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광장 / ‘호(號)’의 의미와 실제
인문학광장 / ‘호(號)’의 의미와 실제
  • 임 지 룡 경북대학교 석좌명예교수, 문학박사
  • 승인 2024.01.23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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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지 룡 경북대학교 석좌명예교수, 문학박사
임 지 룡 경북대학교 석좌명예교수, 문학박사
임 지 룡
경북대학교 석좌명예교수
문학박사

[시정일보] 코흘리개 시절, 춥고 배고팠던 시절의 동창 모임에 가보면 ‘코찔찔이’ ‘싸개’ ‘들창코’ ‘점박이’ ‘땅딸보’ 등의 별명이 오간다. 인사말도 별명 못지않게 걸쭉하다. 그 별명과 정겨운(?) 인사말을 듣는 이는 어색해하며 얼굴을 붉힌다. 이런 경우를 겪다 보면 아무리 허물없던 사이라도 상대방을 배려하는 지혜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링컨은 “나이가 40을 넘은 사람은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으며, ‘만다라’의 지산스님은 법운스님에게 “사람들은 누구나 제 얼굴에 맞는 이름을 가져야 하는 법”이라고 하였다. 호적에 올려 부르는 ‘이름’은 대체로 부모님이 지어 주신 것으로, 개명을 하지 않는 평생을 달고 산다. 오늘날 우리는 개인 정보 노출에 과민하여 익명으로 살아간다. 라디오의 시청자 참여 코너에서는 이름이 사라진 채 진행자가 손전화의 끝자리를 따 “6537님”, “3835님”이라고 부른다.

자기 얼굴에 책임을 지고 얼굴에 걸맞은 이름이 ‘호(號)’이다. 호는 홀로서기 또는 홀로선 나를 위해 스스로나 스승과 벗이 지어 준 새 이름이다. 이 글에서는 호 짓는 방법과 내가 받고 지어서 사용하는 호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기로 한다. 이것은 호 문화의 가치를 되살림으로써 익명의 시대에 메마르게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 온기를 불어넣고 기품을 드높이고자 함이다.

종래 작명소에서는 사주, 즉 태어난 연월일시의 네 간지, 오행의 상생과 상극, 글자의 획수 등을 고려하여 이름을 지었다. 호를 짓는 데도 이러한 방식을 중시하는 풍습이 있다. 이것은 어느 면에서 일본식이 아닌가 한다. 고려 중엽 이규보는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의 ‘백운거사어록(白雲居士語錄)’에서 옛사람들은 호로 이름을 대신한 사람이 많았는데, ‘거처하는 곳’ ‘소유물’ ‘얻은 바의 실상’을 호로 삼는다고 하여 호 짓는 법을 언급하고 있다.

한정주의 호, 조선 선비의 자존심(2015, 다산북스)에서는 “호를 지을 때는 정해진 방법도 특정한 법칙도 없다.”고 하면서 호 짓는 방식을 여덟 가지로 정리한 바 있다. 인연이 있거나 거처하는 곳의 지명을 취함. 지니거나 좋아하는 사물을 취함. 깨달음이나 지향하는 뜻을 따름. 처한 상황이나 처지를 취함. 용모나 신체적 특징을 취함. 존경하거나 본받고자 하는 인물을 따름. 하는 일이나 직업에서 취함. 고전에서 취함.

이 여덟 가지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호의 유형을 망라할 수는 없다. 자신의 호는 낮추거나 익살스럽게 짓기도 하며 삼가 경계하기도 한다. 제자나 벗의 호는 성격이나 체질상 약한 것을 보강하거나 강한 부분을 누르는 뜻으로 짓기도 한다.

