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광장 / 임길택 선생을 추억하다
인문학광장 / 임길택 선생을 추억하다
  • 임 왕 택 나주임씨중앙화수회 감사
  • 승인 2024.02.06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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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왕 택 나주임씨중앙화수회 감사
임 왕 택 나주임씨중앙화수회 감사
임 왕 택 나주임씨중앙화수회 감사

[시정일보] 임길택(林吉澤)선생은 1952년 3월에 전라남도 무안군 삼향면 맥포리 송산 마을에서 나주임씨 장수공파 후정공계이신 임종길님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임길택 선생은 삼향면 지역 관내인 삼향동국민학교를 졸업하고 호남 남서 지역의 명문 목포중학교로 진학하였는데, 등하교 방법은 일로역과 동목포역을 오가는 열차를 이용하는 기차 통학생이었다.

이후 목포고등학교와 목포교육대학교, 방송통신대 영문학과 까지를 다니시는 8년 동안을 내내 온통 기차만을 이용하는 등하교의 일상이었으니 그 열차는 선생의 평생을 두고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이상향으로의 이동 수단이었음이 분명해 보인다.

매일 그 열차에서 타고 내리는 여러 중고등 남녀 학생들, 출퇴근하는 회사원분들, 목포항 선창에서 임거리 장만하여 농촌지역으로 팔러 가시는 아낙분들, 직접 기른 푸성귀를 목포로 팔러가는 농촌 아녀자분들 .... 그 분들이 선생의 사춘기와 청년시절 초반의 감성들을 일깨워 주면서 일생에서 가장 많은 부분의 문학적 감수성을 충전해 주셨으리라 나름 생각해본다.

임길택 선생은 1974년 목포 교육대학을 졸업한 뒤, 1976년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 도전초등학교 분교장에서 교직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 뒤 14년 동안 강원도 탄광 마을과 산골 마을 학교에서, 1990년부터는 경상남도 거창에서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이 시절 아이들의 글을 모아 학급 문집 『나도 광부가 되겠지』, 『물또래』 등을 펴내기도 했다.

임길택 선생은 오랫동안 아이들과 함께 하면서 소박하고 순수한 아이들의 모습을 꾸밈없는 진솔한 글로 담아냈다.

작품집으로는 시집 『탄광 마을 아이들』, 『할아버지 요강』, 『똥 누고 가는 새』, 『산골 아이』, 『나 혼자 자라겠어요』, 동화집 『느릅골 아이들』, 『산골 마을 아이들』, 『수경이』, 장편 동화 『탄광 마을에 뜨는 달』, 산문집 『나는 우는 것들을 사랑합니다』 등이 있는데

그 중 대표작인 『똥 누고 가는 새』한 편을 옮겨본다.

“물들어가는 앞산바라기 하며

마루에 앉아 있노라니

날아가던 새 한 마리

마당에 똥을 싸며 지나갔다

무슨 그리 급한 일이 있나

처음엔 웃고 말았는데

허허 웃고만 말았는데

여기저기 구르는 돌들 주워 쌓아

울타리 된 곳을

이제껏 당신 마당이라 여겼던만

오늘에야 다시 보니

산언덕 한 모퉁이에 지나지 않았다

떠나가는 곳 미처 물을 틈도 없이

지나가는 자리마저 지워버리고 가버린 새

금 그을 줄 모르고 사는

그 새“

이 밖에도 임길택 선생이 가르친 탄광 마을, 산골 마을 어린이들의 시를 모은 『아버지 월급 콩알만 하네』, 『꼴찌도 상이 많아야 한다』등 다수가 있다.

어떤 이는 농촌 아이들 삶과 탄광 마을 모습, 가난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시로 동화로 수필로 고스란히 녹여 냈던 선생의 작품 세계를 나름 깊고 넓게 살펴보았다면서,

“아직도 우리 가슴에 살아있는 우리의 참 스승, 임길택 선생을 기리며 해마다 섣달 열하루가 되면 우리에게 아련한 그리움을 갖게 하는 분이 계신다. 햇볕의 동무, 들녘의 동무, 모든 생명들의 동무이고자 했던 임길택 선생이 이 땅을 떠나, 진짜 그들의 동무되어 가신 날이기 때문이다.

이제, 그를 묻은 그 무덤엔 어느덧 잔디가 살아 움트고, 그 잔디들은 또다시 다음해를 기약하며 사그러 들다 햇볕 따스한 봄날 다시 피어나겠지요. 임길택 선생은 교사이며 시인이셨다. 선생은 그저 세상 모든 것을 그 야윈 몸에 한가득 품다가 다시 한가득 안고 돌아가셨다.

세상의 그 살뜰한 사람들을 뒤로 한 채, 죽음이라는 차가운 동무 맞아 기꺼이 가셨다. 마치, 우리 마음속에 숨어있는 모든 걱정, 욕심은 이렇게 버려야 한다고 일러 주듯이…….” 라고 썼더군요.

임길택 선생께서는 호남선 철도의 일로역과 동목포역을 오가는 중•고등•대학교 8년 동안의 등하교 내내를 통학 열차에 의지하면서, 무안반도 남동지역이 가지는 특수 환경인 간척지 영화농장과 자방포 뜰의 아직 설익은 논농사 중심의 농촌문화와 영산강 하구가 이미 펼쳐놓은 기수대의 기설어로 및 서해안 남단의 목포항 풍광을 온몸으로 겪은 탓으로 강원도 탄광촌과 산골 마을 및 경상도 농촌 마을에서의 교사 생활이 전혀 색다르거나 어색하지 않으셨다.

인간미 넘치고 소박 간결하면서도 인간해방의 시대정신을 담담히 녹여 내는 유수한 문장의 수많은 유작 들을 남기셨으리라 믿으면서, 무안군 관내 비슷한 지역에 향리의 추억을 함께 가진 일문(一門)의 수하(手下)로서 자랑스러움과 안타까움을 함께 얹어 감회에 젖어본다.

임길택 선생은 1997년 4월에 폐암 선고를 받고 요양하시다가, 12월 11일 마흔 여섯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셨다. (2023. 11. 03.) 향리 무안군 삼향읍 맥포리 송산 마을에는 조카 임현석씨가 살고 있다.