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광장/ 고향 예찬
인문학 광장/ 고향 예찬
  • 임 종 주 예비역 육군 소령
  • 승인 2023.12.07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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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종 주 예비역 육군 소령
임종주 예비역 육군 소령
임종주 예비역 육군 소령

[시정일보] 고향은 사라져 버렸다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가 돌아가 지친 영혼과 육신을 잠시 누일, 그리하여 그 메마른 영혼과 육신에 새로운 힘을 불어넣어 줄 탄생과 생명의 원천으로서의 고향은 지금 이곳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에겐 위안으로서의 고향도, 영원한 어머니로서의 고향도 이미 사라지고 없는지 모른다.

이 싸늘한 도시의 거리에는 고향을 잃어버린, 혹은 고향이 없는 회색빛 얼굴들이 쫓기듯 스치며 상담하고 거래하면서 하나의 거대한 타향을 건설해가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때때로 이 메마른 일상에서 고향의 얼굴을 지닌 사람들을 만난다. 최근의 나의 삶이 형편없이 지쳐 빠져 있고 또 삭막할 대로 삭막해져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런 얼굴을 만날 때마다 한없는 생명감과 기쁨을 느낀다.

그 생명감이란 모두 인공적·도시적 병폐와는 무관한, 흙을 밟고 흙과 더불어 친화한 사람에게서 느낄 수 있는 원초적인 풋풋한 생명감이며, 그 기쁨이란 그런 건강한 삶이 주는 안온한 기쁨이다.

안온한 기쁨이라고 표현했지만, 우리의 나날의 삶이 그것으로 가득 채워지기를 우리는 얼마나 바라왔던가! 그러나 우리의 실제 삶은 우리의 그러한 기도와는 또 달리 얼마나 정반대의 편에 서 있는가!

유년 시절은 낮과 밤이 다른 생활 속에서 자랐다. 낮이면 6·25전쟁 끝자락에 지리산 반란군 잔존 토벌 작전으로 보냈다.

반란 잔 군들은 밤이면 토굴 속에 내려와 곡식과 축산물(소. 돼지, 닭)을 닥치는 대로 강제로 빼앗아 갔을 뿐만 아니라, 젊은 청년, 부녀자들을 마음대로 끌고 가기도 했다. 낮이 되면, 국군과 경찰들이 피해 상황을 조사하는 일이 반복되었으며, 하늘에선 B -29 비행기가 산을 폭격하고 전단을 날리며 토벌 작전을 계속하면서 반란군(人民軍)에 일체 동조하지 말 것을 홍보하였다.

어릴 때 어슴푸레 생각난 것은. 본격적으로 정규군이 활동하고 경찰들이 진입해 임시막사를 설치하고. 빨치산 인민군의 적극적으로 동조한 소위 앞잡이를 파악하여 피아골 산속에서 무참히 총살을 감행하는 그런 일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후 학순 이양면의 개개인 제사가 한날 겹쳐 치른 것이 허다했다.

화순은 지금은 청정지역이지만 당시엔 강원도 태백과 함께 탄광지역이었으며 산속에 갱도를 설치하고 석탄을 채취하여 냇가는 늘 검은 혼탁한 물이 흘렀으며 주민이 2분화 되어 탄광 인부로 일하는 사람들은 그나마도 형편이 넉넉하였지만 그렇지 못한 주민은 매우 궁핍한 생활을 이어 갔다.

나의 어린 시절은 유복한 생활을 해왔다. 4남5여 가운데 3 男으로 태어나 현재는 본인과 큰누나 화순읍 거주만 생존해 있다. 부친은 한학자이면서 한의사로 전남 일원에서는 유명세를 똑똑히 한 분 이셨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고향 생존자 중에서는 지금도 부친의 이름을 기억하고 부천 때문에 병을 고쳤다는 이야기를 허다히 듣곤 한다. 지금으로 말하면. 금수저 출신(?)이라고 할까?

집안일을 거들어준 많은 일군 즉, 머슴, 식모가 우산 각(밑으로 물이 흐름) 옆 문간방에서 일 년 새경을 받고 거주하면서 살았다. 황부자(黃富子) 노부자(盧富子) 임부자(林富子) 세 부잣집이 있어 유명세를 똑똑히 하고, 당시 나는 한약 봉 봉지 심부름 덕분에 초등학교 입학 전 천자문(千字文)을 읽히고 학교에 다녔다. 그 마을 - 에서는 남부럽지 않은 부러움을 사고 살았다.