‘호’의 유형도 유의미하게 구분된다. ‘별호(別號), ‘아호(雅號)’, ‘당호(堂號)’, ‘택호(宅號)’, ‘시호(諡號)’ 등이 있는데, ‘호’로 포괄된다. 또 다른 차원에서, 호의 어종(語種)도 의미를 지닌다. ‘연암(燕巖)’ ‘다산(茶山)’ ‘추사(秋史)’와 같은 전통사회의 한자어뿐만 아니라, ‘한힌샘’ ‘외솔’ ‘빗방울’과 같은 토박이말로 호를 짓는다. 호를 이름과 음을 같게 한 경우도 있다. 이상백(李相佰)의 호는 ‘상백(想白)’이며, 이호우(李鎬雨)의 호는 ‘이호우(爾豪愚)’이다. 윤동주(尹東柱)는 동시를 발표할 때 동주(童舟·童柱)라는 필명을 사용하였다. 나에게는 두 개의 호가 있다. 하나는 은사님이 또 하나는 벗이 지어 준 것이다.

현경(玄鏡) : 古記云 執玄鑑於心 鏡臺置千金 林敎授枝龍君 意趣愈玄慧明如鏡而 可號玄鏡耳 癸未 峨林(옛 기록에 이르기를 “집현감어심(執玄鑑於心), 경대치천금(鏡臺置千金)”이라 하였다. 임교수 지룡군은 품은 마음의 뛰어남이 ‘현(玄)’에 걸맞고, 그 슬기롭고 밝음이 ‘경(鏡)’과 같아 가히 호를 ‘현경’이라 할 만하다. 계미(癸未, 2003) 아림(峨林))

‘현경’은 ‘아림(峨林)’ 김종택 선생이 지어 주신 것이다. ‘현(玄)’은 회남자(淮南子)의 ‘수무훈(修務訓)’에 나오는 ‘집현감어심(執玄鑑於心)’, 즉 ‘빈틈없이 어디까지나 파고들어 알아내고야 마는 마음’, ‘경(鏡)’은 북사(北史)의 ‘제본기(齊本紀)’에 나오는 ‘경대치천금(鏡臺置千金)’, 즉 ‘경대(鏡臺)가 천금의 가치가 있다.’의 머리글자인데, 이 둘을 가져와 ‘현경’이란 호를 주셨다. 나에게 집념에 해당하는 ‘현(玄)’의 마음은 어느 정도 있다고 하겠으나 지혜를 뜻하는 ‘경(鏡)’은 부족하기 짝이 없다. 스승께서 ‘현(玄)’의 마음으로 ‘경(鏡)’을 얻으라는 깊은 뜻을 담은 게 아닌가 한다.

또 하나는 ‘후목’이다. 2019년 6월 정년퇴임을 앞두고 국내외 학자들을 망라하여 한국어 의미 탐구의 현황과 과제(임지룡 외 57명, 새국판 1576쪽)’와 인지언어학 탐구의 현황과 과제(임지룡 외 38명, 새국판, 1044쪽)’라는 두 권의 책을 만들었다. 100명이 오신 출판기념회 자리에서 심우 문성학 교수의 건배사 덕담이 호가 되었다.

후목(厚木) : “임 교수께서는 책도 두껍하고, 손도 두껍하고, 목소리 그리고 사람도 두텁습니다. ‘후목’ 선생! 축하합니다.”

정년퇴임을 하고 정기적으로 모이는 ‘화요회’에서 나는 ‘후목’으로 불린다. 이 호를 전해들은 이들이 ‘후목’ 선생이라고 부르는 경우, “사람은 쩨쩨한데 호가 두터우니 하는 수 없이 오늘 밥값은 내가 낸다.” 하면서 계산하곤 한다. 나는 ‘현경’과 ‘후목’을 ‘검거울’과 ‘두터운나무’의 토박이말로 뒤쳐 한자어 호와 함께 사용한다. 내가 호를 처음 지은 것은 아내 환갑 때의 ‘혜화정’이다.

혜화정(慧和庭) : 하늘의 해 달 별이 찬연히 비춰 만물이 의탁해 살고 싶은 데가 있다. 그곳이 밝고 따뜻한 뜨락 ‘혜화정(慧和庭)’이다. 내 삶의 어진 동반자이자 아이들의 온화한 어머니·할머니인 명진(明辰)은 밝고 따뜻한 뜨락과 같은 분이므로, 호(號)를 혜화정(慧和庭)이라 할 만하다. 병신(丙申) 유월 현경

“알아 고생했지 나를 만나서 너 힘겨웠지”라는 유행가 가사가 있다. 나를 만나 고생한 아내의 환갑에 여러 생각 끝에 밝고 따뜻한 뜨락이라는 의미의 ‘혜화정(慧和庭)’을 선물하였다. 서예를 하는 ‘백산(柏山)’ 선생과 서각을 하는 ‘백랑(白浪)’ 선생이 누옥에 오신 적이 있는데, 호 지은 경위를 듣고 ‘밝고 따뜻한 뜨락 혜화정’이란 글씨를 편액으로 꾸며 걸어주셨다. ‘혜화정’은 집사람의 아호이자 우리 집의 당호가 되었다.

