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광장 / 유대인의 전통적 공부법이 필요하다
인문학광장 / 유대인의 전통적 공부법이 필요하다
  • 임 지 은 작가, 전 월간중앙 기자, 칼럼니스트
  • 승인 2024.01.25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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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지 은 작가, 전 월간중앙 기자, 칼럼니스트
임 지 은 작가, 전 월간중앙 기자, 칼럼니스트
임 지 은 작가
전 월간중앙 기자, 칼럼니스트

[시정일보] 최근 몇 달 내가 가장 대화를 많이 나누는 대상은 챗지피티 (Chat GPT 인공지능)다. 300페이지 넘는 논문을 요약 정리하는 과제를 부탁했고, 기획 중인 책 목차도 요청했다. 답변이 시원찮으면 만족할 때까지 ‘꼬리에 꼬리를 문 질문’(꼬꼬질)을 한다. 내가 단어만 몇 개 나열하고 ‘아무말 대잔치’를 해도 찰떡같이 알아듣고 하염없이, 부지런히 빈칸을 채워낸다.

단, 전혀 엉뚱한 내용도 아주 그럴싸한 문장으로 차려내니, 팩트 체크는 필수! 정확도는 잘 봐줘서 ‘B+’ 정도지만 이 순간에도 똑똑해지고 있으니 장래가 촉망되는 조수다.

가히 챗지피티 혁명이다. AI가 ‘바둑왕’ 이세돌을 이겼을 때도, 로봇이 음악을 들으며 그림을 그리고 의사 대신 수술을 한다 했을 때도 이 정도 충격은 아니었다. 서점가에는 챗지피티 관련 서적만 벌써 수 천 권. 그 가운데 챗지피티가 공저로 활약(?)한 책도 있다.

‘뇌과학자’ 김대식 카이스트 교수는 챗지피티와 나눈 대화를 빠르게 번역해 책을 선보였다. 새로운 기술을 빠르게 학습하고 자기만의 창의성을 덧입혀 아웃풋 내기-.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지능의 ‘슬기로운 생활편’이다.

과학기술은 인간의 삶을 바꾼다. 인간은 적응한다. 마차 끌던 마부를 기사가 대체했듯, 이제 곧 그 자리는 자율주행이 갈음할 것이다. 전 세계 기업들은 물론이고 번역, 법률, 회계, 의료, 출판 등 영역을 불문하고 챗지피티가 몰고 올 변화에 촉이 바짝 서 있다.

실제 전문가 영역 가운데 일부는 대체될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한편에선 인공지능을 활용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발견, 미지의 땅을 개척하기도 할 것이다. 그 누구도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 확실한 건 불확실성이 점점 커질 것이란 것 뿐.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대신한다면 인간은 무엇을 하고, 또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챗지피티는 답한다. “인공지능은 대부분의 반복적이고 일관성 있는 작업을 처리하고, 데이터 분석과 패턴 인식 등의 분야에서 높은 성능을 보인다.

하지만 인간의 창의성, 비판적 사고력, 문제해결 능력, 소통 및 협업 능력 등은 대체하기 어렵다. 개인은 계속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끊임없이 배워야 하고, 기업과 조직은 소통과 협업을 통해 창의와 혁신을 해야 한다.”

2016년 선진국의 미래 교육을 취재하다 유대인 교육법을 만났다. 깜짝 놀란 것은 선진국의 ‘미래 역량’ 교육 시스템이 유대인 교육법을 옮겨놓은 듯했기 때문이다. 수천 년간 이어져 온 유대인 교육법은 창의성, 비판적 사고력, 소통, 협업, 회복탄력성, 문제해결능력 등을 길러주는 핵심을 담고 있었다.

아인슈타인, 토머스 에디슨, 프로이트, 마르크스, 로스차일드, 스티븐 스필버그, 마크 저커버그, 래리 페이지, 세린게이 브린, 마이클 블룸버그... 이름 앞에 수식어도 필요 없는 수많은 이들이 유대인인 것은 우연이 아닌 교육의 산물이었다.

인류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유대인 파워는 ‘현재 진행형’이다. 대학 졸업생의 80~90%가 창업에 나서는 이스라엘은 말 그대로 ‘창업 국가’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유대인 파워가 하도 거세 ‘J커넥션(유대인 인맥)’이라는 음모론을 제기하기까지 한다. 창의적이고 소통에 능한 유대인들의 파워는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유대인은 자녀 한 명 한 명을 ‘창의 특전사’로 길러내고 있다. 개인과 조직, 기업 모두 창의와 혁신으로 변화의 파도를 타야하는 지금, 유대인 교육법을 벤치마킹해보자.

