서 꼬꾸라지고, 그 제국의 대포알은 청나라 진지를 박살을 낸 것이다. 총•균•쇠가 세계 역사를 바꾼다고 한다. 총의 사거리와 명중률이 세계 역사를 바꾼 것이다. 명철함의 극치가 그 당시 총의 성능에 있었다.

유럽은 항해술에 의한 병선과 총기류의 기술 우위로 아시아, 아메리카 및 아프리카를 점령하여 지배하고 식민지 삼아서 노예와 물자 수탈로 국력을 키워왔다. 이제는 그 식민지를 다 독립시켜 줬으나, 한번 커진 국부는 대대로 이어져 오늘도 강국으로 군림하는 것이다.

선조 조 명철함을 키울 수 있는 기회 상실의 피해는 그 후에도 큰 화근이 되었었다. 조선 말기 동학군과 조•일 연합군 간 공주 우금치 전투에서 왜놈의 신식총이 조선의 조총과 죽창으로 무장한 동학군이 거의 몰살되게 만든 것이다.

임진왜란의 패배를 되새겨 보고 이순신 장군만은 즉시 조총의 개발을 서둘렀다. 그러나 그 후 조선 조정에서는 서양식 화승총 개발은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 총의 개발에 대한 낮은 열의가 조선의 허약한 군사력을 불러왔고, 그래서 조선조 말 무력이 약한 나라 강토를 왜놈•되놈•아라사놈들이 군대를 진주시켜 짓밟는 치욕을 당한 것이다.

그런 선조 조의 집단적 명철하지 못함이 지금 우리 사회에는 없는가? 미래의 먹거리는 단연 반도체와 인공지능이다. 반도체는 ICT 즉 정보통신 기술 디지털 정보가 흘러가는 통로로서 인공지능, 태양광발전과 양자컴퓨터를 아우르는 미래 먹거리이다.

미국과 중국 Big Two는 반도체 전쟁에서 사생결단식으로 싸운다. 지원 법률과 정책으로 자국의 반도체 산업과 기술 육성 및 지원에 국력을 기울이고 있다. 중국은 반도체 굴기라는 특유의 용어로써 자국 정책의 중요성을 홍보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정부가 반도체 기술지원 입법 초안을 제정해 국회로 보내면, 국회의 과반수를 점유한 야당이 지원 법률의 내용을 변경시켜서 통과시킨다. 그 지원정책이 대기업을 지원할 것이 아닌가 하여, 오직 재벌 견제에만 주력하고 반도체 첨단 기술 개발 지원은 뒷전으로 차분한 것이다. 빈대 잡으려다가 초가삼간을 태우는 우둔함이 오늘날 국회에 도사려 있는 것이다.

미래 먹거리만이 아니다. 국가안보에서 평화론 주장이 아직도 난분분하다. 북한은 오직 핵무기 대륙간 탄도탄과 정찰용 위성개발에만 국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나라는 무엇을 해왔는가? 정부가 북한의 무기 개발에 강력하게 대처하면, 야당은 북한을 자극한다면서 오히려 우리 정부를 공격한다.

손자병법에서 가장 탁월한 전략은 지피지기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라고 했다. 적과 나의 실력을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말이다. 우리가 평화하여지자고 일방적으로 선언하면 북한이 얼씨구나 하고 평화협정을 맺을까? 가사 협정을 맺는다고 북한이 엄격하게 지킬까? 남북 군사협정을 보면 이미 답이 나와 있다.

이런 힘겨루기는 거의 모든 정부 정책 분야에서 일어난다. 과반수 야당이 눈앞의 자당 소리(小利)에 함몰되어, 국가 미래의 대리(大利)를 좀먹고 있다. 한국은 미래 먹거리에 관한 한 아장거리는 어린애 발걸음 격이다. ICT 첨단 기술 분야에서 오늘의 일 년은 과거의 십 년이라고 한다. 국론을 하나로 모아서 미래 먹거리를 찾는다면 어떻게 될까?

국회뿐만 아니다. 지역갈등, 세대 갈등, 노사갈등, 정규비정규직 갈등 등 거의 모든 사회 분야에서 대립과 갈등은 연일 쉬지를 않고 일어난다. 목하 집단적 우둔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는 사이에 일본이 뛰고 EU가 달린다. 미국이 도약하니 중국도 질세라 사생결단으로 질주한다.

아주 아주 오래전 선조의 우둔함 망령이 끈질기게 되살아와 지금, 이 순간도 우리 후손들의 미래 먹거리를 좀 먹고 있다. 이를 수수방관하는 현대판 지식인들의 우둔함을 한탄해야 하는 것이다. 누구 명철한 지도자 없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