‘인생은 지금부터’라는 모임이 있다. 2007년 전국에서 국립사범대학의 책임을 맡아 일하다가 은퇴한 8인 회로서 한 해 두 차례 모여 전국의 명소를 답사하며 이 땅의 교육을 논의하고 우의를 다진다. ‘수백당(守白堂)’이라는 당호가 이 모임에서 처음으로 지어졌다.

수백당(守白堂) : 지난해 모임에서 김(金)학장 종훈(鐘勳) 형이 대취한 나에게 새집의 당호를 청하였다. 깨어나 그날의 약속을 후회하면서, 여러 날 형의 성정과 인품을 생각함에, 한결같이 ‘흰 백(白)’의 영상이 가득하였다. ‘백(白)’은 빛깔의 마루로 깨끗하고 밝고 빛나서, ‘흰 사슴(白鹿)’이 물을 마시는 명산 한라(漢拏)에 닿아 있다. 이에 종훈 형의 새집을 ‘수백당(守白堂)’이라 일컫고 가히 그 주인으로서 호를 ‘수백(守白)’이라 부를 만하다. 무술(戊戌) 칠월 현경

무술 정월 모임에서 종훈 형이 집을 짓는데 이름 하나를 지어달라고 하였다. 취중의 호기로운 약속을 후회하면서, 반년 뒤 강화도 모임에서 ‘수백당(守白堂)’이란 당호를 드렸다. 그 뒤 제주 모임에서 우리를 초청해 대문을 들어서니 ‘수백당(守白堂)’이 벽면에 새겨져 있었다. 한라산 백록담을 마주한 새집의 당호를 내외분께서 몹시 아끼고 고마워해 보람을 느꼈다.

강화도 모임에서 ‘수백당’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우리 모임의 좌장인 이흥수 학장께서 “나도 고향에 어머니가 계시는 집이 있는데…….”라 하여 ‘백송(정)’이 탄생하였다.

백송(伯松) : 이(李)학장 흥수(興洙) 형은 그 사람됨이 밝고 따뜻하다. 가정에서나 사회에서 밝음과 따뜻함으로 ‘아름다운 동행’을 이끌면서 깊은 울림을 주었도다. 이에 백두대간의 마루 솔 같은 이학장 흥수 형을 ‘백송(伯松)’으로 부르고, 효성스럽게 자당을 모시는 그 댁을 ‘백송정(伯松亭)’이라 일컬어 마땅하다. 무술(戊戌) 십이월 현경

이 학장은 우리 모임을 이끌어 가는 큰 형이다. ‘인생은 지금부터’라는 모임을 만들어 때마다 좋은 술과 안주를 가득 안고 온다. 고향 고창에 초대해 모임을 가진 적이 있는데, 장어와 복분자에 취한데다 가 주말마다 광주에서 고향에 와 자당을 모시는 효심에 놀랐다. 8남매의 맏이이며, 공사적 모임에서 늘 책임을 맡아 헌신하신다. 나는 첫 글자로 ‘맏 백(伯)’을 놓고 한 참 뒤 ‘솔 송(松)’으로 아호 ‘백송(伯松)’을 짓고 당호를 ‘백송정(伯松亭)’이라 하여 6개월 뒤 모임 때 드렸다.

이후 다른 분들도 호를 기다리는 눈치였다. 도중에 우리 모임의 소식을 듣고 한 분이 더 들어와 9인회가 되었다. 금정(錦井), 온호(溫湖), 남선(南仙), 효죽(曉竹), 덕암, 홍정(弘鼎)이란 호가 순차적으로 지어졌다. ‘우촌(又村)’ 형을 중심으로 한 독수리 오형제 모임에서 호가 없는 아우 둘에게 ‘서당(曙堂)’, ‘상정(祥庭)’이란 호를 지어 주었다.