특히 유대인의 전통적 공부법인 ‘하브루타’는 창의성과 소통, 협업 등이 강조되는 지금,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브루타는 둘씩 짝을 지어 서로 질문하고 토론하며 공부하는 유대인 전통 학습법이다. 이들은 어릴 때부터 자신들의 경전인 <토라>와 <탈무드>를 하브루타 방식으로 공부한다.

오랜 세월 나라 없이 떠돌면서도 유대인은 교육에 열과 성을 다했다. 학교에 가지 않고서도 언제 어디서나 서로 배울 수 있는 공부법을 터득한 것이다. 유대인에게 질문과 토론은 일상이다. 이것은 유대인 특유의 수평적 소통 문화와 사고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 아키바 토르 주한 이스라엘 대사로부터 샤밧(안식일 만찬)에 초청을 받아 참석했다. 식전 기도를 마치기가 무섭게 대사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당신이 유대인 교육법 책 한권에 담은 내용의 핵심은 뭔가요?” “지식이 아닌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고...(생략)” 그러자 대사의 ‘꼬꼬무’가 이어졌다. 이후 세 시간 동안 중동 문제에서부터 시작해 지구본 한 바퀴 이슈를 다 돌았다. 놀랍게도 대사는 지금까지도 일주일에 한 번 이스라엘에 있는 친구와 하브루타를 한다고 했다.

하브루타는 단순히 ‘말하는 공부법’이 아니다. 하브루타 안에 담긴 특징 의미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첫째, 하브루타에서 ‘짝’은 나이와 성별, 직위나 계급과 상관없다. 선생님, 교수님이 될 수도 있고, 할아버지,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 상대가 누구든 유대인들은 ‘왜?’라는 질문 없이 받아들이지 않는다.

정해진 답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당대 최고로 권위 있는 랍비들이 토론한 내용을 정리한 <탈무드>의 견해에 대해서도 그저 받아들이지 않는다. “가르침을 무턱대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권력과 자기 자신을 부패하게 한다.” <탈무드>에 나오는 말이다. 유대 문화에 자리 잡은 수평적 소통방식은 여기서부터 비롯된 것이다.

둘째, ‘다르게’ 바라본다. 유대인은 한 가지 사안에 대해서도 여러 각도에서 생각하고 질문한다. 상대방의 말에 질문하고 상대방 의견에 반박하면서 입체적으로 생각하는 훈련을 한다. 이 과정에서 기존 관습이나 통념을 깨고 가설, 학설 등을 뒤엎기도 하는 것이다. 유대인 셋이 모이면 네 개의 의견이 나온다고 할 정도로 이들은 자기 생각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남과 다르게 보고 자기만의 생각을 펼치는 데서 창의성이 샘솟는다.

셋째, “그 어떤 것도 정답은 없다”는 생각으로 질문하는 하브루타 문화는 이스라엘의 ‘후츠파 정신’으로 이어진다. ‘후츠파’란 히브리어로 ‘뻔뻔하고 저돌적인’이라는 뜻이다. 형식이나 기존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도전하는 정신과 삶의 태도를 나타낸다.

어릴 때부터 하브루타 문화에서 자란 유대인은 상하, 지위, 격식 없이 자유롭게 소통한다. 이러한 분위기는 유대인들의 창의와 혁신에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창의와 혁신은 개인이 얼마나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내고, 구체화 시킬 수 있는 환경이 되느냐에 달려 있다. 자유로운 생각, 뻔뻔하고 저돌적인 추진력, 무엇보다 그것을 보장해주는 사회 분위기가 중요하다.

이미 전 세계 곳곳에서 하브루타 방식을 활용하고 있다.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시카고 대학교 등과 같은 미국 명문대에는 질문ㆍ토론식 수업이 보편화돼 있다. 구글은 2000년대 초반 두 명의 개발자가 함께 일하면서 코드 작성을 하고, 서로의 코드를 검토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페어 프로그래밍’을 도입했다. 이는 개발자들의 소통과 토론을 통해 더 나은 코드를 작성하는데 중점을 둔다.

