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좌탈입망
기고/ 좌탈입망
  • 미광선일 법명사 회주
  • 승인 2023.12.13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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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광선일 법명사 회주
미광선일스님
미광선일스님

[시정일보] 법력이 높은 고승들이 세상과 인연이 다할 때 택하는 방법으로 참선 자세로 앉아서 돌아가시거나, 혹은 서 있는 자세로 세상과 인연을 다하는 모습을 좌탈입망(坐脫立亡)이라 하며, 죽음마저도 마음대로 다룬다는 것으로 입적, 원적, 열반했다고 한다.

좌탈입망을 중시하는 이유는 마지막 죽는 순간의 의식 상태가 우주의 근본 상태를 느끼고 생사를 초월한 도를 보는 사생관 때문이다. 즉 좌탈을 했다는 것은 죽는 순간에도 각성 상태에서 평온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고통과 번뇌의 원인 덩어리인 몸을 벗어 던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깨달음의 자리에서 다음을 준비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좌탈입망은 요즘 이야기되는 ‘웰 다잉(Well dying)’의 최고 수준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사명대사는 해인사에서 설법을 마친 뒤 가부좌를 틀고 입적했다. 승찬 스님은 뜰을 거닐다 나뭇가지를 잡은 채 서서 열반했고, 당나라의 등은봉 스님은 물구나무선 채로 열반했다.

한국의 근현대 고승들 가운데서도 밧줄을 붙잡고 화두를 외며 죽음을 맞은 조계종 초대 종정 효봉스님 외에도 오대산 상원사의 한암, 백양사의 만암, 순천 송광사의 초대 방장 구산, 조계종 5대 종정을 지낸 백양사의 서옹스님 등이 모두 좌탈입망했다. 그 외에도 수많은 스님이 좌탈입망했는데, 나의 스승인 기산 스님도 앉아서 열반하셨기에 관을 앉은 자세 모양으로 급히 만들어서 입관한 기억이 생생하다.

좌탈입망은 초기 경전에 많이 나온다. 자신의 의지대로 의식이 몸을 떠나는 것을 말한다. 원하는 시간에 이 몸을 버리고 열반에 든다. 그리고 경전에는 좌탈입망하는 방법과 원리가 자세히 나온다. 당나라 지 한 선사는 ‘좌탈입망도 거꾸로 열반해도 그저 그렇다’면서 일곱 발자국을 걷다가 열반에 들었다. 즉 행사(行死)는 걸어가다가 죽는 것이다. 또 다른 입적으로 화욕(火浴)은 불 속에서 죽는 것이다. 당나라 선지 덕성 화상은 ‘땔나무도 필요 없고 땅 팔 일도 없다’면서 강물에 들어가 수몰(水歿) 열반했다. 몇 년 전에는 선방에서 열심히 수행하신 스님이 도반들과 같이 개울가에서 목욕하다 사라졌는데 얕은 물인데도 아무리 찾아도 없다고 하니 수몰등공(水歿登空) 열반이다. 등공은 글자 그대로 공중으로 올라간다는 뜻이다. 보화존자는 관속에 들어갔으나 시체가 없어졌다.

세상에 태어나 100년을 살다 간들 이 세상 1겁 시간이 극락세계의 하루의 낮과 밤밖에 안 된다고 한다. 이 땅에서 받은 내 몸은 흙, 물, 불, 바람으로 돌아가고 나의 참 성품만이 영원하다. 형상과 소리로 나를 보려고 하지 말자. 우리는 그런 물질적인 현상에서 벗어나 인과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깨달음의 길을 찾는 마음공부가 중요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