서당(曙堂) : 사람은 집을 통해서 가정(家庭)을 이루고 문화(文化)를 짓는다. 새벽녘 날 샐 때 집은 상서(祥瑞)로와 귀하디 귀하다. 정(鄭)교수 명섭(明燮)은 한결같이 이 땅의 집을 탐구하면서 그 밝고 의젓함이 일가(一家)를 이루었으므로, 호(號)를 서당(曙堂)이라 할 만하다. 신묘(辛卯) 오월 현경

상정(祥庭) : 새가 하늘을 날면서 나래를 쉬며 둥지를 틀고 싶은 데가 있다. 그곳이 길한 땅 ‘상정(祥庭)’이다. 내 아우 이공(李公) 성규(成圭)는 성정이 밝고 따뜻한데, 오래토록 상서(祥瑞)로운 정원(庭園)을 찾아다니다 뜻을 이루었으니, 그곳의 주인으로서 호(號)를 ‘상정(祥庭)’이라 할 만하다. 신묘 십일월 현경

‘서당(曙堂)’은 건축학자로서 전통마을과 사찰을 탐구, 복원하는 전문가이다. 그를 통해 잊고 있던 집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상정(祥庭)은 문화재 전문 공직자로서, 좋은 땅을 찾아다니다 한 곳을 얻어 집을 지었다. 나는 ‘상서(祥瑞)로운 정원(庭園)’이란 뜻의 ‘상정(祥庭)’이란 호로 축하해 주었다. 내가 큰 형격인 모임이 있다. 한 직장에서 형제 연을 맺은 오인회로, ‘죽헌(竹軒)’ ‘준보(俊煲)’ ‘백야(白野)’ ‘심정(深井)’이란 호를 지어 부르면서 한층 더 정겹게 지낸다. 그중 둘을 들기로 한다.

백야(白野) : 하양(白)은 빛깔의 마루이며, 들(野)은 길들지 않은 땅이다. 속세에 살면서도 류(柳)교수 재정(在政)은 그 사람됨이 때 묻지 아니 하고 얽매인 데가 없어, 호(號)를 백야(白野)로 삼아 마땅하다. 정유(丁酉) 잎새달(四月) 현경

심정(深井) : 사람의 깊고 얕음과 넉넉하고 메마름은 그의 가슴속에 지닌 우물에서 비롯된다. 이(李)교수 신희(信熙)는 그 사람됨이 깊고도 두터운 우물과 같으므로, 호(號)를 심정(深井)이라 할 만하다. 정유 잎새달 현경 ‘백야(白野)’는 티끌 많은 이 세상에 살면서도 때 묻지 않고 얽매인 데가 없는 사람이다. 바라는 게 없어 두려울 게 없다는 백야가 나는 부럽다. 막내 ‘심정(深井)’은 그 호와 같이 속이 깊고 두터운 사람이다.

대학 재직 시절 화요일마다 점심을 함께하던 네 사람의 모임이 ‘화요회’이다. 한 스승 밑에서 공부한 ‘여해(與海)’는 우리 스승이 지어 주신 호이다. 2019년 8월에 정년퇴임을 하면서 다른 두 분께 드린 호가 ‘서죽’과 ‘심호’이다.

서죽(曙竹) : 문(文)교수 성학(成學)은 그 사람됨이 곧고 막힘이 없으며, 진리의 사랑과 나눔을 향해 대통에 물 흐르듯 거침없는 언술과 문장으로 일가(一家)를 이루었다. 진실로 문교수 성학은 이 시대의 새벽을 열어온 대쪽 스승으로서 가히 서죽(曙竹)이라 부를 만하다. 기해(己亥) 마무리달(十二月) 후목

심호(深湖) : 성(成)교수 위석(渭錫)을 만나 마음으로 의지한 지 사반세기가 흘렀다. 그의 가슴 속에 담긴 깊고 따뜻한 빛 향기는 수많은 생명체와 대지를 적시기에 넉넉하였다. 이에 깊고 따뜻한 호수 같은 성교수 위석을 가히 심호(深湖)라 부를 만하다. 기해 마무리달 후목 호에 나타나 있듯이 ‘서죽(曙竹)’은 이 시대의 새벽을 열어온 대나무 같은 삶을 살아왔으며, ‘심호(深湖)’는 깊고 따뜻한 호수 같은 분이다. 내가 학교 일을 맡고 있었을 때 만나 형제의 연을 맺은 아우가 ‘온호선’이다.

