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광장/ 연변 조선족 동포에 대한 소고
인문학 광장/ 연변 조선족 동포에 대한 소고
  • 임 동 규 GF에너지주식회사 대표이사
  • 승인 2023.12.14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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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동 규 GF에너지주식회사 대표이사, 시인
임 동 규 GF에너지주식회사 대표이사

[시정일보] 요즘 웬만한 도시나 시골까지도 식당이나 공장 등에 가보면 힘들고 궂은 일하는 분들 중에 어렵지 않게 연변 조선족 동포들을 만나게 된다. 이분들은 분명히 중국 국적의 중국인이다. 그런데 그들은 중국 내에서 스스로를 조선족이라 일컫는다.

2007년 여름 연변을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어느덧 16년 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그때 그곳에서 겪고 느꼈던 일들을 새삼스럽게 회고하는 것은 근래 조선족 동포를 포함하여 수백만 명의 외국인들이 국내에 들어와서 우리와 함께 밀접한 관계를 이루며 함께 살고 있는데 이에 대한 국가와 국민이 더불어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생각해보자 함이다.

이렇게 많은 해외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산업현장의 일손을 해결해주는 긍정적인 면과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가 대두되는 부정적인 측면이 서로 공존하면서 최근엔 외국인 근로자들을 대거 영입하여 부족한 국내 노동력을 해결하기 위하여 국가산업 현장에 투입하여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고 실제로 관계 당국이 이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언론에 발표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선족 동포들에 대하여 생각해보고자 한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중국 동북 3성 일대는 일제 강점기에 일제의 핍박을 피해 또는 항일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고국을 떠난 우리의 선조들이 만리타국에서 필설로 다할 수 없는 갖은 고초를 겪으며 자리 잡고 살았던 곳이자 옛 고구려의 고토이다. 필자가 연변지역을 여행할 당시만 200만이 넘는 재중 조선족 동포들이 동북 3성 일대에 살고 있었고 연변 지역만 해도 약 80만을 헤아리는 동포들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해외로 특히 한국으로 일자리와 새로운 생활터전을 찾아서 이주하여 동북 3성 특히 연변 일대의 조선족 분포가 현저히 줄어들었고 이로 인해 조선족 자치 정부의 존립조차 위협을 받고 있으며 이러한 문제들이 중국 정부의 동북공정이라는 정책으로 더욱 심화되고 있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최근에 연변 지방을 여행해 본 분들은 16년 전 필자가 방문했던 연변의 상황과는 크게 변하여 달라졌겠지만, 연길을 포함한 시골까지 우리나라의 어느 지방 같은 느낌이 들게 했었다. 도시의 상점 간판이 한글로 되어 있었고(한글 아래쪽에 중국어가 병기된 점이 다르지만) 시골 풍경은 우리의 60년대를 연상케 하며 유치원서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한글과 우리 문화와 역사를 가르치는 우리 조선족 학교가 골고루 분포되어 있었다.

필자가 당시 연변 일대를 여행하면서 깊은 충격을 받았었는데 이는 연변 일대에 거주하는 조선족 숫자가 급속히 감소하여 소학교(초등학교)를 포함한 조선족 모든 학교가 점차로 폐교되고 조선족 어린이들이 중국인 학교에 편입되어 수업을 받게 됨으로써 그들이 우리 말과 글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그들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민족성이 말살되는 심각한 상황을 목도하고 심히 안타까운 심경으로 발걸음을 돌린 적이 있었다.

귀국하여 안타까운 심경으로 고심 끝에 우리나라 각 가정과 학교 등에서 버려지는 헌 책들을 모아서 연변으로 보내기로 하고 그렇게 모아진 책으로 조선족 선생님들이 주말에 아이들을 모아서 우리 한글과 말과 우리 민족의 문화와 역사를 가르치기로 그곳 동포 지인들과 협의하여 결정하고 시도하였으나 중국 당국의 방해로 이루지 못하고 부득불 자비를 들여 연변 현지에서 우리말로 된 책을 발간하여 배포해서 연길 일대의 도시와 오지의 조선족 선생님들께 보낸 적이 있었다.

그 후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이일을 계속하지 못하고 현재에 이르러 늘 마음속에 아쉬움과 숙제로 남아있다. 훗날 기회를 만들어서 다시 시작해 보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돌이켜 보면 그곳 동포들이 고국을 잊지 않고 우리말과 우리글과 문화와 전통과 역사를 후손들에게 끊임없이 가르치고 이어 왔던 것에 대한 감동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또한, 우리의 전통민속 문화 중에는 오히려 우리나라보다도 더 잘 계승되어 온 부분도 꽤 된다고 한다. 참으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연변을 여행할 그 당시에 우연히 그곳 연길에서 조선족 의과대학을 나온 의사 한 분을 만나 연변에서 며칠 동안 동행하며 백두산을 함께 오를 기회가 있었다. 우리들 어릴 때가 연상되듯이 연변 시골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도시에 나와 가난을 딛고 각고의 노력 끝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사로서, 의대 교수로서 비교적 사회적으로 성공한 그런 40대 초반의 조선족 동포였는데 당시 중국 내에서 점점 축소해져 가는 조선족의 위상과 예측되는 장래와 조선족 동포들 전반적인 문제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소상히 감명 깊은 대화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북한의 도시와 지방도 수차례 방문하였다 하여 비교적 소상히 북한 실상을 들을 수 있었으며 당시 연변 지방의 교포들 생활 실태와 두 개의 모국(한국과 북한)을 바라보는 그들의 생각들을 가감 없이 허심탄회하게 얘기하고 느낄 수 있었다

그런 과정에서 한국에 나와 있는 많은 해외 동포근로자, 특히 연변 조선족들을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네들이 누구인가? 과거를 돌이켜보면 일제 암흑기에 고향을 떠나 낯설고 험한 이국땅 황야에서 일제에 쫓기고 중국인들에게 설움 받고 마적 떼들에게 위협까지 받으며 끈질긴 생명력으로 버텨온 바로 우리 이웃 친인척 조상들의 후손들이 아닌가? 지금은 경제적 수준이 우리보다 낮은 관계로 잘사는 고국에 돈 벌러 와서 개중에는 무시당하고 설움 받으며 고생하고 살아가는 바로 우리의 형제자매들인 것이다.