서울에 사는 초등학교 동창인 김철용(80, 전 금성출판사 전무)은 같이 재경 화순 향우회 고문을 맡고 있으며 지금까지도 나의 자산이며 훌륭한 친구로서 우의를 돈독히 하는 변함없는 친교를 가진 몇 남지 않은 유일한 친구 중 하나다.

유명한 작가인 동년배 조정래도 이웃 동네(順天 出身) 太白山脈(태백산맥) 장편소설 속에, 그때 분위기가 잘 녹아있으며, 임 氏 화수회 종친인 선배 격인 그 유명한 임권택(장성) 영화감독은 현재도 건강하며 생존 활동 중이다.

학순 출신, 특히 이양면 지역 출신으로 박정희 대통령 육사 동기생인 문형태 육군 대장(합참의장) 문두식 장군(전 보안사령관), 구흥남(전 국회의원)아들 구삼열(정명화 남편)이가 있고, 현재 정치인으로 삼성전자 상무 양향자, 국회의원 안병욱(과거사 청산 위원장) 화순 올림픽 금메달 링크 보이 이용대 선수, 오지호, 강운태(전 광주시장), 국민배우 고현정은 능주 출신이다.

전국 광부들이 몰렸던 1966년 15만 2,000명으로 최고의 인구를 기록했던 그 이후 수도권 향우가 20만으로 추산하지만, 전국 각지로 흩어진 고향 출신은 현재 10만여 명으로 추정되며 지금은 6만여 명을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인구 유입을 위해 “만 원의 행복” 정책으로 주거아파트를 대량으로 젊은 청년에게 제공함으로써 그나마 인구수가 전국지방은 감소 추세에 있는 것에 비하면 화순만은 점점 늘어나고 있는 좋은 추세를 보인다.

화순(和順)이라는 지명은 잉리아현(仍利阿顯) 여미현(汝痛顯)이라 부르던 것이 고려 때 개정되면서 처음으로 역사에 등장한다. 지정학적으로 보면 소백산맥에서 뻗은 지맥들로 이루어져 산들이 많다.

군 전체 면적의 73.8%가 임야로 구성 무등산. 백아산. 모후산 등이 둘러싸여 호남에서 일찍이 탄광이 개발되어 채광 시절엔 전국에서 부촌을 이루었지만, 올해로 118년 역사를 가진 탄광을 폐광함으로써 탄광의 역사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산세가 험한 만큼 깊이 감춰졌던 유적 유물도 풍부하다. 문헌에 의하면 통일신라 경문왕 8년(기원전 868년)천불천탑(千佛千塔)으로 유명한 운주사의 철갑 선사탑(激減 禪師塔 국보제 57호)을 보유하고 있는 쌍봉사 9층 석탑(보물 796호)과 세계 문학 유산으로 등재된 고인돌 유적지,북면 서유리에서 발견된 공룡 발자국, 최근 개방된 이서면 적벽 화순의 경치가 절경이다.

그리고 방랑시인 김병연이 동복면 구암리를 영원한 안식처로 삼았고 조선조의 대가 조광조의 유배지로 짧은 생애를 마친 능수에 비각이 세워져 있어 수학자들이 관심이 지대하다.

이런 국사의 현장이 외부로 알려지기는 광주와 화순을 연결하는 너릿재 터널이 뚫리고 교통의 왕래가 쉬워지면서였다. 국내 최대의 백신제 회사인 녹십자 등이 들어서 백신 도심지구를 형성하였으며,전남대 의과 대학으로 국내 최대의 암 전문 병원으로 성과를 낸 병원이 화순에 있는 등 화순은 날로 발전함에 따라 전국에서 주목을 받는 지역으로 성장하고 있다.

화순 인물들이 수도권에서 많은 활약을 하는 것은 산세가 좋고 터가 좋아 풍수지리적인 영향이 있다고 말한 학자도 있다.

돌이켜 본다. “살고 싶은 고장, 다시 찾는 화순 화순군"을 슬로건으로 해마다 "국화꽃 축제” “고인돌 축제” "적벽 축제” 등의 축제가 열리고 있는 유서 깊은 내 고향 화순을 예찬하며 살고 있기에 행복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