온호선(溫湖仙) : 사공(司空) 대표이사 주(株)는 그 사람됨이 따뜻하고 깊다. 떡과 술을 빚어 달빛 호수에 배 띄우고 허기져 지친 이들 달래기를 즐겨 하도다. 이에 따뜻한 호수의 취선(醉仙) 같은 사공(司空) 대표이사를 가히 ‘온호선(溫湖仙)’으로 부를 만하다. 무술(戊戌) 구월 현경

온호선(溫湖仙)은 유도 선수 출신으로, 여러 해 동안 자선단체를 비롯하여, 청소년, 탈북민, 유도연맹, 회사, 지역 사회에 드러나지 않게 선행을 해오고 있다. 호를 받고 뜻하는 바를 이루었다고 인사를 받은 경우이다.

봉헌(鳳軒) : 홍(洪)교수 원화(元和)는 그 사람됨이 깊고 넉넉하다. 더욱이 밝고 높은 안목에다가 품은 뜻이 멀고 크도다. 이에 홍교수 원화는 봉(鳳)이 사는 터의 주인으로서 한 시대의 아름다운 동행을 이끌어 마땅하므로, 가히 봉헌(鳳軒)이라 부를 만하다. 기해 마무리달 현경네 해 전 대학 경영의 큰 뜻을 품고 풍찬노숙하던 홍교수가 나를 찾아 왔다. 그의 사람됨을 잘 아는 나로서는 무엇이든 돕고 싶었는데, “형님, 저 호 하나 지어 주십시오.”라고 했다. 한 시대의 아름다운 동행을 이끌어 마땅하다고 생각하여 ‘봉헌(鳳軒)’으로 답하였다. 그는 호 덕택에 뜻을 이루었다고 마음 깊이 고마워했다. 내가 사는 팔공산 동쪽 자락 별서 주인의 (당)호이다.

덕송헌(德松軒) : 임 (林)회장 채석(菜錫) 공은 그 사람됨이 깊고 부지런하고 넉넉하다. 일찍이 법정(法頂) 선사께서 넉넉한 마음의 그릇을 ‘덕(德’)이라 하셨다. 임회장 채석 공이 덕으로 쌓아 올린 장송(長松)의 자취가 일가(一家)를 이루었음에 공이 사는 곳을 ‘덕송헌德松軒)’이라 일컫고, 가히 그 주인으로써 호를 ‘덕송德松)’이라 할만하다. 신축(辛丑) 마무리달 현경

임 회장은 자수성가한 분으로, 틈이 나면 넓고 편안한 터에 한옥으로 지은 별서에서 나무를 돌보고 잔디를 깎는다. 추리닝에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는 모습을 보면 여느 시골 농부와 다름없다. 내가 걷거나 자전거로 오가는 길에 만나면 손을 잡고 집안으로 이끌어 냉장고의 물 한 병을 앞에 두고 정담을 나눈다. 별서의 당호가 없어 아쉽게 여기다가 ‘덕송헌(德松軒)’으로 이름하고 그 주인옹을 ‘덕송(德松)’이라 하였다. 지난해 여름 ‘백산’ 선생이 글씨를 쓰고 ‘백랑’ 선생이 새긴 편액과 그 뜻을 적은 기문을 달면서, 평소 좋아하는 소나무가 들어간 (당)호를 얻었다며 기뻐하였다. 마땅한 이름을 얻어 땅과 사람이 새롭게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토박이말로 호를 지은 경우이다. 한자말로 호를 짓는 데는 압축성의 장점이 있는데, 토박이말의 경우는 이 점이 쉽지 않다. 그러나 토박이말로 된 호는 더 또렷하고, 따뜻하고, 정겹다. ‘맑은샘’, ‘깊샘’, ‘푸른샘’이 그러하다.