그들이 태어나서 자라고 성장해서 결혼하고 자식 낳아 기른 길림 성 연변 일대는 물론 동북 3성 전역에 걸쳐 그들의 남편이, 아내가, 그들의 어린 자식들이, 그들의 늙은 부모가, 훗날의 행복을 꿈꾸고 기다리며 어려움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고, 반면 이곳 우리들 주변에는 연변에 남아있는 또 다른 그들의 남편이, 아내가, 어머니가, 누이가, 갖은 어려움 속에서도 훗날의 행복을 꿈꾸며 이제는 거꾸로 타국 만 리가 된 고국, 우리나라 우리 주변에서 몸과 마음고생을 하며 우리들과 함께 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 한국 사람들이, 특히 그들을 고용하고 있는 사업주들이, 그네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대해왔는가, 혹여 무의식중에라도 그들을 무시하고 마음에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 그리고 앞으로 그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를 깊이 있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들이 경제적으로 조금 잘산다고 그것이 어찌 우리 스스로가 이룬 전부이며 그네들의 우리보다 어려운 경제 사정이 어찌 그들만의 탓인가? 그들과 그 조상들은 버려진 이국땅 황무지에서 그 연변 조선족 삶의 터를 그래도 이만큼이나 이루어 내고 지켜오지 않았는가. 달리 보면 그들의 희생이 오늘의 우리 사회가 있게 한 상당한 부분이었음을 또한 부정할 수 없는 게 아닌지?

필자가 그때 여행 중 느낀 바로는 그곳 동포들이 생각하는 고국에 대한 애증과 민족에 대한 개념이 우리가 그들을 생각하는 그것과는 아직도 사뭇 다르다는 것이었다. 이제 우리나라는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 되었다. 거기에 걸맞은 재외동포 정책이 국가로부터 제대로 세워져야 한다.

특히 일제에 의해 고향을 떠났던 분들의 후손들이 중국이나 러시아 주변국 등에서 형언할 수 없는 큰 어려움을 겪고 있고, 그 숫자조차도 파악할 수 없이 우리들 관심 밖으로 잊혀진 수많은 탈북동포가 생명의 위협을 받으며 기약 없이 대륙 곳곳을 방황하는 현 상황에서 모든 국내외 거주 동포들에 대한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정책이 세워져야 할 것이다. 그것이 오늘날 그들에 대한 조국의 책무이다.

경제적으로도 실질적인 지원이 당장 필요하다. 그동안 북한 퍼주기 논란이 끊이지 않고 이어져 왔는데 이와는 별개로 정치적 목적이 아닌 순수한 동포 돕기 차원에서 국가가 시급히 추진하여야 하며 더불어 국내에 들어와 있는 불법 입국자를 포함한 동포근로자들에 대한 처우도 그들을 위한 근본적인 정책변화가 있어야 한다. 이를 외면한다면 이는 만주에서 또 시베리아에서 갖은 고초를 겪으며 항일독립운동에 여생을 바친 애국선열과 그 후손들에 대한 죄악이며 위정자들을 포함한 우리가 모두 민족과 역사 앞에 죄인이 될 것이다.

국민 개개인의 재외 동포 관도 이제 크게 달라져야 한다. 고국 땅에서 고생하는 동포들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고 뜨거운 가슴으로 얼싸안아야 한다. 또한, 그들을 돕는데 물심양면으로 인색함이 없어야 한다. 그리고 혹시 동포들이 사는 나라를 여행 기회가 있을 때도 역시 같은 생각으로 그들을 대해야 한다.

개념 없이 거들먹거리며, 현지 교포들의 가슴에 상처가 되는 언행을 삼가고 동포애로써 일가친척 형제자매처럼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러면 그들로부터 몇 배 더 많은 호응과 사랑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럴 때 우리 민족이 정말 화합되고 함께 행복해지는 미래가 열릴 것이라 확신하며 그때 2007년 여름 8월 중순 3박 4일 동안을 함께하며 많은 대화와 도움과 감명을 주신 조선족 연변 의과대학 모모 교수님께 이 자리를 빌려 심심한 감사를 드린다. 또한, 국내에 들어와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여러 방면에서 많은 일에 종사하고 고생하시며 행복한 미래를 꿈꾸는 조선족 동포들, 모든 해외 거주 동포들께 감사와 더불어 그분들과 그분들 가정에 건강과 큰 행복이 깃드시길 두 손 모아 기원한다.

2007년 필자가 여행하던 그 당시 연변 조선족 지역도 건설과 개발이 한창이었다. 그 재원의 상당 부분이 한국에 나와 있는 동포들이 힘들게 벌어 보낸 돈이 밑거름된다고 하니 7~80년대 중동 열사의 사막에서 우리 근로자들의 땀 흘려 벌어들인 외화가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 밑거름이 되었음을 회상하며 연변 조선족 자치지역의 큰 발전과 번영을, 그리고 모든 해외동포의 안녕과 행운을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