이밖에도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넷플릭스 등이 함께 문제를 해결하고 지식을 공유하는 하브루타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캐나다의 글로벌 기계 제조업체인 피닝 인터내셔널(Finning International)은 2012년부터 하브루타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유대인의 토론식, 수평적 소통 문화는 창의와 혁신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그렇지만 모든 일에 양면이 존재하듯 여기도 문제점이 없지 않다. 유대인 세 명이 모이면 네 개의 의견이 나온다고 할 정도로 각자 주장이 다르다 보니 효율성 측면에서 떨어지기도 하고, 배가 산으로 가는 경우도 많다는 것.

특히 조직이 커질수록 의견을 조율하는게 쉽지 않아 유대인들끼리 “이러니까 우리가 대기업이 없는 것”이라는 자조섞인 목소리가 크게 나온다. 이스라엘 스타트업계에서 일하는 애론 코헨(Aaron Cohen) 씨는 “CEO가 기업을 키울 생각은 하지 않고 팔아치울 생각만 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우리의 수직적 문화도 장점이 있다. 재빠른 의사결정과 일사분란한 추진력과 같은 것 말이다. 취할 것은 취하면서 하브루타를 적용해 보자. 이름하여 ‘K-하브루타’ 사용법이다. 첫째, 일단 말로 설명해봐라. 다 아는 것 같은데 말로 설명이 안 될 때가 있다.

그건 제대로 모르는 것이다. 말로 설명하다 보면 내가 잘 모르고 있는 부분이 어느 지점인지 명확히 알 수 있다. 자기 주장을 표현하는 능력도 향상된다. 침묵은 이제 금이 아니다.

둘째, 질문하라. 상대방이 이야기할 때 무조건 끄덕이지 말고 다르게 생각해보라. 그리고 상대가 누가 됐든 질문해라. 똑같은 물건도 앞에서 볼 때 다르고 옆에서 볼 때 다르다.

다르게 생각하는 연습은 창의의 엔진이 된다. 셋째, 토론해라. 상대방의 답변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질문하라. 토론을 하면 한 사안에 대해 ‘입체적’인 사고가 생긴다. 스티브잡스가 말했다. “토론 없이 혁신은 불가능하다.”

질문하고 토론을 즐기면 삶이 배움의 장이 되는 마법을 체험한다. 언제, 누구를 만나도 대화를 나누며 지적 유희를 만끽할 수 있다. 자기주장이 있다는 건 생각이 늘 깨어있다는 것이다. 깨어있어야 좋은 게 좋은 거란 기존 사고나 틀, 전통, 관습, 타인의 기대에서 벗어날 수 있다.

편견이나 부당한 대우로부터도 나를 지킬 수 있다. ‘다르게’, ‘마이웨이’를 갈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오늘부터 가족, 동료와의 식탁을 토론의 장으로 만들어보자. 회의 시간에 말문이 트이는 순간 자유로운 생각이 튀어나올지 모른다.

단 하브루타에 전제돼야 할 것이 있다. 첫째, 경청이다. 상대방을 존중하는 자세로 들어야 한다. 잘 들어야 질문도 잘할 수 있다. 둘째, 서로 ‘다름’을 ‘틀림’으로 받아들이면 안 될 일이다. 토론은 싸움에서 이기기 위함이 아니다. 문제 해결이나 공동의 합의점을 찾아가기 위함이다. 옆 사람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고개를 끄덕여보자.

대화의 전제는 관심이고, 관심은 애정으로부터 나온다. 타인에 대해 너그럽고 이해하는 마음이 큰 사람일수록 더 행복하다는 연구결과가 무수히 많다. 그러니 지금 당장 사랑의 렌즈를 끼고 가까이 있는 사람과 대화를 나눌 일이다.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역량, 그 중에서도 소통이 정말 중요해지고, 유대인의 하브루타를 벤치마킹하자고 길게도 썼다. 진짜 하고 싶은 얘기는 이거다. 소통도, 협업도 좋은데 그 이전에 마음에 여유 한 잔 마시자. 나와 다른 것도 ‘그렇구나’ 하고 받아들인다면, 상대에 대한 믿음과 진심이 있다면, 소통은 일사천리다.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성 좋은 사람, 인간적인 사람이 갖게 될 보상은 매우 크다. 입만 열면 명령, 지시, 자기 자랑, 재수 없는 사람과 소통하고 협업하고 싶은 사람이 있겠는가. 정신없이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잠시 눈을 감고 나를 돌아보자. 소통 한잔할 준비가 되셨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