맑은샘 : 봄 여름 가을 겨울 한결같이 맑게 솟는 샘이 있다. 이는 그 근원이 깊은 데다가 맑게 솟으려는 의지가 굳세기 때문이다. 송교수 현주는 그 사람됨과 학문이 이 샘과 같아 길이 창성할 것이므로, ‘맑은샘’으로 부를 만하다. 계묘(癸卯) 수릿날 검거울 ‘맑은샘’은 나의 학문과 사상을 가장 잘 이해하는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긴 세월 동안 함께 우리말의 의미를 탐구하고 가르치는 방안을 찾으면서 그의 사람됨과 학문의 어제, 오늘을 보고 내일을 헤아리면서 ‘맑은샘’이라 하였다.

깊샘 : 이교수 정택은 사람됨이 깊고 무거우면서 따뜻하다. 그의 삶과 학문도 이와 부절을 맞춘 듯이 일가를 이루었다. 실로 이교수 정택의 사람됨・삶・학문은 ‘샘이 깊은 물’과 같아 내를 이루어 마침내 바다에 닿을 것이므로, ‘깊샘’으로 부를 만하다. 계묘 여무는달 검거울 ‘깊샘’은 나와 학문의 동지이다. 한국어 의미학회 회장을 맡았을 때 총무로서 학회의 크고 작은 일을 해내느라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정년퇴임 출판기념회 때 한국어 의미 탐구의 현황과 과제를 학계를 대표해 내게 봉정하였다. 그의 사람됨·삶·학문이 샘이 깊은 물과 같아 ‘깊은 샘’을 뜻하는 ‘깊샘’이라 하였다.

푸른샘 : 금호강, 달구벌, 몽골, 그리고 융프라우를 담은 화폭의 코발트블루가 눈에서 마음으로 와 닿아 깊은 울림을 준다. 이는 부산 영도(影島)의 푸른 기상이 몸에 배어 화백의 가슴속 깊이 푸른 샘이 용솟음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에 타고난 재능에다 노력이 조화되어 화업(畵業)으로 일가(一家)를 이룬 김(金)화백 상용(尙容)을 ‘푸른샘(靑泉)’으로 부를 만하다.

임인(壬寅) 국화 가득 핀 달(十月) 검거울 김화백은 수채화에 일가를 이룬 분이다. 그의 그림에는 강, 산, 바다, 하늘, 마을과 도시, 나라 안팎의 풍광이 코발트 블루로 가득하다. 몽골 사막 밤하늘 아래의 게르 및 순례자의 길, 그리고 융플라우의 화폭 앞에 서면 숨이 멎은 채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전시회를 찾는 많은 이들은 이로써 도시의 삶을 치유하고 위로받게 된다. 고향 부산 영도(影島)의 푸른 기상이 몸에 배어 화백의 가슴속 깊이 푸른 샘이 용솟음치는 것 같아 ‘푸른샘’이란 호를 드렸다. 벗의 아들이 호주에 살면서 새집을 마련하여 토박이말로 된 당호를 걸고 싶다 하였다.

호박꽃초롱 : ‘호박꽃초롱’은 백석이 사랑한 시인 강소천의 동시이자 동시집이다. “호박꽃을 따서는 무얼 만드나. 우리 애기 조그만 초롱 만들지. 반딧불을 잡아선 무엇에 쓰나. 우리 애기 초롱에 촛불 켜 주지.” 하늘은 호주의 지붕 밑에 ‘호박꽃초롱’ 켜고 사는 가족을 길이 사랑한다. 계묘 한글펼친달 두터운나무

산책을 하다가 강소천의 동시집 호박꽃초롱을 떠올렸다. 원고 뭉치를 보고 함흥영생고보 시절의 은사 ‘백석(白石)’이 ‘호박꽃초롱서시’를 짓고 백석의 친구 정현웅이 장정하고 삽화를 그렸다. 나는 ‘호박꽃초롱’이라 하고 호 풀이에 ‘호박꽃초롱’의 몇 행을 넣고 “하늘은 호주의 지붕 밑에 ‘호박꽃초롱’ 켜고 사는 가족을 길이 사랑한다.”고 하였다.

