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광장 / 한일 셔틀 외교 복원, 에너지협력으로 이어지길
인문학광장 / 한일 셔틀 외교 복원, 에너지협력으로 이어지길
  • 임 은 정 국립공주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국제학박사
  • 승인 2024.02.13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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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은 정 국립공주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국제학박사
임 은 정 국립공주대학교 국제학부 교수국제학박사
임 은 정 국립공주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국제학박사

[시정일보] 윤석열 대통령과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 총리 간 한일 정상회담이 양자 단독 회담으로는 12년 만에 열려 국내외로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다. 양자 정상회담의 성과를 두고서 국내에서는 여러 공방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무엇보다 양국 정상이 셔틀 외교 복원에 합의한 만큼 앞으로 두 이웃 국가 간에 여러 의제가 차근차근 논의되면서 미래지향적인 협력체제가 구축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앞으로 한국과 일본이 협력의 의제를 논의하는 데 있어서 에너지 및 기후변화 대응 분야의 협력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를 주문한다. 한국과 일본은 이 분야에서 서로 고민과 과제가 매우 비슷하여 함께 힘을 합친다면 공통의 이익을 증진할 수 있으리라 기대되기 때문이다.

첫째, 한국과 일본은 부존자원이 전혀 없다시피 해 제조업을 기본으로 하여 수출을 통해 국부를 키워왔기에 에너지 수급의 구조가 매우 흡사하다.

둘째, 두 나라 모두 지리적으로 섬 구조이다 보니 자원의 조달을 모두 해상수송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도 유사하다.

셋째, 두 나라 모두 초고령사회, 낮은 출생률, 인구 감소, 1인 가구 증가, 지방 소멸과 같은 인구 및 사회 구조적인 측면에서의 공통된 과제를 공유한다. 이렇게 두 나라가 구조적으로 유사한 부분이 많아서 에너지 및 기후변화 대응 정책을 꾸려나가는 데 있어 고민도 비슷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두 나라가 시급하게 해결해야 하는 문제 중 하나는 생산을 위해 사용하는 화석연료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2021년 기준으로 발전량의 34.3%를 석탄에, 29.2%를 가스에 의존했다. 일본도 발전량의 80% 가까이 석탄과 가스에 의존하고 있다.

그런데 두 나라 모두 국제적으로 ‘2050 탄소중립’을 실현하겠다는 목표를 내걸고 이것을 국내적으로도 법제화하고 있다. 그런 만큼 발전 부문의 탈탄소화는 두 나라에 매우 시급한 과제다. 이는 결국 원자력과 재생에너지 같은 저탄소 전력원을 늘려가는 길밖에 없다.

이런 도전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전력 계통이나 저장장치 기술의 혁신과 발전이 함께 뒷받침되어야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석탄보다는 유해 대기오염물질 배출이 적은 천연가스 의존도가 당분간은 쉽게 줄어들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전쟁이 발발하고 연료 가격의 변동 폭이 커지면서 가스의 안정적인 공급에 대한 우려도 계속해서 제기되는 상황이다. 한국과 일본은 소위 ‘아시아 프리미엄’을 지불하며 다른 지역들보다 높은 가격으로 가스를 매입해 왔고, 동맹국인 미국산 LNG도 가장 많이 수입한 나라들이다.

그런데 전쟁 상황으로 인해 탈 러시아산 가스를 추구하는 유럽 국가들마저 미국산 LNG 수입을 크게 늘리면서 가스를 둘러싼 쟁탈전이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따라서 사정이 비슷한 한국과 일본은 앞으로 가스 도입의 다변화를 위해서 서로 협력을 도모하며 공급국에 레버리지를 키울 방안을 모색하는 데 머리를 맞댈 필요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 인도네시아 세노로 가스전 사업에서의 한국가스공사와 일본 미쓰비시상사 간에 발생한 마찰은 매우 유감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관련 논의가 멈추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협력 방안에 관한 논의를 계속해 나갈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스마트 그리드나 미래형 도시, 그린수소와 암모니아 공급망 구축과 같은 분야에서도 공동 의제를 함께 발굴하고, 협업으로 활로를 개척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런 협력들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양국 간에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두 나라의 관계가 역사적인 이유로 매우 특수한데다 양국의 에너지 시장 구조에서 차이가 있는 만큼 협력에 속도를 내기가 쉽지는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두 나라가 가진 공통의 고민에 대한 정책적 아이디어들을 담담히 공유하면서 실질적인 시너지가 나올 만한 정책들을 발굴해 간다면 과거 프랑스와 독일이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를 통해 유럽의 평화와 경제적 번영을 끌어냈듯이 한일관계도 지역의 평화와 번영에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한일 수소 협력, 에너지협력의 견인차 되길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지난 15일(현지 시각)부터 2박 3일 일정으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렸다. 이번 APEC 회의는 무엇보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간 미·중 정상회담이 열려 세계적인 이목이 쏠렸다.