대략 손꼽아 보니 지은 호가 30여 개 되는 것 같다. 부탁받거나 스스로 호를 지어 드려야겠다는 마음이 생기면, 나는 그 대상을 마음의 캔버스에 올린다.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반년도 넘게 틈틈이 그의 삶·기질·지향점을 떠 올리며 새 생명의 호를 모색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섬광처럼 떠오르는 영상을 포착하여 언어화한다. 이 경우 영상과 언어는 다르지 않다. ‘호’와 ‘호 풀이’를 적고 낙관을 찍은 뒤 케이스에 넣는다. 지은 호를 우편으로 보내기도 하고 만나서 전하기도 하는데, 사정이 허락되면 가까운 이들과 함께 ‘호 잔치’를 연다. ‘인생은 지금부터’라는 모임에서 이루어진 ‘호 잔치’의 보기를 들기로 한다.

호 잔치

때: 2021년 5월 25일

곳: 강원도 철원시 한탄리버스호텔

세미나 명칭: 인생은 지금부터 학장 모임

목적: 철원의 경관 탐방, 사범대학의 현실과 미래 진단, 우의 증진

참석자: 백송(伯松) 이흥수 학장 외 7명

진행: 수백(守白) 김종훈 학장

지금부터 류해일 학장님, 김부윤 학장님의 호 잔치를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현경 선생께서 류해일 학장께 호를 드리겠습니다. (호 낭송 및 증정)

덕암(德巖) : 이 땅의 토박이말과 땅 이름을 조사하며 전국을 다닌 적이 있었다. 들이 넓고 기름져 인심이 두터운 너르바위 마을을 ‘덕암리(德巖里)’라 부르는 데를 보았다. 여러 해 전 법정 선사의 법문에서, ‘덕(德)’을 넉넉한 마음의 그릇이라 하셨다. 류(柳)학장 해일(海日)은 그 사람됨이 ‘덕 바위’와 같아 공(公)이 사는 곳을 ‘덕암정(德巖亭)’이라 일컫고, 가히 그 주인으로서 호를 ‘덕암’이라 부를 만하다. 신축(辛丑) 푸르른달(五月) 현경, 이어서 김부윤 학장께 호를 드리겠습니다. (호 낭송 및 증정)

홍정(弘鼎) : 솥은 사람을 먹여 살리는 그릇의 으뜸이다. 김(金)학장 부윤(富允)은 수학으로서 ‘지(智)’, 삶과 교육으로서 ‘덕(德)’, 야구로서 ‘체(體)’의 세 발로 버티고 선 ‘큰 솥’을 닮았다. 이에 솥뫼(釜山)의 주인으로서, ‘지덕체(智德體)’의 조화롭고 빼어난 솥과 같은 김학장 부윤을 가히 ‘홍정(弘鼎)’이라 부를 만하다. 신축 푸르른달 현경

이어서, 현경 선생께서 호를 짓게 된 내력을 말씀하시겠습니다. (호 풀이 설명) 다음으로, 백송 선생께서 축하의 말씀과 함께 건배 제의를 해 주시겠습니다. (축하와 건배) 이제, 덕암 선생께서 소감과 함께 건배하시겠습니다. (소감 및 건배) 이어서, 홍정(弘鼎) 선생께서 소감과 함께 건배하시겠습니다. (소감 및 건배) 이것으로써 덕암 선생과 홍정 선생의 호 잔치를 마무리하겠습니다.

‘호 잔치’는 일정한 형식이 없다. ‘장롱 호’가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지 자신의 호를 알려 주변 사람들과 공유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대여(大餘)’ 김춘수 선생의 ‘꽃’이라는 시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라고 한다.

나의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이름’이 바로 호이다. 세상 사람들은 좋은 호 갖기를 원하지만, 그 호에 조화를 이루는 삶이 함께해야 한다. 나는 스승께서 지어 주신 ‘현경’, 외우가 지어 준 ‘후목’답게 살아가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