윤석열 대통령도 중요한 일정을 소화했다. 첫날 APEC 최고경영자(CEO) 서밋에서는 기조연설을 통해 세계 경제의 연결성을 강조했고, 애플의 CEO인 팀 쿡과 GM의 수석부회장과도 만났다. 그리고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는 이틀 연속 회동하며 양국 간 협력 의지를 거듭 다졌다.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가 함께 스탠퍼드대학을 찾아 좌담회에 참석한 것은 매우 흥미로운 행보였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한·미·일 세 나라 간 첨단 분야에서의 기술협력을 강조했다.

이는 지난 8월 캠프 데이비드에서 있었던 삼국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과학·기술·공학·수학(STEM) 분야에서의 공동 연구와 개발, 인적 교류 확대의 연장 선상이다. 아울러 한일 두 정상은 한일 간 협력의 잠재성이 큰 수소 분야에서의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한국은 수송 분야를 중심으로 발전용 연료전지까지 수소 활용 측면에서 세계 1위로 평가받고 있고, 일본은 수소와 관련된 특허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두 나라 모두 기후 및 지질 조건상 자체적으로 수소를 대량으로 생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기후 위기 시대에 화석연료·원료로 주목받는 수소는 생산 방식에 따라 앞에 여러 색깔을 붙여서 그 특징을 표현한다. 화석연료를 개질(reforming)해 생산된 수소를 그레이수소, 그레이수소와 같은 방식으로 생산하되 생산 공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포집 및 저장해 배출량을 줄이는 방식으로 생산된 수소를 블루수소,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원을 기반으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으면서 물을 전기 분해하는 방식으로 생산된 수소를 그린수소, 물을 전기분해 하는 점에서 그린수소와 같지만, 그 에너지원이 원자력인 경우를 핑크 수소라고 부른다.

그런데 수소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는 바로 저장 및 수송이다. 수소를 기체 상태로 수송하기에는 부피가 너무 커 액화 과정이 필요한데, 수소를 액체 상태로 만들기 위해서는 영하 253도의 극저온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이런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목받고 있는 것이 암모니아다. 암모니아는 질소 원자 1개와 수소 원자 3개로 결합해 있으면서 영하 33도에서 액화 처리가 가능하므로 수소를 수송·저장하는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일본은 아베 신조 전 총리 재임 시절인 2017년 12월에 2050년까지 수소를 주요 에너지원으로 삼는 사회를 구현하겠다는 내용의 ‘수소 기본전략’을 발표한 바 있는데, 이를 올해 6월 개정하면서 수소 및 암모니아 정책을 더욱 강화했다.

지난해 1월에는 일본 가와사키중공업(KHI)이 건조한 액화수소 운반선인 ‘수소 프론티어’(Suiso Frontier)가 호주에서 일본으로 세계 최초로 액화수소를 운반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일본은 섬나라이기 때문에 해외로부터 에너지원을 수송하는 파이프라인이 갖춰져 있지 않다 보니 해상수송 기술을 발전시켜 온 이력이 있다. 일본이 한창 고도성장기 시절이던 1969년, 도쿄 가스(東京ガス)와 도쿄전력(東京電力)은 세계 최초로 발전과 가스 사업에 대한 액화천연가스(LNG)의 공동 공급 시스템을 구축하고, 미국 알래스카에서 LNG 수입을 실현한 바 있다.

한국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다른 국가와 파이프라인으로 연결된 에너지 인프라가 없어 해상수송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데다 기후 및 지질 조건상 국내에서 자체적으로 수소를 대량 생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결국 일본과 유사한 호주, 캐나다, 중동 등에서 유사한 경로로 수소 도입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고민이 비슷한 두 나라이기 때문에 수소 공급망 구축에서 힘을 합친다면 천연가스 시장에서 이른바 ‘아시아 프리미엄’으로 불리는 리스크 비용을 감당했던 전력을 반복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번에 양국 정상이 수소 협력 의지를 확인한 만큼, 정부 간이나 민간기업 간에 더 구체적인 실현 방안을 활발하게 논의하고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